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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어느 방앗간이 들려주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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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0-11 06:10 조회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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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이고 과시적이고 즉물적이며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서울의 간판들과 달리,
독일의 간판들은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조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일에 놀러 온 대학 동기가 레겐스부르크에서 간판 사진들을 참 많이 찍었다.
이 간판은 내가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친구의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귀를 기울였고,
간판이 들려주던 이야기를 나는 다시 친구에게 전해주었다.

Müller(뮐러)는 재미없게 번역하면 '제분업자'란 뜻,
나는 그보다는 '방앗간 주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방앗간의 벽으로부터 식물의 줄기가 아름다운 덩쿨으로 뻗어가고,
그 줄기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가슴벅찬 선물처럼 리본을 맨,
수확의 계절에 추수한 황금빛 곡식들,
그들은 Müller라는 단어 옆의 풍차 방앗간에서 밀가루로 거듭난다.

시선은 교차되어 가로 놓인 두 대의 채로 옮겨진다.
밀가루는 인간의 신성한 노동과 땀으로 반죽되고,
마침내 일용할 양식, 황금빛 프레첼으로 완성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한 조각 빵에는
자연의 네 계절을 거친 후에야 거두어지는 무르익음이 베어있다.

이 간판은 이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은 소박한 독일의 빵,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그 담백한 육체를
내 육체에 섞어 동화시킬 때에는,
간간이 이 모든 과정이 경건한 즐거움으로 밀려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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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비오는날님의 댓글

비오는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도보님과 동감입니다.  간판하나도 예술적인 그들이 아름답고 그것에 귀 기울이시는 유지원님의 감수성도 예술입니다.  태풍으로 긴장하고 사람들과의 쓸데없는 마찰로 심신을 낭비해서 가슴이 딱딱하게 얼어버렸다가 이제야 좀 녹아드는 듯 합니다.emoticon_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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