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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아이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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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을이름으로 검색 조회 4,870회 작성일 02-10-28 06:15

본문

저녁에 세안하고 난 후에 얼굴에 소위 기초화장품이라는 걸 발라야합니다. 그렇지 않음 피부가 당기고 가렵기 까지 하거든요. 아시는 분들은 "아, 그거 악건성타입이라 그래요."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암튼 씻고 난 다음 수건을 새로 꺼내 잘 말린 새수건의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빠득빠득 닦고 난 다음 거울 앞에 앉습니다. 내겐 좀 괴로운 시간입니다. 전기불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모습을 눈돌리지 말고 바라봐야 하는 일은 거의 언제나 똑같은 생각으로 마음을 침잠시키기 때문입니다.
나는 30의 한 중간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10대에는 빨리빨리 시간이 가서 빨리빨리 늙어서 빨리빨리 죽어버렸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20대에는, 지금의 나이가 되면 (인생으로부터서) 참 많은 걸 배웠을테고, 그러면 더 너그러워지고 더 깊어지고 더 현명해질테고, 하여 두려운건 아무것도 없으리라 스스로에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설령100살까지 산다하더라도 절대로 내가 내게서 기대하는 내 모습은 찾을 수 없을거라는 걸 확신합니다. 거울을 볼때마다 느낍니다. 난 조금씩 조금씩 사위어 가고 있고, 얼굴에 잔주름이 하나씩 하나씩 생겨나고 있고 생기는 조금씩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고 무엇보다도 죽음에게로 더 많이 다가서고 있습니다. 기실 그런 표면적인 건 한 번 싸악 웃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집니다만 난 내 늙어 가는 얼굴 뒤에 숨어 있는 내 정신을 봅니다. 나는 내가 별 해놓은 것도 없이 여기까지 흘러왔다는 것이 영 마뜩찮습니다. 그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여전히 "유치원생" 이라고 날 부릅니다. 얼굴을 구기면 "으, 화났어? 난 기분 좋으라고 한 소린데..." 라고 발을 뺍니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얼굴이 가렵기 시작해 스킨과 로숀과 영양크림을 사사삭 해치우듯이 바릅니다.
거의 매일 되풀이 되는 작은 행사(?)에 어느 날 딸이 묻습니다.
"엄마, 왜 매일 화장해요?"
"이건 화장이 아니야. 화장은 분칠하고 입술 붉게 칠하고 눈썹도 그리고 눈주위에 색깔도 입히는거야. 엄마는 지금 '기초화장품'을 바르고 있는 거야..."
"그럼 그걸 왜 발라요? 예뻐질려고?"
"예뻐지는 건 바라지도 않아. 더 주름살 생기고 더 늙어 가는 걸 조금이라도 막아 보려고 하는 거야..."
딸은 마음이 참 곱습니다. 제 어미를 닮지 않은 탓입니다. 그 아이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말합니다.
"엄마. 엄마는 지금도 참 예뻐요. 그리고 늙지도 않았어요.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흐흐흐, 고맙다만 이제 그런 말은 위로가 안된단다. "
".....아냐. 엄마보다 더 늙고 못생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또 '허벅지' 만 탱탱하고 얼굴만 탱탱하면 뭐해요?  이쌍하게(이상하게) 하고 다니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상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딸은 좀 흥분해서 소리를 높입니다. 그 애가 뭐라고 말하든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압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해집니다. 나는 아이에게 웃어 보이고 응, 그래. 고마워. 라고 대답하고 일어서서 거울 속의 내 모습에 등을 돌립니다. 딸아이는 새삼스럽게 다가와 내 허리를 꼬옥 껴안아주고, 말없이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7 살박이 아들도 괜히 다가와 함께 나와 제 누나를 안으며 말합니다.
"나도 세상에서 엄마가 젤 예뻐. 다른 엄마들은 하나도 안예뻐. 난 이 담에 엄마가 왕할머니(나의 할머니)처럼 늙으면 엄마를 업고 다닐거야. 내 색시가 싫어하면 색시를 당장 쫓아 버릴거야."
나중에 아이들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말들이 아이들에게 진심이라는 걸 압니다. 나는 내가 우습기도 하고 아이들이 우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런 것에 기뻐한다는 게 어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엄마를 위로하려는 아이들이 너무 고마워서 크게 웃으며 아이들을 마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투덜거리면 내 속의 착한 나는 말합니다.
"무슨 걱정이냐. 너의 그는 성실하고 정직하며 네가 여태 사랑할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냐(물론 좀 구식이고 퉁명스럽기는 하지만). 게다가 아이들은 착하고 건강하지 않느냐. 너는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다고 불평하고 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상심하지만 넌 이미 조금씩 해가고 있지 않느냐? 너의 아이들에게 지금 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존재 자체' 지 않냐?  게다가 이 세상에 예수가 아닌 다음에야  30에  인생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혹 여전히 넌 네 자신에 대해 겸손을 위장한 자기애에 사로잡힌 건 아니냐? 넌 행복의 축에 속해 있는 사람이야. 그걸 부정하면 넌 불행의 축에 끼게 되고 긍정하면 행복에 속하는 사람이 되는 걸 모른단 말이냐?...."
아들은 그를 기다리며 TV보는 나를 문 빼꼼히 열고 살피더니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한 모양, 머뭇거리며 다가와 묻습니다.
"엄마, 아빠 기다리시느라 힘드시지요? 제가 노래하나 불러드릴게요. 유치원에서 배운 건데요. 영어말, 중국말, 한국말, 일본말이 다 들어 있어요. 독일말은 근데 없어요. 뭐냐면요...(서론이 길기도 하지..) '나는 행복하다' 라는 노랜데요. 음... 지금은 잘 생각이 안나요.... 음, 뭐였더라.... 아, 나는 행복해, 나는 행복해, 나는 행복해, 정말 행복해, 아임 쏘 해피, 아임 쏘 해피....(그리고 또 일어와 중국어로 뭐라고 뭐라고 혀 짧은 소리로).."
"음, 그래 알았어, 엄마도 '정말 행복해'야"
"엄마, 사랑해요."
"음, 그래 알어. 엄마도 너 사랑해."
브레히트의 시에, 예전에는 두려울게  없었지만 지금은 내리는 빗방울 하나도 무섭다고. 왜냐면 그 방울에 내가 깨져부서질까봐...라는 게 있었습니다. 오래 전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두려움을 이제는 잘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내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 달라진게 뭐냐고 묻는 다면 나는 "목숨의 이유가 변했습니다" 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전에는 나는 온전히 내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디서든 언제든 어디로든 심지어 죽음에게로까지 내가 맘만 먹으면 떠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공허했었는지를 나는 기억합니다. 나는 지금 전적으로 충일되어 있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서적인 궁핍함은 예전보다 덜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나를 속박하지만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나는 아이들때문이라도 더 건강해야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하고 더 많이 행복해야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키우느라 은혜를 베풀지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주는 은혜 또한 많습니다. 가슴이 뻐근하도록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 비록 그들이 훗날  날 배신(?)한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지금의 이 행복과 충만감과 사랑을 즐길것입니다.....





