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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학생회 선거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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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일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5,677회 작성일 03-11-02 08:52

본문

스웨던어 수업은 전공생들에게만 개방되어 있는데다 아침 8시라는 죽음의 시간대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첫 수업 날, 도저히 자리를 못잡고 Heizung 위에 걸터앉아 수업을 들어야 했던 하일트, 엉덩이가 후끈후끈하여 찜질방 기분이 난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 좁은 Heizung 위에서 안락한 자세를 찾긴 힘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수업날에는 마음 먹고 10분쯤 일찍 갔다.

이미 교실은 상당수 들어차 있었지만(독한 것들 잠도 없냐…) 그래도 군데 군데 비어있는 자리가 보였고 하일트는 즐겁게 앉았다. 헌데 룰루랄라 책가방을 풀고보니 즐거운 건 나뿐이고 뭔가 교실 분위기가 숙연했다.

그리고 숙연한 분위기의 조성자는 수업 시작 시간이 될 때까지 수업 외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메꾸던 스웨덴어 강사였다. 그 날 강사가 한 이야기의 주제는 그 전 주에 논의된 스칸디나비아 학과 예산 삭감 문제였다.

독일 어딘들 안그렇겠냐마는 베를린 대학들은 특히 자금 사정이 별로 안좋다. 자금줄인 베를린 시 자체가 빚더미에 올라앉아있기 때문이다. 대학 전체가 긴축 재정으로 들어가야 할 때 아무래도 삭감 대상으로 만만한 건 이공계보다는 인문계쪽이고 덩치 큰 과보다는 작은 과들이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학과는 두 조건에 모두 해당한다.

그나마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라는 상징성 때문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쪽에서도 신경을 써주고 있지만(베를린의 한국학과가 이사는 다닐망정 용케 없어지지는 않고 버티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다른 지역으로 가면 상황이 더 심각해지는 모양이다. 강사는 괴팅엔 대학의 스칸디나비아 학과가 문을 닫게 되었다고, 니더작센 주 유일한 스칸디나비아 학과의200년의 전통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전했는데 이 때 그의 어조가 얼마나 침울했는지 그 때까지 괴팅엔 대학에 대저 스칸디나비아학과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하일트조차 잠시 애절한 감상이 들었을 정도였다(물론 강사는 독일어로 이야기했다. 스웨덴어로 그런 복잡한 얘기했을 때 알아들을 학생이면 그 수업 안들어온다 -_-).

분위기가 다운되었음을 느끼자 강사는 아직 베를린은 그런 상황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일단 2009년까지는 스칸디나비아학과가 존속할거라고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물론 여러분들이 그 때까지 졸업 안하고 한 12년 정도 질질 끌며 공부를 할 생각이라면 그 이후의 일은 더 이상 장담할 수 없지만 -_->이라는 게 강사의 덧붙임이었고.

12년 정도 질질 끌며 니나니노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건 많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이번 학기 과학생회(Fachschaftsrat) 선거는 예산감축에 대한 학생 전체 회의도 겸하고 있었는데 세미나실 하나가 회의 참석자들로 빼곡이 들어찼기 때문이다.

회의에서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오갔다. 아직 감축안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대략 스칸디나비아 학과에서는 교수 자리 하나와 그에 딸린 Mitarbeiter들 몫의 예산이 떨려나갈거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 스칸디나비아 학과의 네 세부 분야인 언어학, 근현대문학, 중세어문학, 문화학 중 한 분야는 교수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스칸디나비아학과 측에서는 이 삭감안을 좀 억울해하고 있는데 그건 이미 이 과가 베를린 시의 예산 삭감을 위해 적극 협력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베를린이 분단되었을 무렵 서베를린의 자유 대학과 동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에는 각각 스칸디나비아학과가 있었는데 통일 후 한 도시에서 대학 여럿을 운영하는 게 부담스러워지자 중복되는 학과들 중 몇은 한쪽으로 몰아서 통합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자유 대학에 있던 스칸디나비아학과는 훔볼트 쪽으로 합병되었다.

그러나 모든 학과가 그렇게 순순히 정리된 건 아니다. 중국학과나 일본학과 같은 경우는 여전히 양 대학에 겹쳐있다. 따라서 스칸디나비아학과 쪽에서는 <쟤네를 정리하면 될 것을 왜 또 우리 갖고 난리냐>는 하소연이 나올만하다. 회의 전날 문화학 입문 시간에도 잠시 그 이야기가 오갔는데 학생 하나가 이런 질문을 했다.

학생: 훔볼트는 유럽 어문학쪽으로 특화되어 가고 자유 대학은 아시아 어문학쪽을 키우는 분위기니까 자유 대학Romanistik과를 훔볼트 쪽으로 합병하는 건 어때요? 한 도시에 Romanistik이 그렇게 여러 군데 있을 필요 있나요?

강사: 맞는 말인데 거기엔 문제가 하나 있어.

학생: -_-?

강사: 현 자유대 총장이 Romanistik 교수 출신이야. 훔볼트 쪽에서 합병하겠다고 하면 거 엄청 좋아하겠지?

학생: -0-

강새: 그런 게…정치란 걸세. 일단 대학 차원에서 합병안은 논외로 하고 있어.

