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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려주는 새아리는 낡은 반복의 메아리가 아니라 거창하지 않은 작은 것이라도 뭔가 새롭게 느끼게 해주며, 소박한 가운데서도 문득 작은 통찰을 주는 그런 글들을 기다립니다. 소재와 형식, 문체에 제약이 없는, 제멋대로 자유롭고 그래서 나름 창조적인 자기만의 글쓰기를 환영합니다.

한국 피자 과대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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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스라니 이름으로 검색 조회 3,168회 작성일 02-10-23 05:18

본문

(Die Welt. 2002.10.22)
이탈리아 요리사 에르마니 후르라니 씨는 어느 날 밤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몇 주 동안 먼 나라로 가서 피자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야 할 나라는 바로 북한이라는 것이다. 그는 가겠다고 했다. 김정일의 피자 요리사로서 겪었던 그 기묘한 경험들을 아시아타임스에 기고했다.

우리는 길 끝에 있는 엄청나게 큰 문 앞에 이르렀다. 경비원이 친절하게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그곳에는 훌륭한 공원과 오래된 나무들, 세심하게 다듬어진 꽃밭들과 분수들이 있었고, 길이 150 m 정도의 측면 건물 2개가 붙은 궁전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의 건물은 4층이었고 다른 또 하나는 그보다 낮았는데 창문이 없었다. 이 호텔„에는 리셉션이나 안내문, 열쇠 등이 전혀 없었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소년이 우리 가방을 차에서 꺼내왔는데, 그 순간 이곳이 호텔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이 사태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엄 씨는 그저 "걱정 마세요, 시간 많으니까"라고만 말했다.

기이한 '호텔'에 갇혀

몸이 피곤했던 나는 더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고 그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안에서는 얼음과 같은 냉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가구도 없었고 벽에는 그림 한 점 걸려있지 않았다. 엄 씨는 우리들을 나무로 짜여지고 그 안에 오래된 안락의자 몇 개가 놓여진 응접실로 안내하고 사라져 버렸다. 얼마 후 나이 든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말 없이 웃으면서 우리에게 마실 것을 제공했다. 흰 유니폼을 입은 또 다른 소년이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들의 방은 호화로왔다. 그곳은 커다란 거실들과 으리으리한 욕실들과 잘 정리된 도서관이 갖춰진 객실이었다.

얼마 후 전화 벨이 울렸다. 한 남자가 TV를 켤 것을 지시했다. 나는 시키는대로 했고 객실의 바에서 음료를 꺼내 마셨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것처럼 느꼈다. 순식간에 과거로 이동한 것처럼. TV 화면에는 전투 장면과 군사 퍼레이드 장면이 비춰지면서 웅장한 찬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다른 채널로 돌리자 코미디 쇼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코미디언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있었다.

다시 전화 벨이 울렸다. 엄 씨가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그에게 우리는 비행기에서 먹은 식사 때문에 아직 배가 부르다고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우리들에게 배당된 프로그램들을 신성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그것은 세부적인 부분이 변경되어서는 안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여기서는 모든 곳에서 군대 같은 규율이 지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경비원이 손을 흔들었던 것은 친절한 제스쳐가 아니었다. 그는 경례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엄 씨와 함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가지 건강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우리들을 검사했다. 심전도 검사, EEG, 소변 검사 등을 받았다. 그리고나서 담당자는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혈액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완벽하게 그들의 지배 하에 있음을 곧 깨달게 되었다. 우리들은 그들의 손에 넘겨져 있고 그들은 자신들이 우리로부터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때에 나는 엄 씨에게 대체 이것들이 다 무슨 짓이냐고 말하면서 북한 주재 이탈리아 대사와 면담하겠다고 순진하게 덧붙였다. 엄 씨는 웃으면서 그러지말고 그냥 즐겁게 지내세요. 흥분하지 마시고‚라고 말했다.

