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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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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08-03 00:59 조회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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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시로 가던 버스 안에서는, 누군가가 점심으로 보리밥이나 고구마를 먹었던 양, 끊임없이 방귀를 뀌어대서, 밀폐된 그 곳은 방귀냄새로 꽉 찼었다.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는 기사 아저씨가 열나는 체질이었는지, 행여나 잔뜩 막힌 고속도로에서 심장에 불이 나 죽을까봐 그랬는지 차내의 실내에어컨을 너무 과도하게 틀어서, 머리 위에 있는 에어컨의 단추를 아무리 잠궈도 틈으로 자꾸만 냉기가 스며들었다.

난 추운 건 딱 질색이다. 더운 건 참지만 추운 건 참지 못한다. 가디건을 꺼내 입었다. 맨 발이 시렵다. 가방에서 잠옷을 꺼내 발을 쌌다. “아저씨, 제발 그것 좀 줄여줘요!!” 몇 번이나 나가서 말하고 싶었지만 다른 이들은 여름의 그 냉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참았다. 어휴, 추워... 어깨나 팔을 쓰다듬으며, 자꾸 쓰다듬으며 난 중얼거렸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그이다. 어디냐고 영어로 묻는다. 흠..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대꾸하며 나도 초행이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그저 길 위에 있다고만 대답한다. 알았어.. 그가 조금 삐져 전화를 끊는다.

난 늘 어딨는지 모르겠다. 지리적인 감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니, 기실은 지리적 감각이 없어 난 길치다. 뭔들 아니랴. 문득 문득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가고자 하던 길이 여기가 맞는지 회의한다. 의심한다. 늘 자신이 없다. 아니 처음은 늘 자신에 차있다. 거의 언제나 확고한 자신감에 차서 일을 저지른다. 이 길이 맞아! 몇 미터나 몇 킬로쯤 왔을까.. 불안하게 두리번거린다. 늘 나는 낯선 길에 서서 눈을 아주 크게 뜨고 주위를 살피며 스스로 묻고만 있다. 그런 느낌이다. 난 지금 어디에 서있지?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그대가 선 곳이 어딘지, 그리고 회의하지 않고 굳게 확신하는지. 이 길 계속 걷다 보면 반드시 원하는 대답이 나오리라... 그렇게 그대들 이마에 주름 만들어 의심하지 않고..


내 집에 가까운 곳, 그이에게 전화한다. 굳이 나오고 싶다면 여긴 아마 어디인듯 하니 시간에 맞춰 나오시라 전한다.

차에서 내리자, 작열하는 햇살이 몸을 찌른다. 가디건을 벗어 손에 들고 그이에게 달려간다. 멀리서 내게 손을 흔든다. 옆에 도련님도 계신다. 그이의 목덜미를 안고 뽀뽀를 하며 말한다. 자갸, 나 많이 기다렸어? 어휴, 저리 가, 징그러워... 그러거나 말거나 거절 당하는데엔 아주 익숙해 있다. 난 상심하지 않는다.

아침도 굶고, 점심으론 휴게실에서 마신 커피가 전부다. 엄청나게 배가 고파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어서 가세.. 어서 가서 밥 먹세... 오후 3시. 집에 있는 네 명의 이씨 가족은 점심도 먹지 않고 날 기다렸단다. 흠.. 부랴부랴 밥해서, 밥을 먹고 샤워한 후 밤 10시가 다 되도록 잠만 잤다... 딸의 여행길을 준비해 주어야 하는데 난 배부른 돼지처럼 베개를 껴안고 잠만 잤다.


조금도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얼렁뚱땅 약속한대로 난 삼부작으로 글을 올린다. 그이는 어젠 통닭으로 유혹하더니 오늘은 맥주와 오징어를 두고 유혹한다. 어서 가서 오징어에 맥주를 마시며 딸과 이별해야겠다.. 벌써 한 시가 가깝군..

안녕히 주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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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나디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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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라는 인사는 아까 대낮에 읽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불면의 밤을 두들겨 패고있네요. 네시 반.
하릴없이 뒤적이다 성기 사건에 대해 주절거려보고..
본문과 전혀 관계없는 잡담이었습니다. 휴..


가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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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 여행을 떠나는 삐를 배웅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엄마를 모시고 다시 다른 길로 나설겁니다. 그리고 아마 핑계삼아 딸을 보낸 후 우리도 며칠, 여행을 떠납니다.
엄마의 연락을 기다리며 베리에 접속했습니다.
나디아님, 그 밤에 뿅~ 튕겨져 나가서는 아무리 다시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더군요.
혹시 그 날 열받으셔서 불면증이 다시 도진건 아니겠지요?^^

뭐 다들 본문과 관계없는 이야기들을 하시더라구요. 그게 악행은 아니지요..

