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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설 어떤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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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균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02-01-16 23:35 조회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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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싸움


싸움이 시작되었다
승부는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되었다
심판들은 심드렁했고 도박사들은 돈을 걸지 않았다
영문모르는 관객들만, 그것도 조금 몰려들었을 뿐이다
무언가 음모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승부는 요행을 바랄 수도 없게 결정되어 있었다
그는 패자로
그의 상대는 승자로
싸움은 음모대로 진행되었다
그는, 그의 몸은 상대의 무지막지한 주먹에 수없이 난타당했

심판은 팔짱낀 채 서 있었다
모든 싸움이 그렇듯이 이 싸움 또한 페어하지 않았다
승부는 의심할 여지없이 명확해 보였다
(이 순간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다만 승자와 패자만 바뀔 뿐이다)
관중석에서는 이따금 안타까운, 그리고 무지한 탄성이 신음처
럼 들렸다
마침내 싸움이 끝나고 그는 예정대로 패배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싸운 것일까
패배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패배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무튼 그는 의식불명인 상태로 들것에 실려 나갔다

다음날 신문엔 승자에 관한 기사가 큼지막하게 났다
아무도 더 이상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다만 한 우매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
했다고 한다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의 전언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니 역사는 아직
의식불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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