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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스페인에서 만난 사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람이름으로 검색 조회 6,872회 작성일 02-11-03 16:10

본문

안녕하세요. 바람입니다. ^^  다시 돌아왔습니다 . 스페인 여행기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길.. und.. mein Sohn, wie geht es Dir.  Hoffe, es geht Dir blend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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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카에 도착하자 억수로 내리는 소나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호텔로 데려다주는 셔틀버스에 타고 내리는 동안에 맞은 비는 우리를 완전히 물에 빠진 새앙쥐 모습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재밌는 것이 우리 도착하기 전까지 마요카는 항상 날씨가 맑고 좋았다는 것. 헌데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여 버스 타려고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 사흘동안 쉴새없이 계속 되었다는 것.  비가 오는 동안 온도는 겨우 13도 밖에 되지 않았고 해변이나 호텔의 풀은 썰렁하였다. 모처럼 놀러왔는데 날씨가 그러니 섭섭하고 답답하고 그랬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섬의 유명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어찌나 비바람이 센지 사진 한장을 못찍고 말았다.  

사흘이 지나자 하늘이 간절한 내 기도를 들었는지 드디어 비가 뚝 그치고 해가 떴다.
해가 뜨자마자 믿어지지 않게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온도가 당장에 25도로 올라가는 거였다.
해서 여름내내 그리워했던 해변에 드디어 누워볼 수 있었다.
군것질..맥주.. 독서..선텐..수영..  빈둥빈둥 또 사흘을 보냈다.  

그렇게 1주가 지나고나니, 그때서야 호텔주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해변에서 알게 된 어느 독일인이 근처에 아주 멋있는 벼랑을 봤다고 알려주어 그것도 볼겸, 산책도 할겸, 겸사겸사 아침식사를 마치고 홀로 호텔을 나왔다. 엄마는 무릎이 아프셔서 오래 걷지를 못하신다.  

나는 지리를 하나도 몰랐지만, 시간도 많은데 어떻게든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하며 걱정 안했다.  그냥 마을구경하는 마음으로 한가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성당에도 들어가보고,  건물들 구경하고, 일반 가정집의 화단도 담장넘어 훔쳐보고, 이렇게 꾸불꾸불 골목길로 계속 들어갔다.  

중간중간에 마주친 스페인사람들에게 절벽가는 길을 묻고자 시도해 보았으나 번번히 실패하였다.  왜냐면 영어로 "절벽"이란 단어가 무엇이였는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고, 그 단어없이 물이 어쩌고 돌이 어쩌고 설명하니깐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내일 독일인에게 다시 물어봐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헤이!"하며 불렀다. 굵은 남자 목소리였는데, 들려온 쪽으로 바라보니 까페의 Tresen에서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나 나에게 오고 있었다.

그는 영어로 "무엇을 찾는지? 도와줄까" 물었다. 나는 "내가 찾는 것의 단어를 까먹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뭐 꼭 가야하는건 아니고 지금은 그냥 산책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아까 그의 까페 앞을 지나가는 나를 봤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반대방향으로 또 지나가니까 길을 잃었나? 생각했다면서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독일에서 왔는데 태어나기는 한국이라고 하니 금새 그는 유창한 독어로 나에게 (반)말하기 시작했다.

반갑다. 쥬스 한잔 먹고가라. 나는 이 카페의 주인인데 관광객 없는 11월부터 3월말까지는 문을 닫는다.  올해는 손님이 너무 없어 2주를 더 당겨 문닫기로 했다. 여기 앉아서 쉬다가 가. 뭐 마실래?

아닌게 아니라 텅빈 카페내부의 의자들은 이미 겹겹히 쌓여서 구석으로 치워져 있었다.  
나는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Klippen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거 영어로는 Cliff 지. 독어랑 영어랑 너무너무 달라서 생각 안났지? 그가 무안을 주었다.  
훗. 그러네.. 난 할말을 잃었다.

다짜고짜 반말하는 그였지만 호탕함과 악의없어 보이는 인상때문에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반말하여 어차피 피장파장이였으므로.  

