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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식] - 교육관련 소식을 전하는 곳입니다. 대개 새아리의 교육뉴스를 나중에 이곳으로 옮겨 모아두고 있습니다.

10월 5일 Wiesbaden 등록금 도입 반대 집회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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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태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8,834회 작성일 06-10-12 21:23

본문

지난 4개월간의 가열찬 등록금 도입 반대의 무드가 차츰 시드는 가을날 나는 몇몇의 한국인 동지들과 함께 아마도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헤센에서의 등록금 반대, 사회주의 정책철폐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 나로서는 지난 7월 마르부르크에서 열린 학생주축의 데모에 가담한 이래 두 번째의 데모참가였다.  지금까지의 학생들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들로부터 본 헤센정부의 등록금 관련 정책의 문제점을 신랄히 비판하고 반대하는 직간접적인 행동들에 의해서 이미 주정부는 매우 완화된 수정안을 내놓아서 오늘 데모에 참여한 자들의 수와 규모는 그리 대단치가 않았다. 어림짐작으로 볼 때에 약 300에서 400명 선.
아마 이들이야말로 타협을 불허하는 등록금 제도의 본질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의 강경노선의 사람들일 것이다. 마르부르크의 등반사 조직의 기본입장도 독일정책의 근간이라고 할 무상교육을 근본적으로 지지하는 노선을 견지하기 때문에 그간의 수정안 정도로 만족하고 우리의 할 일을 마쳤다고 보지 않았던 지라 마지막까지 우리의 기본입장을 지키고 우리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다고 생각이 된다.

데모시작이 이른 오전에 예정되어 있어서 마르부르크에서 7시 36분발 기차를 타야 했다. 개인적으로 새벽에 일어나야 했던 지라 힘든 출발이었다. 비스바덴에 도착한 시점은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로 기억이 된다. 이미 운집한 학생 데모대들이 역으로부터 주정부가 자리하고 있는 방향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곳곳에 경찰차량들과 제복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이동 중에 곧잘 삼삼오오로 나뉘어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정부청사까지 가는 이동간에는 그리 데모라 할 양태는 보이지 않았다. 정부청사 앞에는 넓직한 광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데모를 이끄는 임원들이 산발적으로 금일의 집회에 관해서 간략히 브리핑을 하였다. 이후부터 아마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데모대는 정부청사 건물앞에서 한동안 구호를 외치고 헤센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소리들을 내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데모대가 넘어서서는 안될 구역을 정해놓고 바리케이드를 쳐놓은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후 데모대는 정부청사를 지나서 주변의 도심으로 이동을 했다. 대략 반경 500미터 정도를 돌면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래서 행진간에는 대중교통운행이 지체되었다. 그러나 그리 불편해하는 사람이나 비판하거나 항의하는 시민들은 없었다.

주정부앞에서 정지된 상태에서 구호와 데모가를 부르는 방식 그리고 이후 도심을 순회하면서 동일하게 시위하는 방식이 계속 반복이 되면서 금일의 데모가 진행이 되었다. 12시를 전후해서 한차례 데모열기가 드세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정확히 관찰이 되지는 않았는데, 정부청사건물의 유리창을 통해서 아마도 요직에 있는 인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를 목격한 시위대 중의 일부가 이때에 감정적으로 흥분한 것 같았다. 그래서 한 학생이 바리케이드를 넘어가서 데모열기를 더욱 부채질 했다. 구호와 데모가가 좀더 강력해지고, 그때까지 다소 관망하는듯 긴장을 풀고 있던 경찰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통제선을 넘어간 학생은 연행이 된 듯이 보였고, 학생들은 풀어주라고 항의했다. 아마 곧 풀려난 것 같다.

이렇게 가열된 분위기가 되자 시위대는 다시 도심으로 나가서 강력히 외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는 데모가 오래 지속될 분위기였다. 도심으로 이동한 데모대가 돌아오자 약 13시에서 14시사이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 한국인 참가자들은 이쯤에서 금일의 참가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데모가 지속될 것으로는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데에 다 동의했다.

