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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부활절 계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8,128회 작성일 10-04-05 09:28

본문

해마다 부활절이 오면 괜히 마음이 바쁘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신자라서 부활을 앞두고 기도하느라 그렇다면 얼마나 좋으랴만은 사실은 엉뚱하게도 계란 때문이다. 해마다 교회에서는 부활이 되면 계란을 나누어 먹는다. 그 의미는 생기가 없는 무생물체인 계란에서 살아 숨쉬는 따뜻한 생명체인 병아리가 '삐악'하고 나오는 모습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아오는 부활을 상징해 주기 때문이라는데, 어떤 이는 사실은 그게 아니라 오래 전 엄격한 교회 시대에 가난한 농부들은 사순기간 동안 철저한 금육으로 계란조차 못 먹다가 부활절이 되어 드디어 육식이 허락되자 기뻐하면 계란을 나누어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차피 다 어디서 전해졌는지 모르는 옛날 이야기들이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다만 내 생애에 부활절과 계란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업이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부활절 계란과의 첫 인연은 기독교 계통 학교인 고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마다 부활이 다가오면 학교 교목께서 학생들에게 삶은 계란을 가져오라고 이르셨는데 그 계란이 도대체 언제 어디에 쓰이는 지 부활절 전에 반장은 늘 계란을 모아 교목실로 날라야 했다. 그러다 고 3이 되어 첫 3, 모두 발 등에 떨어진 불로 채상에 먹리 박고 학업에 정진하고 있을 때 담임 선생님조차 아이들 진학 지도에 열중하신 나머지 삶은 계란을 모아 달라는 교목의 당부를 깜박 잊고 전달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성금요일 조례 후 (당시에는 그것이 성금요일인지도 몰랐지만)아직 1교시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3학년 수업이 아예 없으신 목사님께서 친히 7층에 위치한 우리반 교실까지 행차하시어 왜 3학년2반은 계란을 하나도 안 내었는지 물으셨다. 그 날까지 내야된다고..

 

반장은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계시는 진학지도실로 뛰었다.

"그래? 그래서 오늘까지 계란을 모아 내어야 한다고? 그럼 계란을 모두 몇 개를 내야하는데?"

"그게 그러니까 한 사람 당 2개씩 이니까 총 120개인데요."

 

선생님은 지갑에서 호탕하게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시며

"반장, 쉬는 시간에 부반장 데리고 나가서 계란 12줄만 사와라."

"저기 선생님 그게 삶은 계란이어야 하는데요…"

"우리반 교실 위에 있는 전기 포트로 삶을 수 없을까?"

"네?..."

 

그리고 반장은 달걀 4판을 하필이면 그 주의 주번이었던 내 품에 안기며 잘 해보라고 시켰다.

 

반장 아빠가 아이들 따뜻한 물 주라고 사다주신 우리반의 자랑, 전기 포트 겸 보온 물병. 차곡차곡 계란을 넣으니 대략 30개가 들어갔다. 물을 가득 담고 스위치를 올리니 1시간 수업시간 동안 얼추 계란이 익었다. 그리하여 쉬는 시간마다 손을 퉁퉁 불려가며 좁고 길죽한 커피포트 속에서 계란을 꺼내고 다시 집어 넣고 찬물에 헹구고.. 점심시간까지 몽땅 바쳐가면 헌신적으로 투신한 17세 소녀의 땀방을의 소산인 삶은 계란 120개. 성공적으로 그 날 오후 계란을 교목실에 헌정할 수 있었고 담임 선생님은 목사님으로부터 감사의 뜻을 따로 전해 받았다. 총 36개의 학급 중 계란120개를 모두 낸 반은 우리반 밖에 없었다나?

 

청년이 되자 부활절 계란과의 인연은 더욱 각별해졌다.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어 주는 개신교와 달리 성당에서는 계란 바구니를 만들어 파는데 특히 내가 다니던 성당은 좀 큰 성당이어서 해바다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몇 천개씩 준비하였다. 그리고 그 계란에 일일히 붓으로 그림을 그려 예쁘게 꾸며 팔았다. 때문에 본당 수녀님들은 성당 청년들을 죄다 불러 교리실에 앉혀 놓고 부활절을 앞두고 일주일 내내 계란 공장을 가동시키셨다. 아마 독일 숲 속에 토끼가 부활절 계란을 제조하기 위한 계란 공장이 있다면 그런 모습일 것이다. 교육관 지하 주방에서 어머니들이 커다란 들통에 계란을 계속해서 삶아내고 삶아진 계란이 한 번에 열 판씩 윗층 교리실로  배달되면 모두 둘러 앉아 다음번 열판이 배달되기 전에 어떻게든 그것을 다 그려내야 하는데 자칫 계란이 떨어지거나 부딪혀서 깨지기라도 하면 우리들은 소금도 없이 목을 메어가며 신난다고 그 계란을 까먹었다. 그리하여 저녁에 헤어질 때 쯤엔 모두 닭똥내가 난다며 웃었다. 그리고 집에 가면 그 청년의 어머니들은 성당에서 종일 계란을 삶으시고 삶다가 깨지고 터진 계란을 싼 값에 사오셔서 계란 장조림을 만들어 반찬으로 내놓셨기 때문에 그 주가 다 지날 쯤에는 우리들은 만나면 서로 꼬꼬댁거리기만 하였었다. ㅋㅋㅋ  

