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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려주는 새아리는 낡은 반복의 메아리가 아니라 거창하지 않은 작은 것이라도 뭔가 새롭게 느끼게 해주며, 소박한 가운데서도 문득 작은 통찰을 주는 그런 글들을 기다립니다. 소재와 형식, 문체에 제약이 없는, 제멋대로 자유롭고 그래서 나름 창조적인 자기만의 글쓰기를 환영합니다.

한국 생산적인 제3자

망명객 송두율씨가 8년전부터 남북의 지식인들간에 정보교환을 위한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그 목표는 통일이다. 그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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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891회 작성일 03-05-18 09:59

본문

taz 송두율교수 인터뷰
송두율 교수(1944년생)는 36년째 독일망명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 뮌스터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하버마스 문하생인 그는 비록 거의 40년을 한국땅을 못 밟아 보았지만 한국의 좌파지식인들의 사표로 간주된다. 매우 엄격한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그의 한국방문을 가로막고 있다. 송두율은 북한방문때문에 국보법에 걸렸다. 그는 여러차례 북한의 공식초청을 받아들였으며 1991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김일성 대학과 사회과학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했다.

송교수의 주도로 95년부터 매년 컨퍼런스가 열린다. 여기에는 남북의 학자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는 회담을 갖기 위해 만난다. 지금까지 이 만남은 중립적인 지역 북경에서만 가능했다. 올해 3월말 이 컨퍼런스는 처음으로 한반도 평양에서 열릴 수 있었다. 송두율의 개막연설은 동시에 남북의 TV로 중계되었다. 이는 상징적인 언론사의 사건으로 이 만남의 중요성을 인상적으로 예증해준다.

taz: 당신은 우선 철학자로 이해됩니다. 철학이란 현실정치와는 별로 연관이 없는 직업입니다. 어떻게 당신은 사는 곳은 베를린인데 남북의 학자들 만남을 위해 힘을 쓸 수 있었나요?

송두율: 북한이든지 남한이든지 통일은 중심적인 테마입니다. 하지만 양국에서는 역설적으로 도대체 통일의 우발성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처음 회담이 열릴 때까지 학자들이 그런 시나리오에서 예견되는 문제나 기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아무런 틀이 없었어요.

나는 이러한 결함에 대해서 남한의 정치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들은 94년 한 회담 참석차 베를린에 왔었죠. 우리는 공식적인 일정이 끝나고 한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만나 전혀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습니다. 즉 우리가 학자로서 정부차원의 하부에서 그러한 대담을 발기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1년후 한국의 정보부원까지 연루된 큰 어려움들이 극복된 후 마침내 실제로 남북의 25명 학자들이 북경에서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해는 특히 "평화와 협력"이 중요사안이었어요. 양국에서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이 왔고 그밖에도 미국의 4명의 재외한국인 정치학자들이 초청되었습니다. 저만 유일하게 철학자였어요.

질문: 철학자로서 당신은 이 회담에서 특수한 지위을 점했는데요. 당신은 참석자를 선별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양측에서 당신의 중재자역할을 받아들이게 됐습니까?

답변: 그에 대해서는 약간 할 말이 있고, 경계선에 선 사람 "Border Rider"로서의 저의 자의식에 대해 말해보고 싶습니다. 이 Border Rider라는 개념은 원래 스코트랜드와 잉글랜드 국경지역에서 유래했고 나중에 오스트레일리아가 범죄자의 식민자가 되었을 때 보다 전문적인 뜻을 담게 되었습니다.  보더 라이더에는 항상 뭔가 꺼림직한 구석이 있어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늘 원주민이 이런 과제를 떠맡았죠. 왜냐하면 그들이 제일 지리를 잘 알고 있었거든요. 이런 기능은 그들이 아웃사이더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지요. 이 경우와 제가 비슷합니다.

저는 스스로를 3가지 관점에서 경계인(Grenzgänger)으로 봅니다. 남과 북 사이라는게 그렇고, 아시아와 유럽의 사고전통 사이에서 자신의 고향을 발견한 철학자로서도 그래요. 그리고 독일에서의 망명 또한 저를 그런 존재로 만들었죠. 저는 독일에서 철저히 비판적인 거리를 가지고, 어떻게 독일의 분단이 평화롭게 극복되었는지를 함께 체험했어요. 코리아에서 저를 중재자로 못 미더워하는 구석으로는 아마도 양측이 제 운명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저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제 아들들이 한국여행하는 걸 허용하지 않을거예요.그러한 한 저는 단지 분단의 비참여적 관찰자일 뿐만 아니라, 저 스스로 그 분단의 고통을 앓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의 국외자적 역할은 또한 생산적인 제3자적 역할이기도 합니다. 저는 더이상 어떤 진영에도 속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를 통해 특별한 삶의 과제가 생겨났죠. 이 과제는 제가 가령 정치적인 앙가쥬망이 없이 물리학자로서 미국에서 전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가끔씩 가족과 한국을 방문했다면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을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질문: 구체적으로 중재로서의 당신의 작업은 어떤 겁니까?

