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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김재승칼럼] 어머님 죄송합니다. 18   

“오, 주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법합니까? 나더러 시험 준비를 잘했다고 오히려 칭찬을 하다니요? 더군다나 외국 사람한테. 정말 감사합니다!!”
시험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면서 손을 쳐들고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가 달려와 날 꼭 껴안는다. 그 동안 긴장 탓인지 몸이 착 가라앉은 느낌을 받으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합격소식을 전했다.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서로 즐거움을 솔직하게 표현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학업을 시작한지 9년 만에 모든 것을 마친 것이다.
저녁에는 음식장만을 좀 하게 하고 술도 좀 준비한 다음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학교에 찾아가 합격 소식을 전하고 다른 학생들과 간단한 축하 파티를 했다. 
 
내가  Opel에서 퇴직한 다음, 회사 측 권고해직 Program이 있어서 거기서 근무를 했던 나의 지인은 8만 유로를 받고 퇴직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조금만 더 기다릴걸 그랬나?
혹시 시험에 합격을 못하면 그 억울함을 어디가 하소연 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사실 많은 갈등을 했었는데 지금은 잘 했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만일 사직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회사에서 근무를 했었다면 합격이 불가능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차분하게 계획을 세워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독일에서는 실업자 수당을 받던 사람들이 개인 사업을 시작할 때 정부에서 도움을 주는 제도가 있다. Arbeitsamt에서 주관을 해서 일정한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 초보자를 위한 의탁교육을 시킨 다음, 6개월 동안 Überbrückungsgeld라는 사업지원금을 지급한다. 
개인병원은 지인들의 권유와 소개로 Frankfurt에서 개원을 하기로 하고 Arbeitsamt에 가서 신고를 했다. 오전 시간을 이용하여 한 달 동안 처음 시작한 사업을 위해 교육을 받으란다. 한약방은 오후에 문을 열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 것은 가능하다.
Frankfurt에서 살고 있는 손위의 동서에게 부탁을 해서 병원자리를 알아보게 하고 교육을 받았는데 병원자리 구하는 시기와 교육을 마치는 시기가 척척 맞아 들어가 어려움 없이 한의원을 Frankfurt에 개원하게 되었다.
정부에서 지급되는 보조비는 한 달에 1600, -유로가 6개월 동안 지급된다는 연락과 함께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는 증명서류를 제출하란다.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Frankfurt는 간단한 집수리를 해주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해줄 사람들을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내가 직접하고 싶지만 내려와서 있을 시간이 없으니 그들에게  맡기여 새로 개원할 한의원 수리를 했다. 수리를 마치고 이곳 보건부에 신고를 하고 한의원을 개원을 했다. Bochum과 Frankfurt를 오가는 진료가 시작된 것이다.
Bochum 약방을 금방 문 닫을 수 없고 환자들을 위해서 1-2년만 다니자며 아내와 약속을 하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Frankfurt, 금요일 하루는 Bochum에 와서 환자들을 본다.
월요일 새벽기차를 타고 이곳 Frankfurt에 내려와 목요일까지 진료를 마치고 목요일 저녁차로 집이 있는 Castrop-Rauxel로 올라가 금요일에는 Bochum에서 환자들을 보고 주말에는 집안일을 좀 하고 나면 일주일이 지나간다.  Frankfurt에는 처형이 살고 있기 때문에 우선 그 댁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9년 동안의 모든 학업을 마치고  독일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곳 Frankfurt에 한의원 문을 열었다. 한의사나 중의사 면허를 가지고 독일에서 Heilpraktiker 자격을 얻어 Praxis 문을 연 한국인이 처음인 셈이다.
한의원도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이 늘어난다. Bochum을 오가며 환자들을 보는 내 자신도 힘들지만 아내 입장에서도 도저히 마음이 놓이질 않는 모양이다. 집을 팔고 Frankfurt로 이사를 하잔다. 여기저기 환자들도 늘어나니 본인도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한의원도 같이 하자는 제안이다. 반대할 명분이 없다. 사실 아내는 처음에 내가 이곳 Frankfurt로 내려가자는 제안에 썩 내키지 않은 분위기였다. 작은 도시에서 그냥 의료행위를 하면 되지 뭐 하러 그곳까지 내려가느냐 것이다. 허지만 이곳 처형 내 식구들의 권고와 나도 9년 동안을 노력을 해서 얻은 자격을 좀 큰 도시로 나가서 활용을 하자는 제안을 하니 할 수 없이 허락을 했던 것이다. 아내 자신도 지금까지 근무해온 병원에 사표를 내고 자영업을 시작한다는 결정이, 또 지금까지 정들어 살았던 그곳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들을 정리하려면 그길 뿐이 없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이사를 하려 한다고 하니 우리 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난리다.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고향인 그곳에서 우리들이 떠난다 하니 성화고 둘째는 지금까지 우리와 같이 살다가 우리가 내려오면 학교 때문에 할 수 없이 혼자 그곳에서 남게 되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우리는 아이들을 달래고 이해를 시킨 다음 아내는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소개소에 집을 팔려고 내놓고 우선 나 혼자 Bochum과 Frankfurt를 오가며 환자들을 보았다.
 
