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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어느 브레히트 거리에서의 편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muko이름으로 검색 댓글 1건 조회 4,109회 작성일 02-07-25 09:35

본문

- 난 지금 내 평생없을 줄 알았던 꽃들 천지 속에 산다.

사방에서 여름꽃들이 쑥덕거린다. 사시사철 법썩거리는 날이 드문 이곳에서 꽃들이라도 쑥떡대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다. 오늘 종일 비 내렸고 내일도 비 내릴 것 같다. 거긴 무진장 덥다고들 하는데, 여긴 여름이 한국의 늦가을같다. 긴팔에 잠바를 더껴입어도 가끔 춥고 어쩌다 아침 햇살 좋아서 잠바 없이 길을 나섰다가는 쫄딱 비맞고 들어오기 일쑤다.

이곳 독일에 와서 그렇게 좋아하던 비가 싫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곳 생활 후, 난 햇살의 고마움을 겨우 알았다.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처럼, 마음껏 가질 수 없어서야 겨우 알았다. 어쩌다 따스한 햇살이 불면 잠시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 들때도 있다.

따뜻한 햇살, 그리고 모국어, 그 유창한 모국어로 수다를 잔뜩 떨고 싶을 때가 있다. 모국어, 내겐 아직도 그리운 건 사람보다 모국어이다. 그래서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산골이라, 베를린 리포트에 들어와 무수한 사람들의 생각 속을 기웃댄지 4년이란 세월이 넘어간다.

독일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난 모른다. 그저 이곳을 통해 조금씩 추측할 뿐이다. 어느 곳에서나처럼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테고, 다투기도 하고, 보듬어 안기도 하고, 뭐 그러면서 살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독일 생활에 염증을 느낄 수도 있을테고, 또 어느 한편 행복할 때도 있을꺼다.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난 철마다 참으로 이쁘게 변해가는 숲속의 꽃들을 보며, 그것에 감동할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를 느낄 때면  행복하다. 아직 친구 하나 없는 이곳 생활이지만 이젠 아무래도 사람들보다 식물이 더 좋아진 모양이다. 동네 앞마당에 핀 꽃들과 숲속에 핀 들꽃들은 볼수록 참 이쁘다. 올핸 아파트 발코니에 꽃들도 심었다. 작년에 다 죽었는데, 올핸 성공이다. 꽃들이 하나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꽃이 피지 않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스무해를 그곳에서 보낼 땐 세상이 다들 내 고향 어판장의 욕설처럼 들쩍지근한 줄만 알았다. 꽃같은 건 안중에도 없던 세월이었다. 사람, 사람들뿐이었다. 웃음보다 눈물이 많던 시절, 떠나고 싶다가도 사람 속에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차마 버리지 못했던 시절, 그리고 사람 속에 살았던 시절…

단 한번도 독일이라는 곳에 살게 될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독일인을 남편으로 두고 살꺼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삶이란 그런 것 같다. 어느날 문득 다가오고, 또 떠나가는…

사람들은 한 사람이 생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은 그들보다 수천번도 더 오래 생각한다는 것을 이따금 잊는가보다. 살면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많은 날들, 어느날 문득 자신의 삶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이야기들,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선 조금쯤은 관대한 시선으로 보아주면 안되는 것일까? 가지 않은 길이 또는 갈 수 없는 길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데, 성난 눈빛으로 대한다면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일테니…

비만 내린다고 우울죽상으로 하늘만 긁어댈 게 아니라, 이따금이라도 햇살이 흩어지면 그 햇살속에 마음껏 잠길 수 있는, 내가 가진 것에 잠시라도 감사할 수 있었음 좋겠다. 나또한 잘하지 못하는 것이긴 하지만 마음이라도 그렇게 가지려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산다.

베를린 레포트 속의 어떤 사람들은 내 고향 사람들처럼 욕설이 들쩍지근하다. 다 들어내야 성이 차는 그 마음들, 많은 논의들이 나를 향한 이야기일 수 있겠구나 싶을 때면 아주 가끔은 우울해질 때도 있지만 어쩌랴, 그런 것도 사람 사는 모습일 테니,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삶의 거리를 느낄 때도 있지만 그건 또 대수롭지 않을 일을 꺼다. 다만 가는 길이 수만 길이니 어느 길이 옳다고 마음껏 윽박지르지 않는 여유로움을 언젠가 알게 되었음 싶을 뿐이다.

길 밖에 길이 또 있고, 닿을 곳이 어딘지 아직 모르지만 어느새 닿아있을 지도 모르는 오랜 후의 그 모습들...

방금 동네 숲을 한바퀴 돌다가 왔다. 혼자 숲을 걸으면 나무들이 싸르르 흔들리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온다. 그렇게 귀를 대고 있으면 욕설로 범벅이던 바닷가의 그 풍경들도 어느덧 잔잔한 나뭇결의 물살로 내게 다가온다. 사람들과 그 옛날의 풍경은 가고 없지만 기억으로 푸르게 흩어져서 내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뿌리내리며 여기저기 꽃을 피워대며 말이다.




[이 게시물은 자유로니님에 의해 2004-03-11 02:38:19 수필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됨]
추천4

댓글목록

Lisa님의 댓글

Lisa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난 지금 내 평생없을 줄 알았던 꽃들 천지 속에 산다. "
이 제목한마디가 님은 아주 행복하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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