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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도배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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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onioslus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6,357회 작성일 02-11-06 23:30

본문

발로 직접 뛰어야 했고, 막상 열심히 뛰어 가도 불평과 끊임없는 요구로 가득찬 고객을 뿐이었다는 것, 자원봉사자들의 또 다른 자원봉사자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사회복지 인식은 바닥에서 헤어나질 못한 상황이므로 법제, 정책, 행정관리가 터무니없이 엉망징창이라는 것, 이에 애 한 둘 있는 가장이 되면 생계적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박봉을 매 달 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등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라는 착각과 오해로 그만둔 전 직장 생활.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고 나서 한 달 만에 나는 과거의 나의 일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문득 그 때의 경험과 당시 맺은 인연들이 나의 마음 속을 한 없이 뒤 흔들어대는 것이다. 과거의 어려운 시절들은 현재의 웃음을 자아내는 추억으로 돌변하기 마련인가? 그리하여 나는 그 때를 종종 떠올리며,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저녁시간을 내어 맥주와 소주잔을 번갈아 부딪치며 혀 꼬인 소리를 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신입이었다. 중구 보건소 간호사 한명이 팩스 하나를 떡 하니 보내왔다. 도배 의뢰. 주소:서울시 중구 XX동 XXX-XXX. 대상자:이XX. 전화번호:XXXX-XXXX. 주민등록번호:2XXXXX-2XXXXXXX. 그리고 맨 아래 못생긴 약도 하나가 팩스 내용의 전부였다. 내가 몸 담던 기관은 중구청 위탁으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위탁이라는 말만큼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 현실에서 허망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구청에서 지원을 하기야 하지마는, 적어도 이 중구 안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들만 먹여 살리고자 한다면 어림도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은근히 사회복지 기관의 재정적 독립 및 후원사업의 활성화를 주장하며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사회복지 법인인 우리 기관은 나름의 독자적인 노인복지 사업을 행하고 있었고, 이번과 같은 도배 의뢰 따위는 후원금 조성 등을 통하여 자체적으로 부담하여 지원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집이 엄청 낡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오죽 그랬으면, 무료진료 나갔던 간호사가 이 곳으로 도움을 다 청할까. 팀장이 내게 말했다. “이 선생이 한번 다녀와. 약도 보니까 그리 멀지도 않은데? 약수시장 근처고, 그러면 건너 3동쯤이겠군. 걸어 갔다 오면 되겠어.” 오늘도 걸어서 어르신 뵈러 가는군, 했다. 이번엔 어떤 노인일까. 우선 가정방문을 알리기 위한 전화를 했다. 언제 어느 시간에 갈 터이니, 다른 데에는 갈 생각일랑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당부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들은 이리 저리로 돌아다니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몸만 성하면 집에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더라, 하는 것을 당시 한 달 남짓의 사회복지사 경험으로 스스로 알아낸 바였다.
흔히 하나의 서비스를 의뢰 받아 이에 대한 필요한 검증을 위해 직접 가정방문이라는 것을 해보면, 나의 고객들 ㅡ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꼭 이중 삼중으로 서비스를 덧 받으려고 온 힘을 다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대부분 월 20-30만원의 정부지원금으로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의 마음도 우리 젊은이들과 같아서 삶의 질 향상과 생의 영속성에 대란 갈망을 말로서 다 할 수가 없다. 도배의뢰가 들어왔으니, 어디 보자. 약수 시장 근처엔 밑반찬 배달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이 몇 있지. 서로들 들은 소문이 있을 테고, 그러하면 다른 할머니들처럼 나도 밑반찬을 가져달라고 애원을 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렇듯 미리부터 짐작이란 것을 한다. 이는 거의 100% 먹혀 들어가는 신비함이 있었다. 또한 이는 꼭 필요한 것이다. 무분별한 동정심은 안타깝게도 사회복지 서비스의 효율적 배분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비참하고 슬픈 현실이여. 정부 보조금과 자체 후원금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 정말 절실한 대상자를 선별해야 하는 것. 이것에 대하여 대학 교수들은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이라 일컬으며 전공자들의 사회복지 마인드를 부풀리곤 하였다.

