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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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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4-01 18:56 조회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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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 곳 대학에 적을 두고 있을 때 하루는 과 여비서의 초대로 일본 쇼펜하우어 학회장과 함께 식사를 하며 말을 섞는 기회를 얻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비서 – 나이 70이 넘었어도 법적 처녀라 Fraeulein R. 이라 불렀다, 프로일라인, 참 정겨운 표현이다 –가 지 딴에는 동북아지역의 서양철학적 토대를 굳건히 하는데 이바지 하고자 했던 기획사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일본사람 역시 오래 전 이 곳에서 공부를 했던지라 그 녀와 꽤 오랫동안 친분을 맺고 있었다.

이 양반 왈, 이즈음 누가 쇼펜하우어를 연구하느냐며 완전 한 물 간 사람으로 취급함이 세계철학적 추세라는 불만을 터뜨렸다. 칸트와 피히테를 비롯한 소위 독일고전철학을 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던 나였으니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건넸다. 자기가 비록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실제 철학자들의 관심이 별로 쏠리지 않는 이상에야  신이 날리가 없다는 말, 측은지심이 우러날 정도였다. 그러한 연구가치가 미쇄한 철학자 이름을 딴 철학회를 이끌고 있는 자기 신세가 적지 아니 서글프다는 모습까지 엿볼 수 있었다. 마치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체화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내가 위로를 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래 철학자를 철학이 대접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어예술이 오히려 더 융숭한 대접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슬쩍 꺼내며 쇼펜하우어가 서양언어예술계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괄목할만하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전했다. 물론 예까지 들어가며. 그래야 믿으니까 – Thomas Mann, Gide, Proust, Rilke, Musil, Kafka, Broch, Borges, Arno Schmidt, Thomas Bernhard  그리고 Beckett 등등. 그래 놓고 가만 그의 눈치를 살피니 쪼께 신이 나는 듯 보였다. 그래 이왕 내친 김에 몇 마디 더 던져 주었다:
- 토마스 만은 쇼펜하우어의 전체 작품 세계를 철학적이라기 보다는 예술적인 쌓음의 구조로 그렸다.
- 카프카는 쇼펜하우어를 언어의 천재로 여겼다.
- 베케트는 쇼펜하우어를 알고 난 후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다.
등등.
그리고 하나 더 – 어쩌면 헤겔 역시 자신의 미학연구에 있어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마지막 말에 그 일본 쇼펜하우어 철학회 회장은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그러더만 식사 후 자기가 차를 살 터이니 말을 좀 더 나누자고 조르다시피 했다. 그래 여비서와 합의한 후 그 날 오후 도서관 일을 다른 친구에게 맡기고 나는 그 일본사람에게 신바람을 불어넣는 일에 매달렸다.

음악철학에 있어 쇼펜하우어는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봉이다 하는 내 주장에 그 날 저녁 맥주까지 거나하게 취할 정도로, 물론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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