그는 얼굴표정이 매우 코믹하였다. 곰보인 얼굴에다가 양쪽 눈동자가 가운데로 약간 쏠렸는데 첨엔 그가 일부러 그러나? 했더니만 그게 아니였다. 그는 그냥 한쪽 눈이 아니라 양쪽이 다 쏠리는 사팔이였을 뿐이다. 그를 바라보자니 그의 두 눈동자가 점점 가운데로 쏠리다가 결국엔 하나로 합쳐지고 미간에 눈 하나만 달랑 남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지금 할일이 좀 남아서 그러는데 30분만 기다려주면 내가 너를 절벽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나도 심심한데 잘됐다, 함께 가자.
-그럼 까페는 어떻게 하고?  
-손님도 없는데 무슨 걱정? 웨이터는 지난 주부터 없고 오늘 어차피 문 닫을거야.  
-그런데 왜 이름이 Cafe de Paris야?  
-난 프랑스 사람이거든.
-정말?  와!! 그럼 영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다 할줄 아는거네?  
-음.. 자랑한다고 그러겠지만 이탤리어, 네덜랜드어도 조금은 해.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지?  

그가 그런 능력을 겸비하게 된데에는 사연이 있는데 참으로 흥미로운 이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별명은 하비(Javi= 스페인식 발음으로는 J가 아니고 h라고 한다)인데 본명은 알지 못한다.  

까페문을 닫은 후, 우리는 함께 절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는 어떤 집의 창문을 두드려 손을 흔들기도 했고,  어린이던 노인이던, 암튼 마주치는 사람마다 "올라 하비! (하비 안녕!)" 웃으며 그에게 인사하거나 장난을 쳤는데 그는 마을사람 모두와 친한 것 같았다.
그들은 동행하는 나에게도 인사했는데 그들의 편안한 표정, 장난기, 미소.. 이런게 독일과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는 걸 느꼈다.  관광객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동양인은 희귀했던지 사람들은 나를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카페에서 절벽까지는 생각보다 꽤 멀었는데 천천히 걸어서 한 5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하비는 41살의 남자인데 프랑스 리용근처의 조그만 마을,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중졸도 안되는 셈인데 친척이 알선해주어 15살부터 호텔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받는 돈이야 용돈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숙식이 제공된다는 것.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하루 세끼니씩, 그것도 실컷 먹을 수가 있는 곳이라니! 그때 너무 행복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에겐 모든 자잘한 일이 맡겨졌다. 손님의 가방을 들어주거나, 공사할 때 인부들의 맥주 사나르고, 야자나무, 잔디관리, 무대장치...암튼 부르기만 하면 달려가서 도와주는 조수 내지 머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호텔은 500개의 콘도형 객실을 갖추고 하나의 작은 village를 이루고 있었는데 규모가 꽤 컸다고 한다.  큰 호텔일수록 관광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게끔 남녀노소를 위한 인터테인멘트를 준비하는데 그가 심부름을 해주던 그 호텔에도 댄스, 연기, 노래, 체조, 그리고 사회볼줄도 아는 만능 엔터테이너들이 있었다 한다.  그들은 아침 프로그램 (성인체조, 스쿠버다이빙강습, 테니스, 축구, 골프 등)에서부터 대낮에 어린이와 다양한 게임, 어른들과는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 초저녁엔 어린이 디스코, 저녁에 뮤지컬 또는 다른 쇼를 스스로 창작/기획했다고 한다.  
  
