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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한 남자의 독일유학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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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4건 조회 9,092회 작성일 13-02-01 22:58

본문

왜 독일유학인가?



유럽에서도 별로 자연의 혜택을 못 받은 축에 드는, 춥고 눅눅한 땅에 위치한, 역사도 별로 오래되지 않은 나라. 일찍이 우리 민족이 비단옷과 금관과 유리잔과 불상을 만들고 쇠로 만든 창칼을 휘두르며 만주땅을 말 타고 달릴 때, 빽빽한 숲 속 움막 같은 데서 거적대기나 덮고 돌도끼나 휘두르던 나라. 스페인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메리카를 개척하고, 영국이 증기기관과 방적기를 만들고, 프랑스가 자유 평등 박애의 대혁명을 일으킬 동안, 갈갈이 찢겨진 채 외세의 말발굽에나 짖밟히던 나라. 그 복수를 한답시고 전쟁을 두번이나 벌렸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나고 인류역사 최고의 망신까지 당한 나라. 그 나라가 무엇이 그리 좋다고 우리는 정든 부모형제 다 떠나 그 말도 안 통하는 땅에 들어가서 냄새 나는 미개인 취급이나 당하며 거기선 흔해터진 박사학위 하나 따보겠다고 발버둥을 쳐야 하는가?

사실 나는 일찍부터 유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가장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국내에서 정정당당하게 국가시험 합격으로 자기 능력을 검증받을 자신이 없는 룸펜 나부랑이들의 출세 우회로로 생각해왔었거니와, 우리나라 여공 누나들이 밤 새워 미싱 돌려 피 같이 벌어들인 외화를, 되먹지 못한 허영끼와 사대주의 근성때문에 유학이랍시고 외국도피해서 흩뿌리듯 낭비하는 작태에 대해서는 분노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간 우리 현대사에서 소위 외국유학씩이나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보여줬던 몰골이란 어떤 것이었던가? 돈 많은 부모 만난 덕에 남들 취직한다 고시 본다 할 동안 팔자 좋게 외국 나가, 적당한 시기에 누구도 알아먹지 못할 수입이론 하나 들고 와서 만고에 편한 사장자리 교수자리 차고 앉아, 골프나 치러 다니고 아무도 진심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권위나 세우려 들며,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꺼버렸던 것이 대다수의 해외 유학파들 모습 아니었던가? 외국생활이라곤 며칠 관광이나 다녀왔으면 다행일 수많은 교사, 하급공무원, 회사원들이 직접 우리나라 밑바닥의 현실과 부대끼며 우리 실정에 맞는 바른 교육과 정치와 법률에 대해 고민할 때, 그들이 위에서 해놓은 일이란 과연 얼마나 되었던가? 유학이 그들에게 사회적 지위 이외의 무엇을 더 주었는가?

특히 하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 독일을 가야 한다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미국처럼 세계지배적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태리나 스페인처럼 풍광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일본이나 중국처럼 문화적 공통분모를 가진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나찌와 히틀러의 망령이 아직도 넘실거리는, 옛날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 묘에 분뇨나 들이붓고 도망친 나라 독일에 비싼 돈 주고 유학을 갔다 와야 하는가? 미국, 영국, 프랑스처럼 유학생들의 식생활, 문화생활을 위한 모든 여건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 독일어는 언어조차 어려워 남성명사, 중성명사, 여성명사 일일이 다 외우고 다녀야 하는데...

그런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유학을 결심하고, 특히 그 유학목적지로 독일을 선택한 이유에 역시 첫째는 금전문제가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과 영국 그밖에 다른 나라 거의 모두 수업료가 비싼데 반해, 독일은 일단 수업료가 무료다. 생각해보라. 어려서부터 유교적 가치관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에 따르자면, 옛부터 학생들을 불러모아 학문을 가르치는 사람, 또는 교육기관이 학생들에게 대뜸 돈부터 요구하면, 그 선생 또는 그 학교의 학문수준, 가치관수준은 보나마나 천박하기 그지 없는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였다.