후덥지근한 더위는 견디기 어려웠고 도시의 하늘은 커다란 먹구름으로 덮혀 있었다. 이 도시의 공기와 주민들의 표정에는 기쁨이 없어 보였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색채가 있는 아이들의 유니폼이었다. 흰 셔츠와 파란 치마나 바지, 그리고 빨간 머플러를 입은 행렬이 발을 맞춰 거리를 행진했다. 연인들이 타고 가는 강의 작은 보트나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은 생동감이 있어 보였고,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활동들이 떠오르게 하였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화스러운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의 도심에서는 사람들이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군인이거나 외교관이나 그 가족, 또는 여행객으로 보였다. 중국인들도 많았고 러시아인 몇 명도 있었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어디를 가더라도 중년의 사람들만 볼 수 있었고 이들은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지루함이 묻어났고 가끔 무릎을 몇 번 굽히기도 했다. 이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이상한 태도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정원에 앉아서 빨래줄에 널린 빨래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친구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사람들이 빈둥거리고 있는 정원사들이라는 것이었다.

언제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깍여져 있는 잔디를 갖춘, 우리들이 묵고 있는 궁전 바깥에는 정원들이 대부분 황폐한 인상을 주었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를 알 수 없었다. 이 궁전에서는 수 백명이 정원사로 고용되어 작은 가위를 가지고 잔디 하나 하나를 잘라내고 특수한 가방에 건초를 채워넣고 있었다. 완전 고용을 이루기 위한 방법치고는 얼마나 환상적인가! 나는 여러 번에 걸쳐 이 장면의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잔디를 깍고 있는 그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댈 때마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것처럼 도망쳐 버렸다.

일종의 메드클럽(Club Med): 피자, 소나무, 대공포

엄 씨는 우리를 6시에 깨웠다. 1시간 후에 아침식사입니다. 짐을 챙기세요. 며칠 간 바다로 갈 겁니다.‚ 리무진 자동차를 타고 북한 땅을 가로질러 2백 km를 달렸다. 짙은 색으로 코팅되어진 자동차 유리창을 통해 우리들이 본 것은 너무 가난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제 거의 복고적인 매력을 풍기기까지 했다. 농촌의 주된 교통수단은 석기시대 같은 바퀴가 달렸고 소나 말이 끌고 가는, 덜덜거리는 우마차였다.  가끔 새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가난하고 황폐해 보였고, 들판은 텅 비어있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냥 거기 서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덕 위에는 커다란 붉은 글씨로 구호들이 적혀 있었다.

모든 지역은 통제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문을 지나야 했는데, 우리가 아름다운 작은 마을로 가까와질수록 이들의 무장도 그만큼 강화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소나무 아래 낮은 집들을 가진 메드클럽(Club Med)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으스스한 기분을 가지게 되었다. 거의 40m마다 우리는 사병 4명과 장교 1명이 지키고 있는 대공포를 지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마치 밀랍 인형처럼 보였다.

마침내 도착했다. 오른편으로는 아름다운 백사장이 있었고 왼편으로는 수련이 떠있는 연못이 있었다. 낮은 건물 3개는 각각 주방이 있었고 모두 세심한 부분까지 장식이 되어 있었다. 내가 가르칠 사람들은 즉시 수업을 시작하기를 원했고, 내게 피자를 만들어보라고 청했다. 나는 24시간 동안 밀가루 반죽을 그대로 놔두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피자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프로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솜씨를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내게는 4시간이 주어졌다.

