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포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커뮤니티 새아리 유학마당 독어마당
커뮤니티
자유투고
생활문답
벼룩시장
구인구직
행사알림
먹거리
비어가든
갤러리
유학마당
유학문답
교육소식
유학전후
유학FAQ
유학일기
독어마당
독어문답
독어강좌
독어유머
독어용례
독어얘기
기타
독일개관
파독50년
독일와인
나지라기
관광화보
현재접속
292명
[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봉이단의 갈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monteur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4,470회 작성일 12-04-30 03:11

본문

독일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몸집 자그마하고 눈치 좋은 봉이라는 학생이 있다.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봉이는 자기만치 자그마한 아시아인 친구와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피스타치오와 요거트!"

 봉이는 맛이 좋다는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주인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주인은 오늘 무슨 일인지 처음부터 꽤나 불친절한 인상을 보였다.

 투덜대며 적당히 건내준 아이스크림 통에는 피스타치오와 땅콩 아이스크림이 담겨있었다.

 "저, 저는 요거트를 주문했는데 땅콩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어요."

 봉이는 똘똘한 말씨로 건내받은 아이스크림을 다시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뭐?"  ("Na, und?")

 신경질적인 반응의 주인은 받은대로 먹으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전 땅콩 못 먹어요. 요거트로 바꿔주세요."

 주인은 짜증을 누르며 피스타치오 한 숟가락을 새 통에 퍼서 적당히 담은 후 봉이에게 다시 건냈다.

 "피스타치오는 벌써 여기 들어있어요. 저는 피스타치오랑 요거트를 주문했어요."

 봉이는 그의 이런 태도에 짜증이 났다.

 그냥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퍼주기만 했어도 되는 일이었는데

 주인은 이상하리만치 불쾌한 행동을 하고 있다.

 "독일어나 제대로 해!"

 주인은 짜증나는 상황을 봉이의 독일어 탓으로 돌리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 했다.

 연이어 가게 구석에서 나온 주인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한 술 거든다.

 아이스크림 받았으면 되지 않았냐고 뭐가 문제냐고 목청을 높이며 작은 여자 두명을 막아선다.


 이미 돈은 지불했으니 하릴없이 아이스크림 두개를 손에 들고 돌아서는 봉이는

 이제 입맛도 떨어졌고 기분도 나빠져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참 들떴던 기분이 상했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 마음을 풀고 싶었다.


 단지 친구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했던 것 뿐이다.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몰라도 우리 둘을 너무 쉽게 보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시골 작은 도시의 몇 안되는 동양 여자들이라 쉽게 보는 것일지도 모르며,

 또 어쩌면 그저 날씨가 덥고 손님이 많아 받은 스트레스를 만만해 보이는 작은 아이들에게 풀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런 찝찝한 기분으로 어디론가 가기도 뭐했던 봉이는 친구와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 앞 의자에 앉았다.

 곧이어 그들처럼 그렇게 작고 눈이 반짝이는 다른 아시아 친구가 그들 앞을 지나갔다.

 속이 상하던 차에 친구에게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셋이 머리를 맞대어 복수를 도모한다.


 새로 투입된 아시아 여학생이 주인에게 다가간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아, 참, 제 말 알아들었어요? 요.거.트. 아이스크림이요. 요.거.트!"

 봉이와 그 친구는 주인이 잘 보이는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다른 친구는 그걸 받아서 이 친구들에게 날라다 주고 다시 주인에게로 간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요.거.트. 알아들었어요? 요.거.트."

 친구는 다시 봉이에게로 그 아이스크림을 날라다 준다. 그리고 다시 주인에게로 간다.

 "요.거.트!!"


 땡볕이 내리쬐던 낮부터 그렇게 그들은 잔뜩 주문한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그 자리를 지켰다.

 저녁 여덟시가 되자 주인이 가게 셔터를 내리고 집에 갈 채비를 한다.

 주인은 이 작고 똘똘한 여자아이 세명이 신경쓰인다.

 괜히 건들였다. 어색하니 인사라도 하고 가야겠다 싶어 아는 척을 한다.

 "그럼 안녕!"

 
 셋은 천천히 일어난다. 그리고 조용히 주인의 뒤를 따른다.

 주인이 언제 뒤를 돌아봐도 상관없다.

 언젠가는 그들이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굽이굽이 길을 돌아 주인이 도착한 곳은 동네의 한 술집이다.

 사실 술집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그닥 멀지 않았지만,

 따라오는 발자국과 뒷통수에 전해오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먼 길로 구불구불 돌아 간 것이었다.

 주인은 술집 한 구석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따라 들어간 세명의 작은 여자아이들도 다른 편에 앉아 주인을 응시하며 맥주 한잔에 수다를 떤다.

 주인은 괴롭다.

 여자아이들은 오늘의 승리를 자축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다음날 셋은 다시 아이스크림 가게에 간다.

 이 가게 아이스크림은 너무 맛있고 가격도 좋아서 포기할 수 없다.

 더운 날씨, 가게 앞에는 길게 줄이 서 있고, 주인은 진땀을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퍼다 나르고 있다.

 능숙한 솜씨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봉이는 가게 앞 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보란듯이 주인이 아이스크림 파는 모습을 지켜본다.

 주인은 긴장하고 있다.

 외국인 손님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눈치를 보며 어색한 친절의 미소를 날리는 그를 봉이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봉이는 기쁘다.

 특히 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앞으로도 계속 사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

여기까지가 오늘 친구 봉이와 통화하다가 들은 이야기다.

