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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당시 왜 아우슈비츠를 폭파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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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2-16 19:13 조회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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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는 독일의 역사다. 그러나 1945년까지 독일어로 아우슈비츠라고도 불리던 이 도시는 폴란드의 오쉬벵침 (Oświęcim) 이다. 


1990년대 동서장벽이 무너지고 방문과 왕래가 자유로워 지면서 전 세계에서 이곳을 방문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라는 표현을 쓰는 언론, 유명인사, 여행사들이 있었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바르샤바 게토는 "폴란드의 죽음의 강제수용소"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폴란드의 역사라는 의미가 아니지만 평소 유럽의 역사나 지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일부는 마치 이러한 강제수용소가 폴란드의 역사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3월 폴란드에서는 "폴란드의 강제수용소" 등의 표현을 금지함으로써 아우슈비츠나 다른 유대인 강제수용소가 폴란드의 역사라는 오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의 법을 제정했다.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말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라고 해도 이 "홀로코스트 법"에 위배된다. 물론 이 문장의 내용은 "폴란드의 (지금의 폴란드 영토에 있는) 아우슈비츠( 과거 독일어로 아우슈비츠라고 하는 도시에 있는 독일인이 세운) 강제 수용소"의 의미로, 괄호안의 설명이 빠졌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문맥에 따른 문장 해석과, 법 적용에 있어 실은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라고 하겠다. 

 

아우슈비츠와 관련, 지금도 언론,학계 등에서 자주 공개 토론되는 주제가 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은 왜 아우슈비츠를 폭파하지 않았는가 라는 것이다.


당시 연합군 관계자들은 얼마 전 독일 티브이의 대담에서 우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고 말한다.  당시는 요즘과 달라 저공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날아가 육안으로 보고 투하해야 하는데, 가스실이 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아 적중하기 대단히 어려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많은 수용되어 있는 이들이 희생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한 데, 만약 가스실은 그냥 두고 수만 명의 인명피해만 났다면 후대 역사에 두고두고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냐는 것이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포기하고 가능한 한 빨리 연합군의 승전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확신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당시 수용되어 있던 유대인들 가운데는 당시 비행기 소리만 나면 그곳을 폭파해 주기를 바랐다고 증언하는 이들도 많다. 자신이 희생되었어도 강제수용소가 사라지면 그래도 150만 명이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한편에서는 그렇다면 아우슈비츠로 가는 철로를 왜 폭파하지 않았는가 하고 묻는다. 티브이에 출연한 당시 연합군 관계자는 철로를 파괴하는 것도 접근이 용이 하지 않은 데다, 파괴되어도 철로는 짧으면 몇 시간, 길어도 며칠, 몇 주면 다시 복구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역시 지금도 자주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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