가정방문 하던 날. 대충 주소지에 맞게 근처까지 온 듯 한데,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은 곳이 눈에 띠질 않았다. 이유인 즉, 분명 이곳이다라고 확신하여 머문 곳이 시장 한복판의 모 정육점 앞이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길을 헤매던 나는 유난히 따뜻한 날씨에 감사했다. 정육점 위 층에는 다방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초원다방. 이런, 큰일이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오늘 방문하기로 했던 사회복지사입니다. XX정육점 앞인데 그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죠?” “뭐여?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 “(좀 더 큰 소리로) 할머니, 여기 복지관인데요…” “뚜뚜 뚜뚜….” 이런! 귀가 이렇게 어두우시면, 저는 어떻합니까.
“이봐, 고기 살 거 아닌가?” 정육점 가제 주인이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문 앞을 막고 서 있는 내게 말을 건넨다. “집을 찾고 있습니다. 이게 주소입니다.” “음, 초원다방이군 그래. 저기로 올라가봐. 초원다방 문 앞에서 그대로 쭈욱 걸어가보라고. 그럼 집이 여러 채 있어.” 집이 여러 채 있다니, 원. 호기심이 있는 대로 발동하여 정육점 주인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유심히 살피어 방향을 잡아 걸어 갔다. 어두운 지하 통로 같은 곳이 나타났다. 사방은 아무 것도 칠하지 않은 시멘트 벽이었고, 머리 위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방울들이 머리카락을 가볍게 적셔 나갔다. 끝에 다다르니 단 하나가 20센티쯤 되는 시멘트 계단이 난간도 없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로 올라 갔다. 계단 끝 바로 앞에 밖에서 보았던 초원다방의 입구가 있었고, 앞으로 계속 통로가 펼쳐져 있었다. 그 어두운 곳에 빛이 새어 드는 것이 보였기에, 그리로 계속 걸어갔다. 오, 세상에! 하늘이 보인다. 다름 아닌 이 건물의 옥상이었던 것이다. 밖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 숨은 세상. 그 곳에는 재 멋대로 생겨먹은 집들이 있었다. 과연 그러했다. 가지 각색 플라스틱 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손바닥만한 부엌과 단 한 칸 방만이 있는 집들. 그 지붕과 지붕에 작은 구멍을 내어 굵은 매단 굵은 노끈 위에는 젖은 빨래 감들이 햇빛으로 건조되고 있었다. 하나의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옥상 사람들로부터 내가 방문할 할머니의 집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래가 썩어 삐걱거리는 방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니 말라 비틀어진, 그러나 눈동자만은 풍만한 할머니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나는 도배가 필요하다는 할머니의 방을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 혼자 사는 여자의 방에 들어가게 되어, 약간의 쑥스러움을 느끼며. 그런데도 할머니는 나 같은 사람은 관심 밖인 듯, 나의 질문엔 아랑곳하지 않고 무어라 계속 중얼거리기만 했다. 과연 엉망이었다. 사방이 곰팡이로 인한 얼룩이 푸르다 못해 거무티티한 빛깔로 퍼져있었고, 유일하게 태양의 빛이 스며들 수 있는 창문 하나는, 안쓰럽게도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한 낡은 이불 포가 쑤셔 박혀 있었다.
어느 순간에 할머니가 갑자기 방 구석에 있는 낮고 둥근 상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 위에는 보건소 간호사가 두고 간 약봉지와 마실 물, 먹다 남은 김치찌개와 멸치 볶음이 담긴 작은 접시 하나, 1/4 즘 채워진 밥그릇, 그리고 초록색 유리 병이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내 눈이 마지막으로 머문 그 병을 들어 물잔에 투명한 액체를 따르는 것이다. 소주였다. “난 이거 없으면 정신을 못 차리겠어.” 그녀가 내게 걸어온 첫 마디의 말이었다. 그러더니 펑퍼짐한 바지 속에서 라이터와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 입으로 깊이 빨아들인다. 그리곤 무릎을 굽혀 쪼그리고 앉았다. “이리와 앉어봐.” 나는 다가가 앉았다. “아가, 올해 몇이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까만 벽에 매달린 기증용 거울을 들려다 보았다. 아무대로 아가라고 불리우기엔, 좀 어색하다 싶을 정도의 내 얼굴이 비추어졌다. “아가,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되었누….”
어쩌다라니, 글세….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셨다. “누가 니들더러 벽지 발라 달랬어? 내가 동사무소에서 건너 사는 청년 방이랑 같이 새로 종이 입혀준다는 것도 마다했어. 왜 그런 줄 알아? 난 낼 모레면 죽어! 이 놈의 뇌가 말을 안 듣는단 말여. 병원에서두 못고친댜. 곧 죽을 건데 뭐 하러 벽지를 발러? 시체 누일 방이 괜허게 깨끗하면 주위 사람들만 수근거리지!” 그러고는 나를 마구 밖으로 밀어냈다. 어떤 말로써도 그녀를 달랠 수가 없었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이 광경을 보고 그냥 가라고 했다. 동사무소 직원이 왔을 때도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쫓겨나고 말았다. 나는 이를 해결할 어떤 방법과 수단도 알고 있지를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팀장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을 뿐이었다. 분명 전문성 부족을 이야기 하겠지. 이런.

이런 일이 있었다. 처음에 관한 것은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첫사랑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강조를 할 단어를 문장의 앞머리에 놓는 것도 기억 속에 오래 두기 위함인 것 같다. 이런 즉, 그 시절 그토록 많고 많은 경험을 떠올릴라치면 초원다방 할머니가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이 초원다방 할머니는 내가 사회복지사를 그만 두던 겨울의 어느 날 돌아가셨다. 동사무소에서 장례를 맡았고, 그 옥상 이웃들이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해 들었다. 지금도 생각해본다. 그녀는 그저 나의 순진하고 촌티 나던 사회복지사시절의 고객으로서만 남아 있으려고 나와 만난 것일까, 하고. 그녀가 당시 내게 던진 질문,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냐는 그 짤막한 질문에 나는 여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내게 있어 그녀의 의미란 더욱 짙어져 간다. 내 인생이 정말 어쩌다 그렇고 그렇게 흘러간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사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언제든지 그렇게 물을 수 있을 것 같다.사는 것이 이래서는 안 되는데, 정말이지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참으로 씁쓸하고 비통하다. 그녀와 나의 삶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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