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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비트겐슈타인-일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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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16 12:13 조회2,941

본문

1.
“나는 내가 치통을 가졌음을 안다”는 말은 헛소리다. “나는 치통을 가졌다”로 끝낼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안다”라는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앎에 일말의 의심이 가능할 때 그 의미가 있는 바, 치통을 가진 경우엔 이러한 일말의 의심을 허용치 않는다. 그대로 직접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치통을 가졌음을 안다”는 당연 말이 된다.

2.
우리말로는 “나 치통 있어” 한다. 큰 차이는 없겠다.

3.
“너 확실해, 치통 가진 것?” 웃기는 질문 아닌가? 아니면 치통과 두통이 섞일 수 있으니, 혹시 두통 아니냐는 말이라면 몰라도. 허나 이는 여기서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고통을 가짐’이라는 사실과 이 사실을 ‘앎’과의 문법적 상관 관계다.

4.
일인칭인 ‘나’한테 한정되어 사용되는 ‘치통 있음’과 ‘이를 앎’은 이 앎에 잘못이 있을 수 없으므로 불필요한 군더더기에 불과한 앎이다. 아니 ‘안다’는 말이다.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말하는 ‘안다’라는 말에 그 의미가 있을 수 있지, 틀릴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에, 즉 ‘내가 치통을 가졌다’는 사실과 ‘내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는 사이에 아무런 중간 매개체 없이 직접적인 연결이 될 경우 무엇 때문에 두 번째 문장을 덧붙이냐 따지는 말이다. 일반 문법적으로 틀리지는 않았으나,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그 녀가 치통을 가졌음을 안다’는 다른 경우다. 이러한 앎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분명 어떠한 경로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즉 위의 매개체 없는 직접성이 이 경우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내 그 녀의 아파하는 몸짓을 보았다든지 - 물론 이를 잘못 해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 아니면 그 녀가 내게 사전에 말했다든지 - 물론 그 녀가 거짓말 했을 수도 있다 -의 경로를 통해서 말이다.

5.
비트겐슈타인은 일인칭 대명사 >>나<<에 두 가지 상이한 사용법을 제시한다:
객관적 사용과 주관적 사용이 그것이다.
객관적 사용의 예:
“내 팔이 부러졌다.”
“나는 3cm 컸다.”
“나는 이마에 혹을 달았다.“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흩날린다.”

주관적 사용의 예:
“나는 그러저러 한 것을 본다.”
“나는 그러저러 한 것을 듣는다.”
“나는 내 팔을 들어보고자 시도한다.”
“나는 비가 오리라 생각한다.”
“나는 치통을 가졌다.”

보고 듣고 시도하고 생각하고 통증을 가진 주어로서의 >>나<<를 주관적 사용이라 명명한다. 왜 주관적 사용(Subjektgebrauch)라 했을까? 그 >>나<<가 주어로서만, 대상(Objekt)으로서는 사용될 수 없는 경우이기 때문인 듯하다.
단지 비트겐슈타인은 나름대로 이에 결정적인 구분의 잣대를 제시한다. 위의 객관적 사용에 있어서 그 문장들의 잘잘못이 가려질 수 있다는, 즉 잘못 말해지는 가능성을 내포한 문장들이 바로 ‘나’의 객관적 사용 문장들이라는 소리다. 물론 주관적 사용에는 이러한 die Moeglichkeit des Irrtums, 즉 오류의 가능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위의 주관적 사용의 예 문장에서 비트겐슈타인이 그러저러(so-und-so)라 표현함은 의도적이었다 보인다. 본다는 행동에 있어 보이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아니라 바로 이 보는 주어에 초점을 맞춘다는 강조의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그래 주관적 사용이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철학적 문제<<로 부상되는가?
철학함이 우리의 일상 생활 언어의 사용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고찰이라 할 수 있는바, 이를 좀 더 철저히 규명하고자 하는 작업의 일부인 셈이다. 한 단어의 실제로 어찌 사용되고 있는가에 바로 그 단어의 의미가 결정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말의 의미를 좀 더 확실하 알자는 단순한 주장이기도 하고. 즉 >>나<<라는 단어가 일상 생활에서 실제 어찌 사용되고 있는가를 살펴 보는 철학함이다. 이리 하다 보니 잘못된 의미, 즉 잘못된 사용의 예들이 발견되고 이를 시정해 나가는 작업 또한 철학적 작업이라는 소리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람들 상호간의 이해가 증진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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