후두둑 새벽에 비가 긋더니 아침은 아주 맑습니다. 대기 속에는 어제 마저 쏟아지지 못한 습기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뭔가 교묘하게 사람을 자극시키는 날씨입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네 속의 불씨를 꺼! 이 습기 가득한 여름, 그 불씨가 널 더 불쾌하게 만들거야.
하지만 난, 음, 그런 불씨 하나 내 속에 품어 봤으면..


도보님의 댓글

도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정말 힘드셨겠어요.
추위를 심하게 타시는 듯 한데...
근데 아마 그 버스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가을님과 같은 고통을 느끼신 분이 계셨을 것 같네요.
말씀 하시지.
어젠 번개와 함께 비가오더니 오늘은 그냥 흐리기만 합니다.
덥기도하고...


가을님의 댓글

가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흐흐.. 도보님.
그대가 산책하자고 했던 이유가, 가디건까지 걸치고도 "아이, 추워, 아이 추워..."라고 자꾸만 혼잣말 해서였지요?
네, 추위를 잘타요. 한 여름의 한기.

고속도로에서 전, 소 등을 타고 내린다는 여름의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휴..
그리고 K시로 가는 표지판을 보면서 그이에게 님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도보님께 다시 인사를 전합니다.
 


도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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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개인 적인 이야긴데...
사진을 올리라는 주문이 있어서 말인데요.
아주 겁없는 요구다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자 분들은 성형외과로 저희 사진을 들고 갈 것 같고,
남자분들, 커플있으신 분들은 깨지실 테고, 없으신 분들은 평생 눈만 높아 지셔서 짝을 못 만나실 것 같은데^^
물론 이런 이야기는 팬님이 하셔야 어울리시겠지만, 그래도 해볼랍니다.emoticon_017


팬님의 댓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팬교의 영향이 아주 크군요.  마치 제가 '팬 바이러스'를 살포한 느낌입니다. 
책임자로서, 베리가족들에게 경고합니다.

정말 외모에 자신이 있는 분들만, 이 위험한 '팬 바이러스'를 접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이 있다면, 저처럼 사진을 공개하시기 바랍니다.emoticon_144

사진 공개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또 다른 적절한 바이러스를 권합니다.  외모에 자신이 없지만, 그런대로 세상살기에는 불편함이 없는 정도.... 인 분들은 '자유로니 바이러스',  외모가 좀 치명적으로 상처받으신 분들은.... '가을 바이러스' 등등...  도보님과 가을님은 아마도 서로의 실물을 확인하시고는 충격들이 크신 모양입니다..... 안타깝습니다.


가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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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님.
님은 저와 아주 친하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외모가 치명적으로 상처 받으신 분"이란.. 그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모욕적으로 받아 들일 수도 있다고, 특히나 저 같이 삐지기 좋아하는,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는 본성적으로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은 정말 치명적으로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외모가 아니라 님의 말에.
그리고 안타까워 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상처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쁘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님과 같이 외모에 자신있어 사진도 과감하게 올리시는 분은  이해하지 못할 단순한 갑옷 같은 것이 있어서, 타자의 멋진 외모의 화살은 쉽게 가슴을 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팬바이러스. 잠시 감염되어 있었는데, 곧 해독되었습니다. 도보님은 어쩌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 얼굴 보지 않고 이야기 하기 때문에 표정을 아셔야지 더 이해하시기 쉬울 것 같아 팬님께 제 표정을 말씀 드립니다. 글 쓰면서 한 손으로는 새끼 손가락으로 코를 긁고 있는 표정입니다. 아님 발바닥을 긁거나, 득득.. 심드렁하니 밖의 매미 소리에 귀도 기울이면서..^^ 


도보님의 댓글

도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생각해봤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베리에 들어와서 생긴걸까 아님 늘 그랬던가...하는
결론은 늘 그랬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칭찬 제가 스스로 하겠다고,
그래서 자신 있는 삶을 꾸려 보겠노라고...
하여 팬님의 바이러스와는 무관한듯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유로니 바이러스가 살기엔 더 편하지 않을까요?
외모보단 마음으로^^emoticon_017


가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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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팬님, 그렇게 말해 놓고나니 비록 농담이었지만, 그리고 그거 아시리라 믿지만.. 계속 마음이 편하지 않더군요... 죄송합니다. 꾸벅(_ _)
한 쪽에는 일이 놓여 있는데, 자꾸 집중되지 않아, 그 이유가 혹시 함부로 올려둔 제 댓글 때문인가 싶어서.. 이렇게 사과하고 나면 더 마음이 편할까 싶어서, 이기적인 사과 드립니다.
.....
혹 마음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이건 진심입니다. 비이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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