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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영화] 타인의 삶 : 착한 사람의 소나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4건 조회 9,031회 작성일 07-05-04 10:12

본문

plakatD.jpg


(스포일러 있습니다.)

Das Leben der Anderen

2003년 개봉된 영화 <굿바이, 레닌!> 이후로 가장 인상깊었던 독일 영화였다.

흥미롭게도<굿바이, 레닌!>과 <타인의 삶> 두 영화는 모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후의 역사적 시점을 배경으로
동베를린에 살던 구동독의 사람들을 삶을 다루고 있다.

독일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하여
7개 수상 부문 모두 이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가장 주목했던 적재적소의 부분들이었다.
영화 감상을 마친 후 수상 내역을 보니,
적확하게 골라내어 정당하게 치하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해졌다.

인터테인먼트 아닌 드라마로서 영화의 본령을 상기시켜준 이 작품은
최우수 작품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연기'라는 말을 쓰기 미안할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화신 같았던 뛰어난 배우들,
특히 웬만한 연기파 헐리우드 배우들은 실상 인터테이너였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칠만큼
내면적 완성도에 충실하고 절제된 존경할만한 연기를 보여준
게르트 비즐러 역의 울리히 뮈에는 남우 주연상을,
게오르크 드라이만 역의 세바스티안 코흐는 남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그 자체로 문학적 짜임새를 획득하고 있는 독일어 시나리오는
각본상 수상으로치하되었고,
그 시나리오를 탄탄하고 짜임새있게 엮어낸 편집에는 마땅히 편집상이 주어졌다.
시나리오와 편집의 응집력은 역시 절제된 긴장감을 잃지 않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더욱 빛났다.
응당 촬영상이 돌아왔다.


* * *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들었다.

구동독 지역에 위치한 도시인 이곳 라이프치히의 영화관,
내가 이 영화를 관람한 영화관으로부터 걸어서 불과 10여분 거리에는
구동독 국가안보부인 슈타지(Stasi) 박물관이 있다.
전 독일에 단 한 군데,
이곳 라이프치히에 구동독 비밀경찰의 현장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다.
영화에서 본 디테일 하나하나가 바로 이곳에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2001년 보수를 전면적으로 다시 해서 말끔한 모습으로 거듭 났지만
1966년에 건축된 사회주의식 건물이다.
비즐러가 살았던 아파트처럼 전형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벽면 전체가 트인 창문 등 내부 구조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비슷한 구석이 있어 낯이 익다.

나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한 평생 중 구동독의 시절을 더 오래 살아오셨던 나이드신 동독의 옛주민들을 대한다.
그런 내게 <굿바이, 레닌!>과 <타인의 삶>을 보는 공감대와 감회는 남달랐다.
배우들의 말투와 표정, 태도 구석구석에서 이곳의 낯익은 얼굴들이 끝없이 오버랩되곤 했다.

그런 개인적인 감상은 차치하고라도,
이 두 영화 모두 무엇보다 주옥같은 구성과 문장을 가진 문학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다른 차원이 실린 관람의 묘를 주었다.

독일의 영화관에서 물론 자막없는 독일어로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후,
문득 한국어로는 번역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국문 자막이 삽입된 동영상을 구해서 보았다.

응집력과 뉘앙스를 살리기는커녕
내용 전달의 기본적 임무마저도 부실한 오역으로 가득한 자막,
도대체 왜 그렇게 건드려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던 가위질,
이런 자막과 가위질이 국내 영화관 상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문 자막이 삽입된 동영상을 보고 난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내게는 유난히 장면 장면 하고 싶은 얘기들이 끝이 없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는 글은 기약없는 훗날으로 미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가장 심했다고 생각된 오역과 가위질에 대해서만 잠깐 언급하려 한다.



plakatK.jpg


우선 한국에서 전면 뜯어고친 포스터.