  
자유로니
2002-10-21 09:37:38  
한 무신론자의 단상 혹은 푸념...
죽음이 슬픈건 그것이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생물학적 소멸로서의 죽음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지만, 언젠가 누구나 예외없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야하고 또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목숨이 붙어 사는 모든 존재들의 그 위로할 바없는 숙명적인 비극성에 가슴이 아립니다. 생명있는, 몸받아 태어난 자들의 숙명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우리는 모두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장대못을 박게 되는 그런 잔인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남아있는 시간동안 우리 36.5도의 연약한 영혼들끼리 서로를 의지하여 한번더 사랑하고 한번더 그 유한한 온기를 부비고 나눕시다. 주변의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한번 더 사랑하고 베풉시다.
가을
2002-10-21 18:28:48  
자유로니님도 '가을' 을 맞이 하셨군요. (아님 예전부터 가을 이셨나^^) 저 밑에서도 한 낯선 할머님의 죽음으로 말씀을 잊으시더니.
'죽음' 에 대해서 말인데, 저는 유신론자인데도 가짜신자라서 그런지 부활도 영생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 걸 믿을 수만 있다면 죽음이 좀덜 두려울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안믿기는 걸 어쩌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저는 아이들이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할때까지는(시집장가갈때까지) 기어이 이 곳에 살아 있고 싶습니다. 앞에 이미 이야기 했듯이, 전 그러지 못할까봐 아이들때문에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Gloomy Sunday"같은 노래를 들어도 조금도 맘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
자유로니님의 철학적 댓글에 너무 땅냄새나는 댓글을 쓰고 있군요.

가혹한 진실 하나--
아이들이 다니는 미술학원의 노처녀선생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래 그 선생님 예쁘니? 삼촌 소개시켜주게, 라고 하자 아들이 아니 안예뻐,라고 대답했습니다. 아, 당연히 엄마보다야 안예쁘겠지만 그래도...라고 장난기를 담지 않고 내가 말했더니 딸이 갑자기 으윽--- 하고 고개를 꺾었습니다. 야, 넌 엄마가 세상에서 젤 예쁘다 해놓구선 뭐야, 네 반응은? 거짓말이었어? 그러자 딸은 엄마는 참, 내가 예쁘다고 하는거하고 스스로 예쁘다고 하는 거하고 같아요? 엄마는 지금 잘난체 하고 계시잖아요. 사람이 겸손해야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저는 조금도 예쁘지 않습니다.
추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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