그럭저럭 이 일은 해낼 수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들은 나의 모든 동작을 관찰하면서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노트에 적었고, 피자에 들어가는 올리브의 갯수를 세고 심지어 내가 올리브를 반죽 위에 흩어놓은 그 간격들까지 재어보았다. 엄 씨는 내 피자 중 하나를 골라서 부엌 바깥으로 가지고 나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는 일종의 재판정으로 인도되었다. 3명의 배심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박 씨였는데, 그는 금목걸이와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고 두툼한 시가 담배를 들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말했다. 이 정도의 반죽은 아주 특별한 요리사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박 씨는 자신이 우리들의 이 작은 모험을 주선했다고 설명하면서, 이것은 자신의 „손님’들을 위한 깜짝쇼라고 밝혔다. 그는 전세계에서 요리사들을 초대했다. 여기서는 이 지구상의 모든 음식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요리의 서커스라고나 할까. 이곳의 도서관에는 수천 종의 요리책이 수집되어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두 군 장교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돈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집, 옷, 음식, 자동차, 심지어 담배까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국가가 제공해 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기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북한에 머무는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요리사 박 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훌륭한 기회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 그는 내게 모든 가능한 이탈리아 별미들을 적어달라면서 수 천 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며칠 내로 이 일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서 박 씨는 이탈리아에서 피자 만드는 화덕을 보내달라고 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가장 비싼 모델을 골랐고 이를 즉시 전화로 주문해 달라고 내게 요청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휴일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낭비는 피할 수 있었다.

식사에 온 지도자 동지

가끔씩 어디에선가 심부름꾼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그가 커다란 궤짝 두 개를 풀어놓는 것을 두 번 보았다. 값비싼 프랑스 치즈 20개와 최고급 프랑스 와인들이었다. 그날 저녁에는 부르군트 포도주가 제공되었다. 나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밖에 없었다. 3일 후에는 바롤로가 배달되어 왔다. 바로 이탈리아에서 온 것이었다.  

엄 씨는 내일은 요리를 위해 바닷가로 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카프리 마이애미/플로리다’라는 이름이 씌여진 배가 요리사를 싣고 갔다.

우리들은 물에 떠서 매일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정박할 수 있는 그런 유원지가 나타날 때까지 크고 작은 섬들을 지나서 항해해 갔다. 이 유원지에는 수영장과 전망대를 가진 2층 건물이 있었다. 경비원은 우리가 그곳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손을 들어서 우리들의 머리를 반대편으로 돌리게 했다. 그리고나서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커다란 배에 도착했는데, 당연하게도 여기에는 완벽하게 준비된 주방들도 있었다. 우리들이 일할 장소였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내 피자 음식점을 그대로 이리로 옮겨왔다. 소품들까지 모두. 내가 할 일이라고는 거기 들어가서 요리하는 일 뿐이었다. 성대한 점심 식사 바로 전에 갑자기 분위기가 동요되고 있었다. 부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흥분을 느끼고 있을 무렵 나는 막 피자를 다 구었다. 그들은 거의 완력을 쓰다시피 해서 나를 창문으로부터 떼어놓고 편안한 살롱으로 데리고 가서 맥주를 한 잔 내놓았다.

코팅이 된 부엌 창문 바깥편에 있는, 윗층의 호화스러운 룸으로 가는 길에 이제 한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바로 벽에 붙은 그림들에 그려진  사람이었다. 그 덩치가 권력의 크기를 암시하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왕좌를 물려받은 그가 수행원들과 나타났다. 지도자 동지는 한반도 전체와 전세계에서 유일한 그 특이한 머리 스타일 때문에 즉각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정말 지도자인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우리들을 이끄는 사람은 몇 분 간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지도자 동지를 직접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린 그가 그 광경을 묘사하는 것을 듣고는 나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달콤한 북한 맥주를 권했다. 그는 자신이 마치 신을 본 것처럼 생각된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그를 부러워하고 있다.

그 날 저녁에 문제가 생겼다. 저녁식사는 매우 훌륭했지만 „누군가„가 양고기가 너무 짜다고 말했다. 그래서 밤에 회의가 열렸는데, 이는 적절하게 간을 맞추는 법을 배우는 일종의 세뇌 학습과 같았다.

