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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식] - 교육관련 소식을 전하는 곳입니다. 대개 새아리의 교육뉴스를 나중에 이곳으로 옮겨 모아두고 있습니다.

난 왜 여기서 공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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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일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0,857회 작성일 04-12-25 23:02

본문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아래의 토론들입니다만 그 글들이 아니더라도 이제 독일땅에서 체류한 지도 다 합쳐서 삼 년이 넘었으니 한 번쯤 '내가 왜 독일에 와서 공부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삼 년 밖에 안된 게 회고록 쓴다고 돌던지지 마삼)

제 주전공은 중세 독일 문학과 언어쪽입니다.(학과 정식 명칭을 한 번 쫙 불러볼까하다 참는다) 부전공은 중세사와 스칸디나비아학이구요. 스칸디나비아학은 딱히 북유럽 나라들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고 언어사적으로 옛날 독일어와 옛날 북유럽 언어들이 꽤 닮아있고 또 작품 소재 면에서도 중세 독일 문학과 북유럽 문학이 겹치는 게 많다보니 주전공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주전공이 현대가 아니라 중세 쪽인 건 예전에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있었을 때 들어본 중세 문학과 언어 관련 과목들이 재미있어서 였습니다. 독문학쪽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세 문학은 한국에 전공자도 별로 없고 한국 대학 독문과에서 제대로 배우기 힘듭니다. 서울대에 중세 독문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이 계시지만 저는 서울대생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전공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본고장인 독일어권 유학이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중세 독문학이라면 이 곳이 연구자도 많고 참고 서적도 많고 연구도 가장 활발합니다.(독일어권이 최고라는 거지 베를린이 최고라는 건 아닙니다. 베를린은 학생만 더럽게 많고 책은 별로 없고 개설되는 수업도 별로 없고 중얼중얼...) 한국 문학 관련으로는 한국이 최고고 일본 문학을 배우려면 일본에 가야 하듯이요. 그래서 저는 한국학을 공부하는 미국 학생이 한국으로 배우러 오고 스페인 문학사에 관심 있는 일본 학생이 스페인으로 배우러 가듯 독일로 배우러 왔습니다.

제 전공 분야는 독일이 최고입니다. 그렇다면 제 전공인 중세 독문학도 최고의 문학일까요? 그럴 리가요. 과학 기술이라면 수준의 앞서고 뒤서고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학에서는 어떤 시대 어떤 나라의 문학이 다른 시대 다른 나라의 문학보다 더 뛰어나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다들 자기 나라 고유의 언어로 자기 고유의 시대 상황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같은 시대, 같은 언어, 같은 장르의 문학 작품들이라면 어느 정도 통일된 기준으로 우열을 논할 수 있을 겁니다. 존나세와 투명 드래곤 중 어느 쪽이 더 걸작인가, 귀여니 님의 최고 걸작은 '그 놈은 멋있었다'인가 '늑대의 유혹'인가 등등. 하지만 귀여니 님과 셰익스피어를 놓고 우열을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셰익스피어가 귀여니 님만큼 자유자재로 이모티콘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 곧 셰익스피어가 가치 없는 작가라는 소리는 아닐테니까요. 제 전공인 중세 독문학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대부분의 중세 독일 서사시들은 같은 시대 프랑스 시인들의 표절작(...)에 불과하겠지만 그 시대와 오늘날은 표절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준으로 '중세 독일 문학은 중세 프랑스 문학보다 열등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솔직히 중세 프랑스의 크레티앙 드 트르와가 쓴 게 엔간한 같은 시대 독일 작가가 쓴 것보다 훨 재미나긴 합니다. -.-) 마찬가지로 중세 독문학과 옛날 한국 문학의 우열을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독일시에는 한국 시조의 글자수 맞추기 재미가 없고 한국 시조에는 독일 시의 각운 맞추는 재미가 없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독일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은 독일 문학이 최고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쩌다보니 독일 문학을 할 여건이 되서였고(외고를 나왔는데 당시 외고 독어과 출신이 독문과 가면 입시 가산점을 준다길래;;) 그래서 하다보니 재밌어서 였습니다.

