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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식] - 교육관련 소식을 전하는 곳입니다. 대개 새아리의 교육뉴스를 나중에 이곳으로 옮겨 모아두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비자를 연장받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스라니 이름으로 검색 조회 2,695회 작성일 02-01-15 06:49

본문

작성일 : 1999/06/17 [Time: 13:04] IP from 131.220.244.180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한지도 벌써 7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나는 지난 주에 다시 2년간 더 독일에 머물 수 있는 권리 아닌 권리를 얻은 것이다. 7년.. 그간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처음 이리로 건너와서 들은 말이 있다. 유학생들이 초면에 되도록 서로에게 묻지 않는 3가지 사항이 있는데 그 하나는 출신 대학이고 둘째는 학번이며 마지막으로 독일에 몇 년째 있는지라고 했다. 그 하나 나가 학벌이나 연령, 성취의 속도 등을 중시하는 사회의 단면을 금기란 형태로 역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 역시 유학 초기부터 독일 유학을 빠른 시일 내에 완료하고 '금의환향'하고 싶다는 욕망과 초조감에 시달려 왔다. 그런데 대학을 마치고 곧바로 독일로 유학을 온 나는 7년이 다 되어가도록 석사 과정도 마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이제 석사 논문과 시험 준비에 들어갔는데 대략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석사 과정에만 8년이 걸리는 셈이다. '한국에서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면 늦어도 3-4년이면 끝낼 수 있었을텐데...' 이건 소위 본전 생각이 나는 거다.

그래도 유학 초반에는 그럭저럭 진도가 나가는 편이었다. 주전공인 철학은 한 과목 수강을 전제 조건으로 중간시험까지를 면제받았고 몇 학기만에 필요한 본과정 세미나 수업 5개에 모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부전공이었다. 부전공으로 독문학을 택했는데, 부전공에서 들어야 하는 강의의 부담은 주전공과 똑같은 양이었다. 그래서 독문학사나 기초 독어학에서 시작해서 중간시험까지 대략 10개의 강의를 들었고, 중간시험 후에는 세미나 4개를 마치게 되었다. 결국 독일에 와서는 주전공보다 부전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한 셈이 되었다. 대학을 마치고 독일에 유학을 오겠다고 일찌감치 결정한 사람은 부전공 수업을 충분히 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 3년 전부터는 돈을 버는 일을 시작했다. 매주 2-3일 출근을 하니까 나머지 시간에 좀더 부지런히 공부를 하면 되겠지라고 안이하게 단순 산술을 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나면 몸이 피곤해 공부를 하기 어려웠고, 하루 간격으로 리듬이 끊겨 지속적으로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 3년 간은 거의 공부의 공백 기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공부와 일로 시간에 쫓기는 생활은 현재 '일생의 주제'로 여겨지는 철학적 테마를 하나 내게 선보였다.

얘기가 샜다. 독일 대학은 철저하게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학업 진도를 진행해 나가야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물론 나는 독일의 종합대학인 Universitaet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한정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전문대학인 Fachhochschule 학생이나 종합대학이라도 자연대나 공대 쪽은 또 조금 다를 수도 있다) 한 학기에 수업을 전혀 안 듣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학사 경고니 뭐니 하는 제도도 없다. 중앙집중적으로 기록되는 성적표 자체가 없으니까. 그저 각 수업에 참가할 때마다 모아둔 Schein(수업 증명서)에 성적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한 학기에 수업 증명서를 1장을 따던 10장을 따던 하나도 안 따던 대학에서는 관여를 하지 않는다.

그때 그때 통제하는 외부 장치가 결여되어 있으니까, 안일하게 생활하거나 공부의 맥을 놓치는 경우에는 한 없이 시간이 흐르게 마련이다. 독일 대학생들이 졸업(석사 학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14학기 정도라는 통계를 어디선가 본 일이 있다. 영국 학생들이 대충 23살 정도면 졸업하는데 비해 독일에서는 평균 26-27살이나 되어야 졸업을 한다니까 국가경쟁력에 큰 손실이라고 독일에서도 비판하는 소리가 없지 않다. 물론 이런 통계에는 공부에 뜻이 있다기보다는 대학 등록금도 없는데다가 대학생에게 많은 복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무작정 대학에 머물고 있는 잿밥파(?)가 평균을 크게 깍아 먹고 있긴 하다. 지난번 텔레비전에서 68세대 대학생들이 벌써 50학기 이상 대학에 등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다큐멘타리를 본 적도 있다. 이들은 '대학에의 망명'을 한 셈이다.

