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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오직 믿음으로 될지니..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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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Ahn이름으로 검색 02-08-27 05:23 조회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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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기독교님의 글에 대한 반론일 수도 있고, 혹은 성령이 제게 하는 말씀일 수도 있기에 또 글을 올립니다. 기독교인의 행태에 대한 비판적 글을 올릴 때마다(이곳 뿐만 아니고 다른 곳에도) 스스로 깊은 반성을 하곤 합니다. 과연 그런 비판을 할만큼 제 믿음이 성숙한지도.. 혹은 제가 쓰고 있는 글의 요지처럼 과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선물로 받은 구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구절(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한번 묵상하고 나누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됩니다.
에베소서 2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물론 지나가는 부족한 기독교님께서 인용하신 그 성경구절이기도 합니다.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 말씀만으로도 몇십장에 해당하는 원고를 쓰라고 해도 쓸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베리의 운영자님께서 한번 종교계시판을 만들어 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지만 고사(苦辭)할 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것 같아서.. 제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구원은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구원을 그냥 선물로 주셨느지 다음 구절(문장)을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가 거룩해서 내가 구원을 얻었다고 말 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그냥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유대교(구약시대)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일은 지금 불교에서 높으신 수행을 이루신 스님들마저도 과연 이러한 금욕을 지켜내실 수 있을까 할만큼 엄청난 것이었습니다.(다시 구약시대의 율법으로 돌아가서 하나하나 설명 안해도 되겠죠? 다른 보수 기독교도님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서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누가 거룩하고 거룩하지 않은지... 그러면서 유대교는 자유함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그들의 신을 만들어 냈습니다. 거룩과 성결은 그 사회의 가치기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룩하려고 힘쓰면서 그렇게 발버둥을 쳤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노력으로 거룩하려고 했으니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남들보다 거룩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정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정죄를 당하는 계층들이 있었죠. 그 계층들이 예수님이 즐겨 어울리던 계층들이었습니다. 창녀, 강도, 세리, 문등병자.. 등등
자.. 여기서 강도나 창녀에 대한 문제는 넘어갑시다. 뭐 굳이 그 사람들이 낮은 계층이었는지 소외받는 사람들이었는지 제가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테니까요. 문제는 세리라는 직업군(?)이었습니다. 세리는 지금으로 말하면 세무 공무원즘에 해당합니다. 근데 세무 공무원이 왜 거룩하지 않은 직업군(?)이었을까요?
조선 사회에서 보여지는 부분들과 아주 비슷합니다. 돈을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당시 유대사회에도 동일하게 존재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사농공상의 신분제도가 확립되는 것이랑 아주 흡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럿듯 자신이 거룩하게 되려고 노력하고 율법에 맞춰 살아가게 되다보니, 소위 거룩한 사람들(제사장, 바리세인, 레위인 등등)은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일반 노동자, 창녀, 세리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을 정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장이나 바리세인 레위인 등은 예수님 당시 사회에 가장 지도층에 있는 소위 먹고사는 문제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경건에 힘쓰고 율법 잘 지키는 것만 신경쓰면 됐기에 일반인들이 느끼는 아픔을 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조선조의 양반들이 폼나게 서예나 하고 난이나 치면서 먹고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백성들과 구분된 삶을 정당하게 영위했던 것처럼.. 그러면서 농번기에 농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을 보면서도 군자는 손과 발을 천천히 놀리야 한다는 식으로 황당한 논리를 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율법 주의자들이야 그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율법 지키기에 힘쓸 수 있었던거죠. 그러면서 자신들은 거룩하다고 자랑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이 거룩하게 살고 율법지키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길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구원은 선물로 받는 것이다.. 라고...
그런데 예수께서는 20세기가 넘게 흐른 2002년 기독교 내에서 믿음을 자랑할꺼라는 건 상상을 못하셨나 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선물로 주신것은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함인데.. 이제는 믿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전에 제글에서 쓴 바 있듯이..