영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카피를 쓰고 새로 디자인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
포스터 디자인을 공공 '시각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때,
이 포스터는 이미 '시각적인' 차원의 오역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따위의 진부한 카피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언급하기조차 진력이 난다.
그들의 삶을 '훔쳤다'는 과도한 표현은 도발성만을 의도했는지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5년간 내 삶이었던'에서 '5년'은 대체 어디서 나온 기간인지 모르겠다.

비즐러가 심문을 하는 첫 장면은 1984년 11월이 배경이다.
즉 그 이후에 비즐러가 드라이만을 도청하고 감시하기 시작한 시점은
최소한 1984년 11월 이후가 된다.

비즐러가 도청과 감시를 그만두고 좌천되는 날은 1985년 3월 11일이다.
그의 상관 그루비츠는
국가안보대학의 교수이자 중대장(Hauptmann)의 직위를 가지고 있던 비즐러의 경력은
이로써 끝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비즐러가 은퇴할 때까지 25년이나 (국문 자막에는 20년이라고 되어 있었다.)
검열할 편지의 겉봉을 증기로 여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그루비츠는말한다.

그루비츠가 그 말을 하고 비즐러의 차에서 내리는 순간
비즐러는 그루비츠가 깜빡 놓고간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게된다.

1985년 3월 11일자인 그 신문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소비예트 공산당 신임 당서기장에 미하일 S. 고르바초프 선출
(Neuer Generalsekretär der KPdSU gewählt : Michail S. Gorbatschow)"

소련 공산독제체제의 종말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다시 국문 영화 포스터의 카피로 되돌아가서,
드라이만과 그의 동거녀인 여자친구 크리스타 마리아 질란트의 삶에
비즐러가 실질적으로 그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하고 기록하며 함께 했던 시기는
5년이 아니라 불과 4개월도 채 못 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조형적 판단력조차 의심되는 포스터의 디자인은
카피보다 한층 이미지적인 곡해가 심하다.

우선 독일의 포스터를 보면 비즐러와 드라이만 커플은
각각 분명 다른 공간에 위치해 있지만 전적으로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

대본에는 Schutzengel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굳이 번역하자면 조금은 진부하게 들리지만 '수호천사' 정도의 의미로,
독일어에서는 보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 포스터에서 비즐러의 모습에는
'감시자'인 동시에 그들을 보호하는 '수호천사'의 얼굴이 담겨있다.
울리히 뮈에의 표정은 그 아이러니컬한 중의성을 모두 함축한다.

반면 국문 포스터에서는 하얀 라인까지 동원해서 이들을 완전히 격리시키고 말았다.

타이포그래피의 문법 역시 조금도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

독일의 포스터에서는 어두운 배경, 그들의 암울한 상황으로부터 하얀 글자들이 빛나고 있다.
제목을 비롯해서 주연과 조연 배우들의 이름,
비즐러의 국가안보부 요원명 HGW XX/7은 모두 타자체로 쳐져있다.

타자기는 이 영화에서 드라이만과 비즐러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타자기의 글자체로 타자된 내용과 드라이만의 삶이 오버랩되는 뛰어난 장면을 상기하면
이 타자체가 영화와 포스터를 얼마나 의미심장하게 엮어내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독문 포스터는 강렬한 빨간 지문을 포인트로 마무리되어 있다.

여기서 잠깐, 현재 라이프치히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 에리히 뢰스트(Erich Loest)의 예를 언급하고싶다.
에리히 뢰스트 역시 동독 국가안보부에 의해 본의 아닌 전대미문의 개인기록을 남겨받았다.

에리히 뢰스트는 자신에 관한 슈타지 문서를 추려서 책으로 출간하기까지 했다.

책의 제목은
<슈타지는 나의 에커만이었다 혹은 도청장치와 함께 한 나의 인생
Die Stasi war mein Eckermann oder: mein Leben mit der Wanze>

여기서, 에커만은 <괴테와의 대화>라는 저서를 남겨,
자기자신보다는 괴테의 기록을 충실히 전한 인물로 문학사에 남은 작가이다.

