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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유학생의 애환이 담긴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나의 독일 대학원 일기 5편   

지난 번 글 마지막에 까먹고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우리 과는 졸업하기 전에 외국어 수업을 두 과목 이수해야 한다. 입학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첫 학기에는 아무래도 전공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해도 바쁠 것 같아서, 두 번째 학기와 세 번째 학기에 들을려고 일단은 미뤄뒀었다. 근데 이제는 결정을 해야했다. 우선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시험 관리하는 곳 말에 따르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독일어 수업도 인정은 된다고 했다. 근데 독일어 수업으로 때우기는 싫었다 (쓸데 없는 자존심). 두번째 옵션은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블로그의 다른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사실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난 군대에서 프랑스어를 독학으로 배웠었다. 군대를 대학교 2학년 마치고 갔는데, 가면서 다짐을 몇가지 했었다. 하나는 군대에 있는 할 수 있는 보직 중에 제대하고 나서도 도움이 될만한 보직을 찾아볼 것. 두 번째는 군대에 있는 동안 프랑스어를 배워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군대에서 회화를 하기에는 무리였고, 애초에 나의 목표도 회화는 아니었다. 사전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어 신문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정도 수준으로 배우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건너건너 들은 바들을 취합해보니, 이 두가지 목표에 부합하는 보직이 있었다. 그것도 군대에서의 보직으로는 드물게 내가 스스로 고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군으로 입대해서 급양병(취사병)을 하는 것이었다 -.- 당시에도 나중에 유학을 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당시의 나는 요리를 전혀 할 줄 몰랐기에 (라면 끓이는거랑 계란후라이밖에 못했다) 적어도 급양을 하면 요리라도 배우고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또 먼저 입대한 지인들로부터 급양병을 하면 교대근무를 하고 쉬는 시간이 꽤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그지없었는데, 당시의 나는 별 생각 없이 바로 공군에 지원해서 훈련소에서 급양에 지원했었다.

그렇게 자대배치를 받고 자대에 도착했는데 처음에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내 자대는 2조가 교대근무를 했는데, 하루는 오전 4시부터 대략 오후 1시까지, 그 다음날은 오후 12시부터 대략 오후 7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 쉬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보통 오전근무를 하고 오면 오후에는 대부분 낮잠을 자는데, 난 자대배치 받고 한 달 정도 후부터 오후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오후근무하는 날은 시간 쓰기가 좀 애매하긴 했다. 12시에 출근이긴 한데 오전에 선임들도 있고 아무래도 일을 하기 전이니까 마음대로 공부하기에도 눈치가 보였다. 어쨌든 그렇게 틈틈이 공부를 하다가 일병 때부터는 연등도 하고, 뭐 그랬다. 공부는 1. 옥스포드 불영사전에 주요 단어들 옆에는 표시가 따로 되어있는데, 그걸 통째로 외우기. 2. 문법책으로 문법을 공부하기. 3. 그렇게 두 싸이클 정도 돌고 나서부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집 주소로 구독해서 휴가 나올때마다 가져와서 사전 들고 읽기. 정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고급 프랑스어 익히기에는 매우 유용하다. 처음엔 칼럼 하나 읽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근데 하다보니까 실력도 늘고 여차저차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저희 부대는 pmp도 반입이 가능해서, 나중에는 집에서 듣기 파일도 저장해와서 자대에서 듣고 그랬었다. 그렇게 일병 말에 휴가 나와서 B1에, 병장때는 B2에 합격했다.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나의 경우 급양병이 너무 잘 맞았던 것 같다. 나중에는 프랑스어 공부뿐만 아니라 독서할 시간도 많았다. 관물함 안에 책을 가득 채워놓고 읽었으니까... 물론 전역한 날 사과박스에 가득 책을 채워서 가져와야 해서 허리가 나갈뻔 했지만 -.-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샜는데, 중요한 건 어쨌든 내가 이미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것! 그래서 외국어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유력한 선택지가 프랑스어였다는 것이었다. 근데 갑자기 이상한 고집 혹은 오기 혹은 패기 혹은 무리수가 떠올랐다. 사실 예전부터 누가 나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직업으로서는 역사학자이지만 취미로서는 죽기 전에 10개국어를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지금이 그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는 뜬금 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모한 생각에 사로잡혀, 스페인어 수업을 신청했다. 미리 배운적이 있으면 시험을 봐서 반을 나누는데, 나 같은 경우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히 A1, 입문반이다. 열심히 하면 다 되지 안되는게 어딨어 라고 생각하고 첫날 수업에 갔는데, 웬걸, 독일애들이 스페인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다! ㅡㅡ 아 진짜 다시 생각해봐도 ㅡㅡ 라는 표정밖에 안 나온다 (ㅡㅡ). 그렇다. 여기 애들은 김나지움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던 것이다. 엄연히 이 과목도 성적에 들어가는 과목이기 때문에 이 한 학기 동안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단어랑 문법은 이미 여러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나름 노하우도 생겨서 할만한데 듣기는 정말 안 들렸다. 오전 8시에 학교 가기 전에 매일 1시간 정도 듣기를 하는데도 잘 실력이 안 늘었다. 때문에 나는 같이 수업을 듣는 무리들 사이에서 이상한 놈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글쓰기 숙제 같은 걸 보면 선생님한테서 잘했다는 칭찬을 받는데, 수업 시간에 말하거나 듣기를 할때는 말을 못하니까... 여기 애들은 되든 안되든 뭔가 말을 계속 하는데, 난 성격상 그렇게 하질 못하겠다. 선생님이 동사 변화랑 문법 문제를 모두 맞춘 내 답안지를 돌려주면서 한 말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말이 있는데, "아시아 애들은 참 공부를 mechanisch하게 한다"라는 말이었다.  맞다. 메카닉 할때 그 메카닉 말이다. 듣자마자 너무 웃겨서 선생님이랑 한참 웃었다.

