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한에 등을 돌리는 북한사람들
매달 수천 명의 탈북자들 중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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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4,060회 작성일 06-11-29 13:05본문
두만강은 물살이 빨라 아직 얼지 않았다. 단지 무릎까지 밖에 차지 않는 물깊이기에 배 없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 제일 위험한 것은 허나 국경을 지키는 북한의 군인들이다. 이들의 동정을 잘 살펴 적시 적소에서 야밤을 타 100미터 정도의 강폭을 넘어 중국으로 탈주하는 북한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보도다.
독일의 유수한 일간지 쥐드도이췌 신문의 동북아특파원이 최근에 탈북자의 탈북 모습을 취재한 후 중국의 한 국경도시 양지에서 보낸 소식이 오늘 자 신문 3면 하단을 장식했다. 이 새아리 난에도 가끔씩 옮겨 보도한 바와 같이 Henrik Bork라는 독일특파원이 보이는 한국에 남다른 관심으로 취재를 하는 모습에 고마운 마음 품는다. 이 기자가 직접 겪은 모습을 대강 옮겨 그린다:
그 30살의 북한 여자 이름은 남순이다. 남순은 다른 두 명의 북한 사람들과 함께 탈북을 돕는 무리들에 의해 이끌려 두만강을 넘었다. 물론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 100 유로 정도, 남자들은 허나 그 반 값이다. 잡힐 위험도에 따른 차이라 한다. 달빛이 약한 날 밤을 이용해 영하 14도의 추위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국경 근방 도시로 도주한다는 계획이다. 도주한 후 옷차림새와 머리 모양 등을 바꾸어 북한사람임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도록 수를 쓴다. 이들은 근방 도시들에서 싼 임금으로 일하고 있으며 여자들은 심지어 사창가로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탈북을 계획하며 돈을 버는 무리들 역시 조선인들이다. 그 지역 사람들의 39% 정도가 조선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의사소통에는 거의 문제가 없다 한다. 지난 4주 동안 20여명의 북한사람들을 탈북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이들은 또한 국경을 지키는 북한 군인들에 뇌물을 제공한다. 긴급한 소통을 위해 핸디를 선물하기도 하며 북한군인들은 자기네들이 겨울에 입을 속옷을 묵인의 대가로 요구한다.
남순은 함흥 출신이다. 그 곳에서 남순은 군모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1996년 이후 더 이상의 식량배급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까지 일했다. 1995년과 1997년 사이 북한에서는 식량부족으로 오천에서 이백만 명 까지의 아사자들이 속출했다. 남순 역시 이러한 배고픔의 아수라 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는 2000년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쪼께 나아지기는 했으나 굶주린 배를 움켜쥐는 모습에는 별 큰 변화가 없다고 전한다. 그 사이 그녀의 어머니는 병들어 죽었고 아버지는 식량을 찾아 집을 나서 떠돌아 다닌다고 한다. 그녀는 홀로 들판이나 산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채취해 먹었는데 중국에서 냉째라 불리는 돼지 사육용 식물도 뜯어 먹었다 한다.
김정일에 대해 불평하고 싶은 마음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사람들한테 우리의 지도자는 좋은데 그 밑에 있는 중하급 관료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한다. 핵무기 보유 소식을 듣고 자기네들의 지도자 김정일이 왜 그리 절약을 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같이 작은 나라가 그러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은 자부심을 느낀다고.
중국에서의 첫날 남순은 심한 복통을 앓았다. 도주로 인한 후유증일 수도 있으나, 어쩌면 생소한 음식을 섭취했음에 그 원인이 있을 게다.
“내가 고기를 먹은 것은 십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시요.”
독일의 유수한 일간지 쥐드도이췌 신문의 동북아특파원이 최근에 탈북자의 탈북 모습을 취재한 후 중국의 한 국경도시 양지에서 보낸 소식이 오늘 자 신문 3면 하단을 장식했다. 이 새아리 난에도 가끔씩 옮겨 보도한 바와 같이 Henrik Bork라는 독일특파원이 보이는 한국에 남다른 관심으로 취재를 하는 모습에 고마운 마음 품는다. 이 기자가 직접 겪은 모습을 대강 옮겨 그린다:
그 30살의 북한 여자 이름은 남순이다. 남순은 다른 두 명의 북한 사람들과 함께 탈북을 돕는 무리들에 의해 이끌려 두만강을 넘었다. 물론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 100 유로 정도, 남자들은 허나 그 반 값이다. 잡힐 위험도에 따른 차이라 한다. 달빛이 약한 날 밤을 이용해 영하 14도의 추위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국경 근방 도시로 도주한다는 계획이다. 도주한 후 옷차림새와 머리 모양 등을 바꾸어 북한사람임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도록 수를 쓴다. 이들은 근방 도시들에서 싼 임금으로 일하고 있으며 여자들은 심지어 사창가로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탈북을 계획하며 돈을 버는 무리들 역시 조선인들이다. 그 지역 사람들의 39% 정도가 조선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의사소통에는 거의 문제가 없다 한다. 지난 4주 동안 20여명의 북한사람들을 탈북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이들은 또한 국경을 지키는 북한 군인들에 뇌물을 제공한다. 긴급한 소통을 위해 핸디를 선물하기도 하며 북한군인들은 자기네들이 겨울에 입을 속옷을 묵인의 대가로 요구한다.
남순은 함흥 출신이다. 그 곳에서 남순은 군모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1996년 이후 더 이상의 식량배급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까지 일했다. 1995년과 1997년 사이 북한에서는 식량부족으로 오천에서 이백만 명 까지의 아사자들이 속출했다. 남순 역시 이러한 배고픔의 아수라 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는 2000년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쪼께 나아지기는 했으나 굶주린 배를 움켜쥐는 모습에는 별 큰 변화가 없다고 전한다. 그 사이 그녀의 어머니는 병들어 죽었고 아버지는 식량을 찾아 집을 나서 떠돌아 다닌다고 한다. 그녀는 홀로 들판이나 산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채취해 먹었는데 중국에서 냉째라 불리는 돼지 사육용 식물도 뜯어 먹었다 한다.
김정일에 대해 불평하고 싶은 마음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사람들한테 우리의 지도자는 좋은데 그 밑에 있는 중하급 관료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한다. 핵무기 보유 소식을 듣고 자기네들의 지도자 김정일이 왜 그리 절약을 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같이 작은 나라가 그러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은 자부심을 느낀다고.
중국에서의 첫날 남순은 심한 복통을 앓았다. 도주로 인한 후유증일 수도 있으나, 어쩌면 생소한 음식을 섭취했음에 그 원인이 있을 게다.
“내가 고기를 먹은 것은 십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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