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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17 22:18 조회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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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전영호 씨가 알려주는 모임마다 쫓아다니며 서명을 받기 시작한 지가 벌써 석 달째야. 에쎈대학 기독학생회총회가 열리는 장소에 갔더니, 기독학생회 간부들이 자청해서 서명을 받으러 동분서주하고 있고, 지난달에는 그들의 소개로, 에쎈에서 열린 <세계평화단체와 인권단체 심포지엄>이라는 집회 장소를 찾아갔는데, 워낙 유명한 단체들의 대표들이 우리 서명운동에 동정적인 질문을 하며 관심이 집중되니까 그냥 모르는 체할 수 없었던지, 서독 제2공영방송(ZDF) 취재진을 선두로 해서 보도진들의 질문이 쏟아지더라구. 전영호 씨가 도맡아서 유창한 독일어로, 우리 한국광부들의 실태를 설명하고, 삼 년계약이 끝나면 즉시 귀국해야 한다는 조건부 노동계약은 서독노동법은 물론 보편적인 인권옹호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역설했는데, 그런 내용이 그다음 주에 제2공영방송 프로그램인 “오늘의 현장 Hier und Heute“ 에 초점기사로 방영되고, 다른 여러 신문에서도 우리 서명운동을 호의적으로 보도했어. 그러니까 루르탄광 측에서, “우리 측에서 삼 년 후 귀국 조건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한국측이 먼저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한국광부들은 병가율이 높아서 더는 고용할 계획이 없다.“라는 내용의 해명기사를 신문지상에 냈지. 전용호 씨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광부인권협회 이름으로, “우리 한국광부들의 병가율이 유럽 다른 나라에서 온 광부들보다 높은 이유가 바로 삼 년 후 귀국해야 한다는 비인도적 독소조항 때문이다. 또 우리는 지금 앞으로 고용할 광부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서독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광부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반박문을 방송사마다 신문사마다 보냈지. 그러면서 그동안 WAZ의 차이로코프스키 기자가 쓴 외국인 광부 관련 기사들과 한형이 지난해에 한국의 월간중앙에 발표한 르포기사 “파독광부: 그 피와 땀의 현장을 가다”의 원문복사본과 독일어 번역본을 함께 보냈지.
  그런데 이상하지. 그때부터 광산 측에서 어떻게 손을 썼는지 어쨌는지 매스컴의 보도가 요상한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하더라구. 당연히 우리 광부인권협회를 인터뷰해서 보도해야 하는 내용을 엉뚱한 노동자연맹을 찾아가 보도하는 바람에, 내용을 모르는 다른 지역 광부들이 ”서명운동이 그런 빨갱이 단체에서 하는 건 줄 알았으면 서명하지 안 했을 것이라며 서명삭제를 요구하고 확인하겠다며 광산기숙사까지 찾아오고 난리가 났었다구. 간신히 해명해서 무마를 했는데, 이번에는 난데없이 기독교 한인 사회상담실의 이 박사가 방송인터뷰에 나와서 한다는 말이, “그런 단체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우리 한인교회와는 관련 없는 일이다.“라고 찬물을 끼얹더라구. 말이야 틀린 말이 아니지만, 아니야! 우리 잘못도 있어. 그 양반하고도 우리 서명운동을 의논하거나 알리지 않은 건 분명 우리 실수야. 그래도 그렇지, 말이란 게 아 하는 것과 어 하는 것이 다른 건데, 좀 호의적으로 말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아. 그래서 우리 인권협회 사람들은 지금 이 박사를 안 좋게 생각하고 있어.“
영학이 밥을 다 먹고 물을 마시느라고 말을 멈추었다.
“아무려면 이 박사가 그런 말만 했을 리가 있어? 내가 방송이나 신문을 좀 아는데, 여러 가지 내용의 인터뷰를 한 시간 이상 해서, 앞뒤 다 잘라버리고 자기네들이 보도하고 싶은 것만 한 오 분 내보내는 게 방송이야. 모르긴 해도 이 박사도 그 방송 보고 당황했을 거야.”
“그럴까? 하기는 인터뷰를 한 오 분만 했을 리가 없지.“
“게다가 먼저 방송한 노동자연맹 인터뷰 보도를 이 박사가 보았다면, 우리 한인교회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안 그래도 빨갱이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그건 그래. 그 양반한테 알리지 않은 우리 실수가 크지.“
“그건 그렇고, 참 엄청난 일을 벌였네. 그래 지금까지 서명은 얼마나 받았어?“
“오천 명이 조금 안 돼, 그런데 명색이 한국광부들의 인권을 옹호하겠다는 일인데, 우리 한국인들의 서명은 삼백 명도 안 돼, 적어도 광부와 간호사들 합쳐서 이천 명은 넘어야 서독사람들 보기에도 떳떳할 거 아니겠어. 그래서 우리가 중간 대책회의를 한 결과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우리 한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하고, 건우는 자기가 거주하고 있는 아헨에서, 성연이와 나는 중부지역에서 교민들을 찾아다니기로 하고, 성길이와 정욱이는 서독 전 지역의 천주교 한인공동체를 찾아다니기로 했어. 그리고 한형한테는 보쿰교회와 두이스부르크교회, 그리고 여기 연수생들의 서명을 부탁하려고 왔지.“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리고 또 뭐 도울 일 없어?“
“한인 대상 서명운동이 끝나면 곧바로 주요 도시에서 길거리 서명운동을 시작하기로 했어. 지난 주말에 본 대학 앞과 뮌스터광장에서 시범적으로 해 보았는데, 예상 밖으로 반응도 좋았고 서명실적도 꽤 많았거든, 그때 시간이 되면 한번 나와주면 좋지. 그런데 연수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있겠어?“
“글쎄, 어떻게 시간을 내봐야지.“

  하룻밤을 자고 나서 영학이 서명용지와 취지문 보따리를 놓고 간 뒤 성주는 두 교회와 연수원에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참, 이런 일을 진작 했어야 하는데---.“
하고 선뜻 서명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절반 정도는, “서명? 아냐 난 사양하겠어, 서독땅에 와서 그놈의 서명 잘못해서 낭패당한 일이 어디 한두 번이라야지---.“
하면서 설명도 하기 전에 손사래를 치며 도망치듯 피해 버렸다.

  아헨 지역에서는 광산의 터키인 통역이 건우의 설명을 듣고 나서, “동료 광부들의 일이니 터키인 광부들은 모두 서명에 동참해 주기를 권한다.“라는 공지문을 터키인 광부들에게 돌려, 천여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지만, 삼백 명이 넘는 아헨지역 거주 한국인들 가운데에서는 겨우 일흔 명가량이 서명을 해 주었다고 탄식하는 내용을 건우가 편지로 알려왔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성주는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본, 쾰른, 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 뮌스터 등 큰 도시에서 벌린 가두서명도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한인천주교공동체를 찾아다닌 성길과 정욱은 별로 큰 성과를 올리지 하고, 목표했던 일 만 명을 채우지 못하고 팔천 명이 넘는 연대서명부를 첨부한 청원서를 서독하원 개원을 앞둔 구월 말에 외국인노동자에게 호의적이라고 알려진 본의 사민당 소속 얀 의원의 사무실로 전용호씨를 앞세우고 찾아가  전달하고, 적극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왔다고 영학이 편지를 통하여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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