독일의 국립대학들은 학생선발절차가 좀 심하게 까다롭긴 하지만, 일단 학생들을 뽑아놓기만 하면 학생들에게 수업료 얼마를 내놓으라느니 뭐니 그렇게 치사하게 굴지는 않는다. 물론 그만큼 미국, 영국, 일본 등지의 대학들에 비해서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 같은 것이 많이 뒤쳐지는 것도 사실이고, 학생들을 빨리 졸업시키는 데 무관심한 것도 사실이지만, 독일은 교육을 일종의 짭짤한 비지니스의 하나로 접근한다기 보다, 공부 한 자를 가르쳐도 좀 더 철저하게 가르치고, 학위를 수여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좀 더 순수하게 그 사람의 학문적 역량만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학생들을 금전적 거래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식과 인품의 계승자로 생각하고, 시간이 얼마가 더 걸리든지간에 철두철미하게 가르쳐서 돌려보내는 나라라는 것이다.

거기다 독일은 수업료를 안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네 국고를 털어 가끔은 외국학생들에게 생활비 하라고 장학금까지 보태주는 나라이다. 학생들이 자기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돈문제에 대한 자질구레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끔 교육진흥기관에서 생활보장까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장학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 장학금이 중간에 끊길 경우, 그 엄청난 수업료와 학비를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돈을 많이 쓰는 만큼 본전을 뽑기 위해 공부도 더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고 흔히들 말하지만, 이런 순진한 말은 사정을 너무나 모르고 하는 말들이다.

사실 돈문제가 학문적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그래도 나를 학문적으로 키워줘야 할 나라가 교육과 학문을 장사속이나 상업주의에 연결시키는 나라인가, 아니면 교육과 학문을 금전적 이해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진리탐구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나라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있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이런 태도가 너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시는가? 그렇다면 여러분들 좋아하시는대로, 아예 경제적 이해타산으로 따져보기로 하자. 그렇게 본다 하더라도 독일유학은 결코 나쁜 장사가 아니다. 한국에서 뼈 빠지게 아르바이트하거나 부모님 용돈 타서 비싼 대학원 등록금 내고 공부하는 것보다야 독일에서 등록금 면제받고, 심지어 운 좋으면 독일애들 주는 장학금 받아 공부하는 게 남 보기도 떳떳하고 나라에도 이익 아니겠는가?

물론 독일의 무상교육은 한국의 배금주의적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독일에서 너무 오래 공부하다 보면, 한국의 숨막히게 돌아가는 초스피드 자본주의, 하이퍼 자본주의적 현실에 영원히 적응할 수 없는 인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 적응을 못하는 것이 어디 우리가 몰라서 적응을 못하는 것인가? 어차피 인터넷시대라 독일에서도 한국의 현실을 지켜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며, 역사적으로도 그 본질상 국제적 성격을 갖게 되어있는 학문의 세계에서 외국생활의 경험이 갖는 소중한 의미라는 것 역시 절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인데...

하지만 금전문제만 가지고 내가 독일유학을 결심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미국, 영국에 유학을 가면 당장은 많은 돈이 들어갈지 몰라도, 세계공용어인 영어에 훨씬 능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포기할 수 없으며, 운좋게 독지가를 만난다든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 주경야독한다든지 할 경우, 돈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적지 않다. 더구나 미국은 독일보다 훨씬 큰 무대이다. 따라서 규모의 이익에 따라, 더 많은 경쟁자들을 만나고, 더 다양한 커리큘럼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을 그저 천박한 상업주의가 판치는 나라로만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 나라도 청교도적인 윤리규범이 나름대로 살아있기 때문에, 미국이라고 해서 교육을 무조건 비지니스로만 생각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독일을 내가 유학지로 선택한 이유로서 더 중요한 이유는 나의 전공이 법학인 탓이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 신분제적 봉건사회였던 데다, 민주주의나 시장경제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고, 본질적으로 어디든지간에 인간적 고리가 연을 타고 뻗어나가는 촌락공동체사회였기 때문에 법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연히 근대적 재판을 위한 축적된 관습법 따위가 거의 존재하지를 않았고, 관습법이나 판례법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영미의 불문법 시스템으로 갈 수는 없고, 결국 중국, 일본, 북한, 대만이 다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독일이나 프랑스의 성문법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특히 독일과 프랑스 가운데서도 우리 민법은 상대적으로 독일적 요소를 더 많이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후발선진국이었던 독일의 처지가 우리의 현실에 더 많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소위 항일민족주의의 전통을 잇는 대학이라고 자부하던 나의 모교 법과대학은 일본 경성제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서울대법대에 대항하기 위해 거의 정책적으로 독일유학을 장려하고 있었다. 김형배, 심재우, 조규창, 계희열 선생님 등이 그 선봉을 담당했던 분들이셨고, 그 분들이 무진 고생을 통해 수입해온 정통 독일법학이론들은 국가고시에만 매몰되며 일본 교과서나 안일하게 베껴먹던 한국법학의 수준을 일단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좋건 싫건 그런 전통을 계승해야 할 세대에 위치했던 나는, 위와 같은 위대한 스승님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본받기 위해서라도, 그 분들께서 자기 학문적 세계를 만드시는 과정에서 괴로워하시고 고민하시고 방황하시던 공간적 무대인 독일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던 차였다. 그런데 그 분들께서 나에게 그곳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다는 데, 그 영광스러운 기회를 거절하고, 다른 곳을 유학지로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위의 두 이유만으로 나는 과연 모진 고생을 감수하고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독일법학이 우리나라의 법학보다 수준이 더 높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이나 감정주의적인 습성은 학회나 재판실무 등에서 독일법학 특유의 치밀한 논리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마치 아메바처럼, 자로 재고 형태를 부여하기엔 너무나 물컹물컹하고 흐물흐물하기만 한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법의식이며, 우리나라 법원, 검찰 쪽의 실무적 태도인 것이다.