부엌 정리하면서 들은 이야기라 몇가지 기억 안나는 것들이 있어 적당히 끼워넣었는데,

봉이가 보면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나는 봉에게 초딩이냐고 물으면서도

내가 다음에 그 동네에 가면 큰 소리로 또박또박 "제.말.알.아.들.었.어.요? 요.거.트!" 를 외쳐주겠다고 깔깔댔다.

봉이가 사는 동네는 구동독의 작은 대학이 두어개 있는 아주 작은 도시다.

내가 8년전 그 곳에 갔을 때는 아직 전쟁의 흔적과 삶의 노곤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고,

조금이라도 후미진 곳에 들어갈라 치면

낯선 아시아인의 등장에 잔뜩 긴장한 몸짓을 한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였었다.

그런 동네의 사람들에게 외국인의 등장은 아직 불편하고 낯설다.


봉이의 삼인방은 정말 작은 여자아이 세명이다.

키가 160 될까말까 하고 몸집도 작은 아시아 여학생 셋이서

용감하게 거리를 종종 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명은 심하게 독일어를 못하지만 싹싹하고,

또 다른 한명은 똑똑해 보이지만 조금 숫기가 없다.

이들 사이에서 봉은 반장처럼 자기만큼 작은 아이들을 이끌고 다닌다.


외국에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한 나는 봉이와 아이들의 초딩스러운 용기가 부러웠다.

물론 스트레스 속에서 폭발한 아이스크림 주인의 외국인 혐오 섞인 짜증이

이 무서운 아이들의 갈굼 이후 소심하고 놀란 시민의 친절함이 되었다는 사실에 연민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쉽고 빠르게 상처 주고, 상처를 받으며,

그렇게 헤어져서 다시는 보지 않고,

서로 아무런 교류도 할 수 없어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이 해프닝 같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즐거웠다.


주인은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팔기 때문에 돈을 벌 것이고,

봉이는 용감했던 이유로 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초딩같은 행동을 한 삼십대의 내 친구 봉이가 자랑스럽다.




---------------------------------------------

개인 블로그에 오늘의 일기로 쓴 글인데 베리 유학일기 같은 느낌이라서 여기로 퍼왔습니다.

이름은 친구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봉이로 바꿨습니다.
추천0

댓글목록

monteur님의 댓글의 댓글

monteur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럼요, 아저씨가 정말 잘못 알아들은 걸 수도 있어요. 그래서 복수극이라기 보다는 갈궜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살다보면 별 오해와 상처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초딩대응하는 사람도 있다는 게 재밌어서 공유하고 싶었어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괜한 자격지심에 나치 나셨다며 더 크게 오해하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거나 그 자리에서 정색을 하고 입바른 소리를 바로 해주거나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봉이의 대응을 들었을 땐 겁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봉이는 제 친구니까 전 봉이 편이죠.  게다가 봉이가 하는 짓과 신체 사이즈가 초딩이지 독일어 실력은 출중하거든요. ^^

Musuji님의 댓글

Musuji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___^ 처음에는 뭐 이런 가게주인이다있지 하면서 읽다가 갈구는 부분은 꽤 통쾌하네요

아마 주인아저씨랑 친해질수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monteur님의 댓글의 댓글

monteur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은 순진한 사람 같아서 뒷이야기도 기대하고 있어요.


봉이단 이야기와는 좀 다른 원인이긴 하지만

Musuji님께 들려드리고 싶은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

예전에 한국 친구 두명과 함께 길을 걷는데 뒤에서 웬 남자가 쫓아오면서

뒤통수에 대고 자꾸만 우리를 "한꺼번에 따먹어" 주겠다,

아시아 여자가 "맛있다"며 끊임없이 펌프 액션을 하는거예요.

무서워서 피하고 걸음을 빨리했는데 지하철 역 근처까지 따라왔어요.

그래서 제가 기왕에 우리는 셋이니까 실실 쪼개면서 소리를 냅다 질러줬죠.

"니꺼 1센티지? 1인치도 아니고 1센티! 안봐도 보인다. 만족 못하니까 꺼져!"

그 남자 정말 억울해 했어요. 바지 벗는다고 난리였어요. 그리고 사라졌나 했는데,

우리가 지하철에 앉아서 문이 닫히기 직전에 그 사람이 갑자기 문밖으로 나타난거예요.

그리고 승객도 많았던 그 지하철 안에 대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내꺼 존나 크다!"

그리고 문이 닫혀 버렸죠. 승객들이 모두 웃었어요.

대응 한 덕분에 기분 나빴을 기억이 웃긴 기억이 되었어요.

지금은 되려 1센티에게 미안해요. 제가 심했어요.

Musuji님의 댓글의 댓글

Musuji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혼자있는방에서 무진장 웃었습니다.
예전에 나훈아씨 기자회견이 떠오를 정도에요.... 하하하하

winterkid님의 댓글의 댓글

winterkid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완전 웃겨요 빵터졌어요 ㅎㅎㅎㅎㅎㅎㅎ
무슨 유머책에 나오는 내용처럼 완전 장난아닌데요 ㅎㅎㅎㅎ
그녀석도 담부텀 그런 장난 안칠겁니다
완전 쌤통이군요

winterkid님의 댓글

winterkid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땅콩알러지 있는데 이거 먹고 아파서 여기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거냐 협박해보시지 그랬어요 ㅎㅎㅎ
암튼 웃겨요 아이스크림 먹겠다고 그런 난리가 ㅎㅎㅎ
아시안 처녀들의 복수극이 넘 맘에 듭니다 ㅎㅎㅎ

이용약관 | 운영진 | 주요게시판사용규칙 | 등업방법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비밀번호분실/재발급 | 입금계좌/통보방법 | 관리자문의
독일 한글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 서로 나누고 돕는 유럽 코리안 온라인 커뮤니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