정작 전공 수업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를 시작하지조차 못했는데, 우선 학기말에 구두시험을 봐야 하는 대형강의로는 "바이마르 공화국", "식민지사", 그리고 "미국경제사"를 들었다. 학기 지나면서 미국경제사 수업은 나와는 맞지 않아서 다음 학기에 다른 과목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패스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첫 학기에 들었던 "바이마르 공화국 연구의 여러문제들"이라는 세미나를 맡았던 교수님이 맡은 수업이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 자체의 역사를 다루는 수업이었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의 독일 역사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수업이었다. 난 이때부터 서서히 바이마르 공화국을 앞으로도 전공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목이었다. "식민지사"도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수업이었는데, 이는 내가 예전부터 제국주의를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학위논문 주제로 식민지사를 삼는 것은 포기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애착이 가는 주제였다.

세미나의 경우는 첫 학기를 통해서 교훈을 얻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첫 학기에 그렇게 빡세게 들었던 덕분에, 여유있게 두 과목만 들어도 되었다. "유럽과 탈식민지화"라는 세미나와 "문화접촉, 문화충돌, 문화전이"라는 세미나였다. 전자의 경우는 한 학기 동안 프랑스와 알제리 독립이라는 주제를 다뤘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인상깊은 세미나였다. 나의 경우 이전까지 식민지화 과정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관심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탈식민지화 과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과문했다. 알제리의 독립운동, 그 와중에 일어나는 폭력과 테러의 문제, 제 3세계와의 연대 문제, 탈식민화가 프랑스 내부에 정치적, 문화적, 철학적, 지성사적으로 미친 영향 등 의미 있는 주제들이 많았다. 혹시 마지막 주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Todd Shepard의 The Invention of Decolonization: The Algerian War and the Remaking of France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한줄로 책을 요약하자면, "프랑스 지식인들이 어떻게 알제리의 독립과 그로 인해 자명해진 그동안의 식민통치의 실패에 대해서 납득하기 위해서 정신승리를 하는지"가 책의 주제입니다.