항상 닥치는 대로, 시키는대로 심부름만하던 그에게 어느 날 색다른 요청이 왔다.  한 사람이 아파서 그러는데 네가 대신 거지로 분장하여 무대에 서 줄 수 없겠느냐. 너는 아무 말 안해도 되고 그냥 내가 시킬때 나왔다가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그는 난생처음으로 관중이 1000명이나 되는 무대에 서게 되었고 그날 밤에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배 부르게 밥먹고 싶어 호텔에 들어왔던 소년은 재능을  인정받아  그날 이후로 자꾸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10년이 지나자 그는 이미 만능 재주꾼이 되어있었다. 모르는 노래가 없고, 못하는 춤, 운동이 없었다. 대하는 상대가 어린이이던, 노인이던 암튼 사람을 대하는데엔 아무 두려움, 거리낌이 없었다.  오전에는 애들과 무용을, 그림을, 조개잡기를 하고, 대낮에는 어른들과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여장을 한다거나, Saturday Night Fever의 죤 트라볼타, Clown이 되어 춤추고 연극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유럽각국의 언어를 죄다 익히게 되었고  하비는 어느덧 호텔 인터테인멘트의 총 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과 같이 인터테이너였던 어느 프랑스 여인을 만나 결혼하여 마요카에 정착, 딸 하나를 두었고 둘은 인터테인멘트-Agency를 열었다. 그런데 몇년 후 결별하게 되었는데  내막은 모르나 그는 자신이 죄를 지었노라고 나에게 말했다. 더 물으려다가 그의 굳어진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암튼 부인은 딸을 데리고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하고,  그는 자신의 수첩과 지갑속에 간직하고 다니는, 열몇장이나 되는 딸 사진을 죄다 내게 보여주었다.
그의 딸은 지금 10살인데 다행히도 아버지의 곰보피부와 눈을 닮지않은 귀여운 아이였다.
      
절벽은 독일인이 알려준대로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자니 아찔하여 엄두가 안났다. 그곳엔 관광객들이 어떻게 용케도 알아냈는지 많이 와있었는데 하비는 겁도 없이 끝까지 가서는 다리하나를 뒤로 쳐들고 묘기를 부렸다. 그걸 보는 관광객들과 내 입에서 으~ !! 신음이 나왔다.  

하비와 나는 절벽위의 바위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벌써 오후 2시가 넘어 있었다.

배 안고프냐? 우리 함께 점심 먹으로 가자. 그가 말했다. 좋은 레스토랑으로 내가 널 초대할께.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마음에 부담이 느껴졌다. 우연히 알게되어 쥬스 한잔 얻어먹은 것은 뭐 그렇다 치고,  또 그도 심심하였다고는 하지만 나를 절벽으로 데려다준 것 물론 고맙고 즐거웠지만... 그런데 이제 밥까지 얻어먹는다니 좀 그랬다. 날 꼬시나? 생각도 했다.  물론 반대로 내가 돈 내고 그에게 감사의 표시로 밥 사주면 문제될 것은 없지만 막상 식사까지 함께 한다고 상상하니 맘이 어색해지고 막연하게 부담되는게 어쩔 수가 없었다.  
절벽을 떠나면서 '어떻게 거절하는게 제일 좋은가' 뾰족한 수를 생각하는 중인데 그가 글쎄 선수를 치는 거였다.  (그는 정말 실력자였다! )

헤이 클라이네! 우리 내기하자. 지금 널 데려가는 곳은 내 친구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이야.
그곳에서 우리 둘이 제일 비싼 음식을 공짜로 얻어먹는 것 뿐만 아니라, 친구가 그것에 대해 감사해하는 상황을 내가 만들고 말겠어. 만약 실패할 경우, 그땐 음식 값을 반반으로 나누자!

-으잉? 그걸 어떻게 하는데?
-나에게 맡겨봐. 너는 이제부터 독어,영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말만 이해하는 사람이기만 하면 되.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 뭐가 어려울 것인가.  내 맘에도 슬슬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렇게 하자! 승락하고 말았다.
  
그의 친구는 참 순박하게 생긴, 인상 좋은 스페인 남자였고 그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은 한 60명 정도의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규모였다.  
하비와 친구는 스페인어로 서로 어깨를 치면서 인사했고, 나에게는 헬로,하와유. 훼어두유 컴프롬? 했다.  나는 헬로, 고개로 인사한 뒤 입을 다물었다. 헬로 밖에 이해 못했다는 표시로.  

친구는 호기심의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누구인지? 하비에게 묻고 있었고, 하비는 내가 이해못하는 스페인어로 뭐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돌아서서 (친구를 가르키며)
"우이ㅍ에이싱샹ㄴ차이방샹ㄷ피ㄵ 로우~ " 라고 말(?)하는거였다.  
헉!!   이게 뭐지?  나는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러나 재빨리 상황파악을 해야 했다. 맘속으로는 현기증나게 당황스러웠으나 그 표정이 드러나지않게 간신히 관리(?)하면서  "아.. 그렇군요. 좋은데네요?" 한국말로 대답했다.

