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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7) 베른의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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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천사이름으로 검색 02-03-15 06:24 조회5,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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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베른의 영웅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년 후에야 독일은 국제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축구도 역시 이런 점에서 강제 휴식을 취해야 했었다.

1948년애야 비로소 독일은 독일선수권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으며, 국제 시합을 하기 까지는 또 다시 2년이 걸렸다: 1950년 11월 22일에 독일대표팀은 스튜트가르트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1:0으로 이겼다. 이는 독일이 FIFA에 재가입 한지 두 달이 지난 후였다.

▶ 놀라운 결승진출


1954년의 월드컵 참가로 독일은 확실히 다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독일대표팀은 38세의 프리츠 발터 (Fritz Walter) 를 주장으로 시합에 출전했으나, 사실은 들러리 격이었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헝가리에게 초반에 3:8로 패하긴 했으나, 세프 헤르베르거 (Sepp Herberger) 가 이끄는 대표팀은 놀랍게도 결승까지 진출하였다. 베른의 경기장에서 수퍼스타 푸스카스 (Puskas) 를 주전으로 한 헝가리팀은 또 다시 적수로 나타났다.

재빨리 2:0으로 경기 흐름의 주도권을 잡은 헝가리팀에 프리츠 발터와 선수들은 동점골을 터뜨렸고, 우승후보인 헝가리는 흔들리는 듯 했다. 헤르베르거의 작전은 주효했다: 예선전에서 그는 몇 명의 후보선수들을 내세워서 전력 노출을 막았다.

▶ 라안 (Rahn) 이 넣은 결승골


에센 출신의 헬무트 라안 (Helmut Rahn) 은 84분에 접어들어서 한 골을 추가 함으로써 3:2로 ‘베른의 기적’을 낳았다.: 독일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한 것이다. 이 우승은 축구의 우승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독일국민은 전쟁후의 궁핍함 속에서 다시 한 번 웃을 수 있었다. 이 월드컵 우승은 독일 경제기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같았다.

베른의 영웅들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되었다. 그들은 부자가 되지는 않았으나 유명인사가 되었다: 독일축구협회는 당시에 위로금으로 2000~2500 마르크를 지급했다고 한다. 주장인 프리츠 발터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까지 선수생활을 했으며, 나중에는 독일대표선수단의 명예주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Oliver Bran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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