비즐러 역시 짧은 시간이나마 드라이만의 에커만이었다.
조금은 맥락을 달리하는 에커만.
그는 드라이만의 삶을 함께 살며 그 극작가와 함께 본의 아니게도 자신의 '작품'을 썼다.
빨간 글씨의 HGW XX/7과 지장은 그 '작품'을 끝맺으며 남긴 그의 서명이기도 했다.

이 빨간 잉크는 드라이만에게 진실을 전해주는 역할을 했고,
비즐러의 '작품'은 극작가 드라이만에 의해 완성되어 다시 비즐러에게 바쳐졌다.
드라이만이 출간한 저서의 제목은
'착한 사람의 소나타 (Die Sonate vom Guten Menschen)'

이 모든 함축적인 내연들이 국문 포스터에는 안타깝게도 전면 삭제되어 있다.


# 장면 하나


11.jpg


'착한 사람의 소나타 (Die Sonate vom Guten Menschen)'

드라이만의 생일에, 연출가 예르스카가 선물한 피아노 악보이다.

예르스카가 구동독 체제의 정신적 육체적 속박에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드라이만은 이 악보를 다시 상기한다.
이 곡의 제목 '착한 사람의 소나타 (Die Sonate vom Guten Menschen)'
훗날 드라이만이 저술하는 책의 제목이 된다.

드라이만이 예르스카의 자살 소식을 듣기 바로 직전의 장면에서,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가져온 노란 표지의 브레히트 시집을 읽는다.
비즐러가 브레히트의 시 한편을 읽는 장면은 드라이만의 목소리로 낭독되었다.
드라이만으로부터 감정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감화를 받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브레히트의 시집은 예르스카가 드라이만의 생일날 읽고 있던 책이기도 했다.
브레히트의 이 책은 이렇게 예르스카-드라이만-비즐러를 엮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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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의 배경으로는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착한 사람의 소나타 (Die Sonate vom Guten Menschen)'의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브레히트의 희곡 한 편의 제목이 떠오른다.
'사천의 착한 사람 (Der gute Mensch von Sezuan)'

착한 사람을 더이상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게 하는, 그런 사회를 다룬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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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체제에 묵묵히 충직했던 비즐러였다.
착한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게 하는 그런 사회 속에서,
그래서 예르스카를 자살으로 이끌었던 사회 속에서,
비즐러는 나쁜 사람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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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장치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은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음악의 감정과 작가의 정신,
그 모두에 완전히 융화된 비즐러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비즐러는 외부적 체제에 구속되지 않은 자기 내면의 '착한 사람'을 자각한다.

영화 한 중간의 전환점인 동시에 마지막 장면을 향한 이정이 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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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중요한 장면의 오역이 참담하게 가관이다.
오역과 가위질에 대해서는 영화 전편을 걸쳐 조목조목 집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가장 심했던 장면 중에 특별히 이 장면 하나만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자막]

드라이만 :
지난번에 예르스카랑 나눴던 대화에 대해 생각해 봤어
그분 말씀을 듣고나서 뭔가 변화를 시도해야 했어
그분이 내가 연주하는 이 곡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내가 뭘 할지 아실거야

이게 무슨 소리고?!

드라이만의 입에서는 자막과 전혀 다른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DREYMAN :
Ich muß immer daran denken,
was Lenin von der Appassionata gesagt hat :
»Ich kann sie nicht hören, sonst bringe ich die Revolution nicht zu Ende«

Kann jemand, der diese Musik gehört hat, wirklich gehört hat,
noch ein schlechter Mensch sein?


나는 레닌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두고 한 말을 늘 곱씹어야 했어.
"나는 '열정'을 들을 수가 없다.
그 곡을 들으면 나는 혁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음악을 들은 사람이라면, 제대로(wirklich에 힘을 주어 말한다)들은 사람이라면,
여전히 나쁜 사람일 수가 있을까?

