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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 총리 헬무트 슈미트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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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1-12 01:42 조회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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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가 11월 10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인기는 많은 설문조사, 언론보도뿐 아니라 주위에서 만나는 독일인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슈미트는 1918년 12월 23일 함부르크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7년 아비투어를 마치고 2차 대전 기간인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군인으로 참전했다. 전쟁 후 영국군에 포로가 되었으나 1946년 풀려나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왔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경제학을 공부했다.

1953년 사민당 소속 국회의원 당선, 1961년에는 함부르크 시의원이 되었다. 1962년 함부르크시 대홍수 때 그가 보여준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은 많은 시민과 정치인의 기억에 강하게 남게 되었다. 항상 그에게 붙어 다니는 별명 "위기관리인 (Krisenmanager)"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1974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그의 비서관이 동독 간첩혐의를 받아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 1982년 헬무트 콜이 당선될 때까지 연방총리를 지냈다. 1983년 부터 주간시사지 디차이트지의 공동발행인이 되어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유럽 연합 구성, 화폐 통합에 지대한 기여를 했고, 빌리 브란트 총리의 뒤를 이어 후임자 콜이 이룩한 동서독 재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1977년 적군파 무장 조직(RAF)은 수감되어 있는 조직원들의 교환 석방을 요구하며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했다. 슈미트는 굴복하지 않고 특수부대  GSG-9을 투입, 승객 전원을 구해냈다. 그는 만약 이 일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사퇴할 각오였다고, 가장 힘든 시기였노라고 훗날 회고했다.

애연가로 유명하고, 유머리스트 로리오와도 친한 사이로 로리오의 유머 속에서도 종종 슈미트가 등장한다. 피아노 치는 총리로 알려져 있는 그는 1981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유스투스 프란츠와 모차르트의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런던 필하모니와 연주, 녹음 하기도 했다.



schmiedt.jpg

                                                             음반표지

총리 메르켈은 "슈미트는 그 자체가 독일의 하나의 정치적 구조였다 (politische Institution der Bundesrepublik)"고 하며 "그의 조언과 판단이 내게 의미를 갖는, 하나의 지표(정치적, 도의적) 였다 (Er war für mich eine Instanz - einer, dessen Rat und Urteil mir etwas bedeuteten)"라고 말했다.

외무부 장관 슈타인마이어는 "우리 독일인은 한 아버지상을 잃었다. 그는 독일인들에게 단지 총리만이 아니었다 - 그는 멘토였다 (Helmut Schmidt war nicht nur Kanzler der Deutschen – er war Mentor der Deutschen)"고 하며 "그는 독일을 항상 유럽 안에서, 유럽을 항상 세계무대 위에서 바라보았다. 우리는 한 독일의 민주주의자, 유럽의 개척자, 한 세계적 정신을 잃은 것을 슬퍼한다"고 말했다.

장례식은 2주일 후 그의 고향 함부르크의 "미혤(Michel, St. Michaelis 교회)" 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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