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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월드컵 증후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설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댓글 3건 조회 4,000회 작성일 02-10-12 07:48

본문

꽁트            월드컵 증후군
                                                    전설인
김씨는 오늘 하루 내내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어설픈 웃음이 앞 서 왔다. 그 생각을 떨쳐 버릴려고 해도  집요하니 눈 앞에 어린 거리는 빛 바랜 흑백 사진 속에 그의 당찬 모습이 좀처럼 지워 지지 아니 했다.  
정말 믿어지지 않은 말이었으나 그가 보여 준 사진 속 주인공이 베커라는 사실과  한일 월드컵의 축제가 열리는 동안 둥근 축구 공이 만들어 낸 화합의 대화가  김씨 자신의 주변에서 이루어진 사실이 더욱 그랬다.

프랑크푸르트 서부 역. 크로이츠 낰허 스트라쎄 41번지. 길 양 쪽에 주차한 차들 때문에 승용차 두 대가 겨우 비껴 갈 만큼 비좁은 도로에는 언제나 담배 꽁초와 휴지. 쭈그러진  콜라 캔과 빈 맥주병이 이곳 저곳에 나 뒹굴어져 지저분하기 그지 없었다. 뿐인가 철로 변 방음 벽에는 온갖 스프레이 페인팅 그림이 주변을 더욱 음산하게 했다. 매일 아침 마다 시 청소 차가 나타나 흡입 청소기로 말끔히 치우고 가지만 한 시간도 채 못되어 다시 거리는 온통 오물로 지저분하니 변하곤 했다. 만큼 주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공중도덕에 대한 무관심에다 시영 주택에 망명을 자처한 난민들이 다수 기거하고 있기 때문일거다.
이따금 덜컹 덜컹 귀를 찢는 쇠소리를 내는 화물열차가 긴 꼬리를 달고 달릴 때마다 건물 창들이 요동을 치는 스산한 거리. 이차대전 이후 미군이 폭격한 건물을 쓸어 내고 새로 지었다는 외양이 비슷한 5층 건물이 아프리카 사막에서 용맹을 떨치던 롬멜의 전차 군단처럼 사열한 주택가 첫번째 건물 맨 아래층에 김씨 가족이 살고 있었다. 시내 중심지와 두어 정거장 떨어진 곳이며 국제 메쎄장(국제 무역전시장) 근처로 교통이 편리하다는 것 말고는 주택지로써는 적합치 않은 이곳에서 김씨는 십년을 넘게 살아 왔다. 90년 대 주택 난이 심했던 시기에 프랑크푸르트에 처음 이사를 와서 2년 동안을 기다려서야 겨우 시에서 배정 받은 시 소유 다세대 임대 주택이었다. 애들이 다니는 괴테 김나지움과 도보로 20분 거리이며 지하도를 지나면 전철을 탈수 있고 사방 팔방 교통이 편리해 주변환경을 따질 겨 없이 살기 편한 곳으로 생각 했으나 몇 년을 살다 보니 차츰 차츰 지저분한 주변 환경과 날마다 마주치는 주변 사람들의 볼성 사나운 꼴 불견에 김씨 자신도 외국인이라는 것을 망각 한 듯 늘 많은 불평을 뱉으며 살았다. 더욱 모멸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출입구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바로 바라 보며 살고 있는 슈미트 가족들이었다. 독일이 통일되던 이듬해 김씨와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온 이들 가족은 결혼 한 딸 가족과 청소차 운전 기사인 아들 내외 등 대 가족을 이끌고 이 건물 한쪽을 셋 세대가 차지하고 동독 자기 고향 드레스덴을 옮겨 놓은 듯 언제나 떠들썩하니 그 들 천지였다. 이사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마주친 베커 슈미트가  대뜸, ㅡ헤르 킴 당신 노트 코리아냐.  아니면 쉬트 코리아에서 왔느냐.ㅡ 처음 만난 사이에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나온 인사가 너무 불쾌 했으나 김씨는 감정을 누르고 ㅡ 나는 쉬트 코리아 사람이다.ㅡ 하고 당당히 말 했다. 그러자 베커는  벌레를 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 쳤다. 그 후  오다 가다 베커 가족을 만나 애써 아는 척 인사를 해도 고개만 끄덕거리며 찬 바람이 날 지경으로 스쳐 들 갔다. 한국 사람 한테 된통 혼쭐이 났는지 아니면 머리 검은 동양인과 무슨 말 못할 숨은 곡절이 있는지 시큰둥 하는 그 가족과 한 건물에서 살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부딪치는 일이 자주 생겼다. 한 주일 건너 뛰어 돌아 오는 입구 층계 청소로부터  밤늦게 귀가하여 문 닫는 소리만 크게 나도  다음 날 편지 함에는 어김 없이, ㅡ당신들 만 사는 집이 아니니 주의하라.ㅡ는 쪽지가 전해 왔다. 자기네들 하는 짓은 생각 않고 사사건건 시비를 일 삼는 그 들과 말 다툼을 하기도 역겨워 이사를 가려고 벼르던 참이었다. 화가 나는 일이 생길 때는 금방이라도 당장 이사를 할 듯 서 둘렀다. 그러나 벌려 놓은 사업이 별로 신통치 못한데다 이사를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 차일피일 미룬 것이 일년, 이년이 지나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정확히 말해서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6월22일.
마침 한국과 스페인이 4강전을 가리던 날.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과 한인회에서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형 맥주홀을 빌려 응원전을 펼치기로 했다. 응원 전에 참석하는 교민은 빨강 샤쓰를 입고 참석하길 원 했다. 평소 교민들 모임에 별 관심이 없던 김씨 부부도 온 국민이 월드 컵 경기에 열광하는 이 축제에 외면만을 할 수 없어 참석하기로 했다. 옷 장을 온통 뒤집어 빨강색이 있는 샤쓰를 꺼내 입고 마악 출입 문을 나서자 ,
“굳텐 모르겐! 헤르킴! 코리아 파이팅! 아 때ㅡ한민꾹 짝!ㅡ 짝!짝!짝! 코리아 파이팅!” 하는 귀에 익은 소리에 화들 짝 놀래 옆을 보니 길가 쪽 창에 얼굴을 내 밀고 있던 베커 부부가 함빡 웃음을 얼굴 가득 담고 손뼉을 치며 테레비 방송에서 보았던 한국 응원 모습 그대로 흉내를 내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뜻밖의 깜짝 쑈에 김씨 부부는 어리둥절 했다. 눈 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아니하던 그들이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다니….