자존심이 상한 이탈리아 요리사로서 나는 즉각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큰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내 요리를 변호했다. 수석 요리사는 나를 옹호하면서도, 내게는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충고했다. 요리를 거부한다면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벽 1시까지 모든 메뉴들이 다시 만들어졌다. 2시쯤 되어서 엄 씨가 맥주를 몇 개 가지고 나타나서 요리사를 위로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옷을 즉시 갈아입으라고 말했다. 나는 본관 건물 근처에 있는 방갈로로 갔다. 다행스럽게도 거기에는 선전용 TV 프로그램이 아닌 제대로 된 TV가 있었다.

그들은 무인도로 안내되어 엄청난 „불고기’파티에 참가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우리가 늘 마시던 르미 마르탱 코냑과 인삼액을 섞은 음료가 제공되었고, 배의 전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떠들썩하게 춤을 추었다. 그 후 나는 술을 깨려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엄 씨는 내게 이 섬은 완벽한 무인도라고 말했었는데, 나는 그림자 몇 개를 발견했다. 이들은 나를 보자 도망쳐 버렸다. 내가 이들에 대해 물어보자 엄 씨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였다. 내가 무언가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말로는 내게 통하지 않았다. 나는 취하기는 했지만 신기루를 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염소 울음 소리를 따라가서 잘 가꾸어진 채소밭을 발견했다.

이 황폐한 섬은 그러나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비쩍 마른 어미 염소와 두 마리의 새끼 염소를 보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일종의 오래된 도시와 같은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서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이 발견에 흥분한 나는 이 염소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 부인들을 불렀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출입금지된 섬에서의 축구

잠시 후 엄 씨의 수행원 중 한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들을 거기에서 데려가려고 했다. 그는 더듬거리며 영어로 우리들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수석요리사와 나는 너무 취해 있어서 어떤 일에도 개의치 않았다. 이런 난리통 때문에 이 섬의 주민들이 그들이 숨어있던 곳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왔다. 모두 16세에서 18세 사이의 소년들이고 머리를 짧게 깍고 웃통은 벗고 있었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우리를 둘러쌌고 그래서 우리는 조금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에선가 공 하나가 굴러왔고, 이 북한의 다도해에 위치한 외딴 섬에서 축구의 마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존재하지 않는 섬 주민들’과의 오후의 즐거운 한때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팀을 나눴다.

북한과 이탈리아의 흥겨운 축구 경기가 벌어졌다. 이 날이 다 저물어가도록 우리들은 이 섬에서 염소 젖과 채소와 물고기를 먹고 사는 것이 분명한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이탈리아인들에게는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통보가 왔다. 우리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파키스탄 요리사가 이미 도착했다고 한다.

독재의 가장 신성한 곳에서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엄 씨는 아름답게 만들어진 문 앞에 섰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의 하나에 들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넓은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현기증을 불러일으킬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약 1만 평방미터의 거대한 홀이었다. 나무로 된 마루바닥과 대리석으로 된 벽이었다. 저 뒤쪽으로는 자연 채광 아래에 위대한 지도자가 가장 좋아하는 산, 북한 혁명의 성산인 백두산 위의 숲들이 모사되어 있었다. 그 뒤에는 그 지도자 자신도 실물 크기로 모사되어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가 미이라로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밀랍 인형에 지나지 않았다. 엄 씨는 우리에게 고개를 숙일 것을 요구했다. 우습게도 나는 거기에 복종했다. 나는 이러한 숭배에 홀려버렸고 일종의 역사 환타지에 사로잡혀 버렸다. 나 자신이 고대 그리스인 크세노폰의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이고 신과 같은 제왕 앞에 머리를 숙이라고 요구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했고 알렉산더 대왕과 아우구스투스를 생각했다.

동양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수 백년이 흘러가고 그와 함께 정권들이 바뀌어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신과 같은 제왕을 숭배하는 것은 그대로이다. 사이비 공산주의 독재자의 특권계급은 고대 제국의 이러한 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근본은 변한 것이 없다. 칭기스칸의 정신은 아직도 그곳을 배회하고 있다.  

(번역: 고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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