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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힘든 하루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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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3,944회 작성일 13-11-28 00:04

본문

오늘은 공부가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13시까지 통계학 수업을 들었는데, 애초에 통계학은 어휘들이 수학 특유의 방식으로 사용되어서 알아듣기도 힘든데다가, (물론 제가 독일어를 더 잘 했으면 더 좀더 쉬워졌겠지요...) 수업 내용도 "이런게 있는데, 왜 이렇게 되는지는 복잡하니까 설명 안할게. 궁금하면 각자 알아보던가" 라고 하는데, 그게 대체 어디에 소용되는건지, 수많은 밑줄쳐진 생소한 용어들이 쏟아지고 공식이 쏟아지는데 대체 그것들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힘들었습니다. 수업 끝나자마자 광속으로 밥먹고 도서관에 처박혀 통계 서가를 뒤져 필요한 내용이 있는 것 같은 책들을 긁어모으고 PPT 를 다시 보며 씨름하는데, 어느덧 밤 21시가 되고 노트북 배터리가 다해 더이상 PPT도 볼 수 없고 자료도 찾을 수 없어 자리를 접었습니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었는데, 진전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서, 스트레스는 하염없이 쌓이고, 집중력은 계속 하락하고... 유학와서 무사히 졸업한 분들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공부하면서 제일 힘든건 뭔가가 나왔을 때 "저게 대체 뭔지" 모르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더 심각한건 그 제일 힘든 경우가 하루가 머다하고 터진다는 것...) 이 "저게 대체 뭔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 합니다.

내가 나무를 가리키며, „Was ist das?“ 라고 물으면, 누군가가 „Das ist ein Baum.“ 이라고 답하겠지요. 재미있는 점은,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보았을 때 그 사물에 붙여진 이름을 댄 것이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Wie heißt das?“
„Das heißt Baum.“

„Was ist das?“
„Das ist ein Baum.“

대답은 똑같이 Baum 이지요.

일상적인 어법에서, 우리가 "저것이 뭔지 안다" 고 할 때에는 두 가지 뜻이 모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b_59008_0_20110414100256_17614.jpg

이게 뭘까요? 이게 뭔지 아세요?

네, 컵이죠.

우리는 이 사물에 붙여진 이름을 알 뿐만 아니라 이것이 어떤게 사용되는 것인지,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질문을 해 볼까요.

'췌장'을 아세요?

알긴알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까요? 어디에 있는지, 어떤 모양인지, 어떤 색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자면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까요? 인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를 것입니다.

'불포화지방산' 을 아세요?

알긴알죠! 하지만 저는 그게 '정말로 무엇인지' 는 자세히 모릅니다. 그 이름을 알고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외국어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모국어의 경우에는, 불포화지방산의 예를 계속 사용하자면, 이 말을 이미 많이 들어보았기 때문에 그 말이 이미 익숙합니다. 그 말을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불쑥 "불포화지방산이라고 알어?" 라고 물어보면 "어, 알어" 라고 대답하겠지만, 그것에 대해 특별히 잘 알고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게 뭔데?" 라는 물음에는 자세히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 불포화지방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곧 그것을 정말로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외국어의 경우에는, 낯선 단어를 접하면 그게 뭔지 두 가지 차원 모두에서 모릅니다.

그 낯선 단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모국어 단어를 들으면 "아하!" 하고 '알겠다!' 라는 느낌이 오는데, 이것은 자기가 그 모국어 단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에도 기능합니다!

가령 불포화지방산의 독일어 단어가 a 라고 해 봅시다. (뭐라고 하는지 모름ㅋ) 처음에 a 를 들으면 "그게 뭐야?" 하겠지요. 누군가가 "a 는 불포화지방산이야" 라고 말해준다면 "아하!" 하고는 그 단어를 '알게' 된 것 처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설사 이 사람이 불포화지방산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해도 말이죠!

바로 이와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Was ist das?“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지시된 대상에 붙여진 이름만을 알고있더라도 "나는 그게 뭔지 알아!"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나는 그 사물에 붙여진 이름을 알아!" 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단순히 나무의 경우에도, 한국어를 배우는 중인 외국인이 나무를 가리키며 "이게 뭐예요?" 라고 물으면 누구나 간단히 "그건 나무예요" 라고 말할것이고,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신중하게 "이것은 무엇이지?" 혹은 "나무란 무엇이지?" 라는 질문을 던지면, 곧 혼란스러운 기분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나무의 특성들을 열거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무란 갈색 줄기에 가지들이 달려있고 그 가지에 이파리가 달려있는 식물을 말하는거야" 라던가,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정의를 가져와 "나무란 ~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말을 동원해도, 아니, 많은 말을 동원해서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우리가 점점 더 자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나무가 뭐야?" 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진실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수한 낱말들의 연쇄로 이루어진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일 뿐, 사물의 본질을 말로 포착해 내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효과, 우리가 실제로는 결코 저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음에도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 혹은 붙여진 이름을 호명하는 것 만으로, "저것은 무엇이다" 라는 낱말의 연쇄만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있는 것 같은 감각을 얻는 효과가 우리가 모국어를 사용할 때 느끼는 자명함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컵이야" 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단지 '그것' 과 '컵' 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연쇄시켰을 뿐, 그것의 본질을 말한 것은 아니지요. 본질은 결코 말을 통한 사고로는 포착되지도 못하고, 말해지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절한 기표(낱말)의 연쇄에 익숙해짐으로써 그것을 알고있는 것 같은 안정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외국어를 사용할 때에는 그런 효과 속에서 언어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심한 곤란을 겪게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 독일인에게 "~가 뭐야?" 라고 물으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난처해 하다가 "~는 ~지" 라고 대답하는 경우를 접합니다. 동의어가 있는 단어의 경우에는 "~는 ** 야"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가 뭔데?" 라고 물으면 "** 는 ~야"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요.