어느 모로 보나 엉거 주춤 등이 휘고 자기 몸 하나 지탱 못하고 뒤뚱 뒤뚱 팔자 걸음을 걷는 팔십 고령의 베커 슈미트. 1950년대 너무나 유명했던 이태리 영화 길( 제르쏘미나)에서 떠돌이 차력사 안소니 킨을 떠올리게 하는 인중이 길고 하관이 쭉 빠른 긴 얼굴. 광대 뼈가 툭 불거 진 얼굴 군데 군데 저승 꽃이라는 검버섯이 핀 평범한 여느 연금을 받는 독일 늙은이 베커.
그가 젊은 시절 동독 국가 대표팀 축구선수 였다는 말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무슨 흰소리냐고 가볍게 생각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월드컵에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축구 이야기로 한참 꽃을 피우는 축구 열기가 무르익는 때 였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아침 빵 가게에서 마주 친 김씨 집 바로 윗 층에 사는 터이키인 메메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김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 할 만큼 놀랬다.
ㅡ헤르 킴! 너 알고 있느냐. 베커 영감이 1960년대에 두 차례라 노트 코리아에
다녀 왔다고 하더라. 노트 코리아 사람과 찍은 사진도 보았는 걸.ㅡ
김씨는 섬뜩 했다. 요즈음 햇빛 정책이라 하여 남북한 교류가 활발하고 금강산
관광도 별 제약을 받지 않고 갈 수 있고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로가 금명간 개통
한다는 등 남과 북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지금 새삼스러이 북한을 다녀 왔다는
것에 그리 놀랠 일이  아니 였다. 북한을 다녀 왔다는 그가 십년이 넘게 같은
건물에 살면서 김씨 가족을 적대시하고 냉담하던 걸 생각하니 왠지 그런 생각이
앞 섰다.  이념과 사상에 대한 이데올로기에서 생긴 그의 냉담한 돌출 행동일까.
언제나 애써 상대방을 깔 보는 듯 두 눈을 내리 깔고 고개 만 끄덕이며 스쳐 가던 그 거만한 늙은이가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공격수로 북한을 방문. 그것도 두 차례라니 벌려 진 입이 닫혀 지지 아니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베커에 대한 인상이 짙게 남아 궁금증이 더해 갔다.
스페인과 연장전까지 가던 한국 팀이 승부차기에서 승리 4강에 오른 극적인 순간 피를 마르게 했던 경기를 보고 돌아 오니 문 앞에 노랑 꽃망울이 방울 방울 맺힌
한 그루 국화 화분과 옅은 분홍 빛이 감도는 봉투가 꽃 망울 사이에 꽂혀 있었다.
누가 보낸 화분일까.
ㅡ 코리아 파이팅!
헤르 킴! 부부를 초대 합니다.  축구를사랑하는 베커 슈미트 가족ㅡ
이게 왠 일인가. 아침에는 아! 대ㅡ 한민국을 외치며 반기던 베커 노인 집에서 이제 초대까지 하다니  믿기지 아니한 일에 김씨는 어안이 벙벙 했다.