난 이때쯤에 심신이 너무도 피곤해서 그 집결지였던 광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지쳤던지라 그저 쉬고 싶었기때문에 땅바닥에 퍼져버린 것이다. 모 방송국에서 취재나온 기자가 우리일행을 찍으려고 했다. 우리가 독특하게 구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참가자들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듯 했다.
fuer die freie Bildung이 전면에 나오고. fuer die Solidaritaet가 등쪽에 적혀있는 옷을 우리 4인이 입고 있었다. 아쉽게도 방송출연할 이 기회는 백인립씨가 잠시 전화하러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그리고 그 취재진이 다른 곳에 잠시 이동하는 바람에 결국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몇 군데의 언론사에서 우리를 인터뷰하고 취재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더 많은 일반인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기 때문에 그리 아쉽지는 않다.|금일 데모에서 인상적인 것은 지난번 마르부르크의 데모에 비해서 시위의 방식이 좀더 정련되어졌다는 점이다. 조직적인 데모가가 있다는 것도 오늘 알게 되었고, 시위자들이 빈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시위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점으로 생각이 된다. 다양한 시위의 보조도구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휘슬뿐 아니라, 북을 치는 자들도 있었고, 대형앰프에서는 데모열정을 더욱 보존시키도록 다양한 음악을 틀어대고 있었다. 한국의 데모에서도 그렇지만 이러한 다양한 도구들은 그것이 잘 이용이 될 때에 시위자들에게 강한 연대의식을 고취시키도록 할 수 있다. 한가지 더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늘 시위에서 목격되는 것이지만, 시위자들이 기회가 있는 대로 지나가는 시민들과 대화를 통해서 왜 데모를 하는 가에 대한 것을 주지시킨다는 점이다. 이것은 때로는 시위자 측의 일방적인 자기변호이기도 하지만 일반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양측간의 진지한 논쟁을 보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근본을 현장에서 재확인하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데모가 다 끝나고 마르부르크 멘자로 돌아와 참가자 4인이 식탁에 앉아있었을 때에, 나는 독일인 지인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오늘 헤센 주의회에서 등록금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즉 우리가 열차게 시위하고 있던 그 시점에 지난 4개월을 끌어온 대장정이 마무리되게끔 되게 하는 법적인 조치가 매듭 지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등록금제도 자체는 우리가 원하던 대로 폐지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가능한 방법으로 투쟁하는 길은 열려 있다. 어떻게 나아가야할 지에 대한 모색은 우리 한국인들이 다시 만나서 진지하게 나누어 보아야 할 것이다.

참가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내속에 들끓는 만감을 요약해보고 싶다.
누구나 주지하는 대로 우리 등록금 법안 반대하는 자들의 모임은 예상보다는 큰 성과를 얻어냈다. 박사 과정생들이 황당하게 등록금 내야 하는 일을 저지시켰고, 그보다는 더 큰 성과라 할 차별법안자체를 없애버렸다. 또한 외국인 학생에게도 부분적으로는 등록금납부에 있어 독일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융자의 길이 열리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등반사 그 자체의 힘으로 이것을 얻어내는 데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는 측정해내기가 어렵다. 위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공들인 사람들, 구체적으로 다양한 사회집단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정확한 것은 우리가 그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우리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 힘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등반사라고 하는 가시적인 조직보다 더 큰 힘이 있었음을 나는 분명히 체득하게 되었다. 그것은 말없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거의 대부분 이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사분오열하지 않고 하나되어서 등록금 반대의 투쟁대열에 섰다는 점이다. 물론 데모나 다양한 반대활동에 나오는 사람들이야 제한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중요한 고비고비마다 함께 힘을 써주었다라고 하는 것은 이 싸움에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해준 동력이었음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적으로 도와준 모든 이들이 우리의 힘이었음을 다시금 천명하고자 한다. 한국인 교회인 한인선교교회에서 토론을 위한 장을 제공해주고 물질적으로도 후원해주었음에 깊이 감사 드린다. 등반사는 이러한 여러 한국인들의 후원아래 기꺼이 전위에 섰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곳 독일에서 유학을 하면서 앞으로도 얼마든지 금년과 같은 큰 사회적인 파도에 부딪치게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하나된 마음으로 나아가면 결국 도태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이 등록금 관련 투쟁에서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낯선 이국 그리고 사실은 남의 땅에서 이렇게 용기있게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결코 현실에 순응하고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줄 때에 분명한 사실로 성립할 수 있다. 이 여름에 우리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마르부르크의 한국인들은 더욱 단결하고 힘을 합쳐서 앞으로 더 나은 가치를 창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황금같은 20대 30대 그 때에 시간을 쪼개어서 사람됨의 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그것도 이국 하늘아래서 투쟁을 했다라고 하는 것, 그래서 우리의 의견을 설득력있게 주장했다라고 하는 것, 그리고 성과를 거두었다라고 하는 것. 적어도 나는 내 평생에 있어 이 여름의 사건들을 두고두고 음미해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학업을 이곳에서 마치고 대부분은 이 내용을 가지고 전문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도 그러하다. 우리가 장차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의 상당한 부분은 사람과 그 주변세계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인간으로 살 것인가. 어떠한 생각으로 사회를 볼 것인가. 결국은 인간과 사회에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행동하고 실천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적어도 학문과 배움이 지니는 근본적인 문제의식 앞에서 우리를 괴리시키지 않을 것이다. 왜 공부를 하느냐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돌아오는 상존하는 질문이고 그것 앞에서 우리는 초라해 질 이유가 없다.

우리 마르부르크의 한국인들은 분명히 좋은 체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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