비즐러는 여전히 나쁜 사람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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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장치를 통해 '착한 사람의 소나타'를 듣던 날 늦은 저녁 귀가하는 비즐러.
전형적인 사회주의식 아파트에 앞에 구동독의 국민차 '트라반트(Trabant)'가 주차되어 있다.
구동독 지역인 이곳에서는 2007년에도 여전히 이 차를 '트라비(Trabi)'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향수어린 마음으로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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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올라가는 이 엘레베이터 안에서 나누는 꼬마와의 대화는
비즐러가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의 양 갈래길 중 확실한 궤도를 택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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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과 자막은 생략하고,내가 새로 번역한 국문 대사만 인용해본다.)

꼬마 : 아저씨 정말 국가안보부(슈타지)에 있어요?

비즐러 : 네가 슈타지가 대체 뭔지나 아니?

꼬마 : 그들은 다른 사람을 가두는 나쁜 사람들이예요. 아빠가 그랬어요.

비즐러 : 그래? 이름이 뭐지? 너의...
(비즐러 내면의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이 최후의 갈등으로 멈칫한다.)

꼬마 : 나의... 뭐요?

비즐러 : ...공 말이다.

(꼬마는 영문을 모른다.)

비즐러 : 네 공의 이름이 뭐냐니까?
(비즐러의 내면적 노선은 여기서 확정되었다.)

꼬마 : 아저씨 웃겨요. 공한테 이름이 어딨어요.

(비즐러가 사는 층에 먼저 도달해서 그는 내린다.)

중요한 것은, 비즐러가 내리면서 멈칫 꼬마를 되돌아보는 장면과
꼬마가 비즐러에게 한 마지막 말이 가위질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적어도 편집상을 받은 영화란 말이다.
이 장면 뿐 아니라 군데군데 영문을 알 수 없이 삭제된 부분이 짧건 길건 자주 보이는데
이건 도대체가 가위질이 난도질 수준이다.



19.jpg



이 장면 바로 다음의 짧은 순간이 국문 자막으로 본 동영상에서는 삭제되어 있다.

엘레베이터에 남은 꼬마는 뒤돌아보는 비즐러에게 말한다.

Du bist aber kein schlimmer Mann.
근데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네요.

이 영화 한 가운데의 전환점에서,
이 대사에 맞물려 마지막 대사를 다시한번 상기해보자.

동독과 서독의 통일 후,
한때 구동독 대학의 교수이자 국가안보부의 중대장급 직책이었던 비즐러는
우편배달으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에 동요하지 않는다.
이 '착한 사람' 장면을 계기로 겪은 내면적 변화에,
이전 공산독재체제에 그랬던만큼이나 충직함을 보인다.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치달아가면서,
우편배달을 하던 비즐러가
어느 서점 앞에서 드라이만의 신간 서적 광고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부터는
결국 내게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착한 사람의 소나타(Die Sonate vom Guten Menschen)'

비즐러는 서점에 들어가 드라이만의 책을 들추어본다.
헌사 페이지에는 비즐러의 옛 요원명이 써있다.

HGW XX/7 gewidmet, in Dankbarkeit
감사를 담아, HGW XX/7에게 바침

더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려고 눈에 간신히 힘을 주고 있는데,
마지막 직격탄을 날리며 영화가 끝나고 말았다.

책을 구입하려는 비즐러에게
점원이 29.90 마르크(자막에는 유로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며
선물용으로 포장할 건지 물어본다.

비즐러의 마지막 대사.

Nein... es ist für mich
아니요...이 책은 나를 위한 겁니다.

'나(mich)'라는 한 단어 속에는 '착한 사람 (Der gute Mensch) 비즐러'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니 비즐러는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다.
비즐러에게 바치는 드라이만의 헌정을.
'착한 사람의 소나타 (Die Sonate vom Guten Menschen)'란 이름의 책에 담겨진 헌정을.
추천4

댓글목록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국에서 가끔 독일어 책의 번역만 봐도 잘못된 것도 많고 어떤것은 의미가 전혀 엉뚱하게 번역된거 서점에서 자주 대했었습니다. 좀 느낌이 이상해 지고 아쉽다 싶지요.