어쨌든 모든 것을 스스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자유로운 학문을 가능케 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전체적인 조망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 내가 걸려들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내가 대략 3-4학기 전에 대부분의 필요한 수업을 다 듣고 마지막으로 필요했던 수업은 중세독문학의 세미나였다. 나는 그리피우스라는 17세기 독일 작가에 대한 세미나를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에서 온 교환교수에게 듣고 리포트는 우편으로 이탈리아로 보냈다. 그런데 내가 리포트를 늦게 보낸데다가 이 교수가 바빠서 내 리포트를 다 읽고 필요한 Schein을 보내 준 것은 거의 두 학기가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그동안 철학에서 논문 주제로 결정한 부분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슬슬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우편으로 Schein을 받아서 독문과에서 다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나서 독문과에서 석사 시험 신청을 하려 했는데.. 맙소사 이렇게 멍청한 짓을... 그리피우스는 중세독문학이 아니라 근대독문학에 속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실수를 한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피우스의 작품은 명백히 중세독어가 아닌 근대독어로 씌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홀렸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겠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지난 학기에 다시 중세독문학 세미나에 참가해야 했고 결국 공부 일정으로 보면 몇 학기를 고스란히 허비한 셈이다. 대충 이런 식이다.

지난 주에는 외국인청에서 비자를 연장받았다. 그간 매년 1년씩 체류 허가를 연장받아왔던 나는 사실 이미 한달 전인 5월 초에 1년 기한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독일에 체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비자 연장을 위해서는 여권과 학생증, 40 마르크면 오케이였는데, 2년 전에 가니까 대학 철학과의 증명서를 떼어오라는 것이었다. 10학기 쯤이 넘어가니까 아마 외국인청에서도 내가 진짜 공부하느라 독일에 있는지 다른 짓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때는 철학과에서 학생 상담을 전담하고 있는 친절한 전임강사에게 증명서를 부탁할 수 있었는데, 그 증명서에는 내가 계속 수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략 4학기 정도면 졸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기재됐다. 졸업 예정 기한이 4학기로 되어 있으니까 작년에 비자를 연장받을 때는 당연히 그냥 넘어갔고, 올해 5월 초에 다시 외국인청에 갔더니 내 서류를 보고는 다시 증명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이번에는 교수 사인이 들어간 증명서를 가져오라는 엄포(?)와 함께.

그리고나서 5월 중순은 성령강림절 휴가로 학교가 쉬는 바람에 어물어물 넘기고 그 다음 주엔가 평소에 잘 알던 교수를 학교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교수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객원교수인데 내가 석사논문 주제로 잡고 있는 분야를 전공하고 있어서 수업도 한번 듣고 개인적으로 상담도 한 적이 있었다. 그 교수는 나의 비자 문제에 대해 듣고 나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내가 증명서 텍스트를 만들어 오면 사인을 해주겠다고 했다. 비자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되겠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지만 왠걸...

철학과 인터넷사이트에서 확인한 화요일의 교수 면담 시간에 갔더니 면담 시간은 전날이었단다. 인터넷 정보가 업데이트가 안돼 있었던 것이다. 이래 저래 비자 기간을 넘긴 것이 한달이 되어가니까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도시 외국인청에서 나를 포함해서 그 많은 Kim들을 담당하고 있는 그 사람은 한달 정도 기한을 넘긴 것에 대해서는 그리 까탈스럽게 굴지는 않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엄연히 불법 체류(?!)가 아닌가.

그래서 그 다음주 월요일에 제일 먼저 면담 시간에 달려갔더니 교수가 그동안 좀 생각을 해두었나 보다. 지난 4학기 동안 내가 그 교수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러한 증명서를 작성해 준다는 것은 마치 '불에다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하릴없이 돌아나오는데 드는 생각은 말인즉슨 틀리지 않으나 교수가 말을 바꾼 것 때문에 헛되이 2주나 기다렸다는 것이 화가 났다.

