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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김재승칼럼] 어머님 죄송합니다. 마지막   

독일로 돌아온 우리는 이듬해에 어머님 탈상을 모시러 한국을 다시 나갔다.
이번에는 우리 큰 아이하고 같이 나갔다. 기일 전날 다섯째 집에서 하루 종일 음식을 장만해서 다음날 전 식구들이 모여 탈상을 모시고 나서 저녁 늦게 식구들이 강원도 영월로 출발했다. 다섯째가 다니는 성당에 성도 소유인 별장을 빌려 며칠 휴가차 떠난 것이다.
16명이 넘는 식구가 각각 자동차로 출발해서 새벽녘에 영월에 도착했으나 산골이고 어두워서  내비게이션을 이용했는데도 잘 찾지 못하다가 아침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곳은 한식으로 지어진 방 3칸짜리 황토흙집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피곤한 식구들은 여기저기 구석 찾아 눕고, 한쪽에서는 고스톱을 시작한다. 이불장을 열어보니 오래 비워놓은 집이라서 습기 때문에 곰팡이 냄새가 지독하다.
도저히 그 이불을 깔고 누울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한쪽 구석을 찾아 맨바닥에 누우니 피로가 밀려온다. 많은 식구가 같이 지내는 것은 괜찮겠는데 화장실 가는 문제와 씻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왔다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식구들이 모여 휴가랍시고 왔는데 불편해도 좋은 척 했다. 사실 이런 것들이 가족들끼리 비비고 사는 즐거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눈을 부치지 않고 꼬박 날을 새운 식구들도 있었지만 관여치 않고 이튿날은 짐을 싸들고 냇가로 나간다. 소위 캠핑을 나간 것이다. 음식은 제사 모셨던 음식을 많이 싸가지고 갔으니 여자들은 부엌일 부담이 적어서 좋단다. 어른  아이들 할 것 없이 물속에서 같이 물장구치며 어울려서 노는 모습은 식구들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나는 바삐 출발하느라 속옷을 잊고 그냥 갔다. 그동안 속옷도 한번은 갈아입어야 되는데 걱정이다. 나는 씻고 싶지만 화장실 차지는 되지 않아서 조용히 별장 건너편 조그마한 물줄기가 흐르는 곳으로 갔다. 우선 흐르는 물에 비누 발라서 몸을 씻고 속옷도 빨아서 젖은 채로 다시 입고 산속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나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3칸짜리 집에서 하나 있는 화장실에 많은 식구들이 정상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나라도 이렇게 부담을 덜어주자. 라는 생각에서 밖으로 나간 것이다. 식구들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어려운 시간들을 내어 여행을 와준 것에 대해서.
다음날은 냄새났던 이불도 햇볕에 하루 종일 말리니 냄새도 덜 나는 것 같고 생활이 좀 더 적응이 되어 간다. 며칠을 식구들과 즐거웠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또 헤어져야할 시간, 마지막 날에 광주로 내려갈 동생식구는 그곳에서 일찍 먼저 떠나고 다른 식구들은 안산으로 왔다.
저녁은 내가 사겠노라고 식당으로 가자고 했더니 어느 고기 집으로 안내를 한다. 그날 독일에서 온 큰 녀석 여자 친구까지 불러 즐거운 저녁 식사시간을 가졌다. 계산할 때 느낀 거지만 고국은 아직도 음식 값은 저렴하기만 하다. 20명이 되는 식구 고기와 술로 실컷 먹었는데 여기 독일에서 서너 명이 식당에 가서 먹었던 값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다음날에는 처가 쪽 4촌까지 모이는 계모임에 가야 된다.  40명이 넘는 처가집 식구들이 속리산에 모인단다. 여기 독일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한 둘째 처형내 차례(유사)가 되어서 음식과 숙소를 책임 지는데 120만원이 훨씬 넘게 드는 것 같단다. 우리가 가있는 동안 한국 날씨가 36도가 넘는 무더위인데도 많은 식구들이 한집에 모여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이곳 독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생활들이다. 고국에 나와서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한 처남들도 그곳에서 만나니 조금은 서운한 눈치들이다. 항상 느끼지만 휴가를 가서  시간이 없어 허덕이는 우리 입장은 아랑곳없고 한국에 도착해서 얼마나 빨리 나한테 연락을 했느냐 에 따라 우리와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가를 재는 자로 생각하는 친척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 터라 서운한 감정도 이해가 갔다.  
