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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피셔 외무장관에게 사과해야할 조선일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스라니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4,264회 작성일 01-02-18 00:35

본문

또 한번 막막하다. 그래도 '신문'의 인기란인데 어떻게 저렇게 '실수'를 섞어놓을 수 있을까.

조선일보는 2001년 2월 3일자 '만물상'에서 "과거 청산"이라는 제목으로 독일의 피셔 외무장관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아래 원문 첨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퍼왔음)

여기서 조선일보는 "그러나 그(피셔-필자)가 단순한 거리 시위대의 일원에 그치지 않고 시위진압 경찰관을 돌로 치는 장면을 생생하게 잡은 사진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부터 새삼 문제가 되고 있다"고 썼다. 또한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을 돌로 공격한 폭력전과자라는 것이 뒤늦게라도 밝혀졌다면..."이라고도 했다.

'돌로 치는 장면'? 피셔 장관이 경찰관을 돌로 쳤단 말인가? 아마 이 글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약간의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파렴치범이 어떻게 한 나라의 장관, 그것도 조선일보가 비장하게 선포하고 있듯이, "세계 제3의 경제 강국에서 제2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직자"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진상은 이렇다. 피셔 장관은 경찰관을 돌로 친 적이 없다. 피셔 장관은 경찰관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쓰러진 경찰관을 짓밟았다. 독일 잡지 슈테른은 얼마전 그 '폭력'과 관련된 5장의 사진을 실었다. 특히 피셔가 경찰을 때리는 장면에서는 "주먹으로"라는 사진설명을 달았다.---편집자). 이것은 해석이고 뭐고 없이 '사실' 그 자체이다.

1973년 일어난 이 시위에서 폭력을 쓴 것에 대해 피셔 장관은 여러 번 사과했다. 독일의 언론과 여론은 이 부분에 있어 어설픈 용서가 없었다. 피셔 장관은 토크쇼나 인터뷰 때마다 이와 관련된 집요한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이 행동에 대해 반복해 사과했다. 자신이 구타한 경찰관에게 전화를 해서 개인적으로도 사과를 했다. 그래서 독일 국민들은 이 정도면 됐다라고 하는 분위기이다.

참고로 필자의 눈에 띈 독일의 언론 논평을 하나 인용하겠다. 바디쉐 차이퉁(Badische Zeitung)의 논평이다. 이러한 반응들이 피셔 장관의 반복된 사과 이후에도 여전히 그를 물고 늘어지는 일부 보수 언론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여론이다.

"야당의 반응은 이해할 만하다. 요시카 피셔는 비폭력 문명사회의 대표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기민당은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사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잘못된 것이다. 물론 피셔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시위대는 지금의 시위대와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피셔는 결코 무기를 사용했던 것도 아니다. 당시 그가 넘지 않았던 그 한계는 그를 둘러싼 이 논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피셔는 결코 테러리스트 그룹에 이끌려 들어간 적이 없다."

몇 가지 의문들이 떠오른다.

첫째, 조선일보에게 이러한 차이는 중요하지 않은 작은 차이일까? 조선일보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아니다.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들을 때 돌로 경찰관을 치는 피셔 장관과 같은 좌파들은 매우 흉폭한 범죄자들로 여겨질 것이다. 아마 돌을 들어 경찰관을 내리치느냐, 주먹으로 치느냐의 차이는 법적으로도 크게 고려될 것이고, 만일 피셔 장관이 돌로 경찰을 내리쳤다면, 독일 여론도 그를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담이지만, 돌로 친다는 것은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어감을 준다. '죄 없는 자 돌을 들어 이 여인을 치라’는 예수의 말이나, 간통한 사람을 돌로 치는 처벌로 다스린다는 이슬람 율법을 생각해 보라. 돌로 치는 사람은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단죄자이다.)

둘째, 만물상 필자는 '실수'로 이런 오류를 범했을까?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런 '실수'가 가능했을까? 독일어로 돌은 '슈타인(Stein)'이고 주먹은 '파우스트(Faust)'라서 실수할 만큼 비슷한 글자는 아닌 것 같다. 그럼, 기자는 누구한테 그냥 들은 이야기를 확인해 보지 않고 쓴 것일까?

아니면 기자가 보았던 어느 매체의 한 구석에 이런 왜곡된 사실이 실려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이모저모로 상상력을 발휘해 가면서까지 이러한 '실수'를 이해해 주려고 해도, 분명한 것은 조선일보의 이러한 일련의 '실수'들은 대부분 너무도 뚜렷한 특정 편향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실수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만을 지적해 두어야겠다.

