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쎄(Hermann Hesse)나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독일이 낳은 세계적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출생국가인 독일보다 머나먼 극동에 있는 나라 한국에서 더더욱 다수의 사랑을 받는, 혹은 받았던 작가가 아닐까 싶다.
오는 4월 30일 살아 있다면 100세의 생일을 맞는 루이제 린저는 1911년 바이언주의 피츠링(Pittzling)에서 태어나 2002년 3월 17일 뮌헨 근처 운터하힝(Unterhaching)에서 91세로 생을 마쳤다.
그는 20세기 독일 대표 작곡가의 한 사람인 칼 오르프(Carl Orff)의 부인이기도 했고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윤이상과도 특별한 친분을 맺고 있었으며 북한의 김일성, 독일 작가 에른스트 융어(Ernst Jünger), 20세기 최대의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그리고 달라이 라마 등과도 각별한 사이였다.
그의 전기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그는 70년대부터 남북한국서 가장 사랑받는 독일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이미 그 당시 독일서 출판된 대부분의 그의 책들이 아직은 불법으로 번역 소개되었고 광주의 명예시민인 동시에 북한을 여러 번 방문, <북한 방문기>를 출판하기도 했다.
정치활동 경력으로는 1984년 녹색당소속의 독일 대통령후보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로는 13개의 소설, 9개의 단편모음집, 13개의 전기적 저서, 30개의 여행기, 그 외에 대담, 에쎄이집 등 다수이다. 한국서는 특히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생의 한 가운데(Mitte des Lebens)>로 많은 독자가 생겼다고 한다.
그의 100세 생일을 맞아 생전에 많은 그녀의 작품들을 출판해 온 피셔출판사에서는 새로운 그의 전기를 간행했다. 이미 그 자신이 쓴 자서전들로 많이 알려져 있는 그의 생이지만 더욱 폭넓고 집중적인 자료수집 등을 통해 새로 쓰여진 그의 전기에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어쩌면 국내외 많은 독자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그가 처음부터 나치저항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 스스로 기록한 내용들이 미화,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올해 1월 슈피겔지에 소개된 내용 중 일부이다.
1935년 그가 24세 일 때 그는 나치를 찬양하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으나 이후에 작가로 활동하면서 한 번도 그것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여인' 시절에 멋모르고 쓴 그 시 한 편이 나중에 그의 생을 통해 보여준 나치저항에 별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주위의 평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또한 자서전 (Den Wolf umarmen) 에서 젊은 작곡가 호르스트 귄터 슈넬(Horst Günther Schnell)과 1939년 결혼, 1943년 그가 전쟁터에서 사망했을 때 그의 부인이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당시 관청기록에 의하면 이미 1942년 슈넬은 린저와 이혼했고 여류 작가 헤드비히 로데(Hedwig Rohde)와 결혼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린저는 왜 이런 거짓 사실을 기록하는 것일까. 슈넬은 실제로 그 당시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그러나 나치 정권으로 부터 감시당하는 재능있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다고 한다. 린저의 생의 이야기에 좋은 역할을 해 줄수 있는 사람이었다. 린저는 그를 통해 아마도 반 나치의식과 접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두번 째 남편인 헤르만(Hermann)은 자서전에 소개된 내용, 그가 동성애자라서 그를 나치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와 형식적인 결혼식을 올렸다고 하는 부분도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논리적으로도, 호모라서 위험이 있다면 경력에 티가 없는 여자와 결혼을 할 것이고 나치에 의해 쫓기고 감시당하는 루이제 린저 같은 여성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의 나치투쟁경력도 과장 미화 되어 있다. 자서전에는 1944년 10월부터 1945년 미군이 진입하기 직전까지 투옥되었으며 죄목은 나치에 대항한 '국가반역죄(Hochverrat)' 그로 인해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면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고 쓰고 있으나 남아 있는 당시의 경찰, 형무소서류 어디에서도 그런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린저는 전쟁이 끝난 1945 여름, 그의 투옥이유가 국가반역죄라고 공식서류에 기입하도록 처리했다고 한다.
베를린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두 번째 남편 헤르만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어느 날 밤 나는 나치에 의해 지원금을 받은 독일의 대형기업들에 관해서, 그리고 그 액수에 관해서 린저에게 이야기를 했고 린저는 다시 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의 남편이 고소를 함으로서 린저는 연행되었다"고 되어 있다. 이 정도는 실은 그리 큰 죄목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나치에 적극 저항함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는 국가반역죄로 투옥되었다고 왜곡, <감옥에서의 일
기(Gefängnistagebuch)>라는 책을 썼다"고 전 남편은 기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린저의 이중적 일생,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나치에 적극 투쟁한, 혹은 한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 결혼도 할 수 있는 독일 작가로 미화한, 또한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싶었을 그의 삶의 이야기야 말로 어쩌면 그가 쓰지 않은 20세기 독일의 문학일지도 모른다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