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수는 10층도 더 되고 수백 수천 가구가 벽을 공유하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맞대고 사는 고층 아파트단지(Hochhaus, Großwohnsiedlung)는 독일에서 이미지가 좀 그런 편이다. 대도시 외곽지대에 주로 자리한 고층 아파트는 공공임대주택이 많다 보니 넉넉하지 못한 가구, 이주민이 많이 살고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는 선입견도 없지 않다. 

1992년 로스톡-리히텐하겐에서 발생한 네오나치들의 테러는 동서독 재통일 이후 독일의 가장 어두운 역사의 한 장에 속한다. 수백 명 베트남 손님근로자들과 아프리카를 비롯 여러 나라에서 온 정치 망명자들이 살고 있던 고층아파트 "해바라기집 (Sonnenblumenhaus)"에 네오나치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일부 시민들은 그 광경을 보며 손뼉을 치고 환호하는 모습이 방송국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된 것이다. 

독일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2차 대전 이후부터 70년대까지 빠른 주택공급을 위하여 건설되었다. 특히 공산주의 치하의 구동독 지역에 많이 건설되었고 주택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여유가 있는 도시에서는 당시 지어진 고층 건물이나 아파트 단지를 헐어 버리거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건축을 한다.

다만 베를린처럼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많은 이주자들이 유입되지만 집세는 내릴 줄 모르는 대도시에서는 당시 지어진 이런 대규모 아파트 일부를 안과 밖의 리모델링을 통해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제법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독일 남부 중소 도시에서는 수백 가구가 한데 모여 사는 고층 아파트를 여전히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여긴다. 

무엇보다 구동독 지역에서는 인구가 줄고, 주택으로서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너무나 많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비어 있어 백 만개 정도의 낡은 주택(Wohnung)을 허물어야 한다는 페스텔 연구소의 보고서도 있다. 그러나 주, 지역 관청에서는 반드시 허물어야 할 곳은 허물겠지만 가능하면 보수해서 도시의 서민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애쓰고 있다. 점점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는 에너지난, 환경 등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많은 가구가 한데 모여 사는 아파트는 분명 나름 장점이 있다. 물론 60년대 구동독에 지어진 대규모 단지와 같은 모습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러한 주거 형태의 장점을 최고로 살린 주택도 고려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요새 서울에서 들리는 소식은 반지하를 모두 없애겠다고 한다. 사실 서울의 반지하 문제는 주택의 위치가 반지하에 있다는 것보다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이다. 이 주택을 모두 없앤다는 것이 꼭 필요한지, 혹은 가능한지 미리 충분히 숙고해봐야 할 것이다. 지대가 매우 낮아 당장 홍수가 나면 위험한 곳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일부 지역은 일방적으로 모두 없앨 것이 아니라 주거지로서의 반지하에 관한 법률, 규정, 임대 조건 등을 개선, 강화하고 엄격한 적용을 통해 거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