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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380회 작성일 12-12-1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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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마당: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성주는 어학 과정이 시작되기 한 주일 전, 뮐러부인의 소개를 받아 클라우젠호프 인근에 있는 방 하나를 얻었다. 사방이 탁 트인 넓은 농경지 한가운데 외따로 서 있는 농가의 셋방은, 거실 한구석에 간단한 주방시설이 되어 있고, 현관 복도에 목욕탕을 겸한 화장실이 있었다. 집 주인은 하인츠라고 하는 마흔 살 중반의 농부와 순하디순하게 보이는 그의 부인 젬마, 그리고 열 살 전후의 세 아들이 사는 전형적인 독일농가였다.

모두 열네 명의 연수생들이 두세 명씩 어울려 클라우젠호프 주변의 여러 농가에 방을 얻어 기거하며 시작된 어학 과정 두 달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1기생들이 어학 과정을 마치고 지멘스 기술연수원으로 옮겨가고 뒤이어 2기생 열두 명이 어학 과정에 들어오면서, 이들의 공식 연수가 시작되기 두 해 전에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알기 위해 시범으로 시작했던 연수생들의 수료식이 열렸다.
수료식에서 슈피겔호프 연수원장은,
“오늘 수료하는 선배들이 모두 열심히 하여 뛰어난 연수성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연수프로젝트의 공식출범이 가능했다. 후진 여러분도 이분들과 같이 뛰어난 성적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다음, 시범 연수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한 채덕겸 선배는 후배들의 연수를 돕는 조교로 연수원에 남고, 나머지 수료생들은 모두 직업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발표했다.
연수는 오전 네 시간의 실기수련과 오후 네 시간의 이론공부라는 강행군이었다. 첫날 실기수련에 임한 연수생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줄(Feile)을 사용하여, 직육면체의 쇳덩이를 표면이 수평인 정육면체로 깎아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요철이 굵은 큰 줄로 대강의 형태를 잡고 나서, 차례로 작은 줄을 사용하면서 표면이 수평인 정육면체로 깎아내는 작업은 조교들의 시범과 조언을 보고 들으면서 땀을 흘리며 해도 하루 갖고는 어림도 없었다. 마지막 마무리 작업은 분필 가루를 뿌려가며 아주 미세한 줄로 문질러 쇠의 표면을 거울과 다름없는 수평면으로 만드는 작업을 대부분의 연수생들이 이틀 만에 끝마쳤지만, 손재주가 없는 성주와 몇 사람은 사흘이 꼬박 걸렸다.
 이론공부는 금속공학과 공업수학, 도면 읽기와 그리기 등 기술연수에 필수적인 전문과목 강의가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집에 돌아와서도 복습에 매달리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모두들 ”한국에서 학창시절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광부로 서독에 안 와도 됐을 거”라며 힘들어했다.
주어진 공작도면에 따라 쇠를 자르고, 다듬고,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나사골을 깎는 간단한 기초기술을 두 주일 동안 배우고나서 난생처음으로 커다란 선반 기계 앞에 선 성주는, 기계라고는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자신이 과연 이 거창한 기계들을 잘 다룰 수 있는지 겁부터 났다. 그러나 조교들의 시범을 눈여겨보며 조심스럽게 조작을 하여 돌아가는 기계에서 자신이 이해한 도면대로 쇳덩이가 깎여지는 과정을 보면서 성주는 차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천공기계, 연마 기계, 전기용접, 전기로를 이용한 금속표면 처리 등의 기본 기술을 한 가지씩 익혀 나갔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길든 연수생들은 모두가 암기의 천재들이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치르는 필기시험에서는 한두 사람을 빼고는 대부분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보여 교사들을 놀라게 했지만, 주어진 공작도면을 해석해서 제한시간 안으로 완성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실기시험에서는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열등생이었다.

그렇게 쫓기듯 연수를 받고 있는 팔월 어느 토요일 저녁에 영학이 불쑥 찾아왔다.
