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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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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으로 검색 01-03-12 10:34 조회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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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01 (02:17) 우리모두
고요한 평화 (winter40@netian.com) Access : 116 , Lines : 15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들

일곱살 때, 아버지께서 아픈 나를 업고 나가 언니, 오빠들 몰래 사 주셨던 카스테라. 생각하면 눈물나는 그 비쌌던 빵.

초등학교 3학년의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내 얼굴을 머플러로 꽁꽁 싸맨 다음, 아버지께서 입에 넣어 주셨던 눈깔 사탕 하나. 30분 등교길을 녹여 주었던 그 붉은 사탕 한 알.

청소당번, 그리고 한 반에 너댓 명씩 있던 고아원 아이들에게만 나누어주던 옥수수빵.

외풍이 심해 물그릇의 물이 얼던 방, 6남매가 한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다가 가위바위보에 진 누군가가 밤늦게 끓여내온 김치국밥. 그 속의 굵은 멸치 몇 마리.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큰 맘 먹고 담아 주셨던 도시락 반찬, 오징어 껍질 조림.

적쇠에 얹어 연탄불에다 구운 꽁치. 둥근 상 위에 아버지가 갖고 오신 채점 끝난 시험지를 식구 수대로 늘어 놓고 그 위에 한 마리씩 공평하게 나누어 받아 먹던 특별한 사랑.

빚에 쪼들려 어머니가 시작한 구멍가게. 끝내 팔지 못해 마지막 순간 우리 밥상에 오르던 콤콤해진 갈치, 겉이 끈적끈적해진 덴뿌라, 속이 허연 오이, 시든 참외. 우리를 한 인간으로 성장시킨 궁핍의 단백질, 통찰의 비타민.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은, 그러나 다시는 맛보지 못할 유년의 그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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