집은 팔려고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집이 팔렸다. 그렇게 빨리 팔릴 거라는 생각은 안했는데  빨리 팔린 셈이다. 3개월 후에 집을 비워 주기로 계약을 했으니 우리는 Frankfurt에 내려와 살집을 구해야 된다. 몇 군데를 보고나서 나 혼자 결정을 못하고 아내더러 내려와 결정을 하라고 하면 영락없이 퇴짜다. 남자들과는 달리 이것저것 보다보면 마음에 맞지 않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곳에서 사는 처형과 같이 다니면서 집을 보았지만 3개월 안에 집을 구한다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우리는 우선 처형 댁에 짐을 풀고 여유를 가지고 집을 알아보기로 하고 이사준비를 했다.
사실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그 집은 내손이 가지 않은 곳이 한군데도 없다. 새집도 고급집도 아니지만 살기 편하게 손보아놓은 집이라 와보는 사람들 마다 집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었다.
아내도 시간만 있으면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아 이웃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한번은 한국에서 온 손님이 정원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으면서 “바로 이게 천당이 아닌가 싶네요.”하면서 부러워하곤 했던 집이다.
이웃들도 얼마나 신경을 쓰고 정원들을 가꾸어 놓았든지 매년 실시하는 「아름다운 거리 선발대회」에서 1등을 하고는 했다. 바쁘기만 한 생활 이지만 그 틈새에서 살려면 옆집들과 어지간한 밸런스는 맞추어야 된다. 외국인 한집 사는데 눈에 날정도로 지저분하게 해 놓으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눈에 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또 외국인이었지만 그곳 이웃들과도 사이가 좋아 오히려 한국 사람들 보다 더 오가며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왔었는데 이사를 하려고 하니 서운한 감정이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사하기 전 아내는 음식장만을 한다음 이웃들을 초대해서 이별의 서운함을 달래곤 했다.
교인들의 도움으로 이사를 하던 날,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출발하자 이웃들이 모두 거리 집 앞으로 나와 이별을 아쉬워하면 눈물을 흘렸던 그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주 찾아보겠다며 약속을 하고 출발한 아내는 차안에서 큰소리를 내어 울면서 이곳으로 내려왔다. 지금도  이웃들과 연락을 하며 일 년에 한번 있는 여름철의 거리축제 (Strassenfest)에는 시간을 내어 꼭 참석을 한다.
 
이곳으로 내려와 처형 집에서 2달 동안 신세를 지고 조그만 원룸을 얻어 이사를 했다. 넓은 정원을 가지고 살아왔던 아내는 꼭 정원 있는 집에서 살아야 된단다. 허지만 여기는 집값이 위쪽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파트 한 채 값이면 위에서는 좋을 집을 사고도 남을 만큼 가격차이가 난다. 집값도 문제지만 다른 문제는 은행에서 융자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아다.  맞벌이를 할 때는 집을 구입하기 위해 은행 융자를 얻으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했는데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수입에 대한 믿음이 없어 융자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자그마한 아파트 하나를 사기로 하고 은행에 가서 융자를 달라하니 거절이다. 집값을 다 현찰로 내고 한 달에 300, - 유로 정도만 갚아 나갈 수 있는 액수의 융자를 달라고 해도 거절이다. 은행에 융자를 얻어서 집을 산다는 것은 포기를 해야 된다는 말이다. 
“내가 우겨서 이곳에 한의원 문을 열고, 그것으로 인해서 팔기 싫은 집을 팔고 이사를 왔으니 아내가 원하는 집장만은 해주어야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날 부담스럽게 했다. 300, -유로도 갚아 나가지 못할까봐 융자를 주지 않은 은행들이 얄밉지만 어쩌랴?
 
우리 이름으로 집을 산다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아니 불가능하다. 나는 동서와 처형께 모든 사정을 이야기 하고 수입이 좋은 동서와 처형 앞으로 집을 한 채  계약 해줄 것을 제안했었다. 물론 서류상 명의만 빌리자는 것이다. 다행히 허락을 해준 처형 댁 덕분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이사를 한 곳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설계사인 가까운 지인 아들의 권고로 이곳에 땅을 300평방미터를 구입을 해서 집을 지어달라고 맡겼다. 그동안은 방한 칸짜리 Wohnung에서 살면서 방 한쪽에 이삿짐 상자를 쌓아놓고 당장 쓰지 않을 짐들은 이곳 한인교회 창고를 빌려 우선 저장을 해놓고 이곳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넓은 집에서 살다가 이곳의 생활은 정말 편안한? 생활이다. 한쪽 부엌에서 밥해서 한국 밥상하나 놓고 밥 먹고 옆에 놓인 의자와 침대 겸용인 카우치를 펴고 잠을 자며 움직일 필요가 없는 편안한 생활이다.
집을 짓는 것은 처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자꾸 지연이 되지만 그러려니 했다. 친구의 아들이니 아버지 입장을 생각해서 착실하게 해 주겠지 하는 생각만 했었다. 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융자를 얻어 지은 집이기에 이자는 자꾸 나가는데 이사는 할 수 없고 집을 맡아 짓고 있는 지인 아들은 점점 더 신용이 없어지는 짓만 하고 있다. 처음 약속된 내용들을 무시하고 저 편하고 이익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 집을 짓는데 쓰이는 자재도 어디 폴란드에서 수입된 싼 자재로만 샤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인 아들한테 서운한 소리를 하면서 계획된 일정보다 훨씬 뒤에야 이사를 했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다. 지인 아들은 나중에 회사도 부도처리를 하고 독일에서 최소한 5년 보증기간에도 나 몰라라 하는 입장이다. 다른 사람들 통해 들은 이야기가 그래도 부모인 우리 지인은 우리한테 서운하다고 하더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라는 말이 실감난다. 난 마지막으로 편지를 내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해결을 하지며 지금 집의 문제점을 설명하며 네가 해주지 않겠다면 내가 스스로 할 테니까 대답을 달라고 편지를 냈으나 지금까지 답장도 없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형제처럼 지내왔던 그 지인과의 관계도 서먹서먹하게 되고 만 것이다.<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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