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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Paul Cezanne (1839 -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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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2-09 17:32 조회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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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 Saint-Victoire 1902
New York


화해,
나와 너의 화해, 인간과 자연의 화해, 관찰자와 관찰 대상과의 화해로 대표되는 세잔의 예술이다. 자연의 단순 모방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연에서의 완전 소외도 아닌, 자연과 일종의 평행을 달리는 예술관을 말한다. 자연에서 보고 느낀 바를 의식의 정화기를 통해 여과시킨 후 다시금 예술의 세계를 통해 재창조하는 그런 모습이며 동시에 자연의 흔적이 지울 수 없는 정도로 스며들어 있는 그런 예술 말이다. 새의 울음이 단소의 울림으로 변하는 그런 과정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화해가 세잔이 자신의 예술을 통해 추구한 목표라면 세잔 이전의 자연 모방으로서의 예술뿐만 아니라 세잔 이후의 자연 소외적 신세계 창조 예술과도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컨대 1910년을 전후로 한 소위 초기 분석적 큐비즘(브라크)이 추구했던 새로운 세계의 창조가 자신의 모태를 세잔에서 찾는다고 하나 세잔 스스로는 어쩌면 용납하지 않을 그런 경향의 미술이다. 검고 굵은 선을 통해 색깔들의 자연스런 흐름을 차단함으로써 세잔이즘이 추구하는 자연과 예술의 평행을 차단하고 부수어버리는 예술이니 말이다.

그럼 세잔 이후 세잔의 기본 예술관을 제대로 이어받았다 보이는, 아니 제대로 이어받았다면 최소한 대강 어떤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간단히 말해서 이렇다. 세잔의 예술이 주체와 객체의 화해 내지는 조화적 통일을 내세웠다면 이러한 화해보다는 객체를 너무 앞에 내세우는 자연의 모방과 더불어 주체를 너무 앞에 내세우는 신세계의 창조 역시 세잔의 예술관을 제대로 이어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 나오는 질문이다: 만약 세잔의 그 화해와 평행의 예술이 최소한 사고의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면 짜장 어떤 모습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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