요즘 독일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독일의 조선일보', '위대한 게르만의 황색지' 빌트는 요즘 독일 정부의 진보적 인사들에 대한 마녀 사냥에 무척 바쁜데(조선일보가 한완상 신임 부총리 등을 대상으로 벌이는 '사업'하고 참 닮은꼴이다), 그 와중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 일이다.

빌트 지는 트리틴 환경장관(피셔 외무장관과 같은 녹색당 소속)이 참가한 한 시위에 대한 사진을 실으면서 시위대가 "쇠파이프와 볼트 절단기로 무장했다"고 썼다. 거기다가 "트리틴이여, 그대는 여기서 뭘하는가?"라는 제목을 달았고‚ '쇠파이프와 볼트절단기'에는 친절하게 빨간 동그라미를 달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 원본 사진을 보면 '쇠파이프'는 길거리에 출입 차단용으로 드리워진 밧줄이고 '볼트 절단기'는 길거리에 서 있는 자동차의 한 부분이었다. 실수였을까. 물론 실수일 수도 있다. 최소한 빌트지 편집국장은 그렇게 생각한다. 편집국장은 이에 대해 사과하면서 절대로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있을 수 있었느냐고 따지는 데에 대해서는 전혀 해명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별 희한한 실수도 다 있다.

셋째, 백배 양보해서 주먹을 돌로 바꾼 것을 '실수'라고 하더라도, 조선일보는 이러한 실수를 인정하고 이에 대해 명예를 훼손 당한 피셔 장관과 오류투성이 정보를 제공받은 독자에게 사과하고 앞으로는 좀더 주의를 기울여서 참 기사만을 쓸 것이라고 다짐할까? 조선일보가 자신들이 주장하듯이 한국 최대 신문'이라면, 아니 그저 '신문'이기라도 하다면,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그럴까?

바로 이곳이 독일의 빌트지와 한국의 빌트인 조선일보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아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뼈아픈 일이지만, 언론을 대하는 독일 국민과 한국 국민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아무리 뭐니뭐니 그래도 독일 최대 황색지 빌트의 편집국장은 트리틴 장관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그렇게 사과하지 않고서 넘어가도록 여론이 묵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인정하기 싫은 일이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조선일보가 왜곡 보도하는 것은 축구에 비유하자면 골문 앞의 노마크 찬스와 같다.

이 짧은 기사에서 나타난 또 다른 왜곡 사례도 지적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 사례는 앞서 이야기한 부분보다 눈에는 덜 뜨이지만 어쩌면 독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는 "폭력을 '설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바 있는 사람을 법치국가의 외무장관 자리에 그대로 놓아둘 수 있느냐는 것이 토론의 주된 내용이다"라고 썼다.

피셔 장관이 폭력을 설교했다? 금시초문이다. 독일에서도 빌트(정론지가 부럽지 않은 황색지)와 디벨트(정론지를 가장한 황색지)라는 쌍두마차를 거느린 악셀 슈프링어 출판사를 비롯해 일부 보수 언론들은 이를 마치 입증된 '사실'인 양 써대지만, 그래도 조선일보처럼 대담하게 '써갈기지는' 못한다. 또한 독일 전체의 냉정한 여론은 '사실'과 '추측'을 분명히 분간하고 있다.

자신은 폭력을 교사한 적이 없다는 피셔 장관의 주장이 여론에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만물상 필자가(기자? 특파원? 논설위원?)가 만일 독일 신문을 본다면, 아마도 빌트와 디벨트만 보는 것일까.

만일 피셔 장관이 폭력을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설교'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는 현재의 논란과는 분명히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때도 여론이 그를 용서해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피셔 장관의 '폭력 설교설'은 전혀 입증되지 않은, 그야말로 '설'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지적하자. 조선일보는 그 글 말미에 하고 싶었던 말을 슬그머니 끄집어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피셔의 경우에서 보듯, 그들은 젊었던 시절 한 때의 '방황'으로 돌리면서'회개'를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주변에서는 이순의 나이에서도 여전히(아니면 뒤늦게)'왼쪽 사상'에 연연하는 지식인들이 남아 있다는 점일 것이다"라고 조선일보는 썼다.

이순의 나이에도 좌파 사상에 연연하는 지식인들은 누구일까? 한완상일까, 최장집일까.