두 번째 세미나의 경우는 좀 특이했는데, 교수님이 이번 학기에 막 베를린 대학교에서 저희 대학교로 옮겨온 분이었다. 근데 이 분이 동시에 Wolfenbüttel이라는 조그마한 도시 (인구 5만이 조금 넘으니까 한국 기준으론 도시라고 하기도 민망한...) 지역에 있는 도서관의 장이었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해가 안될텐데, Wolfenbüttel의 도서관은 1572년에 세워진 아주 오래된, 그리고 현재도 중세사 및 초기근대사 관련해서 중요한 자료를 굉장히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다. 아름다운 도서관을 꼽을 때 목록에 자주 포함되는 도서관이기도하다. 때문에, 수업 일정에 무려 하루 날을 잡아 이 Wolfenbüttel의 도서관을 답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독일 학생 십여명과 내가 토요일날 저희 도시 기차역에서 모여서 다같이 기차를 타고 몇 시간 동안 이동을 한 것이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우연히 기차에서 옆자리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게된 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친구가 갑자기 나한테 "한국 사람들 게임 잘하지 않아?"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뭐 많이들 하지. 근데 나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으론 안하고, 아주 예전에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만 했었어"라고 대답했다 (난 중고등학교 때 스타를 열심히 하다가, 그 이후에는 스타를 거의 안했다. 근데 이번에 무려 석사 논문을 8월 15일까지 마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렇다, 리마스터된 스타를 하기 위해. 논문 다 쓰고 일주일동안 폐인처럼 래더 달려서 세계 99등도 찍었다... 평생 자랑으로 삼으려고 사진도 찍어놨다). 근데 갑자기 얘가 "나 그 게임 알아!"라고 하는 것. 기대도 안했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Slayers Boxer랑 Yellow 이야기를 한다 ㅋㅋㅋㅋㅋ 이 순간이 독일에 와서 뭔가 뜬금없는 이유로 반가움을 느낀 순간 중에는 최고가 아닐까 싶은데... 이 친구가 갑자기 나한테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정말 프로게이머가 셀럽이냐부터 시작해서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스타 많이 하냐까지... 그렇게 몇시간 수다를 떨면서 도서관이 있는 도시에 도착해서 답사를 하고 또 몇시간 동안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독일 남자애들끼리 무려 군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것도 웃겼는데, 여기도 애들이 무려 간부욕을 하고 있었다 -.- 군대는 어디에서나 군대인 것일까?

뭐 이렇게 나름 빡세면서 무난한 한 학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언제나 나의 마음 한켠에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구두시험이었다. 구두시험은 30분정도 본다고 했는데,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30분간의 대화로 평가한다는게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난 감이 잘 안왔다. 우리 과의 경우 학부때는 구두시험이 없어서 정작 같이 수업듣는 독일애들도 어떻게 시험 준비를 해야할지 해매는 것 같았다. 근데 시험 보기 한 달 쯤 전에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수업에서 다뤘던 전체적인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 + 그 중에서 특히 원하는 하나의 주제를 학생이 골라서 시헙을 본다고 하는 것이다. 도움이 되는건지 아닌건지 아리송한 말씀... 어쨌든 난 작은 주제로는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의 "지식인 담론"을 골랐고,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필기한거와 더불어서 교수님이 쓰신 바이마르 공화국에 관한 200쪽 분량 정도의 입문서를 거의 외우다시피 반복해서 읽었다. 식민지사의 경우는 좀 달랐는데, 전체적인 내용은 묻지 않을 것이고 수업에서 다뤘던 작은 주제 3가지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후자의 시험을 먼저 봤는데, 1년 하고 3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골랐던 주제가 뭐였는지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ㅡㅡ 하나는 영국이 식민통치한 자메이카에서의 반란에 관한 것이었고, 하나는 독일이 점령한 식민지들의 독립에 관한거였고, 뭐 아무튼 그랬다. 근데 처음으로 구두시험을 보니, 막상 교수 앞에서 이야기할 때 생각이 정리가 안됐다. 이제와서 여러번 구두시험을 겪고보니 교수들마다 구두시험을 이끌어나가는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이 분은 지금 생각해보면 자유롭게 대화를 풀어가는 유형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유형이 가장 어렵다. 예를 들어서,