- 헤와시야ㅊ간남나레ㄷ,니ㅏ나러채나이?
- 예, 맞아요. 저는 배 고파요. 날씨도 좋고.. 생선도 요리하나요?
- 피리기라므앙정닐린;ㅇ허?
- 친구분 인상이 참 좋으네요.. 바다는 푸르고 배도 많고..

이렇게 우리는 말도 안되는 엽기적인 대화를 이어갔고, 긴가민가 하는 눈초리로 우리 둘을 바라보던 그의 친구의 입이 급기야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꼼짝않고 우리 테이블 앞에 서있었다.  

하비가 그에게 뭐라고 했는데 아마 이런 내용인거 같았다 "너, 그렇게 서서 나 연애하는거 계속 지켜볼테야?, 방해하지말고 빨리 가서 커피나 가져와! "  
그의 친구는 하비에게 뭐라고 했는데  "이야! 대단하다! 너 언제 한국말을 다 배웠냐"는 감탄사였던 것 같고 얼어붙은 듯이 꼼짝을 안했다.  
하비가 또 한번 재촉을 하자 그때서야 멍한 표정으로 커피를 가지러 갔다. 친구가 사라지자 하비는 나를 한국 단체여행객들을 끌고 온 가이드이며 자기가 나에게 지금 좋은 곳을 보여주는 중이라고 친구에게 소개했다고 알렸다.

친구가 커피를 내려놓자, 하비는 레스토랑내부의 이것저것을 가르키며 나에게
" 와이슈요ㄴ구헤ㅠㅗ이치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친구는 "아.. 저거? 저거는 200년이나 된 그림이라고 말해줘",  또는 "내년이면 새로이 단장할거고 테이블도 새로 들어온다'는 둥, 하비에게 열심히 맞장구, 보충설명을 하느라 바빴다. 친구의 아까 멍했던 표정은 이제 호기심과 겸손함(?),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하비는 친구가 말한걸 죄다 나에게 통역(?)해 주었다.  (아,  이 능청스러움이라니!!! 나는 정말 돌아가실뻔 했다.)  낸들 그 친구의 스페인어나 하비의 한국말이나 어찌 알아듣겠는가. 그렇지만 그냥 다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기도, 감탄하기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아하! 그러네요" 컴멘트해주기도 했다.

자석처럼 우리 테이블에 딱 붙어서 넋을 잃은 친구는 "다른 손님왔으니 가보라"고 하비가 알려주면 그때서야 겨우 마지못해 우리 테이블을 떠났다.  친구가 사라지면 하비는 방금 친구가 한 말을 살짝 나에게 귀뜸해주었다.
하비친구는 다른 손님을 후딱 서빙하자마자 부랴부랴 다시 우리 테이블로 돌아왔다. 나에게 메뉴카드를 보여주며 하비에게는 뭘 설명해달라 부탁하였는데, 하비는 메뉴에 대한 설명을 참으로 느긋하고  성실하게 "한국어"로 번역해주었다. ^^;;  나에게 자꾸 제일 비싼걸 가르키는 걸 보니 그걸 먹으란 소리 같아서 그냥 "그래, 그걸로 먹지 머" 동의했다.

친구가 주방으로 가자, 하비가 말했다.
"너의 한국 관광객들이 이 레스토랑을 단체로 찾아주면 특별 디스카운트해주겠대 "  

우리는 맛나게 먹었고, 하비의 친구는 스페인산 귀한 술까지 내놓았다.
식사 후 레스토랑을 떠나는데 그는 하비에게 어깨를 치며 잘가라고 인사했고
내가 "안녕히 계세요, 맛있게 먹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꾸벅 고개숙여 인사드리자
그는 엉거주춤 합장하듯이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거였다.
  
우리는 태연하게, 서로 한국말(?)을 주고 받으며 레스토랑을 나왔다.  
옆 골목으로 들어가 드디어 친구의 시야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오른손 바닥을 힘차게 철썩! 마주치고선 배를 잡고 웃었다.
클라이네, 너 봤지, 그놈 두손 모으고 고개 숙이는거? 하비는 너무 웃느라 벽에다가 머리를 쳐박기까지 했다.  