거기다 한국 법률가들의 세계는 짧은 시간에 자기 외운 것을 다 몰아서 적고 거기에 점수를 매겨서 사람을 서열화시키는 국가시험이 법률가들 운명의 거의 모든 걸 판가름해버리는 세계이다. 무조건 달달 외워서 짜맞추기만 하면 장땡이지, 비판적으로 뭔가를 깊이 파고든다든가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학자들이 자기가 연구한 걸 아무리 열심히 발표해봤자, 실무가들은 귀 기울여 들어주지도 않고 그냥 있는 둥 마는 둥 치부해버린다는 것이다. 유학공부는 고시공부에 비해 도박성이 적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더 성공이 쉬워보이지만, 사실 객관적인 공부량에서 비교해볼 때, 외국에서 외국어랑 외국법이랑 뼈빠지게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런 노력의 단지 일부만 기울여도 운만 좋다면 국내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고, 그렇게 사법고시에만 합격하면, 외국박사학위자들은 간단히 무시하면서, 나름대로 한국사회의 얼렁뚱땅한 수준에 걸맞게 그 나름의 사회진보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자기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럼에도 굳이 내가 고국을 등지고 유학의 길을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생각에 그것은 사실 무엇보다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던 나의 오랜 도피의 욕구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든 고국이지만 나의 생각을 이해해주고 나의 이상을 받아들여주긴 너무나 좁은 땅이었고, 그런 비좁은 동네에서 팔꿈치 부딪쳐 가며 아웅다웅대고 살아간다는 건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왜 그토록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왜 그토록 조심해야 할 것도 많은지. 예전엔 그토록 순수하더니 이제는 조그만 사회적 성공과 출세를 자랑하며 그저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동기들이나, 큰소리 치던 옛날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덧 직장과 가족의 무게에 짓눌린 채 그저 이 사회의 소모품으로 썩어가는 무기력한 선배들. 어떻게 소문은 그렇게 잘도 도는지, 공부하는 것 이외엔 아무런 특별한 재주도 없던 나는 어느새 모두로부터 사회생활의 낙오병으로 낙인 찍히고, 가학적인 경멸과 무시의 대접만이 돌아오는 가운데 결국 오갈 데 없는 잉여인간이 된 나는 좁고 답답한 한국땅에서 염세의 질식을 참을 수가 없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잘못 받아들여진 서구식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온 나라를 휩쓸고, 온 국민이 쥐떼처럼 그 상업적 환상을 쫓아가는 광경은 나를 더욱 넌덜머리나게 했다. 자기성찰이 없는 나라, 불안과 생존, 소유욕만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더러운 시기와 질투, 조소만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며, 돈 많이 벌거나 매스컴 딴따라로 잘 나가야 뭔가 팔리는 것 같은 이 지긋지긋한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정신적 성취감보다는 물질적 출세가 더 우선시되는 나라. 좁다란 마피아적 공동체 내에서 일단 한번 정해진 서열과 힘의 원리, 기득권의 원리가 이성적, 주체적 사고나 비판적, 합리적 대화보다 우선시되는 나라. 조금이라도 튀는 개인이 있으면 모두가 조직적으로 왕따를 시켜버려야 직성이 풀리며, 폐쇄적인 패거리그룹 내에서의 인간관계와 파벌싸움이 개인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한마디로 '야만적이고 상스러우며 촌스러운' 가치관이 판쳐대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좀 더 넓은 세계, 좀 더 트인 세계로 나가고 싶었다. 독일 내에서도 소박한 대학도시 빌레펠트나 괴팅엔 등을 마다하고 북해 연안의 항구도시 함부르크를 수업장소로 선택한 이유도 유럽 항구 특유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널찍하고 열린 분위기를 동경했던 탓이었다.