바보같은 소리지만 정말이다. 일단 대학 입장에서 학과가 하나 줄어든다는 건 위신 문제도 있을 뿐더러 어차피 과가 줄면 주정부에서 받는 돈도 줄어든다고 한다. 강제 혼인 시키듯 주정부에서 압력을 잔뜩 넣는다면 모를까 대학들쪽에서 자진해서 합병을 추진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90년대에 이루어진 스칸디나비아 학과 합병은 한가지 후유증을 낳았다. 합병 이후 자유대 학생들은 훔볼트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소속은 여전히 자유대로 되어 있었고 그러다보니 훔볼트 쪽 졸업자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고 <훔볼트 대학 스칸디나비아 학과는 예산은 멀쩡한 다른 과들만큼 잡아먹으면서 제대로 졸업시켜 내보내는 학생은 얼마 없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학생 대 졸업생 비율>은 학과의 실적을 따지는 데 중요한 잣대라고 한다. 제때 제때 공부 마치는 애들이 많을수록 <우리 과는 이렇게 잘나가는 과요!>라고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예산을 요구할 근거가 된다나? 그제서야 하일트는 왜 독일 대학들이 졸업 안하고 공부 질질 끄는 Langzeitstudent들을 호환, 마마, 전쟁 보듯 하는지 알 수 있었다(그리고 전쟁과 Langzeitstudent의 공통점은 그렇게 혐오의 대상이 되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일트의 옛 동거인도 더 이상 학기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한 경지에 오른 다음에야 졸업했는데 <난 이미 선악의 경계를 초월한 피안의 존재란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 스칸디나비아 학과생들이 학교 당국측에 보낼 서명탄원서 마지막 부분은 <우린 열심히 공부해서 빠른 시일내에 Zwischenpruefung과 Magisterpruefung을 볼거에요, 제발 우리 무사히 시험봐서 졸업하게 해주세요>라고 끝나게 된다고 하는데 학생회 측에서 이 이야기를 전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동요했다.

학생들: 거기 사인해서 학교에다 보내면…우리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졸업해야돼? -0-
학생회 임원들: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고 법적인 구속력은 없어.-_-
학생들: 글쿠나~~ 깜짝 놀랐네.

사실 이 탄원서들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과 쪽에서도 이미 교수 하나랑 Mitarbeiter들이 떨려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기정 사실로 여기고 빈 자리를 어떻게 메꿀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그래도 그냥 순순히 받아들였다가는 만만한 과로 찍힐테니 찍 소리라도 한 번 내보자는 심산인 거 같다.

그리고 과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속으로는 우리만 합병한 게 억울할지라도 공식적으로는 <쟤네 과도 합병시켜~~>하고 시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못 다른 과들 심기를 거슬렸다가는 힘센 과들에게 다구리를 당해 <쓰벌, 그깟 스칸디나비아 학과 쓸어버려, 그 돈으로 우리 영문과 애들 영국이나 보내주게>라는 식이 될 게 뻔하다는 게 약소과의 운명이라나.

다른 과에 갈 돈을 빼오는 게 불가능하다면 스칸디나비아 학과 자체에서 절약할 곳을 찾아야한다. 회의에서는 <비전공생 대상 스웨덴어나 노르웨이어 강습을 없애버리면 어때?>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 의견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렸으나…(그도 그럴것이 참석자는 모두 전공생들이었걸랑) 실현 가능성은 없었다. 어차피 비전공생 대상의 강좌는 베를린 시정부에서 받는 예산이 아니라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 운영되는 중이었으므로.

회의는 마땅히 뾰죽한 수를 찾는다기보다는 그냥 학생들에게 현재 입장을 설명하는 효과가 더 컸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란 간사한 것, 이 와중에 하일트는 첫째로 자신의 주전공은 덩치가 큰 덕택에 스칸디나비아 학과만큼 곤란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 감사했고(만약 훔볼트 독문과가 자유대에 합병되서 매일 거기까지 등하교를 해야 한다면…차라리 대학 빼면 아무 것도 없는 소도시 하나 찾아 전학가련다. 지금 훔볼트 왔다갔다 하는 것도 하루 두 시간씩 잡아먹는데 자유대라니 끔찍하다) 둘째로 어차피 교수가 하나 떨려나가야 한다면 부디 문화학 쪽에서 떨려나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만약 교수 자리가 없어진다면 중세 어문학 아님 문화학이 될 가능성이 큰데(문화학은 현재 교수 자리가 비었고 중세 어문학 교수는 몇 년 후 은퇴한다) 하일트가 전공하려고 하는 것은 전자기 때문이다.-_-v

그나저나 한국에서 작은 과 다녀 서럽다가(학생이 적으면 예산도 적고 따라서 과가 가난하다) 이제 독일에서 독문학하면 과가 작아서 서러울 일은 없겠지, 아 드뎌 나도 덩치큰 주.류.에 소속이 되어보는구나…하고 뿌듯해했는데 이놈의 부전공 때문에 그 설움을 다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_- 왜 내가 가는 곳마다 돈이 딸리지? 돈을 피해가는 감각이 거의 동물적으로 발달한 걸 보면 혹시 난 하늘이 내린 인문학도 체질이란 말인가? 근데 왜 학점은 그렇게 안나오지? -_-a

덧: 학생회 선거는 공개투표로 진행되었다. 임원이 되고 싶다는 애들 이름을 칠판에 적은 뒤 <얘네가 임원 되는 데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하고 묻더라(한 명 한 명에 대해 묻는 게 아니라 후보를 몽땅 한세트로 취급했다). 반대는 없었지만 기권은 둘 있었는데 왜 굳이 기권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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