이런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언어가 제공하는 안락한 환영 (단지 기표의 연쇄에 익숙해져 있을 뿐인데도 사물을 안다고 느끼면서 얻는 안정감) 에서 얄짤없이 내팽개쳐 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학업을 해 나가는게... 참으로 힘드네요.

유학생 여러분, 졸업생 여러분, 다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OTL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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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팽나무님의 댓글

팽나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음..저도 오늘 비오메트리에 공부하다가 내가 이놈의 가우스를 찾아가서 멱살을 비틀리.. 그러고 왔는데요.
그런데 전 가끔 한국어로 된 전공책은. 물론 한국에서와의 전공이 너무도 달라졌기에 제가 아는 바가 전혀 없기도 하겠지만. 특히 자연과학쪽은 용어들이 작가마다 조금 많이씩 틀려서 읽고 있으면 이건 뭔가. 나는 왜 한국책보며 네이버사전 열고 한자찾고 동의어 찾고 그러는가. 설명은 왜 이리 힘들게 해 놓는 지.

물론 제가 모든 책을 카이네 아눙시리즈와 두미 시리즈를 보는 건 아니지만 ㅎㅎ 많은 힘든 전공책들 뒤에는 독일인들도 대 추천하는 내용 파악하기 쉬운 책들이 여럿 있어서 (아마존 참고) 나름 맞는 책 찾아보는 재미가 있단말이지요. 그래서 말씀드리자면, 독일학생들은 전공책 이해 잘 할 것 같냐면 아니라는 것. 그러면 다 노테 1 받아야지요.

생각나는 이야기> 아이. 이모 뫼비우스띠가 뭐야. 이모> 그것은 끊기지 않는 고리같은 것인데. 예를 들자면 소주를 먹으면 해장을 해야되는 데 해장을 하면 또 소주를 먹어야 되는 그런거야. 이해?

  • 추천 1

Ueberraschung님의 댓글

Ueberraschu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뭐 어쩔수 있나요..ㅜㅜ 배는 더 노력을 하는수 뿐이..

독일애들이 탄성을 지르며 감탄?하는 화학과지만......

진짜 일반화학빼고는 수업이나 따로 공부할때마다 맨붕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요새는 전문용어들이 익숙해지고 뭘 나타내지도 파악이 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문젠 머리에 쏙쏙 안들어오네요;;

수학의 경우 초장부터 해석학으로 무한수열 등을 드가질 않나 ㅜㅜ

지금은 좀 미분이 나와서 그나마 수업듣기 괜찮은데 아휴 저떄 생각하면..

위붕 몇문제 풀라고 하루 이틀 잡아먹어도 한두문제 겨우 진행되고..

결국은 친구들 도움 받아서 겨우 해결하고;;

그래도 가끔 패턴을 잃지만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며 버티니 점점

교수님들 말씀도 들리기 시작하고 (물론 조금씩.) 내용은 이해를 못해도

초반에는 외계어 같던 전문용어들도 친숙해지고.......

점점 나아지실겁니다!

쩝 화학과생이 의대생에게 너무 속편한 소리를 한건가요?ㅋㅋㅋ

르미르미님의 댓글

르미르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을 정말 논리정연하게 잘 하시네요!!!!!!!!!!!!!!!!!!
전 아직까지 독일어 하려면 한 참 멀었답니다.
대학에 들어가셔서 원하는 전공을 공부하시는 용혁님이 부러울 따름이라는....ㅠ.ㅠ
어렵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잖아요^^
화이팅하세요!

깜댕멍청이님의 댓글

깜댕멍청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르미르미 님 처럼 저두 이용혁 님 과 다른 분들이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신다는게 부럽네요.

저는 아직두 한참한참한참한~~~참 언어공부를 해야되거든요....잘 늘지가 않았네요.

모 요즘 정신이 느슨해지긴 했지만요..^^ 힘내세요 화이팅 입니다.

본에사는총각님의 댓글

본에사는총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전문언어 때문에 힘들었고, 지금은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의학용어들 때문에 힘듭니다. 지난 십수년간을 문과 계통에 종사해오다가 의학사 관련 논문을 집필하고 있는 중인데, 모르는 의학용어들도 많이 나오지요. 특히 산파(Hebamme)라는 단어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출산을 뜻하는 단어(Gebären, Geburt, Säugling, Entbindung)도 왜 이리 많은지 같은 의미라도 여러 단어들이 많아서 말이지요. 더구나 논문이나 과제를 쓸 적에는 같은 의미를 가진 여러 단어들을 써야합니다.
아무튼 다른 모든 분들도 님이나 저처럼 비슷한 상황을 최소한 몇번은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 힘내시고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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