"자메이카에서 반란이 일어났었지?"
"네"
"반란이 왜 일어났을까?"
"뭐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표면적으로는 당시에 통치를 담당하던 담당자(지금은 이름을 까먹었다)가 강압적인 통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식의 통치가 이루어졌지만 유독 자메이카에서 폭력을 수반한 반란이 일어난 이유는?"
"?!?!?!"

뭐 이런 식이었다. 마지막 질문 같은 경우는 수업에서 명시적으로 다룬 것도 아니었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어서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인데, 시험장에서 예상치 못하게 질문을 받고, 머릿속으로 짱구를 굴리는 자신을 자기 앞의 교수와 또다른 감독관이 멀뚱멀뚱 바라보기 시작하면 더 멘붕에 빠지고, 뭐 그랬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시험을 30분 가까이 치릅니다. 그리고 학생은 잠시 나가 있고, 안에서 교수와 감독관이 자기들끼리 점수를 논의한다. 나의 경험상 점수가 좋을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짧았다. 첫 시험이었는데 3-4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들어오라는 안내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아까 버벅거린거 알고 있지?"
"네..."
"우리가 고민에 빠졌네. 자네가 버벅거린게 독일어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는지, 답을 고민하고 있느라 그런거였는지를 명확히 알수가 없었거든"
(사실 둘다 맞다 -.-)
"그렇군요..."
"어쨌든 자네의 점수는 1,7 일세. 버벅거린 것만 빼면 더 좋았을텐데. 뭐 어쨌든 1,7도 충분히 좋은 점수니까"
"넵"

그렇게 첫 구두시험은 1,7을 받게되었다. 지난 번 첫 페이퍼를 2,3을 받은 것보다야 충격이 덜하지만, 이번에도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점수에 납득이 되었고, 스스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인지를 하고 있었기에 불만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바이마르 공화국에 관한 구두시험을 보러 갔다.

"아, Herr ooo, 어서 오게"
"안녕하세욧"
"자, 보자, 메일로 나한테 지식인 담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었지. 일단 그건 잠시 뒤에 하고, 자네가 구두시험을 신청한 모둘이 Konflikte구만. 바이마르 공화국 초창기에 있었던 갈등들에 대해 한번 설명해보겠나?"

이 부분에서 한번 크게 당황할 뻔했다. 독일에서는 한 수업이 여러개의 모둘로 동시에 기능한다. 예를 들어서 바이마르 공화국에 관한 수업은 내가 선택한 "갈등"에도 해당되지만 "근대사"에도 포함되는 식이다. 학생은 자기가 이수해야하는 모둘에 맞게 시험 신청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근데 이게 복잡하다보니 보통 교수들도 굳이 이 부분에 신경을 쓰진 않는다. 주로 시험청에서 이걸 담당한다. 그래서 이런 식의 질문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마 첫 시험의 교훈이 없었다면 크게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험 전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당황은 하지 말고 아는 바 내에서 답을 하자고 결심을 한 상황이었다.