물론 요즘은 분야에 따라 좋은 번역도 많이 있겠지만.

과거에는 독일어에서 직접 번역하기 보다 주로 일어에서 재 번역되었었다고 하죠.

특히 영화 오페라 연극 발레 등의 종합적인 예술 분야는 " 옮기는 일" 이 특별히 어려운것 같은데
ㅡ 특히 다분야에 인구가 많은 영어나 일어에서보다 독일어 에서는 더더욱 ㅡ 지금 유학중이신 분들이 많으니까 앞으로는 더욱 좋아질것 같죠.

" 열정 소나타" Appassionata 하니까 생각나는게 있습니다.
레마아크 Remarque 의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소설을 영화한것을 보면 거기서 주인공 장교가 피아노 위에 작은 접시에 성냥을 수북 쌓아놓고 불을 지르며
" 우리는 이처럼 유대인을 죽였다 "
하며 2악장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죠.
아주 깊이 깊이 가라앉으며.

kscrew님의 댓글의 댓글

kscrew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인터넷용자막은 정말 그렇던데..우리나라 극장에서도 개봉했는데 극장판에선 자막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코코아님의 댓글

코코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인데요, 딴지 걸기 싫지만
글 제목에 <스포일러 있음> 이라고 친절하게 붙여 주시면
영화를 안보신 분들께 더 좋지 않을까요?
혹시 영화 안 보신 분들은 영화 본 후에 읽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유지원님의 댓글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Lisamarie / 그러게요, 전 정말이지 욕도 안 하고 화도 안 내고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왜 말랑말랑 착한 말만 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내비두지 않는 걸까요, 이 세상은!

Lisamarie 님께서 독일영화 자막 국문 번역을 해주시면
제가 보다 착하게 살아갈 수 있을텐데 말이예요.

제가 본 국문 자막도 짐작컨대 영어에서 중역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 보았던 오역 최고봉의 케이스는
국내 라이센스판 DVD 재킷 제목이었는데요...
DVD 표지에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요한 수난곡'이라고 써있어야 할 자리에
버젓이 '존의 열정 (Johannes Passion)'이라고 써있는게 아니겠어요!


제갈 / 화들짝! +_+ 저, 저기요... DVD 동영상으로 봤다고요... 딸꾹.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왜 이리 힘든거야... ㅠ_ㅠ)


코코아 / 맨 첫 사진 바로 아래에 (스포일러 있습니다)라고 써놓았는데요.
스포일러는 한참 아래로 스크롤을 해야 등장하니,
아마 앞으로 보실 분들의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의 일부를 차지할만한 문구로는 여겨지지 않아서
내용의 위계 상 저 자리가 가장 적당하다고 보입니다.
보시는 분들에 대한 배려만큼은 마음에 담아두겠습니다.


kscrew, 바람녀, 운이 /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만 명시해주세요. :)

Coing님의 댓글

Coi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글을 올려 주신 분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분석을 이 정도 깊이와 길이로 올려 주신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추천합니다!