 

그런데 독일에 오자 여기는 부활 계란을 삶거나 꾸며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이나 공원에 숨겨놓고 찾기놀이를 하는 것이다. 부활절에 봄나들이 가던 토끼가 부활의 상징인 계란을 들고 깡총거리다 흘린 것이라나 어쩠다나.. 그리고 요즘 토끼는 계란만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계란모양과 흡사한 쵸콜릿도 흘리고 다니고 심지어 커다란 토끼동상도 흘리고 다닌단다. 심지어 장난감을 흘리는 선심 좋은 토끼도 있다. 그래서 계란 찾기에 나선 아이들은 신이 두 배로 나는 것이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을 우리집 아이들이 못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나는 부활절이면 늘 계란을 몰래 준비하여 집 뒷마당에 숨기는데 아이들 몰래 숨기다 보니 늘 애들이 다 잠이 든 후 한 밤에 깜깜한 뒷마당에서 그 짓을 한다. 그런데 말이 계란 숨기기지 아직 풀이 우거지기 전 초봄이라 뒷마당의 화단은 잡초도 없는 황무지나 다름없어 멀리서도 하얀 계란이 선명히 보이고 금박지에 쌓인 쵸콜릿은 더욱 두드러진다.  아이들은 누워서 떡먹기처럼 계란을 찾아내는데 그것이 그래도 참 재미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이 눈을 뜨기가 무섭게 창 문을 통해 마당에 흩어져 있는 계란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총알같이 뛰어 나가 계란 찾기를 한다, 물론 집 거실에 숨기는 가정들도 있는데 부활절 토끼가 거실에 계란을 흘리고 갔다면 좀 어색한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좀 종교적이어서 부활절에 굳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아야 할 필요를 느끼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 뒷마당이 사실 여러 가구가 함께 쓰는 공용 뜰이지만 해마다 그렇게 부활절 아침에 뜰을 독점하여 아이들과 계란 찾기를 한다. 

 

 

때문에 나는 부활이 되면 바빠진다. 무엇보다 먼저 하얀 계란을 찾아 미리 사두기. 만약 부활절 전날 수퍼에 갔다가 누런 계란 밖에 없으면 큰 낭패이기 때문이다. 누런 계란은 물을 들여도 그림을 그려도 흰 계란만큼 선명하고 예쁘게 되지 않기에 난 늘 흰계란을 고수한다.  그리고 아이들 몰래 쵸콜릿과 사탕 등을 사다가 아이들이 발견하지 못할 장소에 몰래 감추어 둔다.  한편 성당에서는 어린이 주일학교 보조금을 마련하느라 자모회에서 계란 바구니를 만들어 팔므로 그 준비도 같이 해야한다.  성당에서 엄마들이 모여 앉아 색지를 오리고 붙이고 계란을 삶고 물 들이고 그리고 글씨 쓰고 포장하고..   부활 성야 미사가 시작되는 성토요일. 아이들과 아내를 온 종일 성당에 저당 잡히고 배가 고파 어슬렁 어슬렁 성당을 찾아 온 아빠들도 영락없이 잡혀 같이 오리고 붙이고 단순노동에 투입된다. 계란 바구니는 밤에 미사가 끝나면서 벌써 판매되기 때문에 그 전에 얼른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성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뛰어나가 계란 바구니를 만들고 집에 돌아오니 집안 꼴이 엉망이다. 이런, 아침에 설겆이도 안 해놓고 나갔었네. 주섬주섬 치우고 닦고 저녁을 먹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우리집 아이들을 위한 계란을 안 숨겨둔 것이 생각났다. 다시 부엌으로 나가 계란을 삶았다. 갖 삶아진 따끈한 계란에는 그림도 잘 그려진다. 번거롭게 물 들일 것 없이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얼마 전 한국 문화원을 단체 관람 했다가 아이들이 기념품으로 받아 온 지구표 색연필은 색상도 선명하여 계란그리기용으로 딱이다. 계란과 꽁꽁 숨겨 두었던 쵸콜릿을 꺼내 들고 뒷 뜰로 나 선 시각이 새벽1.  이런! 비가 내리네. 비에 젖을 것 같지 않은 사탕 류만 몇 개 화단에 뿌려놓고 나머지 계란과 쵸콜릿은 는 작은 종이 바구니에 담아 뒷 뜰로 나가는 계단에 두었다. 설마 이웃들이 지나가다 건드리지야 않겠지.. 하긴 부활절 새벽에 계단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봐야 얼마나되랴.

 

아침이 되자 산이는 계란 찾기에 신이 난 반면 이제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는 포리는 심드렁하다.


"형아, 계란찾기 하러 같이 나가자"

"꼭 내가 같이 나가야 되?"

"혀엉, 같이 가자."

 

그러자 막상 뜰에 나서자 산이보다 포리 발걸음이 더 바쁘다. - 언제는 안 찾고 구경만 할 거라더니.

 

집에 들어와 바구니에 담아 온 계란들을 형님이 친히 셈을 하시며 정확하게 동생이랑 나눈다.

그리고 하나가 남는다며 친절하시게도 엄마에게도 준다. 아침으로 삶은 달걀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달걀을 가져다 준 부활절 토끼가 고맙다고 능청을 떨었다.

 

봄이 되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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