아직 유학기간이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까지는 독일유학을 후회해본 적이 한번도 없고, 모든 것이 내게는 그저 만족스럽기만 할 뿐이다. 소원대로 나는 자유인이 되었고,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 내 편한 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나라였으며, 나는 그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나 자신이 되어 모든 것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학습여건도 더 낫고, 자료도 더 많고, 내 하고 싶은 공부 마음대로 해도 누가 뭐랄 사람 없는 만큼 정신적 시간적으로 더 여유로운 것도 사실이다. 어떨 때는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벌써부터 두려워질 정도이다.

하지만 무작정 독일유학이 좋다고만 추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한국의 연구여건도 국제적 수준에 뒤지지 않고, 무엇보다도 근래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학자들이 한국에도 많아졌으니, 학문을 위해서라면 굳이 외국에 나가야만 한다는 법도 없다. 오히려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더 치열할 수도 있다.

유학을 간다고 해도 독일만이 좋다 할 수 없다. 법학도 꼭 독일법만이 아니라 프랑스 및 영미법의 연구도 절실히 필요하고, 동양법제사 및 중국법철학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해야 한다. 문제는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한국이건 독일이건 어디에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유학에 관한 나의 견해는 아직도 긍정적인 편이다. 독일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얻어온 여러가지 신기한 경험은 한국에서 그 몇배의 기간동안 얻은 것에 맞먹는 것이었고, 한국에서 그 몇배의 기간동안 공부해도 쉽게 읽히지 않던 독일문헌들이, 독일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술술 읽히는 기현상도 충격적이다. 독일법서, 독일신문과 독일방송, 독일인터넷에서 접하는 숱한 정보는 그저 여태까지의 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고 엉터리였나를 일깨우는 것이었고, 그만큼 나를 성숙시키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 같이 너무나도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동질집단사회에서, 젊은이가 뜻을 품었으면 자기 살던 고향을 미련 없이 박차고 떠나 이역만리를 헤매는 아픔 정도는 필수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다. 괴테도 'In die Welt Hinaus'라는 시에서 외쳤잖은가? 세계로 세계로 나아가라고. 집 밖으로 나가라고. 외국에서의 삶은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약속한다고.

1999.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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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knura.new21.net/deu/de.htm

이런저런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네요. 유학온 사람들이 읽어보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퍼날라봅니다. 펌글만 덜렁 남기면 거시기하니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외국에 나가는 사람 중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튕겨져 나간다는 느낌으로 나가는 사람, 모국의 국민으로서 안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한 채로 뭔가를 얻으려고 나가는 사람. 물론 교집합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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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법학이라면 사실 한국인으로 독일에 와서 해 볼만한 여러 근거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대부분 거의 의식에 없고 이 분야에 연구도 매우 희박한 편이지만 한국의 근대화는 전혀 본의 아니게 독일의 문화를 답습하면서 출발합니다. 독일의 여느 법학대학에서는 일본인과 한국인유학생을 위한 학위과정을 둔 곳도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의 영향으로 혹은 일본의 문화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영문도 모르고 독일의 문화를 받아 들인것이죠. 국민학교(Volksschule)라는 말에서부터 한국 동요인 줄 알고 수 많은 독일민요를 부르고 독일 청년들의 제복을 80년대까지 중고교에서 교복으로 입었습니다. 가끔 자투에 혹시나 싶어 가끔 은근슬쩍 글을 올려보았지만 (깊은 산 속 옹달샘 이라는 제목의)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더군요. 독일을 짝사랑한 일본을 통해 법체제를 받아 들여 근대화를 하고 교육공무원제도를 도입하는가 하면 한국 경제개발의 상징이라는 70년대에 지어진 백화점 이름이 독일 아동문학의 주인공 이름 Lotte 입니다. 그런데 이쪽으로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더군요.