처갓집 40여명이 되는 식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나서 간단한 행사를 마친 다음, 우리식구들은  보은군 산외면 세째 처형 네에 시골집으로 찾아갔다. 처형 네 시가집이 있는 마을에 예부터 소유하고 있으면서 가끔 찾아다니는 비어있는 집이다. 다음날 새벽에 광주 큰 동생 아들 녀석 장가가는데 찾아가야 되는데 속리산에서 잔다면 불편한 것은 다음문제지만 아침 우리가 일찍 서두르고 나서면 다른 식구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은 생각에 처형내로 가서 잔 것이다. 다행이 한국에 나갈 때마다 자동차가 한 대 여유가 있는 세째 동생 자동차를 빌려주어 그 차로 움직이니 참 편리하다. 광주에 내려 갈 때는 나와 아내 그리고 큰 녀석과 여자 친구, 이렇게 네 식구가 움직이었다.
광주 결혼식에 참석 후 다른 친척들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예식장에 속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예식장을 나섰다. 며칠 남도 섬 쪽을 돌아볼 심산이다. 무덥기만 한 날씨어서 오히려 차안에서 에어컨을 틀면서 움직이는 시간이 더 시원하다. 저녁에는 큰 녀석과 여자 친구가 전형적인 한식집에서 자고 싶다고 해서 미리서 예약해 놓은 장흥에 위치한 행복마을 한식집으로 찾아가 하루저녁을 지냈다. 깔끔하게 지어놓은 집이다. 시골이어서 저녁에는 제법 서늘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한옥 장려 정책으로 한옥을 지으면 4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서 보조를 받아서 지었다는 한옥 집은 꽤 생활하기 편하게 지어진 집이다.
집주인도 출타중이어서 우리끼리 하루 저녁을 보내고 큰 녀석은 남해 해수욕장에 가서  며칠 더 지내다 오겠다며 장흥에 사는 다섯째의 자동차를 빌려서 떠나고, 우리는 광주 동생 집으로 가서 하루저녁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아이들과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아무래도 부담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만 따로 올라온 것이다. 남쪽 해수욕장으로 떠난 녀석은 첫날 저녁에 인터넷으로 예약해 놓은 민박집 방안에 바퀴벌레가 많이 나와 잠을 도저히 자지 못하고 짐을 싸가지고 나왔는데도 숙박비는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하고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외국에서만 생활해본 녀석들이라 못주겠다고 하니까 그냥 나온 모양이다.
한국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그냥 떠나오지는 안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국생활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 여기 유럽에서는 용납되지 않은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이.
만일 한국에 나가서 살려면 이런 모든 문제들을 이해하고 현실에 부딪치며 살아갈 각오를 해야 된다. 길들여온 풍습이니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때도 없다.
바퀴벌레가 많이 나와 잠을 자지 못하고 나와도 당연하다는 민박집 주인, 손님들도 방 한 칸에 이 식구 저 식구 많은 사람들이  자도 이해가 되는 나라다.
정치인들이 부정을 하다가 발각이 되어도 국민들은 오히려 누구는 안 그랬느냐? 는  생각이다. 서민들은 군대를 가지 않으면 무거운 처벌을 받지만 높으신 양반들이나 자제분들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몇 사람이 안 되는 나라가 고국인 한국이다.
정직한 나라,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것은 빨리 고치는 나라, 높으신 양반이나 서민들이 똑 같이 법을 지키는 나라, 누구든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면 고발을 하는 고발정신이 강한나라, 외국인 노동자들을 괄시하지 않는 나라가 지금까지 우리가 생활해온 독일이 아닌가 싶다.