김씨 부부는 지하철 역 부근 꽃가게에서 장미와 밥 풀꽃으로 아름답게 만든 꽃다발을 사 들고 베커 노인 집 문을 노크 했다. 한 건물에 십 여년을 살아 왔으나 처음으로 그 노인 부부의 집안에 초대를 받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독일 가정과 같이 별 장식 없이 단조로운 거실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 했다.
유독 눈에 확 들어 오는 것은 많은 상패와 그리고 벽에 걸린 액자 속에 축구 복을 입은 베커의 젊은 시절 사진들이었다. 거실 가득히 축구 박물관을 방불하리 만큼 온통 축구 일색이었다.
꽃무늬가 아름다운 하얀 덮개를 씐운 테이블 위에는 베커 부인이 손수 구운 듯 노릇 노릇한 먹음직스러운 사과파이가 있고 유리 주전자에는 원두 커피의 진한 커피 향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헤르 킴!  당신 부부가 우리 초대에 흔쾌히 응해주어 대단히 감사히 생각합니다.’ 서구인들의 몸에 밴 예절 복식인지 구식이지만 정장 차림에 붉은 색의 렉타이가 촌스러워 보여도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고 깍듯이 예우를 보였다. .
“천만에요. 우리가 먼저 당신 부부를 초대했어야 우리 나라 예절인데 미쳐 생각을 못해 죄송합니다.” 김씨 부부의 인사에 그들 부부도 매우 흡족한 듯  화제는 한일 월드컵으로 시작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이태리를 1대0으로 물리친 북한 팀과 실력 평가전을 평양에서 가졌던 일화와 평양 만수대 체육공원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 주었다. 갈피가 너털 너털 헤어진 사진첩 속에는 김일성 생가와 주체 탑을 배경으로 찍은 누렇게 변색된 흑백 사진이 많았다. 북한을 두 차례나 다녀 온 그의 북한에 대한 생각이나 축구에 대한 열정은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리 만큼 너무나 해박 했다. 그러나 남한을 보는 눈은 북한에서 일괄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육이오 동란을 남측이 미군을 앞세우고 시작한 북침이며 미국의 주구 노릇을 하는 남한은 주체성이 없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자기는 미국을 싫어 한다고 했다. 그래서 김씨가 쉬트 코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라 했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세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자신의 반미지론을 강조하면서 이번 한일 월드컵을 보고 한국에 대한 자신의 편협 된 생각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 줄 늦게야 알게 되어 부끄럽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축제기간에 일어 났던 북한의 서해 만행은 너무나 많은 충격과 교훈을 남겨 주었다고 솔직히 말하는 베커 노인의 진솔한 고백에 김씨 자신도 부끄러운 생각이 앞 섰다.
월드컵 축제에 둥근 축구 공이 세계를 하나로 어우르고 대화와 화합을 이룩한 월드컵 증후군을 김씨는 자신의 주변에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끝-
추천11

댓글목록

micha님의 댓글

micha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정말 재밌는 분이시군요.
그런 아이디어를 가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라면 여자를 정말 재밌게 해줄 수 있을것 같네요. 제가 중매 설까요?

안타깝다님의 댓글

안타깝다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한경제님이 미혼인 줄 알았으면 뮌헨에 살 때 함 만나보자고 조를 걸...-.-;;;  정말 기발하신 분이군요.  :-D  글구...정말 안타깝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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