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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지금부터 10분간 아무 것도 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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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5,883회 작성일 10-04-07 00:24

본문

이웃에 가끔씩 작은 아이를 봐 주시는 할머니가 계시다. 그 집 할아버지는 예전에 고속 철도를 개발하셨는데 내가 산이를 찾으러 가면 가끔식 기차의 원리에 대하여 설명해주시거나 옛날 베를린 기차 역사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신이 나서 설명해주시기도 한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나에게 그러셨다.

"산이가 그러는데 너 지난 주말에 생일이었다며?  그래, 생일은 잘 지냈니?"

"생일은 무신.. 내 나이가 끔찍한데.."

"왜, 네 나이가 어때서?"

"제가 벌써 40대 중반에 들어섰잖아요. 그런데 이루어 놓은 게 하나도 없네요."

"…………"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려 옆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기관차 구조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다시 만난 할머니가 정색을 하고 다시 내게 말씀하셨다.

"목로야, 내가 지난 주 내내 너가 한 말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너가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는 것은 가당치 않아. 지금의 너가 뭐가 어때서 그러니?"

"아, 할머니도.. 제가 해놓은 게 뭐가 있어요? 제 친구들은요, 공부를 계속해서 벌써 학위 따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애도 있고 직장을 계속 다녀서 회사의 중견 사원인 애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잖아요."

"너는 네 아이들을 잘 기르고 있잖니?"

"그건 다른 여자들도 다 하는 거예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넌 지금 외국에 있고 그럼에도 혼자서 많은 것을 잘 해왔구나. 내가 보기엔 대견하기만 한데.."

 

'에- 이 할머니 정말 나를 이해 못하시네. 지금 저걸 위로라고 하시는건가 아니면 나를 외국 여자라고 무시하는건가너는 그만하면 되었으니 주제를 알고 처지에 만족하라는거야 뭐야? 내세울 거라곤 쥐 뿔도 없는 내 처지를 알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야, 도대체!'

 

그리곤 다시 시간이 흘러 봄이 시작할 무렵 오랜 만에 옛 지인들을 만났다. 모두 내세우지 못하는 각 자의 어려움을 뒤에 두고 매일 매일을 고전 분투하며 살고 있는 중년의 엄마들이었다. 주제는 자연히 아프지 않고 힘든 이 세상 잘 이겨내기로 흘러갔다. 나이가 들며 예전같지 않은 체력에도 여전히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저는요, 시간이 나면 손바닥에 뜸을 뜨는데 참 좋아요. 그거 하고 나면 기운이 발딱 나서 다시 주섬 주섬 집안 일을 한다니까요. 문제는 손바닥에 불이 얹어져 있으면 꼼짝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그렇데 꼼짝않고 있을 짬이 제게 없다는것이죠."

"목로야, 그래도 그렇게 가만히 30분 정도 자신에게 투자하고 얼른 집안 일을 마저 하는 것이 지쳐서 꼼짝도 하지 싫은 것 보다는 낫지 않니?“" 

 "나는 전에 안하던 짓을 해. 머리 속이 늘 정신이 없었잖아. 남들이 보면 내가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괴로운 게 참 많았거든. 그래서 그냥 그럴 땐 혼자 나가. 거리 구경도 하고.누구를 불러내려고 해도 다들 바쁘니 내가 필요할 때만 골라 만날 수 없잖아. 사실 나도 아무 때나 시간 내어 그 사람들을 만나주지도 못했고.. 요즘엔 테레비도 가끔씩 봐."

"나는 테레비를 볼 짬은 없지만 그 대신 전철을 탔을 때 눈을 감고 옛날 생각을 떠올려. 특히 좋아했던거. 나에게 힘을 주는 추억들..내 에너지 충전원이야."

"그래, 에너지 충전원 그게 필요해. 내 동생은 가끔씩 아주 크게 음악을 들으며 그 속에 빠지기도 하더라."
"응. 나는 그런 것도 한다. 지금부터 10분 간 아무것도 안하기. 그냥 내게 10분 간 허송할 시간을 주는거야.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

 

나보다 인생 선배들인 그녀들은 각 자의 요령들을 알려주었다. 봄이 시작되고 다시 고질병과 같은 우울증이 찾아 올 때마다 난 그들이 가르쳐 준 방법을 동원한다.

 

먼저 시작한 것이 가끔씩 아무 것도 안하기.(생각도 안하기
-집에 들어오면 일단 10분 간 그냥 식탁에 앉아 있는다.-

 

두번째로 시작한 것이 전철에서도 아무 것도 안하기.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나를 계속 못살게 굴며 살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나는 그 동안 늘 뭔 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늘 더 잘해야 할 것이 있었나 고쳐 해야 할 것이 있었고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그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하기 위해 또 계획을 세우고 약속을 만들고 주말이나 주 중이나 끊임없이 바빴다.
마음은 더 바빴다.

세상의 모든 매체들은 세상을 더 성공적으로 잘 살 수 있게 하는 요령들에 대해서만 설파하였고 한국에서 나온 책들은 성공 전략으로 가득하다
.
시간이 금이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세뇌되어 온 명제.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아까와 지하철 속에서도 늘 머리를 파묻고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거나 독일어 단어를 찾거나 그것도 안되면 수첩을 들여다보며 스케줄을 점검하였다
.
그러나 그렇게 해서 아둥바둥하여 내가 남보다 더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과연 그렇게 사는 것만이 열심히 사는것인가?
시간은 점점 부족해졌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 계획을 더 잘 세워야 했고  짜여져 있는 시간표에 맞추어 하루 종일 허둥대며 쫒겨다니다 보면 늘 뒤죽 박죽인 일상과 불만족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식 멈추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10분을 보낸다.

그렇게 넉 놓고 가만히 있어 보니 하지 않아도 될 것과 버려도 될 것이 눈에 들어왔다
.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시간적으로도 좀 넉넉한 여유가 생겼다. 숨통이 틔이는 것 같다.

 

그리고 자주 내가 해놓은 작은 성과물들을 계산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내가 그리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 비참할 것도 없다. 나보고 잘하고 있다고 하신 할머니 말씀을 생각하며 스스로 잘했다고 내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지하를 달리던 전철이 도심을 벗어나자 지상으로 올라왔다. 봄이 된 베를린이 오랫 만에 화창하다. 오늘은 운이 좋아 전철의 창 밖으로 파란 하늘도 보인다. 가만히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무엇보다 봄에 피는 꽃이 더 이상 비참하거나 서글프거나 고통스럽게 보이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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