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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세일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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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17 11:40 조회2,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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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Im Westen nichts Neues)"는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1차 세계 대전의 참상을 묘사한 영화는 마음 약한 이들은 관람하기도 어렵다. 올해는 독일에서 만든 넷플릭스 영화로 네 개의 오스카 상을 받았다고 한다. 


1918년 그 야만적인 세계 제 1차 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막을 내리고 프로이센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는 강제로 퇴위, 네덜란드로 망명한다. 


황제 빌헬름 2세는 재위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바라보며 프로이센도 그러한 독일제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군함과 선박으로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영국을 보며 그는 프로이센의 해군력 증강을 적극 추진한다. 1차 대전 발발 직전까지 독일의 해군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꼭대기에 바다가 조금 있는 독일은 섬나라 영국보다 아무래도 여러 여건이 불리했다. 탁월한 성능의 어떤 군함은 수리를 위해서는 매 번 영국으로 보내야 했다고 한다. GEO 지에서는 오래된 한 독일 해군 장교의 편지를 인용, "배를 수리해 달라고 영국 항구로 들어갈 때마다 항구 입구에서 피식하고 웃는 영국 해군들의 모습에 독일 해군은 늘 큰 상처를 입었고", 이는 언젠가는 영국을 이기고야 말겠다는 빌헬름 황제의 의식 형성에 기여 했을 것이라고 나름 분석했다. 


빌헬름이 3세 때인 1862년 영국 여왕 빅토리아는 손자인 그에게 해군복인 세일러복 (독일어 Matrosenanzug)을 선물했다. 어린 황태자가 세일러 복을 입은 모습은 곧 귀족과 부유한 시민층의 관심을 끌게 되고 당시 어린이 모드로 인기를 끌었다. 얼마 안 가 독일에는 세일러복을 대량 생산하는 제조업체들도 생겼다.


황제의 해군 열정은 남자 어린이들의 해군복, 세일러복의 유행을 더욱 촉진시켰다.  해군들 뿐 아니라 어린이들이 해군복을 입은 모습을 황제는 대단히 마음에 들어 했다. 빌헬름 2세는 독일 역사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에게, 장차 국가의 군인이자 시민으로 성장할 어린이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황제로도 평가된다. 그가 베를린의 많은 초등학교를 수시로 방문하는 바람에 어린이들은 수업도 제쳐 두고 황제를 위한 합창과 예식 연습을 해야 했고, 많은 국가적 주요 행사에 일반인이나 군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도 자주 동원되었다. 어린이들이 나서서 깃발을 흔들며 환영하는 모습은 그의 재위 기간 중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어린이들은 세일러복을 많이 입었다. 요즘도 활동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있는 여러 소년합창단은 세일러복을 단복으로 착용한다. 


한 역사학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크게 유행하던 아동복이고 착용이 의무인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빌헬름 시대, 혹은 20세기 중반 들어서 세일러복을 입은 아동의 부모는 모두 극우거나 제국주의자라고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당시 프로이센을 비롯 유럽 문화를 받아들이던 일본에서도 이 옷을 일본식 발음 "세라복"이라고 부르며 어린이들에게 만들어 입혔다. 남자 어린이뿐만 아니라 여자 어린이, 청소년들도 입었고 교복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일본의 이 문화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역시 교복으로도 입었고 60,70년대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손자, 아들에게 선물할 아동용 세라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어린이들은 예쁜 아동복으로, TV 에서 미국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 시작한 이후에는 도널드 덕도 입은 귀여운 옷 정도로 여기고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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