글이 오래 전 것이라 요즘은 상황이 좀 다른 것도 많고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좋은 글들 쓰시는군요.^^

이제여름님의 댓글의 댓글

이제여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9년에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피아노를 치면서 논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독일 민요를 치면서 놀았거든요. 근데 가사는 다른데 멜로디를 제가
다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랑 둘이서 독일어로, 한국어로 서로 불렀어요.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답니다 저에게는.
그리고 로렐라이라는 노래를 저는 아는데 모르는 독일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독일 가곡도 모르는 애들도 있고요. 그래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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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님의 댓글의 댓글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백화점이 실은 어떻게 된 것이냐면요..

그 백화점이 먼저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과자회사가 먼저 시작되었어요.
60/70년대에 한국의 과자회사라면 해태와 롯데가 단연 앞서나갔는데 그 롯데의 창업자인 신격호회장이 아마 일본유학시절 당시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읽고 깊게 감명을 받았다나봐요. 그래서 후에 그 소설의 여주인공인 로테를 창업과 함께 자신의 회사이름에 붙였데요.
그런데 로테를 일본어로는 롯데라고 쓰거든요. 7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의 구미문학 번역물들은 일본서적을 재번역한 것이 주류여서 주인공이름들이 요상하게 쓰여진 것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과자회사가 엄청 성공하여 마침내 호텔산업까지 확장하게 되었고 호텔이름은 당연히 회사명을 따서 '롯데' 된 것이라고 알고 있어요. 아마도 70년대 말에 호텔이 지어졌고 80년대에 그 호텔에서 백화점이 시작되었나 그래요. 지금은 호텔보다 백화점이 더 유명하죠. 한국에 롯데백화점이 없는 도시가 없다고 할 정도로요.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신격호씨가 유학시절이 아니라 한국 전쟁 전 일본 동경에서 창업한 과자제조유통회사 이름이라고 알고있습니다. 당시 가끔 한국인 중에 머리가 뛰어난 이들이 일본에서 창업한 회사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성장한 회사 중 하나가 롯데가 아닐까 합니다. 이미 40년대에 일본 정부에 발명특허를 내거나 능력을 인정받아 스위스와 독일에서 초청을 받은 한국인들도 있었지요.

명동의 그 백화점은 70년대에 지어졌고 한국 현대사에 단지 '백화점'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지요.

예전에 노란샤쓰입은 사나이도 노란 조끼를 입은 베어터(흐흐)에서 온 것이라는데 베어터가 당시 젊은이들에게 참 인기였던 것 같습니다.



목로주점님은  해태과자 기억 나시는 거 있으세요?
저는 롯데나 해태나 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특정 과자는 기억이 안납니다........^^

목로주점님의 댓글의 댓글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말은 그 롯데라는 이름을 알게된 것이 신격호씨가 아직 학생시절이었을 때라는 말이에요. 일찌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하도 감명깊게 읽어서 후에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찬 샘이니까요. 그 개인뿐 아니라 한국의 유통문화에까지요.
저는 중1 때 국어선생님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어찌나 권장하다던지 이해도 못하면서 꺼내들었다가 중간에 포기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제 기억에 70년대에 롯데백화점에 간 기억이 없어서.. 70년대는 미도파 아니면 코스모스 백화점이었어요. 신세계도 있었지만 미도파와 코스모스가 워낙 가까이 붙어있었으므로 그렇게 양쪽을 잘 갔던 거 같아요. 저말고 제 어머님이...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1979년 12월 17일에 롯데호텔에 비로서 쇼핑센타가 문을 열었네요. 그래도 80년대 초까지는 '롯데일번가'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리었던 거 같아요. 작은 쇼핑몰 수준이고요. 그러다가 80년대에 공사를 크게하고 백화점을 정말 코스모스나 미도파와 비교도 안되게 삐까번쩍하게 지어서 백화점을 단지 구경하려 사랃들이 몰려가고 했죠.

  • 추천 1

이용혁님의 댓글

이용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와, 내글 다시 읽어보니 "한국에서 튕겨져 나간다는 느낌으로 나가는 사람, 모국의 국민으로서 안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한 채로 뭔가를 얻으려고 나가는 사람." 이 부분 섬뜩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쓸 때도 당연히 전자쪽을 은근히 좋아하면서 썼는데, 써놓고보니 전자 욕하고 후자 감싸는 것 처럼 보이네. -,.-;

여러분,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는데, 내가 전자에 해당하는 면이 많은데다가 저는 전자쪽의 사람들이랑 더 잘맞고 편견을 갖고 더 좋아하는 괴이한 취향도 있습니다. (...)