-정말 감탄했어!  내가 졌다.
-너도 대단하더라. 가르키면 빨리 배우겠어!  
-그런데 말야, 괜히 착한 사람 속여서 공짜로 얻어먹고 이거 어떻하지? 그는 한국관광객이 오는줄 알고 기다릴거아냐. 그거 너무 미안하잖아. 나중에 한국사람 욕할 수도 있고..
-지금 그들은 팔마에 있다고 말했어 (팔마까지는 차로 30분 걸리는 거리).  그가 관광객 어딨냐고 물으면 "한국인 작은거 알지? 그들은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우기지 뭐.  아니면 너 말야. 내년에 엄마랑 또 와라. 그럼 "오는 도중에 다들 객사하고 너하고 엄마만 살아 남았다"고 친구에게 말해줄테니.

그는 나를 호텔정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늘 너랑 즐거웠어. 고마와
-무슨, 내가 고맙지. 시간 내줘서 덕분에 구경 못 할 번했던 절벽도 찾았고.. 너무 즐거웠어.

그리고 더 이상 뭐라고 해야 할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는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고 언제 떠나느냐 물었다. 사흘 후라고 하자,  아..그렇구나. 뭐 또 볼 수도 있겠지, 그럼 안녕.. 들어가봐 이제.  
이렇게 간단히 헤어졌다.  

그리고 나서 사흘이 지났는데 그동안 서로 다시 보지 못했다.
나는 때때로 장난치던 순간들이 떠올랐는데 하나하나 선명하게 죄다 기억되었다.  
하비와 하비친구의 표정, 제스쳐, 웃음소리...
그리고 하비와 나.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함께 해낸 작품!
선텐을 하면서 갑자기 빙그레 웃는 딸을 엄마는 이상하게 쳐다보셨다.

출발날짜가 이틀 밖에 안남았는데 맘이 좀 그랬다. 그냥 안보고 떠나자니 서운했다.  
그에게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막상 그러자니 멋적었고, 또 그의 카페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였다.
그리고 찾아가면 그가 나를 어떻게 볼까, 오해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헤어질 때 그는 나에게 다시 보자는 어떠한 구체적인 제안하나 하지 않았었고, 그 뿐만 아니라 내 이름을 물은 적도 없었다. 항상 클라이네라고만 했다.
뭐, 이름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나는 그의 별명이라도 알지 않은가...

또 하루가 가고.. 이제 하루가 더 가면 떠나는 날이 올 참이였다. 그때서야 나는 마음을 정하게 되었는데  " 그래, 작별인사를 하고 가자. 안하고 떠나면 후회할 것 같고, 뭐 어렵게 생각하느냐.  그는 잊혀지지 않을 좋은 추억을 선사한 멋진 사람이였잖아.."  
관광객인 나를 위해 신경 써주고 시간 내준 것 뿐만 아니라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선사해준 것...그건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였다.  

나는 오후의 뜨거운 태양아래 호텔을 나왔다.
기억을 더듬어 그를 찾아갔는데 오른쪽, 왼쪽으로, 꾸불꾸불.. 그의 카페는 의외로 쉽게 찾아졌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문이 꼭 닫혀 있었다. 하물며 안으로 들여다 볼 수도 없게끔 밖에 두터운 나무 문으로 죄다 막아져 있었다.
할 수 없이 터덜터덜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무지 허전하고 서운했다.

"안녕 하비.. 고마웠어. 재밌었던 시간 나는 잊지 못할거야. 항상 건강해야 해.
그리고 가족과도 다시 화해하여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다음 날 오후 3시. 공항으로 떠나는 셔틀버스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나는 바삐 체크아웃하고서는 짐을 들어 버스에 실으려는 참인데 갑자기 어떤 손이 내 가방을 낚아챘다.  하비였다!!!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나는 꺄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그는 장식용 스트로우 (칵테일에 쓰는, 위에 꽃이 장식된 빨대)를 꽃다발처럼 잔뜩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걸 나에게 전해주며 왼쪽, 오른쪽 뺨에 한번씩 키스를 해주었다.  
호텔 카운터에 전화하여 “저번에 내 카페에 놀러 온 손님이 잊어버리고 간 물건 돌려주려 한다"고 말하여 우리의 떠나는 시간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버스에 이미 올라가 앉아있던 엄마가 우리를 유심히 관찰하고 계셨다.
나는 그에게 '어제 찾아갔었는데 없었다, 잘 지내야 해, 재밌었다, 감사했다 등 두서없는 작별인사를 했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물었다.