하지만 여기서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끌어온 독일의 피셔 장관 사례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피셔 장관은 그 날 시위 도중 경찰관을 구타한 데 대해 사과하면서도 이 날 사태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사 전체에 대해 사과한 적은 없고 이를 '한 때의 방황'이라고 한 적도 없고 하물며 '회개'한 적은 더욱 없다. 피셔 장관은 자신이 좌파 활동을 했으나 폭력에 호소하는 전략을 택한 적이 없었음을 분명히 하면서 떳떳하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피셔 장관은 말한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면 명백히 책임을 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은 일(폭력적 활동)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의 일부분이며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여기서 "젊었던 시절 한 때의 '방황'으로 돌리면서'회개'를 하고 있는" 피셔 장관을 찾아내는 조선일보의 예리한 분석력이 무섭다. 아니면 조선일보는 희망사항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한완상도 최장집도 모두 모두 '피셔 장관처럼' 과거를 회개하고 '따뜻한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조선일보의 이 짧은 기사에는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숨어 있다. 그런데 결국 진정한 문제는 이러한 조선일보 기사를 보는 일반 시민들이 독일에서 일어난 피셔 장관의 사건에 대해 깊숙히 알 까닭이 없으니 이런 왜곡이 그냥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 조선일보가 희망하는 '(좌파) 과거 청산'이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알고 있는 걸까? 우리 사회에서 '청산되어야 할 과거' 리스트를 작성하면, 조선일보가 그래도 꽤 높은 자리에 차지할 것이라는 것을?

주한 독일대사관의 독일 외교관들이 조선일보의 이런 왜곡 보도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밥만 축내는 공무원들이 아니라면 자국의 장관이자 자신들의 최고위 지휘관인 외무장관을, 경찰관을 돌로 친 '폭력전과범'으로 만들어 버린 이러한 모욕에 대해 모른 척 넘어갈 수 있을까?

그래서 하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한독 우호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피셔 외무장관에게 사과하길 바란다.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 예상이 틀려도 좋으니까. 조선일보가 사과만 한다면, "한 때의 '이념적 열정'에서 저질러진" 이런 '실수'를 용서해 주는 관용 정도야 못 보이겠는가?



다음은 문제의 조선일보 글 전문이다.

과거 청산

(조선일보. 2001.2.3 만물상)

「세계 제3의 경제 강국에서 제2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직자」가 과거 전투적인 가두시위를 벌이면서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을 돌로 공격한 폭력전과자라는 것이 뒤늦게라도 밝혀졌다면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독일의 사민-녹색당 연립 정부에서 부총리 겸 외무장관으로 있는 녹색당 출신의 요시카 피셔가 바로 그 화제의 인물인데, 이를 계기로 독일은 또 하나의「과거사 청산」을 맞고 있다.

요즘 독일에서는 의회는 물론 각종 정치 관련 토론장, TV 토크 쇼, 그리고 술자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피셔 외무장관의「폭력전과」를 단골 메뉴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30년이 흐른 과거사가 되었고, 또 젊은 시절 한 때의 「이념적 열정」에서 저질러진 것이라 하더라도 폭력을「설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바 있는 사람을 법치국가의 외무장관 자리에 그대로 놓아둘 수 있느냐는 것이 토론의 주된 내용이다.

피셔 외무장관이 20대 젊은 시절 급진 좌파 학생단체에 가담해 지도적 역할을 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다. 그러나 그가 단순한 거리 시위대의 일원에 그치지 않고 시위진압 경찰관을 돌로 치는 장면을 생생하게 잡은 사진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부터 새삼 문제가 되고 있다. 본인 자신은 오래전에 이미「폭력과의 결별」을 선언한 터라 문제시 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독일 언론들은 연일 「피셔의 과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2차대전 후 50년 가까이 히틀러의 극우 나치역사 청산에 몰두해온 독일인들에게 피셔 장관의 폭력전과 폭로를 계기로 극좌라는 또하나의 과거사 청산이 과제로 안겨진 셈이다. 극좌세력을 둘러싼「제2의 역사 청산」이 어떻게 진전될지 주목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이니, 이념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으로 말하면 독일 못지않게 가슴앓이를 많이 해온 것이 우리 민족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피셔의 경우에서 보듯, 그들은 젊었던 시절 한 때의 「방황」으로 돌리면서「회개」를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주변에서는 이순의 나이에서도 여전히(아니면 뒤늦게)「왼쪽 사상」에 연연하는 지식인들이 남아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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