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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258회 작성일 12-12-18 20:33

본문

 
건들장마가 들어 우중충한 구월 둘째 일요일 오후에 점심을 먹은 후 복습을 하며 금속공학책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태영이 연통도 없이 찾아왔다.
미안해 형, 내가 찾아가야 하는 건데, 보다시피 연수교육이 보통 강행군이어야지---.“
성주는 방안에 늘어놓은 책들을 대충 치우면서 태영을 방안으로 맞아들였다.
안 바쁜 사람이 찾아오는 게 당연하지. 내가 오늘은 단단히 벼르고 자네와 담판을 하려고 왔지.“
왜 그래? 내가 무슨 죄라도 지었어?“
죄를 지어도 아주 큰 죄를 짓고 있잖아, 몰라서 물어?“
무슨 큰 죄를 ….?“
자네 그 영주라는 여자와 여보 당신 하는 관계까지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구하게 변명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이니까. 자네 당장 한국에 있는 제수씨와 아이들을 불러와. 어차피 연수 끝나도 귀국할 형편도 안 되는데,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다가 공연히 큰일 내지 말고---.“
, 그건 오해야, 영주가 어릴 적부터 나를 첫사랑으로 만나서---“
글쎄 변명하지 말랬지. 자넨 그게 첫사랑이니 뭐니 하지만, 누가 봐도 엄연한 불륜이고 불장난이야. 알 만큼 아는 사람이 왜 그러고 있어? 이대로 두었다가는 자네 가정이 파탄나는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하는 소리야.“
전방부대까지 나를 만나겠다고 찾아왔는데, 내가 월남 가는 바람에 헤어져서 십 일 년 만에 서독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때까지도 나를 가슴에 안고 살고 있는 게 어찌나 애처롭고 가슴 아픈지---, 그래서 냉정하게 끊을 수가 없어서 따뜻하게 대해주다 보니 그렇게 됐어. 사실은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런 못난 사람이 있나. 똑똑한 사람이 모르긴 뭘 몰라? 들으니 연수 중에 가족을 불러오면 가족수당까지 더 준다고 하니 우선 생활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그러면서 알맞은 직장 구하면 식구들하고 서독에 눌러 앉는 거지. 지금 한국상황으로 봐서는 우리네 같은 돈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은, 확실한 보장 없이 무작정 들어갔다간 무직자 되기 십상이고, 아차 하면 식구들하고 거리에 나 앉아도 누구 하나 돌아보는 사람 없어. 여기는 없어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그러니 내 말 들어.“
안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알량한 노동자 벌이로 아이들 대학교까지 학비를 댈 수 있을까가 가장 걱정이더라구. 그렇지만 당장은 곤란해, 세 식구 비행기 요금이 거의 사천 마르크인데, 내가 지금 그 돈이 없어.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는 거야.“
내가 그 말 나올 줄 알았지. 자 이거 받아 사천 마르크야. 우선 쓰고,  갚는 건 나중에 언제든지 생기면 갚아.“
태영은 싱긋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돈 봉투를 성주에게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돈봉투를 받아든 성주는 너무나도 뜻밖인지라 봉투를 도로 태영 앞으로 밀어 놓으며 사양했다.
내가 형의 형편을 잘 아는데, 무슨 여유가 있다고 이 많은 돈을---. 괜히 무리하지 말고 도로 넣어둬.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터이니.“
내가 이런 마련도 없이 가족 불러오라고 하겠어? 명색이 자네 형인데. 걱정하지마. 그래도 자네보다는 내가 좀 형편이 낫지. 혹시 몰라서 조금씩 모아 놓은 돈인데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으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둬. 그럼 나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돌아갈게.“
막무가내로 돈봉투를 놓고, 레크링하우젠 3진 동기들의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며, 건들장마 비가 뿌리는 밭 한가운데 길로 서둘러 돌아가는 태영의 뒷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는 성주의 얼굴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에 젖기 시작했다.
혈친과 다름없는 따뜻한 정을 주고 있는 태영을 향한 고마움의 눈물인지, 오복을 향한 참회와 그리움의 눈물인지 성주는 구태여 헤아리려 하지 않은 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샘솟아 올라 온몸을 채우고도 눈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하염없이 서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남으로부터 처음으로 받은 큰 호의였기에 성주는 그 뜻을 거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둘러 오복에게 전화를 해서 곧 초청장과 비행기 표를 보낼 터이니, 아이들 작은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여권 수속을 밟아 아이들 데리고 서독으로 오라고 전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와서 하자고 했다. 그리고 본에 있는 한주여행사를 통해서 초청장을 만들고 비행기 표를 사서 보냈다. 그러고 나니 영주가 마음에 걸렸다. 두 주일을 망설이다가 영주를 찾아가 가족을 초청한 자초지종을 밝혔다.
그렇지 않아도 한 반년만 더 있다가 언니와 아이들을 초청해서 당신을 돌려 드리려 했는데, 태영씨가 선수를 쳤네, 야속한 사람 같으니. 그럼 태영씨가 빌려준 돈은 내가 갚을게.“
아니야, 그렇게 하면 나 평생 짐이 무거워서 못 살아. 그냥 내가 저축해서 갚게 해줘. 내가 무슨 염치로 당신 돈을 받아?“
내가 그동안 얼마나 행복했는데, 그 행복은 돈으로 따질 수가 없는 건데, 그까짓 사천 마르크 당신을 위해서 쓴다구 해서 무슨 짐이 된다구?“
그렇지 않아. 액수가 문제가 아니야.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위하는지를 알면서도 또다시 마음을 아프게 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게다가 식구들 데려오는 비용까지 당신이? 그렇게는 못해, 그건 차라리 고문이고 형벌이야. 그러니 제발 그러지 마, 부탁이야.“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여보, 저녁 먹고 가! 내가 태워다 드릴 테니---.“
하면서 영주는 돌아갈 채비를 하는 성주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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