"(훗) 갈등은 사실상 바이마르 공화국의 탄생부터, 아니 그전부터 있었죠. 정치적 갈등에 초점을 맞춰서 설명해보자면, 처음엔 사민당이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과연 공산당과 손을 잡아야 할지 중도우파와 손을 잡아야할지에 관해서 갈등이 있었고요. 제도권 외에서도 혁명적인 분위기로 폭력적인 갈등이 분출되었죠. 그 결과 룩셈부르크가 암살되었고. 전쟁이 끝난 이듬해에도 이런 갈등은 블라블라... 더 길게 보면 1921년과 1922년에도 각각 군부 블라블라 우파 블라블라..."
"됐네. 아주 잘 설명했네. 거기까지 나가길 바란건 아니지만 말이야. 자 그럼 지식인 담론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Konservative Revolution (보수혁명)에 대해서 설명해보겠나?"
"네. 보수혁명이라는 단어는 1921년 토마스 만이 사용함으로써 처음으로 등장했지만 학문적 용어로는 1950년에 Armin Mohler가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이 개념을 차용함으로써 자리잡았다. 이 개념이 가리키는 바를 짧게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주로 민족주의, 권위주의, 질서 등의 지향을 가진 지식인들이 정작 이러한 지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탈의회적인 수단을 옹호한 것이 특징입니다.'
"좋아. 그럼 Vernuftsrepublikaner 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Vernunft는 이성 이라는 뜻이고 Republikaner는 말그대로 공화주의자를 의미한다. 이 둘을 합쳐서 따온 이 개념은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공화주의를 옹호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왕정으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전제하에서 활동한 보수적인 지식인들을 가리킨다)
"바이마르 공화국 초창기 공화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보수 세력 사이에서 팽배했지만 거듭된 군부 쿠데타의 실패와 정세의 변화로 인해서 이제는 독일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공화정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 토대위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여긴 지식인들을 일컫습니다"

이런 식으로 20분 조금 넘게 진행되었고, 시험이 끝나자 나보고 역시 잠시 나가있으라고 했다. 나가면서 '이번엔 잘 본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잠시 기다렸는데, 체감상 거의 1분도 안돼서 다시 나를 불렀다.

"평가하기 아주 쉬운 시험이었네. 1,0일세. 잘했네"
"(마음 속으로 폭풍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만 겉으로는 여유 있게) 기쁘군요. 감사합니다"
"우리야말로 기뻤네"

그렇게 나가서 7월 독일의 아름다운 햇살을 잠시 만끽했다. 점수 자체보다도,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독일에서 작게나마 확인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여름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페이퍼를 또 써야 했지만, 난 사실 8월 초에 아내와 함께 파리 여행을 예약해놨었다.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왔고 갔다오니 메일이 와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연구의 여러문제들" 수업 교수님이 전체 학생들에게 돌린 메일이었다. "그 동안 자네들이 제출한 페이퍼를 읽었고 평가를 마쳤습니다. 근데 내가 분명 제출하면서 모둘을 표시해놓으라고 했는데 안 해놓은 학생들이 왜이렇게 많습니까? 해당하는 학생들은 최대한 빠르게 저나 제 비서의 메일로 정보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점수를 입력하는 교수 입장에서는 모둘이 표시가 안 되어있으면 점수 입력이 안되나보다? 어쨌든 난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기에 이미 시키는대로 했었다. 바로 메일을 보냅니다. "제 점수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혹시 제가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찾아뵙고 이야기 해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음날 답장이 왔다. "면담 시간에 찾아오게. 어쨌거나 자네 매우 뛰어난 페이퍼를 제출했더만".
그 다음 면담 시간까지는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르고 이유 없이 웃음이 났다. 이윽고 면담시간이 되서 찾아가니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자네 여름은 잘 보내고 있지! 자네 독일에 온지 얼마나 됐지?"
"작년에 와서 딱 1년 쯤 됐어요"
"그렇군. 이런 날씨는 독일에서 흔하지 않아.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두라고! 그나저나 자네 나라에서는 여름에 날씨가 어떤가?"
"온도는 조금 더 높고 훨씬 습합니다"
"음 그렇군... 아 참 자네 페이퍼를 확인하러 왔지. 아주 잘 썼네. 어디 보자... 맨 뒤에 총평부터 보도록 하지. '논증이 탄탄하고 명확하게 이루어짐. 사료 폭넓게 활용함. 1,0'"
"그..그렇군요 (칭찬은 날 부끄럽게 만든다). 혹시 독일어 관련해서 고칠거는 없었나요?"
"몇개 있었네. 중간 중간 고치긴 했는데 전부 고치진 않았네. 확인해 봐"
"넵 (스르륵 넘기면서 표시된 부분을 확인한다) 아하... 아하... 앗...내가 왜 이걸.. 어쨌든 고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긴 뭘!"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나왔다. 이번엔 구두시험에서 1,0을 받은 것보다 더 기분이 들떴다. 역시 나도 글은 잘 쓸 수 있다고 잠시 스스로 도취된다.

