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포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커뮤니티 새아리 유학마당 독어마당
커뮤니티
자유투고
생활문답
벼룩시장
구인구직
행사알림
먹거리
비어가든
갤러리
유학마당
유학문답
교육소식
유학전후
유학FAQ
유학일기
독어마당
독어문답
독어강좌
독어유머
독어용례
독어얘기
기타
독일개관
파독50년
독일와인
나지라기
관광화보
현재접속
397명
[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 카니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5,368회 작성일 05-02-26 02:01

본문

fas01.jpg


2005년 2월 6일 일요일,
라이프치히 시내 중심에는 카니발 가두 행렬이 있었다.
이곳은 중부 독일의 동쪽,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지역이어서
남부 카톨릭 지역만큼 카니발의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카니발은 역시 쾰른의 카니발.
지역에 따라 카니발을 부르는 명칭은 다르지만,
라이프치히는 빈과 뮌헨에서 그렇듯이
'파싱(Fasching)'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카니발은 주로 3월 초에 있는데,
올해 2월 초에 느닷없이 카니발이 벌어져서
이 카니발이 그 카니발 맞나? 잠시 어리둥절했다.

카니발은 교회력, 즉 종교적인 절기와 관련이 있다.
올해는 수난의 성 금요일과 부활절 일요일이 다른 해보다 훨씬 이른 3월말이기 때문에
카니발 역시 이렇게 일찍 찾아온 것이다.

수난의 성 금요일과 부활절 전 40일간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하는 고난의 절기, 사순절이라고 한다.
바로 지금 이 시기가 사순절이다.

이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Aschermittwoch)'부터 시작된다.
단식을 하고 머리에 재를 얹거나 뿌리는 날이다.

자, 그리고 '재의 수요일'까지의 약 일주일간의 기간이
흥청망청 주지육림 온갖 방탕한 죄를 저지르는 카니발, 즉 사육제 기간인 것이다!

먹고 마시고 퍼붓고 똥싸고 조롱하고 웃고 떠들고 금기에 반발한다.
일상적 가치와 규범이 모두 전도된다.
긴장된 일상으로부터 일탈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 카니발은 '재의 수요일' 즉, '참회의 수요일'과 함께 끝난다.
이날 한주간 저지른 죄에 대해 참회를 하며 경건한 마음을 갖춘다.
그리고는 그 뒤로 이어지는 차분한 사순절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fas02.jpg


IN GOTTES NARREN

차가 지나가는 순간 감탄했다.
카니발의 정신이 정곡을 찌르며 응집된 문장.

Narren은 '바보들, 광대'라는 뜻으로
카니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그들은 웃음과 풍자로 민중의 힘겨운 삶의 응어리를 해소해준다.
바보라는 무기를 앞세우는 것,
이는 중세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발언을
피력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에게 그랬듯이,
민중의 '웃음'은 지도층에게 두려운 것이었다.
웃음으로써 조롱하고 비판하며 울분을 토해낸다.

타로 카드에도 등장하는 바보,
서양 문화의 한 이면, 비주류, 문학과 예술, 신비주의에서
때로는 핵심적인 키워드로 등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들은 가장 신성한 가치들에 똥을 퍼붓는다.
금기 중의 금기는 물론 신성 모독이다.
Gott은 '부패한 성직자들'에 대한 비유적 공격이기도 하다.

In Gottes Narren [인 고테스 나렌: 주님의 바보 안에]

아마 'In Gottes Gnaden [인 고테스 그나덴: 주님의 은총 안에]'
혹은 'In Gottes Nahren(Nahrung) [인 고테스 나렌: 주님의 양식 안에]'
이런 표현들의 패러디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fas03.jpg


카니발의 바보들과 광대들.

가두 행렬 뿐 아니라 분장한 일반 시민들로 시내가 북적였다.
신기하게 두리번거리면서 가는데 점잖게 생긴 할아버지 두분이 중절모를 쓰고 지나간다.

할아버지들이라 적극적으로 분장은 못 하고
점잖은 중절모로나마 소극적으로 참여하는구나, 싶어
두 할아버지 옆을 지나치는 순간 씨익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그런데 별안간,
할아버지 한 넘이 (카니발이니까 어른을 이렇게 불러도 된다. 주여.)
내 코 앞에서 검은 바바리를 펼치는 것이 아닌가!

바바리 속에는 가슴에 하트 무늬가 그려진 우스꽝스런 나체 사진 등신 크기 프린트가 펼쳐졌다.
오 주여, 저 넘을 용서하소서.

기습 공격에 당황하여 '흐억' 숨 넘기는 소리를 내다가
그 할아버지 넘들이 지나간지 한참 후에 우하하 하고 길에서 혼자 웃었다.
카니발 광년이처럼. ㅡ_ㅡ
추천28

댓글목록

하늘에 심긴 사과나무님의 댓글

하늘에 심긴 사과나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ㅎㅎㅎ 많이 웃었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일년에 한번쯤은 우리도 저런 카니발에 파묻혀도 주님이 웃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을 해봅나다,

카니발 광년이???!!! 우하하! 멋진 단어를 만드셨군요! 남자는 카니발 광놈이? 카니발 광발이? 이런 단어들이 어울릴나라? ㅎㅎㅎ

건필 하시길....

*soo*님의 댓글

*soo*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ㅎㅎㅎㅎㅎㅎ 왠일이래요! 할아버지! ㅋㅋㅋ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이라고들 하지만, 제가 순박해져서 그런지 또 은근히 재밌게 사는 사람들이야- 하곤 해요.
시간이 이렇게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눈으로 직접 카니발을 본 적이 없어요.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즐거웠습니다. ^^

mirakim님의 댓글

mirakim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30년전 쾰런 생각이 나서 즐거웠습니다. 이제 그 옛날 시간에 쫓겨 타국의 문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시절이 그리워지니 나도 이제 살 날이 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찾아 다니면서 후회없이 보고 느끼고 하면서 살아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많이 올려주세요.

[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66 유학일기 melang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49 03-29
265 유학일기 saillum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37 03-28
264 유학일기 saillum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49 03-27
263 유학일기 piri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79 03-28
262 유학일기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56 03-27
261 유학일기 네버스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86 03-19
260 유학일기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26 03-19
259 유학일기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37 03-13
258 유학일기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23 03-12
257 유학일기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32 03-05
256 유학일기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46 03-03
255 유학일기 하늘에 심긴 사과나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93 02-26
열람중 유학일기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69 02-26
253 유학일기 Scandinavi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77 02-25
252 유학일기 Scandinavi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28 02-24
251 유학일기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52 02-22
250 유학일기 Yeonmuk Liu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05 02-17
249 유학일기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55 02-16
248 유학일기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74 02-12
247 유학일기 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81 02-12
게시물 검색
이용약관 | 운영진 | 주요게시판사용규칙 | 등업방법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비밀번호분실/재발급 | 입금계좌/통보방법 | 관리자문의
독일 한글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 서로 나누고 돕는 유럽 코리안 온라인 커뮤니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