Ueberraschung님의 댓글

Ueberraschu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전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1년 생활 잘 맞더라구요...ㅎㅎ

잠시 한국 들어와있는데 최소 반년은 어떻게 더 버티며 있어야 하나 답답할 정돕니다..

매국노래도 할말이 없지만.....그냥 제 생각에도 독일이란 나라는 제 성격에도 딱 맞는나라 같네요..

목로주점님의 댓글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넘 재미있는 서두에요.

쓰신대로
"유럽에서도 별로 자연의 혜택을 못 받은 축에 드는, 춥고 눅눅한 땅에 위치한, 역사도 별로 오래되지 않은 나라. 일찍이 우리 민족이 비단옷과 금관과 유리잔과 불상을 만들고 쇠로 만든 창칼을 휘두르며 만주땅을 말 타고 달릴 때, 빽빽한 숲 속 움막 같은 데서 거적대기나 덮고 돌도끼나 휘두르던 나라. 스페인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메리카를 개척하고, 영국이 증기기관과 방적기를 만들고, 프랑스가 자유 평등 박애의 대혁명을 일으킬 동안, 갈갈이 찢겨진 채 외세의 말발굽에나 짖밟히던 나라. 그 복수를 한답시고 전쟁을 두번이나 벌렸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나고 인류역사 최고의 망신까지 당한 나라..."
라고 우리나라에서 흔히들 생각하는데 여기서 살다보니 한국에 참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는 사실을 느꼈어요.

저는 독일와서 5년정도는 '그런 게르만 민족이 어찌 이렇게 지금은 문화선진국에 경제선진국으로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 과제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전제가 절반 이상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고요.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래서 맨 위에 제가 본문과 상관없는 저런 댓글을 단 것이기도 한데요^^

독일을 짝사랑한 일본을 통해 독일문화가 그대로 넘어와 그것이 독일에서 온 것이라는 의식이 우리 한국인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당연한 것 이겠지요. 심지어 국민학교라는 말도 일본이 원조라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요새 외국 유학생의 대부분이 미국 혹은 영국이나 호주등 영어권 지역인데요. 이들 국가 중에는 과거사 때문에 아직 독일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심지어 한국이 영향을 많이 받은 헐리웃은 완전히 유대인들이 장악했었는데 이들이 독일을 긍정적으로 표현할 리가 없지요.

통계적으로 전세계 30세 이상 성인 중 티비를 보고 자란 사람은 적어도 한 번은 미국에서 만든 전쟁영화, "멋지고 정의로운 미군이 총을 빵 쏘면 흉칙한 모습으로 쓰러지는 나쁜 독일놈" 영화를 보고 자랐다고 합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70년대에 그런 미국 영화들이 한국 티비의 황금시간대를 장악하여 당시 독일 대사관에서 항의서를 낸 적도 있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영국에서 해마다 전세계인을 상대로 '가장 긍정적인 나라' 설문조사를 하면 독일이 계속 1위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 덕에 중장년 층에서 의외로 숨은 독일사랑이 있더군요. 다만 영미쪽에서 공부한 젊은 학자들이 독일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많이 간과하는 게(그쪽 학풍이 그러니 어쩔수 없다해도) 좀 아쉽습니다.

리드엘님의 댓글

리드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용혁님의 글들로 용혁님의 형상이나 느낌을 가끔씩 그려보았습니다.
근데, 용혁님의 글 속의 진심이 시간이 지날 수록 맑게 게인 하늘처럼
태평양 푸른 바다 속 처럼 청렴하게 비추어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용혁님의 댓글의 댓글

이용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혹시 오해하시는게 아닌가 싶어서 말씀드리는데, 이건 제 글이 아니고 퍼온 글입니다; 게시물 말미에 보면 제가 쓴 코멘트가 붙어있어요..

물봉선님의 댓글

물봉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평소  이용혁님 글들에 많은 공감을 하는 사람이으로서  본인 얘기인줄 알고
침착하게 죄 읽고 내려갔더니 아니네요. 괜찮구요. 이번에도 잘 읽었어요.
저도 누가 떠다민건 아니지만 80년도 중반에 도망치듯 빠져나온 사람 맞아요.
이런 저런 아쉽고 서러운 것들도 많지만 나온건 잘한거라 생각합니다.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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