-내 이름 알려줄까?
-이미 알고있어.
-정말? 카운터에서 이름까지 알려줬나 부지? 뭔데?
-네 이름은... 네 이름은... "벼랑을 무서워하는 순한 양" 이야. 맞지?

서로 손을 흔들고 버스는 출발했다.

나중에 엄마가 조용히 물으셨다.  아까 그 사람은 누구였냐고.  
".... 친구였어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흰돌
2002-10-26 06:58:17  
방금 여행에서 돌아와 이 글을 읽었는데, 저는 지난 일주일 동안 Bodensee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거나 잔뜩 찌푸린 날씨만 보고 왔습니다. 제 형편(?)에 그런 만남은 기대도 안하지만 날씨라도 좋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원래 비를 좋아 하는 사람인데 이번 비는 정말 지겹더군요. 바람님의 만남과 추억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글은 아래 '[칼럼]마음으로 만난 사람'으로 옮겨야 될줄 사료됩니다.
자유로니
2002-10-26 07:44:24  
자꾸만 미소짓게 하는 글입니다^^
레닌그라드
2002-10-26 11:36:13  
아름다운 글......
교포신문
2002-10-26 14:02:36  
바람님 !
마음을 즐겁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 글을 저희 교포신문에도 게재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런지요.
아울러 저희 교포신문에도 에세이, 여행기 등 좋은 글들을 기고해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저희 교포신문은 오는 11월 15일에 창간 7주년을 맞이하는 지령 328호(10.25 현재)의 주간
한글신문으로 독일에서 발행되고 있습니다. (구독자 4000여명. 구독료 1년 70유로)
교포신문 편집인 황성봉 드림
연락처 : hwang@kyoposhinmun.de
바람의아들
2002-10-26 17:41:08  
Mama, es freut mich, dass du im Urlaub einen guten Mann getroffen hast. Aber... Lügner-Typ ist gefährlich... ^^
citadel 2002-10-26 17:59:56    
편안하네요. 기분 좋아지는 토요일 오전입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디만든 부엉이 2002-10-27 00:53:11    
저도 내일 스페인으로 갑니다...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요... 오래는 아니고... 약 9일정도 있다가 올겁니다... 말라가로 일단가서... 주변을 돌아보고 오려구요... 전 남자인데다가 집사람이랑 같이 가게 되어서 바람님같은 경험을 하긴 어려울 것 같지만... 그냥 이것저것 보며 많이 배우고 오려구요...
바람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한편의 수필이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혹시 작가신가요? ㅡ,.ㅡ
바람
2002-10-27 01:49:09  
황성봉님, 감사합니다. 제가 연락 따로 드리겠습니다.
부엉이님, 저는 작가가 아니고 그냥 글쓰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랍니다. 저의 아버님께서 문학적이시고 그 쪽에 관심이 많으셨다는데 이거 혹시 유전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제 글이 한편의 수필, 소설같이 느껴지신다니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헌데 저의 " 아직 길지는 않은" 인생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평범한 일상생활속에서야말로 유명한 소설 주인공 뺨치는 사람들은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나올 것만 같은 Helden 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Normalitaet라는 범주내에서 행해지는 폭력, 잔인성같은 것도 정확히 보면 "보통 소설은 저리가라" 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이느냐의 크나큰 차이가 아닐런지요...?
아참, 즐거운 여행되시길 빕니다. 저는 그쪽은 아직 가보질 못했지만 좋다고 들었어요. 날씨는 오늘같은 경우, 23 도 라더군요. Viel Spass !!!
바람
2002-10-27 01:56:35  
Sohn, Du hast vollkommen Recht! Er ist ein sehr wendiger, lustiger, nicht-ungefaehrlicher, sympathischer --> Gaun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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