나라 대통령이 집을 사면서 개인한테 돈을 얻어 쓰고  여행 중 어떤 회사로부터 며칠 저녁에 해당되는 호텔 비를 제공 받았다는 여론 때문에 사표를 냈는데도 제공받은 700 유로 정도 되는 호텔 비 때문에 고발을 당해 몇 차례 공판을 받고 지금 선고를 기다리는 나라다.
우리도 몇 년 전 어머님과 고모내외분이 이곳에 오셨을 때, 불란서, 스위스, 베를린 들을 여행할 때, 내가 매일 방 3개씩을 예약을 하자 “왜, 방하나만 빌리면 그곳에서 충분히 잘 수가 있는데 3개를 빌리느냐?”며 성화를 댔던 기억이 난다. 

독일생활 40년, 바쁘게는 살았는데 해놓은 것은 없다.
“3년만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 부모님 모시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20kg짜리 가방 하나 메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금까지 귀국하지 못하고 여기서 뿌리를 내린지 40년이 되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머리가 희끗 희끗 노년들이 되어 고국으로 가지도, 그렇다고 이곳에 완전히 정착하지도 못한 우리들이 어설픈 현실이다. 뼈 빠지게 모아서 고국으로 송금들을 시켰지만 부모님들이나 형제들이 착실하게 우리 몫으로 모아주어 한국에서 터전을 닦도록 밑천을 마련해준 동포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낸 돈 때문에 형제들끼리 남보다도 더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버린 동포들도 수없이 많다. 돈 때문에 관계가 얽히어 한국을 다니러 가도 형제들이 따뜻하게 대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버린다고 말하며 고국 가서 쓰려고 휴가 때 가지고 간 돈까지 손을 댄다고 하소연 하는 동료들도 있다. 한국에 가서 호텔 잠을 자야 되는 이곳 동포들과 이야기 할 때면 오히려 가진 것이 없으니 형제간에 우애가 더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는 모아놓은 재산은 없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는 한 계속할 일을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둘이 있는 아이들도 자기 생활을 충실히는 하고 있다. 큰 녀석은 요즈음에 직장에 다니면서 자기 일을 좀 하고 싶다며 사무실을 얻어 일을 시작하더니 요즈음 내가 전화를 해도 “아빠 지금 바쁘니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한다. 바쁘다니까 좋지 아니한가?
작은 녀석은 그동안 2차 사법고시와 면접시험까지 무사히 합격을 해서 뮌헨에 50명이 넘는 변호사들을 채용하고 있는 로펌에 근무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자기 앞 가림은 하고 사는 것이다. 물론 아직 장가를 가지 안 해서 장가를 가야되는 큰일은 남았지만 직장 있고 몸 건강한데 여자 없어서 장가 못 가진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요즈음 어디서 들리는 소문을 들으니 한국아가씨를 사귀고 있단다.
어떻게 되었든 그동안 고국의 식구들 뒷바라지 하며 살았고 또 우리가 여기 독일에서 살고 있기에 고향사람들도 가끔 찾아오는 즐거움도 있다 처갓집 형제들과 우리 형제들도 유럽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아내의 형제들도 몇 번 다녀가고 어머님이나 고모 내외분, 큰 여동생도 남편과 몇 년 전 다녀갔다. 금년에는 셋째, 다섯째, 막내가족들이 한꺼번에  6월 달에 오기로 계획을 세워 놓았단다. 한의원 문을 닫고 몇 주를 같이 보내야 되니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담은 되지만 이것이 사는 즐거움이 아닌가?
옛날에는 몇 가마 쌀과 연탄만 있어도 행복했지만  지금은 집에 없는 것이 없이 문화혜택을 충분히 받으며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불만은 더  많다.