그리고 전공과 관련된 제 야심이자 목표는 언젠가 전공 관련 웹사이트를 하나 여는 겁니다.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을 번역도 해보고 작가 소개도 하고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 독일 문학을 소개하는 게 꿈입니다. 왜 책을 내거나 강단에 서는 게 목표가 아니냐 하면 솔직히 돈 받고 팔아먹을만한 가치가 있을만한 책을 쓸 자신이 없고(뭐 어느 독지가가 자선사업하는 셈 치고 내준다면 고맙겠지만) 강단에 서자면 학위가 필수일텐데 제가 유학자금 떨어질 때까지 과연 학위를 따낼지도 확신이 안서고 등등 해서입니다. 웹사이트 만드는 거야 누가 자격 갖고 시비걸진 않을테니까요.(무책임한 표정으로 어깨 으쓱) 게다가 대학에서 점수 맞춰 지원서 쓴 학생들 가르치는 것보다는 웹사이트 만드는 게 진짜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널리 접촉하는 데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나름대로 제가 먹은만큼 토해내는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만약 제 활동을 통해 중세라든가 중세 문학 쪽에 막연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독일어도 모르고 유학갈 여건도 안되어 접할 수 없던 한국인들이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의 시를 즐길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유학의 본전은 뽑은 게 될겁니다. 혹은 제가 쓴 글을 읽고 사람들이 '야, 중세 독문학이란 거 되게 재미 없구나, 난 저거 전공안하길 정말 잘했다'하거는 깨달음을 얻거나 우연히 들른 입시생이 '난 독문과는 안가요'하고 다른 제 갈 길을 찾는다 해도 그건 그거대로 의미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라는 건 니 생각이고 니가 박사님 되어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고국의 부모님 생각은 다를걸)

그리고 저는 제 활동이 독일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게 어디 독일에 도움 되는 짓이냐고 따진다면 뭐 딱히 대답할 말은 없습니다만 만약에 한국에 유학온 어느 외국 학생이 한국 고전 문학을 배워서 자기 나라 말로 구운몽이니 황진이 시조니 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만든다면 한국 사람 입장에서 왠지 기특할 것 같지 않습니까? 물론 그 놈이 전공 실력이 형편없어서 오역이 난무하고 한국 문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키워준다면 그것은 대략 낭패스러운 일이지만 -.- 그래도 그 놈의 의도 하나는 기특한 거 아닙니까. 뭐 아님 말고.

저는 제가 독일에 체류하면서 배운 것들을(꼭 전공 관련 지식만 한정해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한국과 독일 양쪽 나라 모두를 위해 쓰고 싶습니다. 독일은 제게 있어 아무래도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고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이 나라의 언어를 좋아합니다.(적지 않은 유학생이 그렇듯 말은 못하고 읽기만 해서 문제지;;) 제가 이십년이 넘게 살았던 한국땅이 제게 의미있는 곳이듯 독일도 제게 의미있는 곳입니다. 저는 한국과 독일을 둘 다 열렬히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솔직히 한국이든 독일이든 전쟁나면 난 제 삼국으로 도망갈 거 같음;; 우리 증조 할아버지가 괜히 헛바람 들어서 독립 운동 한답시고 만주 갔다가 너무 추워서 도로 내려온 이후 무리하지 않는 것이 집안 가풍임) 두 나라 모두에게 애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한 친구를 좋아한다고 다른 친구에게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가 좋다고 아빠랑 안살겠다는 거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자랐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그 곳에 있고 제가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언어가 한국어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저의 애착이 더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독일에 대한 저의 애착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축구에 별 관심 없는 저지만 월드컵 열기에 휩쓸려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 경기는 봤습니다. 연장전 때 느꼈던 기분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런 경기라면 져도 좋다'라는 기분요. 축구에 관심이 없는 저에게까지 선수들의 열정이 전해져서 저만큼 뛰었으니 지더라도 그건 불명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영광이라는 게 꼭 상대를 꺾어서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잘나가면 좋은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 꼭 다른 나라의 패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PISA에서 한국 학생들이 다시 좋은 성적을 거둔 건 기쁜 일이었지만 독일 학생들이 지난 번 시험보다 더 성적이 나아진 것도 제겐 축하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가장 좋은 상황은 전세계 학생들이 국적과 계층과 성별에 상관없이 제대로 교육 받을 기회를 얻는 거겠죠. 한국 학생들 혼자 똑똑해서 1등하고 나머지 국가 아이들이 빌빌거리는 것보다는 한국이 그깟 1등 안해도 좋으니까(사실 이번 PISA에서는 한국이 1등한 분야는 없었죠 -.-) 모든 국가 학생들이 고루 좋은 성적 거두는 게 제게는 더 좋은 일입니다.(나중에 내 자식이 꼭 한국 땅에서 학교다닌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 애가 다른 나라서 학교 다니다 글도 제대로 못 읽는 바보 되면 그거 웬 낭패).

간만에 자게판에 장타 테러 감행, 으하하. ^^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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