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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독일에 대한 기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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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을이름으로 검색 조회 4,923회 작성일 02-08-27 09:14

본문

독일에서 살기 시작한지 10 여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길잃은 유치원생 같은 마음이었던 겨울.

예외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기숙사는 비어 가고 좁고 어두운 그 복도 마냥 가슴 한 구석이 점점 어둠으로 물들어 가던 중, 청바지에 파카 차림으로 작은 음악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음악을 간절히 듣고 싶달지, 마음에 촛불을 켜보고 싶달지 하는 바램 따윈 없었다. 아는 사람이 오늘 자기가 노래하게 되니 와달라고 부탁해서 버스타고 전철 갈아타고 간것 뿐이었다.
사람들로 꽉찬 교회에는 생각과는 달리 한국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내 양 옆에는 인상 좋게 생긴 초로의 할머니들이 앉았고, 앞줄은 또 그 만큼 나이 먹은 부부들이 앉았나 보다.
1부가 끝난 휴식 시간. 옆에 앉은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독일말 할 줄 아느냐, 어디서 왔느냐, 지금은 뭐하느냐, 나이는 몇이냐, 어디 쯤에 사느냐.....
두 사람의 대화에 호기심을 느낀 심심한 노인들은 자꾸 우리를 흘낏거린다. 신기한 뭔가를 보는 그 표정에 난 이미 익숙해 졌던 터였다.
그 할머니가 또 묻는다. 크리스마스 때 당신은 객지에서 무얼 할 생각이냐고. 난 아무 계획이 없고, 그래서 크리스마스도 다른 날과 똑같이 보내게 될거라고 대답한다. 그녀는 놀람 반, 측은함 반으로 날 바라 본다. 그 맘 좋아 보이는 할머니는 크리스마스정신을 실천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나, 가엾어라. 크리스마슨데도 부모도 형제도 없이 기숙사 방에서 혼자 보내다니. 그럼 혹 당신이 괜찮다면 우리집에 놀러 오면 어떨까요? 그 날 아이들도 다 올텐데 당신을 소개해 주면 즐거워 할거에요."
난 겸손하게 거절한다.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훔쳐듣던 옆이나 앞의 노인들이 참견하면서 거든다. 네가 독일을 배울 좋은 기회지 않느냐. 크리스마스 때는 상가도 다 문 닫고 거리는 빌텐데 혼자서 뭘하느냐... 뭐 그런거다. 할머니는 생각이 바뀌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어주면서 내 전화번호와 기숙사 주소를 묻는다. 난 호의에 감사하다며 내 주소를 적어 준다.

물론 갈 생각은 없었다. 복도 만큼 어둔 마음이 얼마나 더 어두워지나 보고 싶었다. 그 끝에 이르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지도 재보고 싶었다. 그러기에 크리스마스는 유용한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 하루 전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난 E.Wattler라고 합니다. 당신은 절 기억 못하겠지만 난 당신을 알아요. 우린 교회 콘서트에서 당신의 바로 앞에 앉았던 부부에요.
아무개 부인이 그 때 당신을 초대했었죠? 근데 그 부인이 아이들과 스위스로 갑자기 크리스마스여행을 갔답니다. 그녀는 바로 내 앞 집에 사는데, 당신이 많이 걱정되었나 봐요. 혹 마음이 바뀌어 연락했는데 자기가 없으면 상심할가 봐서요. 그래서 그 부인의 부탁으로 전화하는 건데, 괜찮다면 내가 낼 당신을 데리러 갈테니 우리랑 함께 저녁식사 하지 않을래요? 그래주면 그녀도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
그걸 전화로 금새 다 알아 먹었냐고? 물론 아니다. 그 분은 혹 내가 못 알아 먹을 까봐, 아주 천천히 쉽게말할려고 무지 노력하는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난 그 봐틀러 씨 댁으로 가게 되었다. 꽃을 사들고서. 기이한 듯한 인연과 두 여인의 측은지심에 감동한채로...

60대 후반인 봐틀러씨는 변호사였고 (전화했던) 부인은 퇴직한 교사였다. 샤로테라는 돌이 막 지난 손녀와 회사에 다닌다는 큰 아들 내외와 역시 변호사라는 아들 하나가 와있었다. 난 그 날 밤 늦게까지 나완 영 상관 없이 여겨졌던 독일의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겼다. 그들은 내게 무척 따뜻했는데 난 아마 퍽 행복했던 것 같다...
그 이후 그녀는 흰색 벤츠를 몰고 기숙사로 종종 찾아왔고, 난 봐틀러씨가 치는 피아노에 박수를 치기도 했었고, 알디에서 산 낯선 과일의 용도를 몰라 전화하면 그녀는 그걸로 이상한 샐러드를 해서 요건 이렇게 먹는 거라고 알려 주기도 했다. 나무가 울창한 뒷 정원에 앉아서 다람쥐가 참나무를 오르락거리는 걸 보며 다람쥐가 독일어로 어떻게 불리는지 알려주고 한국말로는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 했다.
다른 도시로 떠난 후 그녀는 계속 장문의 편지를 써 남편이 아파서 마음이 몹시 아프다고 했고, 회복되어서 파리로 놀러 갈거라고도 했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너랑 함께 보던 다람쥐가 참나무를 오르락거리는 걸 보고 네가 그리웠다고 쓰기도 했다.

내 그 곳에 대한 기억들 중의 하나는 언제나 그 따뜻한 그녀와 그녀 가족들로 연결된다.

천국에서도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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