저는 여기 베를린에서 정기적으로 서울과 평양의 전화를 받습니다. 모두 전달해달라는 부탁이죠. 이건 아주 실제적인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남북한간에 직통전화선이 없거든요. 하지만 저의 고유한 노동은  그때그때의 뉴스를 올바로 "번역하는 것"에 놓여 있습니다. 분단 반세기가 지나고 보니 남북한은 간단히 말해서 더이상 같은 언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지도자를 일컬을 때 남한은 항상 복수를 사용하는데 북한은 단수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런 섬세한 차이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경우에 따라 바꾸어야 할 경우도 생깁니다. 정치통역사로서 상호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담을 잘 진행시키기 위해 저는 그밖에도 어떤 정보를 제가 전달할 수 있고 어떤 정보는 아직 움추려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양측은 저의 방식을 알고 있으며 저는 그에 대해 자주 양국의 언론에 대고 말했습니다.

공식 발주자가 없는 당신 작업에 대해 질문이 생기는군요. 누가 그 회담을 재정지원하나요?

유럽인에게는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의 제 친구들중에 다행히 대기업 SK 이사로 있는 옛 동창이 있는데, 그가 매년 15만불을 지원합니다.

3월말경 회담은 극도로 날카로와진 상황에서 개최되었어요. 북한과  추정되는 그 핵잠재력은 북한을 부시의 "악의 축"의 선두주자로 만들었죠.

현재 정치상황은 만남에 엄청난 압력이 되었죠. 실제로 회담시작 2시간전까지도 우리가 도대체 회담을 개최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답니다. 북한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이고 극도로 위협감을 느끼고 있어요. 게다가 한국군 이라크 파병은 당연히 강력한 도발로 작용했습니다. 다른 한편 노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한국의 미국에 대한 운신폭은 엄청 좁아졌어요. 그 결과 그가 집권한 이래 남북간에 정부차원의 회담이 한번도 없었어요.

현재 상황이 양국간에 새로운 동질성을 갖게 할 수도 있을까요?

현상황은 낡은 공통성을 새롭게 보도록 한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네요. 니체의 노예의 도덕이라는 의미에서 남북한 양국에서 스스로를 긍정하는 승인 충동이 있습니다. 그 승인 충동은 해방을 위한 노력에 최초의 점화를 의미합니다.

분단 이전에 코리아는 수천년을 중화중심주의적 세계질서하에서 고생했고 가공할 일제 식민기도 같이 거쳤죠. 루이제 린저가 한번은 코리아의 운명은 북아일랜드나 폴란드하고만 비교될 수 있을거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국외자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이들 나라와 우리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런 점이 외부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민족주의를 대두시켰죠. 그 한국적인 바리에이션은 작년 월드컵 때를 보면 그림이 떠오를 겁니다.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 민족감정은 소위 문턱국가로서는 확실히 시대에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세계화의 시대에 비동시성이랄까 촌티가 난다고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핵심에 있어서  "제 1세계" 바깥의 역사를 여전히 각인하고 있는 "신세계질서"에 대한 원한의 일종입니다.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무엇이었나요?

통일과정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코리안은 예를 들어 통일비용에 대해 얘기하면 안 좋아해요. 그러면 바로 "냉소적"인 걸로 낙인 찍히죠. 대부분 사람들에게 통일은 단지 심장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며, 그때 화해는 단지 심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머리도 필요합니다.


DOROTHEE WENNER, 42세, 89년부터 taz 기고가. 그녀는 베를린영화 국제포럼을 위해 작년에 여러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렇다고 모든 시간을 영화관에서만 보내지는 않았다. taz Magazin Nr. 7039 vom 26.4.2003, Seite III, 251 Zeilen (Interview), DOROTHEE WENNER
추천8

댓글목록

자유로니님의 댓글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분단의 고통을 함께 하는 송교수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1.송교수를 비롯한 재유럽망명객들이 한국방문할 수 있도록 이슈화해야 합니다. 국가의 체면, 이념이나 명분보다는 하나의 인권의 문제로 자리매김하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할 겁니다.

2. 행사비용으로 15만불은 좀 많다는 느낌입니다. 행사비용을 더 줄여 실속을 기하고 명망가보다 젊은 사람들을 많이 초청했으면 합니다.

3. 정치번역도 일종의 검열이 될 수도 있으니까, 생산적인 충돌이 가능하도록  놔두는게 더 낫다고 봅니다.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도울 수도 있겠죠.

4. 남북한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더 비판적인 태도가 요구된다고 봅니다. 독일과 유럽에서 운동 하면서 고생해오신 분들중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신 분들이 많은데, 젊은 세대들은 민족주의적 관점에 대해 더 비판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제 북의 정권의 실체가 많이 드러난 지금 북의 정권에 대해 더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물론 북의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해서 북을 싸잡아 매도하면 안되겠죠.

답답함님의 댓글

답답함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KBS 일요스페셜 "경계도시"를 얼마전에 봤습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동안 시종일관 제 가슴속에 답답함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아직도 이 사회는 근대적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것같군요 송두율교수님의 처께서 "도대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데 말이야."라고 하신 말씀이 허공속에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군요,,,,
아무쪼록 꼭 귀국하셔서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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