어쨌든 그러한 논리라면 내가 수업을 들은 교수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주에 독문과 교수를 찾아갔다. 그 교수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의 수업 하나에 들어왔다는 것은 증명해 줄 수 있지만 내가 언제 공부를 마칠지는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으니 그 부분은 철학과의 다른 교수에게 가라고 했다. 또 다시 도로아미타불. 이젠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가 공부를 언제 마칠지는 나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사실 그걸 어느 교수가 '증명'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외국인청은 그러한 증명서를 통해 정기적으로 나를 통제할 필요는 있을테니까 요구하는 것이고, 대학에서 아무도 그걸 작성해 줄 사람은 없는 것 같고... 은근히 부아도 치밀었다. 비자 연장이 안되면 에라 집으로나 돌아갈까보다. 가서 뭘 할지는 모르지만... 도대체 무슨 대학이라는데가 외국인 학생을 위해 이런 간단한 절차 하나 전담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안 되어 있어서 이렇게 이리저리 헤매게 만든단 말인가? 공부가 좀 길어지고는 있지만 나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유학을 와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이럴 때는 무언가 상당히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게다가 학생이 이미 포화 상태를 넘어서서 독문과에서는 수업 하나를 들으려면 추첨까지 해야 하는 등 삐걱거리며 굴러가는 독일 대학에 대해 그동안 쌓인 불만까지 한꺼번에 속에서 부글부글했다.

얘기가 너무 장황하고 신세 한탄조로 흘렀다.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이 됐다. 내가 거의 포기 상태에서 찾아간 철학과 한 교수는 매우 친절했다. 한 6학기쯤 전에 내가 막스 쉘러에 대한 강의를 들었던 그 교수는 청바지에다 꼭 애들 같은 그림이 찍힌 티셔츠나 입고, 쇼핑용 면 가방에 책을 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교수같지 않아 보이는 촌스런 교수다. 그 사람은 대뜸 "영어할 줄 아느냐"고 묻더니 "무슨 소리야 당연하지"라고 자문자답하고는 영어로 말을 건다. 내 독일어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영어는 벙어리 수준인데.. 어쨌든 그 교수는 컴퓨터가 집에 가야 있으니까 다음 날까지 증명서를 만들어 오겠다고 한다.

다음날 1시에 교수 연구실을 찾아갔더니 한 페이지 빽빽히 아예 작문을 해 두었다. 앞으로도 내 공부가 4학기 더 걸리는 이유를 논문 주제가 어려워서라고 덧붙여 놓았는가 하면, 자신의 강의에서 내가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그 때문에 석사 논문도 잘 쓸 것이라고 믿는다고 해놓았다. 나는 그 교수에게 리포트를 낸 적도 없으니 뒤의 얘기는 완전한 창작이다. 거기다가 외국인청 담당자에게 "헤어 킴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어 주십시요"라고 간절하게 청원까지 해두었다. 그 때의 고마움이란!

그 날은 목요일이라 외국인청이 오후에도 문을 열었다. 나는 그 길로 가서 비자 연장을 받았다. 그것도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2년이나. 이제부터 비자 연장 기간을 일괄적으로 2년으로 늘려준 건지 아니면 교수의 친절한 편지가 효과를 발휘해서 거기 적힌대로 4학기 공부할 시간을 허락해 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후자라고 믿고 싶어한다. 이 말을 들은 한 친구는 "그럼 난 교수 팔짱을 끼고 가야지. 그럼 독일 시민권이라도 줄지 모르겠다"고 농을 한다.

어제는 학생 식당에서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가 그 교수에게 포도주를 한 병 사가지고 가면 독일의 관례상 이상한 행동을 한게 되느냐고... 대답은 그리 비싸지 않은 포도주 한 병 정도는 무난한 감사 표시라고 한다. 7년이나 독일에서 산 나는 아직도 이런 사소한 일들을 잘 모르고 익숙치가 않다. 대학도 길거리도 때로는 마치 밀림처럼 느껴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밀림. 결국 그 속에서 떳떳하기 위한 길은 용기 외에는 없을진대. 그래서 난 친구들이 권고한 20 마르크 정도 가격의 스페인산 적포도주를 한 병 사들고 그 교수에게 인사를 갈거다. 2년 간 더 공부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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