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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술통에 빠진 책들 - 라이프치히의 독일 서적 문자 박물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7,562회 작성일 07-02-20 12:32

본문

DA001.jpg


라이프치히의 독일 서적 문자 박물관(Deutsches Buch- und Schriftmuseum)
한켠에 위치한 전시품.
와인통 한가득 아직 제본되지 않은 인쇄물들이 담겨있다.


DA002.jpg


지난 세기까지 서적상들은 이렇게 제본되지 않은 인쇄물들을
커다란 와인통에 가득 담아 운반했다고 한다.

인쇄소에서는 인쇄와 접지까지만 한 상태로 아직 제본되지 않은 인쇄물을 판매하고
그것을 구매한 고객들이 각자의 재력과 취향에 따라 제본소에 책을 맡긴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보면
도리언은 헨리 경에게 선물받은 책에 깊은 감흥을 받은 나머지 새로 9권이나 사들여
각각 다른 색으로 표지 장정을 한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인쇄 문화의 중심지였던 라이프치히에 제본소가 발달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지난번에 방문했던 바이마르가 왜 그 도시의 제본소들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는지도 알 것 같다.

헤르더, 괴테, 실러, 빌란트, 쇼펜하우어, 니체 등 독일의 지성들이 살았던 도시 바이마르,
인쇄물의 소비지에서 제본소가 발달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DA003.jpg


라이프치히의 인쇄소에서 생산된 책들은 일단 고객을 거친 후에
다시 제본소로 가서 이렇게 묶여지고 장정된다.


DA004.jpg


가죽장정을 하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친다.
지난 학기 제본 수업 때 실습실 마이스터께서 말씀하시기를
전문 제본소에 들어가도 적어도 3년의 수련은 거쳐야
이런 형식의 제본과정을 배운다고 한다.


DA005.jpg


재미있었던 점은 제본되지 않은 책이 넘치도록 담긴 와인 술통 바로 옆에,
이렇게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형식의 인쇄기가 놓여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전통 인쇄는 찢어지기 쉬운 종이의 특성상 '문지르기' 방식이었지만,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기는 '누르기' 방식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대량생산과 기계화로의 효율적인 발전의 싹을 그 시작부터 예고하며 탄생한 셈이다.
영어의 press와 독일어의 Druck 및 거기서 파생된 단어들은
바로 저 길다란 레버 아래 종이를 놓고 꾹 눌러서 찍어낸 기계의 원리를 내포하는 것이다.

이 인쇄기는 수확한 포도를 꾹 눌러 즙을 내기 위해
와인제조소에서 쓰던 기계에서 착안되었다.
마침 구텐베르크가 살았던 마인츠는 마인강변, 독일 최대의 화이트 와인 산지가 아닌가!
구텐베르크 이전부터 저 비슷한 기계를 사용하여
포도를 압측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을 거다.

책을 담은 와인통과 와인 제조용 포도압측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인쇄기.
인쇄물의 제작은 그 시작부터 줄곧 와인 제조의 원리를 함께 담고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와인과 책, 포도와 학문, 이 두 개념의 조합과 대비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를 연상시킨다.
19세기 니체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천명된
디오니소스적인 아름다움과 아폴로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이미 독일의 문화와 일상 속에 그 속성이 힌트처럼 담겨져있다가
니체에 의해 마침내 사상과 언어로 결정화(christalize)된 것 같다는
재밌는 상상마저 들었다.

지식을 독점하고 싶어했던 수도사들과 학자들,
지식과 정보의 유혹적 속성, 그에 담긴 온갖 금기들, 은밀히 제작되고 유포되던 금서들,
독서에의 몰입, 열광, 도취, 흥분...
그러고보면 인쇄된 책과 문자 속에는
아폴로적인 속성 뿐 아니라 디오니소스적인 속성들도 많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숙성'이라는 오묘한 과정을 거친다는 점도 와인과 책이 서로 닮은 점이라 생각한다.
와인이 가장 훌륭한 맛을 내는 숙성 기간이 결정되고 판단되는 것은
늘 인생의 타이밍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된다고 느껴왔다.

생각과 사상을 숙성시켜서 그것을 흘러나오게 하는 데에는
타이밍에 대한 판단의 묘가 필요하다.
그 생각과 사상이 보다많은 대상을 향할 때,
바로 그 적절한 시기가 책이 인쇄되는 시점이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시기에,
술통에는 책으로 인쇄되기까지 잘 숙성된 생각과 사상들이
생명의 포도주처럼 넘쳐 흘렀으리라.
추천2

댓글목록

토르바도르님의 댓글

토르바도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디오니소스와 책이라.. 왠지 어울립니다.
제 방에 있는 책들이 술술 들어오게 카니발의 신에게 기도드려봐야겠네요.

leenett님의 댓글

leenet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책을 가득 담은 술통처럼 유익한 내용을 가득 담은 채 술술 읽히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새아리에 어울리지 않는 댓글을 과감하게 썼던 보람이 있군요^^
너무 잦지도 않게 너무 뜸하지도 않게 딱 '숙성'의 간격만 두고 님의 글을 계속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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