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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아직도 무덤같이 않은 결혼, 그럴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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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벗다방이름으로 검색 조회 4,361회 작성일 03-07-08 00:45

본문

오늘은 우리가 정식으로 결혼한 지 4주년 되는 날이다.
텐트를 치고, 그 속에서 혼자 화장하고, 평복 차림으로, 축의금도 없고, 꽃다발 하나 없고, 단 한명의 아는 하객도 없이, 덴마크 시청에서 그곳에서 주선해주는 낯선 증언 두명 데려다 놓고,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덴마크어와 겨우 알아듣기 시작한 독일어의 혼인 선언서에, 야(ja)!!! 라고 답변하며, 그렇게 결혼을 했다.

시청 바깥에 나오니 우리처럼 방금 결혼한 사람이 있어 꽃다발을 빌려다가 결혼 사진을 찍었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날 저녁 텐트를 다시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길거리에서 만나 다시 길로 떠나는 팔자라니…

우린 함께 2년을 넘게 산 후, 결혼을 했다.
평생을 함께 살아도 될 사람인지, 수백 번 더 확인한 후 결혼을 했다. 어릴 적부터 결혼이라는 자체에 워낙 회의적이기도 했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이라는 자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당시의 나로선 참 어려웠다.

‘인간에 대한 믿음, 사랑에 대한 믿음,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런 것을 한번 크게 잃고 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제 겨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데...(난 이제 겨우 사춘기를 넘었다.서른도 훌쩍 넘어서..)

남편을 만나 함께 살아가는 시간들은 그런 내 오랜 믿음들로 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이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남편과 나는 6살 차이가 난다. (정신 연령은 세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난 남편과 함께 살면서 아직도 많은 것을 배운다. 내겐 삶의 스승 같은 존재다. 큰 사람, 남편은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다. (하하, 키도 22cm나 더 크다.)

나는 큰 사람과 살아야 한다. 키말고 마음이 큰 사람, 난 쓰잘 데 없는 기가 세서, 웬만하면 불화만 일으킨다. 누구보다 내 자신이 그걸 잘 안다. 넘들은 잘 모르지만 알고보면 성질도 정말 드럽다. 감정의 기복도 넘들보다 서너배는 큰 것 같다. 전형적인 바닷가 기질을 가진 것도 같다. (바닷가 기질이 뭔지는 알려면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읽어보면 안다.)

난 한번도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 사랑에 빠졌을 때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하얀 드레스가 소복같다는 청승맞은 생각이 들 뿐이었다. 결혼은 무덤이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 j와 함께 살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결혼에 대한 지독한 불신과 회의, 그러나 이런 절대적인 믿음은 서서히 깨어져가고 있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자를 믿지 않았고, 남편은 여자를 믿지 않고 있었다. 아니 우린 인간의 마음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서로를 많이 재었다. 확인을 하고 또 확인을 했었다. 직감적으로 믿는 것들이 분명 있었지만 그 직감조차 의심을 했다. 그 의심의 강도는 내쪽에서 훨씬 컸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가난한 마음이다.)

그래서 난 함께 살면서도 결혼하자고 하지 않았다. 대신 언제든지 보따리를 싸들고 여차하면 튈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런데 남편은 여차할 기미를 내게 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참 잘해주는 것이었다. 이국땅에서 외로울까봐 모든 면에서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었다. 섬세한 성격의 남편은 지금도 나를 자주 감동스럽게 만든다.

남편은 한국 사회에서 보면, 아니 독일 사회에서도 참 외골수다. 매주 꼬박꼬박 전화하는 엄마와 나 이외에는 어떤 인간 관계도 없다. 도대체 인간 관계를 필요치 않아한다. 사람 좋아하는 내가 이런 남자와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6년이라는 시간 끝에, 독일이라는 특수한 환경이었기에 가능했다. 내게도 남편 이외에 어떤 인간 관계도 없었기에…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도 좋을 만큼, 남편은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내게 쏟아붓는다. 아직도, 여전히…난 아직도라는 말을 쓴다.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세상사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우린 단지 서로가 갖고 있는 믿음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으면 함께 살 수 없는, 그렇게 콩알 세쪽 같은 마음을 지닌  인간들이기에 지키려고 한다. 지키고 싶다. 함께 사는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꼭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쉽지 않은 인연이었기에, 인연이라는 말 이외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연이었기에,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언제나 둘밖에 없는, 기댈 곳이 둘밖에 없어서, 하루하루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였으면, 외골수인 남편 성격상, 외부에서 오는 갈등으로 고단했을 게 분명하다. 부부 간의 갈등이란 것이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문제로 야기되는 것이 보통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는 난 복 받은 거다. 갈등을 가져다 줄 주변 사람이 이곳에선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없다는 것이 그래서 때로는 아주 좋은 거다.

오래오래 가난한 마음으로 살았던 날들, 그 마음을 잊게 만든 사람은 한때 자식처럼 정을 줬던 xx집의 아이들, 그리고 지금의 내 남편이다.

난 참 괜찮은 남자를 만나 산다. 가끔은 남편 자랑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참 조심스럽다. 변화무쌍한 인생사를 겪으며, 평화로운 마음을 드러내놓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그 땅의 내 주변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기대하지 않았던, 오랜만에 찾아든 ‘평화로운 생활’이 낯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제 겨우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다. …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지는 것, 다가오는 행복조차 행여 불행이 앞서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지는 것, 그런 게 아닐까?

고백컨데, 독일에 와서 살던 한 2년, 항상 남편이 곁에 있었지만 무지 외롭고, 산다는 자체가, 살아간다는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을 몹시 괴롭혔다. (느닷없이 우울증이 도져오면 지금도 가끔 괴롭힌다. 그래도 끄떡없는…)

친하게 지냈던 친구 녀석이 그런다. 왜 그때 마음을 나누지 않았느냐고? 우리 사이가 그것밖에 안되었냐고? 하하, 그런 거 아직도 잘 안된다. 힘든 시간이 조금 지나야 그때서야 이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다. 힘들었다고…그래도 지금 난 정말 양반된 거다. 투정이 늘어난 것을 보면, 이렇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곳에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을 보면, 그 옛날 대학 시절엔 누가 내 마음을 훔쳐볼까 몹시도 두려웠었는데…

이젠 내가 거슬를 것이 적어진 탓일까? 아니면 글로 수다를 떠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것일까? 어쩌면 생각할 시간이 많은 백수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결혼 기념일이다.라고 시작하여 몇 줄만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주절주절대는 것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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