며칠 후에는 "유럽과 탈식민지화" 수업의 페이퍼를 쓰기 위해 교수와 면담이 잡혀 있었다. 이 교수님은 "지구사" 세미나 때와 같은 교수님이었는데, 당시에 매주 수업 전날 그 주에 읽을 텍스트에 대해서 요약 및 비판을 한 짧은 글을 제출하도록 했었다. 난 당시에 이걸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수업 도중에 말로 승부하는 것은 나에게 극도로 불리하다. 하지만 내용에 대해서 글로 쓰는 것은 어쨌든 내가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 교수님은 날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았다. 적어도 당시까지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면담을 위해 교수실에 찾아갔는데,

"아 Herr ooo, 반갑네. 잘 지내고 있지?"
"Frau ooo (Frau는 참 입에 안 붙는다. 내가 천성적으로 내성적이라 그런가 뭔가 할때마다 어색하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잠시 페이퍼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 부분은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까 패스...
"참 Herr ooo, 여기서 공부 끝나고 계획이 어떻게 돼?"
"아... 그게... 아직 확실히 정해진게 없어서 모르겠지만, 독일에서 계속 공부해서 박사논문까지 쓰고 싶습니다. 근데 이 도시에서 계속 하게 될지 다른 도시로 옮기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군. Herr ooo, 여기 교수들한테는 장학금 관련해서 추천해줄 학생이 없냐고 메일이 자주와. 며칠 전에 옥스포드 대학 쪽에 장학금을 주고 보낼 학생을 추천해달라는 메일을 받았는데, 혹시 생각 있어?"
"....???"
"Herr ooo, 자네가 지난 학기에 매주 나한테 보낸 글들을 보고 내가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몰라. 여기 학생들이 많지만, 모두가 학문을 동일한 정도로 진지하게 여기진 않네. 자네는 능력도 있고 열정도 있는 것 같아서 하는 제안이네"
"그치만... 전 가능하다면 독일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습니다. 독일사를 공부하고 싶기도 하고, 교육을 대하는 사회의 관점이라든가 여러면에서 독일이 영국이나 미국보다는 마음에 들어서 독일에 왔거든요"
"그렇군. 이해하네! 항상 행운을 빌게.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 있으면 항상 와서 말하게"
"넵"

이 날은 바로 전에 페이퍼로 1,0을 받은 날과는 비교 할 수 없게 기뻤다. 학문적으로 잠재력을 인정을 받는 기분이 이런걸까... 싶었다. 큰 마음 먹고 와인도 괜찮은 걸로 한 병 사고, 부모님께도 알려드렸다. 첫 학기가 어려움과 불안함의 연속이었다면, 두 번째 학기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독일에서 살면서 자신감도 약간이나마 얻었던 학기였다. 그렇게 두 번째 학기도 마무리되고, 서머타임이 끝나며 5시만 되도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세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Hanskaffe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8 (월) 15:27 1개월전
저 또한 본 대학교에서 현대사 석사 과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공감이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지 모르겠지만, 독일어로 쓴 과제로 점수를 받는 건 (좋은 점수, 나쁜 점수를 떠나서)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매 학기 20에서 25장 사이 분량의 과제를 매 과목마다 써서 제출한다고 하면 무척 어려운 일 일텐데, 더군다나 한국 사람이 독일어로 동일한 분량의 과제를 써야한다고 한다면 그 어려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물론 여기에는 기타 외국 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들은 제외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언젠가 뵙게 될 그날을 기다립니다. 항상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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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wor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20 (수) 09:10 1개월전
글에서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묻어나서 너무 존경스러워요. 저도 이번에 석사 시작하는데 좋은 자극이 되었어요  경험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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