저는 어느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니므로 아래 쓰는 글을 너른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저는 영화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영화에 국한한다면) 번역이나 기타 "옮김"에서 많은 문제가 있음은 많은 분들이 주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을 생각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전부터 한 문화권의 문화적 산출물을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변용을 시켜 받아들이고 소비를 하는지는 참 중요한 문제이지만, 아주 현실의 최전선에서는 하나의 원칙에 의하여 제대로 규율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즉 더 나은 옮김이 되어야겠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공유되고 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로서 다른 여러 요소들이 끼어드니까요.  과연 영화 작품이 얼마나 "잘" 옮겨져야 할까의 문제는 그 수준을 어떻게 잡느냐부터 상업적인 고려까지 해야 하니까요. 영화 번역을 예컨대 학문적으로 흠없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어차피 한계는 있다고 봅니다. "타인의 삶"을 보는 한국 관객 중 독일에 대하여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테고, 그래서 옮김은 더욱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사정을 역으로 바꾸어 봤을 때에, 지끔까지 한국 영화들이 독일어로 옮겨졌을 때 과연 잘 번역되었는지 가위질은 적절하게 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이건 독일 관련회사들이 이 분야에서 특히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옮김에 있어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작품이 독일어로 번역된 것을 보면서도 기가 막힐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결국 저의 생각은 오류를 100퍼센트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느 정도가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냐가 문제인데,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전공에서의 예만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어떤 작품의 번역에 있어서 일정 정도의 오류를 감수하면서 한 명이 다 할 것이냐, 아니면 공동작업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완벽을 기할 것이냐가 다투어졌는데 결론은 부분적인 오류를 감수 하면서도 개인이 하는게 낫다고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학문적인 작업에서도 오류를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을 하는데, 하물며 영화는 그렇게 높이 요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죠. 이건 님의 시각에 절대 찬동합니다. 님같은  전문가(Kenner)가 보시기에는 너무 조악하리라는 것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요한 수난"과 비슷한 제가 겪은 예를 들어 보자면, 어떤 영화 대사 중에 "Gaul"이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 배경의 영화였는데 Gaul이 "황금"(!)이라고 번역되어 자막이 나오더군요. 책에서 본 비슷한 예로는 "Limes"가 있습니다. 이 단어가 "라임나무"(!)로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예들은 오역이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자 그럼 몇 가지 지엽말단적인 트집. 님이 쓰신 글만 가지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저의 또다른 오해가 있을 줄 압니다.

1. '중대장'은 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직위'입니다. 그러나 "Hauptmann"은 직위가 아니고 '계급'입니다. Hauptmann을 중대장으로 옮길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2. Staatssicherheit는 '국가안보'보다는 '국가보안(공안, 치안)'이 어떨까요? 여하튼 분간이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3. 원문 "HGW XX/7 gewidmet, in Dankbarkeit"가 만일 "감사를 담아, HGW XX/7에게 바침"으로 옮겨진다면 그야말로 '직역'입니다. 그런데 만일 옮김 개념을 달리 이해를 하여 한국식으로 완전히 바꾸어 예컨대 ".... 근정, 봉정, 혜존" 등으로 함은 어떨까요? 때로는 직역이라는 것이 아직 완전히 옮겨지지 못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에 트집 잡아서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여하튼 님의 글은 무조건 추천입니다!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착한 사람의 소나타" 라는 제목을 보니 생각 나는게 있습니다.
오래된 독일 속담
"Boese Menschen haben keine Lieder " "악인은 노래를 모른다."

현대 독일어 ,독일사회에서  " 착한사람 "  나쁜사람" 이라는  표현은 좀 진부한 느낌을 줍니다. 중세 기독교적 이기도 하고. 착한 사람은 천국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 간다는 흑백논리를 생각나게 하고요.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범죄자도 사회나 정신병의 희생자인 경우가 많습니다.평균 이상으로 악의를 가지고 행하고 사는 사람은 있다고 표현 하는지 몰라도 착한사람 나쁜사람 gute Menschen, boese Menschen 이란 표현은 좀 냄새가 납니다.
가끔 당신은 좋은 사람이오 "Sie sind ein guter Mensch " 라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정해진 상황에서 사용할수 있는 표현이고 아무데서나 아무보고 저사람 마음 좋아 보여서 그냥 하다보면 민망한 상황에 떨어질수도 있습니다. ( Sie sind sehr nett. 등등 무난한 표현들이 얼마든지 있죠. )

그런데 왜 "착한 사람의 소나타"라는 옛날식 제목을 붙였을까 생각 해보니 ,
 소나타는 현대에도 작곡은 되지만 원래는 매우 오래된 음악 형식이죠.
위에 언급한 속담과 연관시켜서 인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coing 님
바흐의 Jahannes- Passion , Matthhaeus- Passion 이라고 하면 이 경우엔 " 요한 수난곡 " " 마테우스 수난곡 " 이라고 해야 한답니다.
이경우는 단지 '수난' 을 뜻하는게  아니라 교회음악의 한 형식의 뜻으로 쓰인것 이거든요.