엊그제 한국방송 “여섯시 내 고향”이라는 프로를 보는데 강원도 어느 시골마을에서 우리 눈에는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골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 “우리는 이렇게 잘 사는데 부모님들은 그렇게 힘든 생활들을 하셔서 가엾다.” 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항상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우리 자신이 부끄러웠다. 행복이라는 그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항상 위만 쳐다보지 말고  조금만 내려다보면서 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IT가 발달되어 한국소식도 관심만 있으면 오히려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빨리 접하고 무슨 사건도 3국에서 보는 눈으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세계가 점점 일일 생활권에 들어선다.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멀게만 생각되었던 고국도 요즈음엔 맘만 먹으면 다녀올 수 있다.  엊그제는 1년 반전에 우리 집에서 세 들어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가족 네 식구가 토요일에 와서 월요일에 돌아가는 일정으로 다녀가겠다고 연락이 와서 “해도 너무한다.”라고 말하자 하루를 더 연장해서 화요일에 가기로 결정하고 3박을 우리 집에서 머무르다 간일도 있다. 그만큼 세계가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한국에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와 안 계실 때는 우리 마음이 달라진다. 나중에는 집도 없이 딸집에서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님이지만 우리가 한국을 가면 어머님을 위주로 형제들이 모일 곳이 있었다. 어머님이 안계시니 우리가 모이는 Center가 없어진 셈이지만 요즈음은 발달된 Smartphone 덕분에 한국형제들이나 조카들과도 매일 연락을 하다시피 하니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순천에 전 보건부장관이었던 김화중님의 배려로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포들을 위해서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본인 땅을 한 가정에 100평을 무료로 떼어 주면서 집을 지어주는 배려가 있어서 거기다 집도 한 채 신청을 해 놓았다. 
언제라고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묻힐 때는 고국에 묻히고 싶어 하는 욕심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처음엔 한국에 나가서 산다는 것에 별로 호의적이지 못했던 아내도 한국을 자주 다니면서 한국에 가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몇 십 년을 살아도 외국일 수밖에 없는 독일생활에 많은 동포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생활하고 있으니 독일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는 없어도 인생 말년에 한국을 오가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금년이 윤년이라 한국적인 풍습에 금년에 선조들의 산일을 하면 아무 탈이 없다는 풍습이 있어서 윤달인 9월에 징조할아버지 내외분, 할아버지 내외분, 부모님, 이렇게 모두 한자리에 산소를 옮기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가 모셔야 되는 조상들을 한군데로 모아서 모시기로 한 것 이다. 나는 월남을 다녀와서 우리 부부는 죽으면 고국의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있단다. 거기에 묻히면 우리 아이들이 묘를 관리하는데 신경을 쓰지 안 해도 되지 않는가? 시체는 기증하기로 했으니 쓰고 남은 부분만 화장해서 그곳에 묻히면 될 것이다.
부지런하게는 살았으니 넉넉지 못한 생활이라도 만족하며 살자.
이웃들에게 욕먹지 않고 피해주지 않으며 할 수 있다면 조금씩 이웃에 기쁨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외아들로 태어나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으며 원하지 않게 어머님에 불효를 한 것만이 마음에 새겨 진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 이번으로 저의 글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글같이 않은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부탁은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생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에 시작한 글을 써 나가면서 글은 아무라도 쓰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동안 부담감도 컸고요. 외국생활을 오래하고 또 이젠 나이도 먹어서 우리말 철자법도 잘 모르고 시작한 글이라서 독자들도 읽는데 힘들어 하셨을 줄 믿습니다. 그냥 저의 푸념이었다고 생각하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4-03-09 (일) 10:01 5년전
언제나 새 글이 올라올까 기다리며 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즐겁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어요. 공감하는 세계를 만나기도 하고 모르는 세계를 만나기도 했고요. 귀한 추억 나누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계속 건필하셔서 다른 글도 써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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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4-03-09 (일) 23:57 5년전
가난을 넘어서고자 파월장병, 파독광부, 그리고 한의사가 되어 이웃과 함께하는 삶 수고했습니다. 이제 이웃과 함께하는 삶의 이야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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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4-03-16 (일) 16:33 5년전
순천에 가신다 해도 부지런히 사실 모습이 뚜렷이 연상됩니다.
경험하신 일들과 배우신 지식으로 고국에서도 바람직하게 사시리라 믿습니다.
언제가 될런지 모르지만, 생활하실 곳에서도 베리에 글을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언제나 건승하시는 삶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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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4-04-20 (일) 19:31 5년전

내땅에서 살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피땀 흘려 살아오신 김재승 한의사님!!

 가슴으로 쓰신 글 잘읽엇습니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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