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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식] - 교육관련 소식을 전하는 곳입니다. 대개 새아리의 교육뉴스를 나중에 이곳으로 옮겨 모아두고 있습니다.

[펌]독일에서 세미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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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으로 검색 조회 3,284회 작성일 02-01-11 07:15

본문

독일에서의 세미나수업

독일에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온 사람들인 경우 유학생활의 꽃은 박사논문 쓰는 것 다음으로 여러 전공세미나 수업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학부과정으로 유학을 온 사람이라 할 지라도 세미나에 참가하는 것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독일유학에 있어서 세미나수업이 갖는 중요성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연계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유학생활들을 하시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인문계의 경우 독일대학의 수업은 크게 대형강의실에서 몇백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강의방식과 조그만 세미나실에서 십수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방식으로 나뉘어진다. 학부생의 경우 두가지 종류의 수업에 모두 들어가야 하고, 박사과정생은 일반적으로 전공세미나수업에만 참가하면 된다.

문제는 독일에 유학 온 학생들 대부분이 세미나에 대해서는 들은 바도 거의 없거니와, 거기 참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지도 못한 채 세미나에 무턱대고 참가하여 크게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세미나 아닌 다른 엉뚱한 데(예를 들면 일반강의 청강) 더 재미를 붙여 유학생활을 아주 극단적인 장기전으로 펼쳐가면서도 자기가 얼마나 만만디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대규모 일반강의는 유학생들 입장에서 사실 크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특히 박사과정 유학생 같은 경우 그러한 강의는 시험을 볼 필요 없이 청강만 하면 되기 때문에, 그냥 할일 없이 앉아서 모르는 소리는 그냥 흘려 듣고 아는 소리는 좀 귀기울여 듣고 그렇게 노닥거리면서 들으면 된다. 게다가 독일대학교수들은 우리나라 교수들에 비해 유머감각들이 뛰어나고,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매우 쉽게 설명해주며, 강의내용도 이미 한국에서 학부시절 다 마스터한 유치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청강은 부담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유학생들 입장에서 매우 흥미롭기까지 할 정도이다.

하지만 세미나는 그냥 들어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독일인들 앞에서 발표도 해야 하고 교수나 박사과정생들에게서 질문도 받아야 하고 그들과 독일어로 토론도 하고 그래야 한다. 어학과정에서 "내가 만약 새라면, 하늘을 날아다닐텐데" 같은 독일어만 하다가 갑자기 저명한 독일교수와 날고기는 대학원생들 앞에서 난해한 전공용어로 열띤 공방전을 펼친다는 걸 상상해 보라. 만약 떠듬거리고 잘 못하게 되면 개인망신만 당하는 게 아니라 나라망신, 모교망신이고, 교수한테 초장부터 완전히 찍혀서 "넌 안되겠다 고향으로 돌아가라" 소리나 듣게 된다.

그렇다고 소위 박사과정이나 되가지고서 세미나에 안 들어갈 수도 없다. 지도교수 입장에서 볼 때 박사과정이나 되면서 세미나에도 안 들어오고 허구헌날 어학이나 붙잡고 있으면 능력은 물론이고 학문에 대한 열의 자체를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미나에 들어가긴 들어가되 발표는 안하고 그냥 참가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외국인 입장에서 안 그래도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누구나 하는 발표 자기 혼자만 빠지겠다고 해봐라. 동네축구에서 자기 혼자 공 못 차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개발신세나 되기 딱 알맞은 것이다.

거기다 독일유학 올 때 혹시 장학금 같은 거라도 받아서 온 사람이라면 꾸준히 학문적 업적을 내지 않을 경우 장학금이 끊긴다는 문제가 있다(그러니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장학금 같은 거 차라리 안받고 오는 것이 더 낫다). 따라서 아무리 어학실력이 불충분하고 독일사회에 적응이 안되었다고 할지라도 초장부터 죽기살기로 세미나에 달라붙지 않으면 당장 밥 굶고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여기서 보듯 이 세상엔 쉬운 게 없고 공짜도 있을 수 없다. 마치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 맨날 야단 먹어가며 야근하고 일 배우듯이 유학 초년생들도 그 정도의 고생은 해야지 유학생활 첫 관문을 돌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어렵다는 세미나 발표를 과연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되겠다. 나도 이제 막 세미나 하나 마친 주제에 뭐라고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일반적으로 다들 그렇게 말하듯 일단 발표문을 잘 쓰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냥 한두 페이지 쓰는 것으로는 안되고, 최소한 30페이지는 써야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말해진다.

그렇다고 무질서하게 아무 논문이나 막 갖다가 모자이크해서 30페이지를 채우면 안된다. 다른 학자들의 논의는 교수도 알고 애들도 알고 모두 빠삭하게 다 알고 있으니 자기가 또 되풀이해서 발표하면 욕 먹는다. 그냥 기존의 논의는 각주에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자기 독창적인 주장으로 30페이지를 채워야 한다.

그냥 소설 쓰듯이 주욱 쓰면 될 것 같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두세 페이지 쓰고 나니 밑천이 바닥났던 것 같다. 따라서 30페이지 발표문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600페이지의 논문과 주석서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야지 자기 하고 싶은 말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다.