Coing님의 댓글

Coi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착한 사람"과 관련해서는 리사마리 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만 코멘트에 쓰지는 않았습니다. 예전부터 "gut"나 그에 해당하는 유럽의 단어들과 그에 기반한 개념들에 대해서는 이해와 옮기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어떻게 번역을 해도 100퍼센트 만족스럽게 되지가 않더라고요. 그냥 최선의 방법은 그때 그 때 적절하게 맥락을 보고 옮겨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한 수난"과 관련해서 저는 본문의 음악 관련성을 벗어나 약간 일반적으로 확대해서 쓴 것입니다. 번역 내지 옮김의 문제로 보고 음악에 국한되지 않으려고 일부러 '수난'이라고 한 것입니다.

Lisamarie님의 댓글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생각 '착한사람' 과는 번역의 문제를 언급한건 아닙니다.
한국어에서 어떤뉘앙스를 가지고 있는지 실은 저는 잘 모릅니다.
단지 독일어 원문에 대한 제 생각을 잠시 적어본것 뿐 입니다.
님의 글에 대한 댓글이 아닙니다.그래서 따로 달았고요.

페퍼민트님의 댓글

페퍼민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궁금해하신,
5년이란 기간은 (그가 Stasi에 들어간 처음부터 타인들의 삶을 엿듣는 일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흐름상 교수로 있는 시간을 제외한 총 5년의 기간을 타인들의 삶을 엿듣는 일을 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포스터 제작자는 도대체 어떤 의미로 5년이란 기간을 설정했는지 그것이 저도 궁금합니다.

또 달리 보면, 좌천되고 난 이후부터 Stasi를 떠날 수 있었던 그 기간이 5년이란 얘긴지..저도 잘 모르겠군요. 어쨌든 책과 영화는 달라야만 하고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포스터 만든 사람 맘이겠죠? 그것도 인정해줘야할 예술의 한 분야기에.

비즐러가 그 분야의 대가라서 교수로 생활할 수 있었으며, 또한 드라이만 아내를 탐하는 문화부장관의 요청에 따라 드라이만을 제거 하는데 교수인 그를 다시 현장에 내보내게 됩니다.
장관의 사적인 욕심과 치부가 있기때문에 상관인 그루비츠 대령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 요원들보다 계급이 높은 비즐러 대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가명 HGW XX/7는 Hauptmann Gerd Wiesler '대위 게르트 비즐러'약칭으로 보입니다.
영화 화면 캡쳐를 보니까 Gerd라는 이름이 나오더군요. XX/7은 소속을 나타내는 듯하군요.. 제 추측입니다.

아시고 계셨겠지만, 자막 번역 문제도 번역하신 분은 영문 대본을 사용하신것 같습니다.
'슈피겔'誌를 영어 직역 그대로 '미러'지로, '대위'라고 부르는 것을 그냥 '하우프트만'이라고 하는 것 등으로 봐서..하지만 그분도 나름 제대로 번역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인의 소나타'치는 장면에서 나오는 번역문제에 관해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하셨는데,저는 스토리전개상 오히려 직역보다는 의역을 한 그 대사가 더 이해가 잘 됩니다. 물론 영어로 의역된 것이었겠죠. 오역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삭제된 부분과 관련해서, 독일에서는 편집상을 받았지만, 미국 아카데미에 출품할 때는 다시 한번 편집을 해서 삭제된 것이 아닐까요? 그것을 또 다시 한국이 수입을 했을테고..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영문으로 편집되면, 영문도 모르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전체적은 내용은 정말 잘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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