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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박두익 - 붉은 모기떼가 돌아왔다

1966년 북한은 이탈리아를 불리쳤다. 한 영국영화감독이 박두익을 만났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원희이름으로 검색 조회 4,069회 작성일 02-10-23 01:45

본문

Die Rückkehr der Roten Moskitos. FR참고
그 장면은 오늘날 조야한 화질로만 볼 수 있다. 등번호 7번 박두익 선수가 골을 넣는 장면.  이때가 66년이다.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북한이 강력한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1:0으로 물리친 것이다.

북한은 1966년 세계무대에 올랐다가 곧 모습을 감추었다. 북한은 월드컵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았으며 선수들은 다시는 외국땅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한에서는 이들이 노동수용소에 있다는 말이 돌았다. 이제 이들은 처음으로 함께 영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를 들려줄 것이다.

한 영국인 다큐작가(Daniel Gordon)가 66년의 축구영웅들을 재발견한 것이다. "제 아버지는 내게 항상 북한인들과 월드컵에 대해서 들려주곤 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이것을 허황된 생각이라고 평가했다.북한은 매년 불과 한줌도 안되는 관광객들만이 입국허가를 받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나라다. 비자신청시 이력서를 제출해야 하는 나라다. 그가 어떻게 북한월드컵축구선수들을 찾아낸단 말인가?

그는 세계에서 유일한 북한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인 기업가(Nick Bonner)를 만났고 둘이 함께 찾으러 나섰다. 둘은 북한 스포츠관계자들과 차도 마시고 정부관리들과는 가라오케에서 노래도 불렀다. 결국 그들은 축구선수들을 인터뷰할수 있었다. 그들이 월드컵축구선수의 한사람인 한봉진을 만났을 때 한봉진은 바로 "Middlesbrough의 시장이 아직 살아 있느냐?"고 물었다. 이 도시는 북한팀이 월드컵 기간중 합숙했던 곳이다.

다큐영화제목은 "그들 삶의 경기"("Das Spiel ihre Lebens")이다. 감독은 기아를 비롯해 사람놀래키는 북한모습을 넘어 그 저편에 북한인들의 축구에 대한 사랑을 묘사한다. 골기퍼 리찬명은 공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면 뭐든지 가져다 그걸로 공을 찼다고 말한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상태에도 불구하고 현재 프로축구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영기업들과 국가보위부같은 국기기관소속팀이 14개 있다. 텔레비전 중계료도 없고, 수백만달러의 월급도 없는 축구경기이다. 그러나 북한은 축구에 미쳤다. 정부는 이번 여름 한일 월드컵을 정치적인 이유로 보이코트하기는 했지만 국영방송은 월드컵을 무단으로 방송한 바 있다.

최근 남북관계는 긴장이 완화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남북간 우정의 축구경기가 서울에서 열렸다. 리찬명은 월드컵 이후 군대에 갔다. 그가 훈장달린 군복을 입고 김일성 경기장에  서있는 모습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그의 3남1녀의 자식들도 모두 군대에 가 있다. 그는 종종 Middlesbrough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호텔의 종업원들은 경기전 그들에게 화환을 선사했었다.

북한이 국제축구무대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특별한 시기에 일어났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13년후 신생 인민공화국에는 개혁의 분위기가 지배했다. 사람들은 아직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북한은 산업이나 경제에서 남한을 앞서고 있었다. 월드컵에 참여한 것은 냉전시기의 정치투쟁의 일부였다. 축구선수들은 영국으로 떠나기전 김일성을 사적으로 알현했다.  위대한 지도자는 그들이 한 두 경기를 이기라고 말했다. 북한선수들은 바로 그것을 이루었다. "우리는 우리 조국과 인민을 위해 나갔고 싸웠다"고 한봉진은 말한다.

북한팀은 군사작전을 방불하는 정확도속에서 월드컵을 준비했다. 선수들은 수천명의 선수들에서 선발되었고 엄격한 트레이닝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동유럽팀들이 북한팀 연습상대로 북한에 왔다. 월드컵에서 북한선수들은 그들의 왜소한 체격 때문에 "붉은 모기떼"("Rote Moskitos")로 불렸으며  다른 팀들로부터 무시당했다. 그러나 북한은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에 놀라운 승리를 거두고 8강에서 포르투갈을 만났다. 경기 24분경 북한은 3:0으로 앞섰으나 후반전에 골을 먹고 3:5로 졌다. 포르투칼의 에우제비오는 이 경기에서 혼자 4골을 넣었다.

북한은 자기선수들이 계급의 적들에 둘러싸여 적대적인 환경에서 놓여있다고 보도하곤 했다. 그러니 경기장 관중들이 갑자기 큰소리로 "Korea! Korea!" 하고 외쳤을 때는 꽤 놀랐을것이다.  작은 북한선수들은 월드컵 관중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팀이었다. Middlesbrough의 3천명주민들은 북한팀을 쫓아 포르투갈전이 열리는 리버풀까지 따라가서 북한선수들을 응원했다. "이것은 내게 아직도 수수께끼"라고 Rim Jung-son선수는 말한다. "Middlesbrough사람들은 우리를 마지막까지 지원해 주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랬는지 모른다."

이 선수들이 목표를 바로 앞에두고 좌초했기에, 혹은 서방국가에서 선물을 받았기에 북한으로 돌아가 정말 노동수용소로 갔었던 것인가?  "나는 그들에게 직설적으로 두번이나 물어보았다. 그들은 이것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어느덧 그사이 11명의 선수중에 4명이 죽었다. 살아있는 선수들의 이력도 대부분 불분명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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