독일애들도 발표문 쓸려면 거의 죽을 지경이다. 수업 끝나고 물어보니까 다들 세미나 앞두고 몇주일을 밤샘하며 발표문을 작성한다고 했다. 그래도 걔네들은 독일어가 모국어기 때문에 방대한 독일문헌을 독파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학생들은 독일논문 하루 10페이지도 제대로 못 읽어 절절 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할 때 독일대학 세미나발표문 하나 쓰는 것이 한국에서 석사논문 한편 쓰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워드실력을 미리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워드실력이 있으면 일단 구상이 완전히 잡히고 난 뒤에는 초스피드로 발표문을 작성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워드실력조차 독수리타법이라면 타자 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오자탈자 유의해야 하고 각주도 꼼꼼하게 달아야 하는데, 워드에 서툴다면 맨땅에 헤딩하는 거나 마찬가지 일이다.

또 골치 아픈 일은 발표문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독일친구 하나한테 부탁해서 교정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독일어엔 도사라고 할지라도 한국인이 구사하는 독일어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두덴 독일어대사전을 참조해가며 전치사 하나까지 정밀하게 다듬기를 수십차례나 해도, 독일친구에게 교정을 맡기면 고쳐야 할 곳이 열군데는 나온다. 고쳐야 할 곳은 어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똑같은 단어라도 어느 위치에 놓이는가에 따라 문장이 부드러워지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정을 다 보고 나면 교수님께 찾아가 발표문을 제출한다(비닐로 카바를 씌워서 갖다내라). 일단 발표문은 발표 1주일전에 교수에게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발표문 제출후 약 1주일 정도의 시간이 나게 마련이다. 내 경우를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나는 발표문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힘들어(거의 한달을 하루 3시간밖에 못잤다. 끼니는 거의 햄버거 콜라로만 때웠고 그것도 없으면 굶었다), 발표문 제출 이후 긴장이 풀린 나머지 한동안 비몽사몽으로 얼빠진 인간처럼 살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발표 자체에 또 준비가 필요하다.

독일에선 세미나 발표란 것이 한국에서처럼 자기 발표문 하나 그냥 줄줄 읽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발표하면 다들 지루해 하기 때문에 자기 발표문을 완전히 외워서 머리 속에 집어넣고 독일 애들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면서 배우가 연기하듯이 발표를 해야 한다. 그것도 몇분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약 50분 정도의 시간동안 혼자서 떠들어야 한다. 한국어로 그렇게 혼자 떠들라고 해도 어려운 노릇인데, 독일어로 그렇게 떠들어야 한다. 독일어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잘 외워지지도 않는다. 거기다 30페이지 분량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발음 강세 등에도 세심하게 신경써야 하고, 한 문장 안에서도 특히 강조해야 할 단어는 각별히 힘을 주어서 말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점까지 모두 감안해서 발표문을 외워야 한다. 정말 배우가 대사 외울 때 감정을 넣어서 외우는 것을 방불케 한다. 매우 힘든 일이지만, 독일유학생들은 모조리 의지의 한국인들이기 때문에 머리가 좋건 나쁘건 간에 진짜로 다들 외워서 발표한다. 군대가 따로 없다. 닥치면 다 하게 돼있는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외워서 발표하고 나면 독일애들 손으로 책상을 콩콩콩 찍으며 잘했다고 격려하고 교수님도 따뜻하게 칭찬해준다. 기분 좋은 것은 대개 한국학생이 발표를 하면 독일학생들은 그 긴 시간동안 수시로 메모까지 해가면서 대단히 집중을 해서 들어준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일단 코리아라는 낯선 나라에서 왔다는 놈이 독일어로 뭐라고 떠들어대는게 '신기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고, 질문 및 토론이라는 마지막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발표가 끝나고 나니 지도교수가 간단한 칭찬의 말을 해준 다음 곧바로 서너가지의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왔는데, 질문의 성격이 상당히 냉소적이고 비꼬는 어투여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지도교수는 단둘이 있을 때는 엄하다가도, 남들 보는 앞에서는 제자를 추켜주는 게 보통인데, 여기 독일은 정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내 옆에 앉아있던 다른 박사과정생들이 즉각 내 대신 답변해주며, 나의 주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예상되는 질문이었는데, 피곤한 나머지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것은 내 잘못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세미나 시간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내 발표전에 내 논문 전체를 면밀하게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유일한 존재, 지도교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상 독일대학의 세미나수업을 너무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만 설명을 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독일대학의 세미나는 힘든 만큼 즐거움도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내 경우 특히 세미나 기간동안 지도교수의 자택에서 점심 저녁 대접을 받으며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나, 여러 독일학생들과 독일 그리고 법학 전반에 관해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면 독일대학에서 세미나발표문 등을 작성하는 데 데스크탑보다 노트북컴퓨터가 얼마나 더 유용한가 하는 점이다. 노트북 컴퓨터가 있으면 굳이 각종 자료들을 복사할 필요도 없으며, 각 도서관에 돌아다니며 문헌 읽을 때마다 그때그때 중요한 내용들을 자기 나름으로 정리해서 노트북컴퓨터에 입력저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것이 방대하게 축적이 되면 그걸 짜깁기 해서 체계화시키고, 단락이 끝나는 곳마다 자기 코멘트를 요소요소 삽입시킨 후, 압축해서 정리하면 간단하게 발표문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자기 읽고 싶은 자료를 모조리 복사해서 갖다놓고 주욱 읽어내려간 다음, 나중에 한꺼번에 종합해서 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천재가 아닌 이상 한번 읽은 건 대개 금방 까먹게 마련이고, 나중에 자기 인용하고 싶은 구절을 찾으려 해도 어디에 붙어있는지 찾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더군다나 워드작업은 그때그때 해놓아야 편하지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서 하려면 굉장한 부담이 된다. 따라서 괜히 돈 아끼려다가 유학기간만 더 늘리지 말고, 노트북은 유학초기에 꼭 장만해놓으시라고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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