누구는 믿음이 있네, 누구는 없네.. 혹은 약하네.. 제대로 못 믿네.. 등등
그러면서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부분을 차마 생각치 못하셨나 봅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선물을 받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믿으면 그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는다는 해답도 없습니다.
저보다 수만배는 아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성경을 많이 읽으셨을테고 주님과의 교감을 하신 종교개혁자 칼빈도 말합니다.
"구원받을 자는 예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땅에서 해야 할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직분(청지기로써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일이다"
(칼빈의 구원예정설도 너무나도 할 말이 많지만 그냥 넘어갑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써의 직분은 물론 사회적 관점에서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일 수 있습니다.
제 글에 댓글을 쓰신 기독교인님께서는 혹시 자신이 칼빈보다도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시진 않겠죠?
다시 정리하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크고 비밀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선물은 바로 내 마음 속에 하늘의 기쁨이 넘쳐나는 체험일 것입니다. 잠시 부흥회가서 눈물 흘리면서 은혜받았다고 말하고 얼마 안가 다시 그 기쁨을 잃어버리는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정말 자기의 모든것을 잃었을 때도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넘쳐나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입니다. 그 기쁨과 감사를 체험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기쁨을 체험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 분명히 교회를 다닙니다. 이십 몇년간을 교회를 다닙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느낀 불교와의 차이점을 몇자 적으면서 이 글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불교의 교리도 훌륭합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메세지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세계관은 인과응보입니다. 내게 나쁜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것은 다 이유가 있다? 전생의 잘못이었던 이승의 잘못이었던 나의 책임이다.
훌륭한 가치관입니다. 남을 탓하지 않고 나를 성찰하고 반성하게 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체념적 가치관인것 같습니다.(전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잘못 이해하고 있으면 제 오해와 편견을 수정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가치관은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가치관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왜나하면 어떤 나쁜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고 주님의 기쁨과 감사가 제 안에 넘쳐난다면, 전 그 사건을 체념적으로 혹은 불평하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안에 제게 주시고자 하는 메세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제가 만약에 사업을 하다가 망했을 경우를 상정해 봅시다. 제가 하늘의 기쁨과 감사가 제 마음속에 넘쳐 난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체념하고 불평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그 기쁨으로 또 도전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주님께 찬양하면서 살아갈 희망을 발견할껍니다.어깨가 쳐져서 사업에 망한것도 내 잘못이구나..하고 체념하고 자신을 반성하는데서 그치는 삶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긍정적 사고와 기쁨을 가지고 도전할 것입니다. 새 삶을...(물론 그런 삶이 쉽지가 않습니다만) 그렇기에 저의 삶은 더 윤택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는 긍정적 사고를 하게 하는 힘이 있는 종교란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너무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나누고 싶은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제가 생각하는 단편적 기독교의 모습일 것입니다. 해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왜 구원이 믿음으로 된 하나님의 선물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잘 고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으면 구원이 있다.... 너무나도 간단한 메세지 입니다. 행위로 구원이 없는 이유는 그 행위를 자랑했기 때문이고 그로인해 많은 이들이 죄인이라는 멍에를 쓰고 있던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에서 나타나는 믿음에 대한 자기 자랑은 행위에 대한 자랑과 별로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사랑은 자랑치 않습니다.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지박 : 좋은 글 관심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엠마우스 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으로 잘 알려진 불란서의 피에르 신부는 자신의 수상록 "단순한 기쁨"에서 희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삶을 살아야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요... 님의 글 중 "구원이 그분께서 주신 선물"이라면 현세의 삶 또한 그분께서 주신 선물일텐데요. 삶을 긍정하고 기쁨으로 살아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기쁨으로 삶을 경험하고 이웃과 나누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 님의 글을 통해 다시한번 사색해 봅니다. 2002/08/14  
Justin : 저기여...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ㅡ,.ㅡ^
@삶은 살아봐야 가치를 안다!
@삶은 안봐도 가치를 안다!
@삶은 가치없다!(자살한 경우)
@삶은 달걀이다! @.@ㅋ 200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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