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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새로운 진보는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 –"진보"와 결별한 진보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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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8-05 09:02 조회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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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도 젊어져야 합니다. (...) 진보정당은 저 쉰 세대들이 좌초한 곳에서 다시 일어나 과감하고 선명하게 '진보'의 길을 가야 합니다."
- 진중권 (https://www.facebook.com/jungkwon.chin/posts/3234297656630522)


문제는 그 "선명" 한 진보의 길 같은 것이 딱히 없다는 거 아닐까요. 특히나 '젊은' 세대에게는 더더욱. 586 세대가 젊을 적에는 서구사회로부터 유래한 여러 사상들이 역동적으로 수용되고 활용되는 그런 시대적 흐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딱히 없습니다. 진보가 뭐냐고 십, 이십년 전에 물었다면 대략적인 대답이 가능했을 겁니다. 맑시즘-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던 이들이 빨갱이 사냥 프레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명명이라는 설명부터 인권-PC를 핵심으로 하는 리버럴한 운동을 강조하는 답변까지, 그 안에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다고 해도 크게 보아 아무튼 어떤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진보가 뭐죠? 586이 남겨놓은 틀 안에 들어간 극소수의 젊은이들을 제외하면 여기에 이렇다할 대답을 내놓는 젊은이도 없고, 애초에 이 질문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인권-PC 운동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만 의존한 정치는 이미 그 원조격인 동네들에서도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젊은 세대에게 정치적 파토스 같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집값 안정을 바라는 마음, 일자리 얻기가 좀더 쉬웠으면 좋겠다는 마음, 법적으로 주어진 휴가는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추행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임금이 좀더 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 월세가 좀 내렸으면 좋겠다는 마음 등등등, 인간 사회가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들을 정치적 파토스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파토스에 응답하는 정치적 흐름이 나타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흐름이 꼭 진보라는 이름 아래서 출현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진보라는 간판을 고집하면서 진보를 개혁하자거나 진보에 젊은 피를 수혈하자거나 하는 방향으로 가기 보다는 아예 진보라는 간판을 버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진보라는 이름은 현재의 오래 고여 썩어버린 오팔륙의 패거리 정치 문화를 연상케 하는 부작용도 다소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PC도 중요하고, 여기에 반발하는 이들 중에는 구제할 여지 없는 일베충 류의 혐오병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에 너무 치중해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데에 지나치게 골몰하거나 혹은 꼭 필요해서 하더라도 기분을 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꾸짖는 걸 자제하면서 동시에 옛 맑스주의의 좋은 점을 계승하여 경제적인 문제 –저는 이게 정치의 본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인 차원도 정치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곳간에서 인심난다' 는 격언에 따르는 종속적인 것임이 오늘날 가난한 동유럽 지역과 독일 내의 경우 구 동독 지역에서 반인권적인 우파적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는 것으로 확연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하고요– 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런 정치적 움직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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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chthimmel님의 댓글

nachthimm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진중권씨를 서두로 쓰셔서 건너 뛸까 하다가 그것도 선입견이라 생각해서 마음을 열고 읽어 보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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