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포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커뮤니티 새아리 유학마당 독어마당
커뮤니티
자유투고
생활문답
벼룩시장
구인구직
행사알림
먹거리
비어가든
갤러리
유학마당
유학문답
교육소식
유학전후
유학FAQ
유학일기
독어마당
독어문답
독어강좌
독어유머
독어용례
독어얘기
기타
독일개관
파독50년
독일와인
나지라기
관광화보
현재접속
161명
새알려주는 새아리는 낡은 반복의 메아리가 아니라 거창하지 않은 작은 것이라도 뭔가 새롭게 느끼게 해주며, 소박한 가운데서도 문득 작은 통찰을 주는 그런 글들을 기다립니다. 소재와 형식, 문체에 제약이 없는, 제멋대로 자유롭고 그래서 나름 창조적인 자기만의 글쓰기를 환영합니다.

한국 프랑크푸르트개막식에서 낭독한 고은시인님글 전문 - 문학 행성(行星)에서의 여행 -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황금연못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263회 작성일 05-10-27 15:56

본문

문학 행성(行星)에서의 여행

고은 시인

바람이 불기 위하여 돌제비(石燕)가 먼저 날아오른다 했습니다. 지구는 스스로 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구상의 영원한 편서풍(偏西風)을 가슴에 안고 동북아시아에서 왔습니다. 마치 고대 한국의 달밤을 편력하던 시인처럼, 중세 독일의 미네쟁거처럼 말입니다. 9세기 후반의 한국시인 최치원에게는 유난히 동방의식이 강했습니다. 그가 남긴 탑비(塔碑)의 하나에도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빛나고 왕성하고 또 실다운 사방(四方)의 형질에 비치는 건 새벽 해만치 고른 것이 없고, 기운이 온화하고 포근하여 만물의 효력이 있는 건 봄바람만치 넓은 것이 없다. 봄바람이나 떠오르는 해는 모두 동쪽에서 오나니....”
이 같은 동방 예찬은 진작의 “ 빛은 동방으로부터(ex oriente lus)"라는 서방의 격언과 나란히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해돋이가 라틴어의 ”동쪽“이 되고 앗시리아어의 아시아가 ”해돋이“와 ”동쪽“을 뜻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온 한국문학의 일부인 몇 사람은 이런 옛 동방의 긍지 따위에 도취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서구의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에 장식되기 위해서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깨달은 자유로서의 동방이 이 명예로운 프랑크푸르트 책 잔치에 반영되기를 바랍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뒤의 1940년 후반,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제 3 세계“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차별로 남용되다가 차츰 정치적 문화적 각성으로 변용되는 동안 그 세계사적 갈등 속에서 한국과 한국문학 역시 그것과 무관(無關)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경계의 의미는 더 나아가 인식전환이 요구될 때마다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도 예감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단계에 살고 있고 꿈꾸고 있는 곳인 이 문학 행성 위의 숭고한 다양성의 한 여행자인 것입니다. 아마도 이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동북아시아 대륙 중국의 ”종합“과 해양 일본의 ”가공(加工)“ 사이에서 독자적인 ”본연(本然)“의 얼굴을 어느만큼 보여주고자 합니다.
한국은 구텐베르크활자보다 50여년 앞선 활자의 발명으로 책의 시대를 열어놓은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책은 이곳에서처럼 하나의 전통적 유산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곳 프랑크푸르트는 괴테문학의 발생지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외경(畏敬)의 도시입니다. 이곳은 그의 빛의 시작이자 그를 영구히 기억하는 현장으로서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프랑크푸르트 책잔치가 베푸는 문학의 고전적 존엄성은 막 문학의 죽음을 말하는 시대에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지금 우리는 2005년 주빈국 작가로 이곳에 와 있습니다. 어떤 뜻에서는 늦은 손님인지도 모릅니다. 늦은 손님은 새로운 손님의 처음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절에서는 손님을 흰 구름으로 표현하고 주인을 푸른 산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산에 구름 한 자락이 걸려있을 때 그것으로 한 폭의 한국 산수화의 미학이 완성됩니다. 손님이란 그곳에 익숙해지면 어느덧 주인이 되고 주인 역시 본디 오래 머물러 있는 손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주인은 어제의 손님이고 손님은 내일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토록 손님과 주인의 구분 없는 경지의 일부를 문학을 통해서 체험하고자 합니다. 내 전집의 “서시(序詩)”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느 날은
손님인가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주인인가 하였습니다.
이런 세월
굴뚝들
피워 올릴 연기를 꿈꾸었습니다.
오늘도 모르겠습니다.
시가 누구인지

