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규칼럼 아빠의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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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독50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3,678회 작성일 13-03-09 20:35본문
김제에서는 나 혼자였는데 부안 집에는 누나 둘에 형, 그리고 동생이 있었다. 또한 사촌, 육촌 친척들이 한동네 가득해서 갓 쓰시고 긴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무서운 할아버지들과, 고모, 삼촌, 형들, 동생들, 누나들이 무지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마을 사람들의 다수가 최가 집안이었던 거 같다.
너희 할아버지는 키가 크시고 힘이 센 분이셨다. 그래서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셨다. 머슴살이 와 통고지(논농사를 한해 맡아서 지어주고 쌀로 받은 일)하면서 우리 논농사도 하셨으니 밤낮 없이 일하셨다. 그래도 일터에서 우스갯소리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 했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새벽에 여느 때처럼 찰밥 덩이를 들고서 우리를 깨우고는 찰밥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잘 살아야 헌다. 애비 말 알아들었어?" "잘 살아야 헌다.""잘 살아야 헌다."
우리는 찰밥을 먹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 찰밥은 할아버지가 밤에 물자 세( 물수레라고도 함-편집자)로 물을 퍼 올리는 일을 하면 밤참으로 나오는 것인데, 밤일하실 때마다 찰밥을 들고 새벽에 아들들을 찾아오셨으니 별생각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가 오는데 동네 앞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이 나를 부르더니, "꺼먹둥아! 얼른 집으로 가거라. 니 애비가 죽는다."고 말했다.
나는 "웃기지 말아요. 새벽에 찰밥 들고 왔었는디, 거짓말도 하려거든 제대로 해요."라고 대꾸는 했으나, 멱(헤엄치러) 감으러 가자던 동무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는데 울음소리가 났다. 얼른 달려가 보니 너희 할아버지께서 방에 누워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우리 집은 더 가난으로 깊이 빠졌다. 우선 중학교 다니던 형도 그만둬야 했고, 국민학교 다니던 나도 그만둬야 했다. 그때는 국민(초등)학교도 기성회비인지, 사친회비인지를 내야 하는데 낼 수 없었기도 했지만, 학교라고 가면 난 매일 기합(벌)을 받아야 했다. 복도에 무릎 꿇고 손들고 있기, 공부하는 교실 앞에서 손들고 서 있기, 가끔은 걸상을 들고 서 있기도 해야 하는데 힘도 들지만, 가난해서 회비 못 냈다고 벌을 받는 게 더 싫었다. 물론 온갖 청소와 학교 밭농사를 짓는 벌은 내가 신나하며 잘할 수 있었다.
아빠 목소리가 큰데 아마도 그때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런 거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누나는 '부엌데기'로 가고, 형은 농사를 짓고, 나와 동생은 쌍둥이 여동생과 막내둥이를 돌보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우리는 한 사람은 막내둥이를 업고, 또 한 사람은 쌍둥이 중 하나는 업고, 하나는 걸려서 네 할머니가 일하는 들녘으로 밥 얻어먹으려 다녔다.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이삭줍기했다. 감자, 보리, 고구마, 벼 등등 먹을거리 줍기를 열심히 했다. 먹을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메뚜기, 개구리, 물고기 등을 잡기 위한 온갖 방법을 연구하여 그것들을 잡아 날랐다. 그때는 저수지가 근처에 있어서 정말 물고기가 많았다.
지난 2001년 네 할머니 제사 때 가서 너희도 잡은 적이 있었지.
논에서 김을 매다가도 잡고, 물가에서 헤엄치다 잡고, 쥐덫(낚시)으로도 잡고, 물을 막고 퍼내서 잡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면 너희 할머니는 간장으로 살짝 간해서 익혀 말렸다. 그걸 시래기 넣어서 얼큰하게 끓여 먹으면 정말 맛이 있었다.
네 할머니는 그 가물치 껍질을 벗기고, 살만 도려내 초고추장에 무쳐서 보리밥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주셨다.
그 둠벙은 우리가 농사짓는, 방죽 논이라 불린 논 아래 똘 속에 있는데 누군가가 오래 전 뚝을 쌓아서 고추밭을 만들려고 갈대밭 속을 파서 생긴 것이었다.
우리 온 식구가 달라붙어서 가물치 살을 초고추장으로 무쳐서 샘 속에 담가 놓고 며칠 동안 포식했다. 그 후 네 할머니는 "저 오살헐 놈이 가물치를 엄청 잡아와서 얼매나 먹었는지, 허리가 지금까지도 하나도 안 아프당게" 하시더라.
게다가 형이 신었던 거였다. 아빠가 둘째라 늘 큰아빠의 옷, 책, 신발, 버선 등을 물림으로 받았기에 새것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합격했는데. 동네 이장 아들은 떨어졌다. 그 동생한테 "중학교 다닐 수도 없는데 뭐하려 시험 치냐?"고 물어봤더니, 우리가 돈이 없어서 중학교 못 다니지 공부를 못해서 못다니는거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단다.
댓글목록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언제 새 글이 올라오나 기다리다가 목이 늘어났어요. 마치 눈에 보이듯 써주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소중한 추억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글도 열심히 기다릴게요. <br />
민이맘님의 댓글
민이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div>글 너무너무 잘 읽고 갑니다.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를 만나고 가는것 같습니다. 마음이 짠~~하네요. 다음 글도 기대해봅니다.</div>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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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세, 퉁고지, 쥐덫, 둠벙 등 낯설지만 생생한 어휘들이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일일이 설명을 곁들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쥐덫'에 그런 의미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물고기를 쥐덫으로 잡았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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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리고 어쩜 이리 잘 묘사를 해주시는지, 눈앞에 장면들이 그대로 스치고 가는 듯합니다. 다음 편 고대합니다.</div>
triumph님의 댓글
triumph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안녕하세요, 재미로 읽는게아니라 이런글은 마음으로 들 읽어 주셔야합니다.</div>
<div>지긋지긋한 가난..어려선 모르지만 다 자란다음에 돌이켜보면 ...|</div>
<div>"정말 어렸던게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지요</div>
<div>글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div>
캇젠클로님의 댓글
캇젠클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고마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 생일날에 올라온 글을 선물처럼 읽었네요. 우리 엄마는 늘 학교를 못가서 친구들 학교가는 모습을 보고 울었다고 ... 그 뒷이야기는 말씀해주시지 못하셨어요. 하지만 대충 그 마음과 그때 어린 엄마를 이글을 읽으면서 보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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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님의 댓글
최정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font size="3"><span style="line-height: 22.399999618530273px">파독광부 50주년 이야기사에 관심 가져줘 감사합니다. 저는 아빠의 이야기를 쓰는 최정규입니다. 말그대로 글을 잘쓰는게 아니라 그냥 자식들에게 하듯 제 살아온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가능한 그때 그시절 쓰던말과 표현을 그대로 하고자 합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span></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