“어! 윤형, 여기까지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어떻게 지내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많고 해서 왔지.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도 괜찮지?“
“아, 물론이지. 잘 왔어,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그래, 모두들 잘 지내? 우선 시원한 것부터 좀 마시지. 여기까지 걸어 들어오느라고 땀깨나 흘렸을 텐데.“
“주스 같은 것 있으면 좀 줘. 거 버스정류장에서는 빤히 건너다보이던데 막상 걸어보니까 꽤 먼 거리네, 한 반 시간 걸렸지 아마---.“
서둘러 저녁밥을 지어 함께 먹으며 영학은 기숙사에 있는 동기들의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하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도 머지않아 한형과 같은 내용의 해고통지서를 받을 것 같아. 몸이 영 예전 같지가 않아서 병가가 잦았거든. 그래서 한국에 있는 처남들에게, 내가 군대에서 삼 년 동안 위생병으로 근무했으니, 그 경력을 갖고 남자간호사 자격증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부탁했더니, 어떻게 수를 썼는지 대한민국 보건사회부장관 이름으로 발급된 ‘간호보조원 자격증’을 보내왔지 뭐야. 그래서 지금 여기저기 남자간호원이 필요한 병원이 있는지 수소문 중이야. 그건 그렇고, 사실 오늘 온 목적은 다른 데 있어. 지난봄에 에쎈한인천주교회가 사우어란트에서 수련회를 열었는데, 천주교회에 나가는 6진의 김성길과 황정욱이 하도 함께 가자고 졸라대서 건우하고 성연이 하고 나하고 셋이서 참석했거든. 그런데 거기 강사로 온 고려대학 법학과 출신으로 서독에서 헌법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에 있다는 전영호라는 사람이 귀가 솔깃한 말을 하더라구.
광산노동계약이 삼 년으로 묶여 있고, 계약이 끝나면 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노동계약은, 서독 노동법 어디에도 없는 불법계약이고, 서독 헌법에도 어긋나는 비인도적 계약이라는 거야. 우리 간호사들도 처음에는 그 삼 년 계약 조건에 묶여 있었지만, 몇몇 뜻있는 간호사들이 앞장서서 ‘재독한국여성모임’이라는 인권단체를 결성하고, 체류제한 철폐청원 서명운동을 벌인 결과로 지금 체류가 자유로워졌는데, 남자인 광부들은 어째서 그걸 안 하냐고 질책을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레크링하우젠 광부들이 그걸 할 테니 도와달라구 했지. 그랬더니 전영호 씨가 재독한인카톨릭 노동청년회 고문의 자격으로 서명운동의 취지문과 서명용지 등 필요한 서류들을 독일어로 만들어 주고, 또 필요하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달려와 통역을 해 주겠다고 시원하게 승낙하더군. 그 양반 말이, 서독사람이든 외국사람이든 서독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 만 명 이상이 연대서명을 한 청원서는 서독 하원에서 의제로 다루어야 하게 되어 있다면서, 서명받는 방법까지도 일러 주더라구. 한국인은 물론이지만, 서독사람들의 성원을 받아야 한다면서, 서독에서 열리고 있는 수많은 집회, 다시 말해서 정의감이 강한 청년들의 집회나 국제회의 장소에 가서 취지문을 배포하고 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면, 그 행사를 취재하러 온 서독의 방송과 신문사들의 기자들이 주목하게 되고, 그들이 서명운동에 관심을 두고 취재해서 보도하게 되면 일반 서독시민도 호응을 하게 되어 만 명 서명을 받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구 장담을 하더라구. 그래서 김성길, 황정욱까지 다섯 사람이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그 자리에서 서명운동의 주체를 ‘재독한인 광부인권협회’라는 이름의 단체로 하기로 하고, 연락처는 독일어 대화가 가능한 전영호 씨의 전화번호를 사용하기로 결정해 버렸지.
                                                        < 51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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