이 시가 고백하고 있는 것, 즉 내가 누구인지 또는 시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황홀한 무지 속에 숨겨져 있는 창조의 원소(元素)로서의 진실을 통해서 한국 문학의 어떤 풍경이 보여지기를 기대합니다. 주빈국의 문학이라 해서 행여 그것이 한꺼번에 퍼붓는 폭우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때로는 문학이 태풍이기를 열망할 때가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지금으로서는 자칫 문학 향수(享受)의 과정을 훼손할 위험도 있습니다. 한 편의 시는 인간에게 잠시 놓쳐버린 영감을 찾아주는 언어의 공명(共鳴)그것입니다. 그것은 퍼붓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함께 빛나기 위해서, 삶속에서 함께 울기 위해서 있는 지상의 친구입니다. 주빈국 주제의 하나가 “스며들기”라 했을 때 그것은 굴종이 아닌 한 이 같은 문학의 불문율에 부합하는 듯 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한국문학 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예술분야가 너무 역동적이거나 너무 진한 색감으로 과장되는 것도 경계합니다.
물론 내년에는 한국이 주빈국이 아니므로 이번의 주빈 축제에 대한 인상적인 이해를 널리 요청합니다. 녹색은 회색의 바로 옆에 있습니다.
한국문학은 1천 번 이상의 외침(外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언어를 굳건히 전승해온 시간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그것은 한국 주변의 여러 민족들이 그들의 언어와 문자와 함께 사라져버린 사례와 비교할 때 놀라운 일입니다. 근대한국문학은 식민지시대의 질곡 속에서 때로는 청소년기였고, 때로는 환자였고, 때로는 가사상태(假死狀態)였고, 때로는 노여운 회생(回生)이었습니다. 국어와 문자가 철저한 탄압에 의해 금지당한 식민지시대에 태어난 나 자신의 이름이 본래의 한국 이름에서 일본 이름으로 바뀌어야 했고 내가 초등학교 1년생이 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자가 없어지고 일본어로만 수업이 강행된 사실로 그것은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근대 한국문학은 근대 한국의 방어적 고뇌가 담긴 문학입니다. 그것이 20세기 이후의 어느 시점에 이르기까지 “민족문학”이라는 고통스러운 명제(命題)를 함부로 폐기할 수 없게 한 적도 있습니다. 대체로 문학을 보편성의 척도에 끌어들이는 일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역사를 관통하는 공통어인 사랑, 죽음, 전쟁, 평화, 자유, 정의 그리고 인간, 우주, 진리따위를 문학이 결코 비껴갈 수 없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편성에 관련될 때마다 초래되는 자아상실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모든 보편성 자체가 그 단초(端初)는 특수성이기 마련입니다. 바로 그 특수성이 발전함으로써 삶의 정전(正典)으로서의 보편성으로 나아갈 터입니다. 송진이 호박(琥珀)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국 또는 한국문학의 특수성은 아시아 지역의 여러 문학적 전통과 그 가능성으로 하여금 세계문학의 다채로운 장(場)에 기여하는 창조의 주변자로 자임(自任)합니다.
문학의 생명력은 그것이 발원한 곳으로부터 반드시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것은 머무는 자였다가 예상치 않은 상태로의 이동자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문학은 처음에는 작자와 독자사이, 작자와 청중사이에서도 그런 것처럼 나그네입니다. 한국문학 근대 1백년 속의 일정한 성과가 이곳에 와서 새로운 질문을 받게 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이은 분단시대를 살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적과 적으로서 한반도 남과 북의 사나운 생존관계를 반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이래로 우리는 남의 행복이 북의 불행이 되어서는 안 될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지난여름 분단 60년 만에 남과 북의 작가 2백 명이 함께 만나 조국과 문학의 통합에 대한 염원을 담고 커다란 문학축전을 개최했습니다. 이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남과 북의 작가와 학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겨레말 큰 사전 공동편찬사업을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이런 일들에 헌신한 사실을 이 자리를 빌어 보고함으로써 많은 호응을 얻고자 합니다. 이번 주빈국 행사에 북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실이 무엇보다 아쉬운 노릇입니다. 다만 분단시대의 문학이 장차의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착잡하며 가장 미묘하며 가장 이채로운 위상을 담보하리라고 생각할 때 북의 문학은 우리와 함께 실재합니다.
이곳에서 한국문학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국의 오랜 삶 속에서 이루어진 문학의 질료(質料)로서의 정서인 “한(恨)”과 “ (興)”이라는 두 혈연적인 역량(力量)은 여전히 한국문학의 근대 이후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한국문학이 지구상의 모든 문학들과의 축복받은 해후(邂逅)를 통해서 서로 조응(照應)될 때 그 생명력은 새로 발휘될 것입니다.
한국문학은 무엇인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여기에 있는 것일 그 일부이다!
라고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나는 문학이 텍스트로 되어버리는 일에 맹렬히 반대합니다. 문학은 산과 들과 강물, 거리와 뒷골목, 그리고 오랜 시간의 유역(流域)에 살아 있습니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새아리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75 한국 편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5
열람중 한국 황금연못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7
173 한국 황금연못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7
172 한국 BIU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2
171 한국 자유로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2
170 한국 자유로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2
169 한국 자유로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0
168 한국 Halb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1
167 한국 전은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7
166 한국 BIU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7
165 한국 BIU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5
164 한국 자유로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1
163 한국 자유로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1
162 한국 자유로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21
161 한국 자유로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8
게시물 검색
약관 | 운영진 | 비번분실 | 주요게시판사용규칙 | 등업방법 | 입금통보규칙 및 계좌 | 관리자메일
독일 한글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 서로 나누고 돕는 유럽 코리안 언라인 커뮤니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