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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브란트 전기발간 앞두고 자살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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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uroni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01-08-31 22:19 조회2,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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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트의 77년모습1913년생 Willy Brandt는 69년부터 74년까지 연방총리였다. 그는 이 기간 자신의 보좌관이던 Guillaume에게 노출되었다. 동독 스파이라는 사실이 발각된 후 브란트는 총리직을 물러났다.

브란트의 전기를 쓴 역사가 Gregor Schöllgen은 상호이해의 정치를 펴면서 오늘날의 독일이 누리는 명성에 크게 기여한 브란트가 총리직사퇴를 앞둔 시점인 1974년 5월 7일 가족에게 남길 유서를 썼다가 찢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유품 중에 이에 대한 사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책은 9월에 발간될 예정이다. 공식적으로 빌리 브란트는 자살계획에 대해 쓸데없는 수다라고 부인한 바 있다.

쇨겐은 Günter Guillaume이 동독간첩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나 브란트가 소위 바람피운것이 탄로날 가능성이 자살을 생각한 동기는 아니었으며 "너무 벅찬 자리"("überforderndes Amt")가 그 이유였을 것으로 본다. 당시 61세의 브란트는 74년 5월 공식 사퇴서를 작성하는 것 외에도 지금까지 알려지니 않은 제 2의 편지를 당시의 대통령 Gustav Heinemann에게 썼다. 브란트는 그 편지에서 정치에 남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그러나 지금의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브란트는 1992년 78세의 나이로 암으로 죽었다. 임종하는 마지막날까지 그는 친구와 친지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가 베를린-쩰렌도어프의 Waldfriedhof 공동묘지에 묻힐 때 그의 부인 Brigitte Seebacher-Brandt는 전부인 Rut Brandt를 초청하지 않았다.

쇨겐의 브란트전기를 놓고 브란트의 부인이었던 Brigitte Seebacher-Brandt(현재는 전 Deutsche-Bank 은행장 Hilmar Kopper와 산다)는 어떻게 자신이 모르는 증거자료가 있겠느냐고 의심하면서 브란트가 자살을 생각했다는 것은 순전히 쇨겐의 환상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92년 10월 임종당시 전처소생의 자녀들이 그의 곁으로 못오게 했으며 또한 전부인 Rut Brandt를 장례식에 못오게 했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그녀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는지 끔찍하다며 일축했다.

Gregor Schöllgen: "Willy Brandt. Eine Biographie". Propyläen Verlag, Berlin; 350 Seiten; 48,90 Mark. Erscheinungsdatum: September.




'62.158.209.193'역사산책: 브란트 그는 동독의 간첩이었다. 그가 아무리 동독에게 엄청난 양의 극비정보를 넘겨주어도 부패하고 무능한 동독정권은 모든 면에서 서독을 따라올수가 없어서 그저 우야무야 파뭍쳐질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가 기욤과 함께 저지른 죄악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나토의 맹방인 서독에게 극비정보는 절대로 주지를 않았다고 한다.  [09/02-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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