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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헤겔산책(3)-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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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8-05 00:27 조회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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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게 연역법이 그의 철학적 방법론을 대변하는 대명사의 역할을 맡는다면 헤겔의 철학적 방법론의 대명사는 변증법이다. 따라서 변증법에 대한 이해는 헤겔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충분조건은 아니라 해도, 필수조건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달리 말하자면 변증법을 이해했다고 해서 헤겔철학을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변증법에 대한 이해없이는 헤겔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물론 칸트에 있어 연역법이 차지하는 위치에도 걸맞는 말이다.

그럼 변증법이란 대체 무엇인가? 귀 떨어지고 처음으로 이 소리를 들었을 때가 언제였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최소한 적지 아니 아리송했다는 기억은 어렴풋이나마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변증이란 말을 그 전엔 듣도보도 못했으니 말이다. 변증, 한자로 辨證이라 쓰던데, 뒤의 증이야 증명하다 등에서 엿보는 뜻인데, 그럼 앞의 변은? 글자 그대로의 뜻은 나누고 밝힌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리나 개념을 구별하고 분석하여 그 뜻을 명백히 하는 생각의 움직임을 지칭하는 辨으로 이해했다. 근데 사실 이 또한 아리송한 말에 불과하다. 꽤나 일반적인 설명이니 말이다. 구체적으로 그럼 어떻게 나누고 따라서 어떠한 모습으로 그 뜻이 밝혀지는가 하는 과정이 눈에 들어와야 아하 그렇군 하게 될 게 아닌가?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러한 어원적 설명이 피할 수 없는 한계는 독일어의 Dialektik 역시 마차가지였다. ‘대화의 기술’이란 뜻이니 더 이상 캐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근데 사실 이런 식으로 철학적 개념에 접근하는 그 자체가 멍청한 짓이다. 단어나 개념의 어원적 뜻이 그 철학적 쓰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면 철학함보다 더 쉬운 공부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문제는 그러한 개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고 쓰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중요한 철학적 개념들의 번역에 있어 원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는 옮김이 중요하지만 그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들의 쓰임새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더 중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변증법 하면 지금도 퍼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정반합(正反合). 누가 A라는 주장을 펼치면 이에 반대되는 B라는 주장으로 받아치고 이러는 와중에 C라는 A와 B를 한꺼번에 무마시키는 주장으로 마무리를 짓는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이후 계속 더 이어진다는 부언과 함께. 어찌 보면 딩-동-댕식 주장이다. 깔끔하니 좋은 그런 모습 말이다. 헤겔이 어떻게 역사를 이해했으며 서양 예술사를 이해했는가를 살펴보면 사실 이러한 외형적 모습에 걸맞는, 이를테면 착착착 진행되는 순서를 밟는다. 너무 깔끔해서 그 사실 여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허나 조금만 더 속을 파고들어가다 보면 그렇게 깔끔하지만은 않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이해력도 이에 한몫을 한다 본다만, 위와 같은 외형적 변동의 모습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각의 움직임은 때론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답답함에 견줄 수도 있을 게다. 정상을 올라가는 데 이미 어느 정도 닦여진 길을 안내하는 표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그래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원칙이다. 그 꿈틀거리는 정반합의 움직임 속에서 제대로 된 길을 잃지 않고 걷고자 함에 필수불가결한 일종의 이끄는 동아줄, 무엇일까? 자기 속에서 자기가 아닌 것과 화해된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철학적 시각이다.

예를 들어 사랑 말이다. 사랑으로 감쌀 수 있는 관계의 총체 속에서 변증법을 엿볼 수 있다. 갑돌이가 갑순이를 사랑한다면 우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바탕 위에서 그 관계가 엮어진다. 단지 갑순이를 사랑하기에 갑돌이는 이전 마냥 자기 자신 속에만 머물 수 없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아집의 껍질을 박차고 나가 갑순이 속으로 들어가며 자신을 잊는 순간 그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빛을 보이리라. 허나 갑돌이는 결코 갑순이가 아니다. 오히려 갑순이에의 사랑 속에서 갑돌이는 갑순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다시금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 때의 갑돌이는 갑순이를 사랑하기 이전의 갑돌이가 아니다. 결국 사랑 속에서의 갑돌이는 갑돌이가 아니면서 동시에 갑돌이인 셈이다. 이렇듯 사랑 속에서 펼쳐지는 갑돌이와 갑순이와의 관계는 위에서 내비친 ‘자기 속에서 자기가 아닌 것과 화해된 스스로의 모습’을 번득이고 있다. 갑돌이를 향한 갑순이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의 구조적 모습을 띄고 있으리라.

헤겔은 나아가 이러한 모습에서 삶 그 자체를 이해하는 기본적 방법론을 발견했다고 여겼다. 즉 사랑이 가르치는 변증법은 삶의 구석구석에서 적용된다고 생각했던 게다. 이러한 변증법을 통해 삶을 하나의 총체적 통일체로 바라보았을 때 우리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 바로 헤겔이 말하는 ‘절대자’ 내지는 ‘절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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